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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회] 강제징집제도는 성차별주의를 정당화시킨다
    2012-01-31 05:14:50
  • -각국의 병역제도와 여성의 선택

     

     

    한국을 비롯해 이스라엘, 북한 등 강제징집제도를 통해 징병제를 실시하는 나라들에서는, 국민총동원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군사적 동원을 정당화하는 가치체계를 학습시킨다. 강제징집이라는 무리한 요구를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민족자긍심’과 ‘애국’이라는 가치관에 의해 유지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민족자긍심과 애국심의 실천은 곧 국방에의 의무와 등가되는 가치로 치환된다. 그리하여 현재의 강제징집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는 곧 ‘민족’에 대한 반대이면서, ‘국민될 자격없음’이 되므로, 그 문제제기가 비록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존경받는’ 문제제기로 자리매김하지는 않는다.

    또한 남성들만을 징집하는 한국에서 남성이 징집제도에 대해 비판하면, 남성답지 못하다는 의심을 받고, 여성이 징집제도에 대해 비판하면 여성답지 못하다는 비난이 날아온다. 이렇게 현재의 징집제도는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라는 고정된 성역할을 유지하고자 하는 가부장제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남성이 가해자라고? 너희는 우리가 군대갈 때 뭐했냐!!” “여성이 피해자라고? 너희는 군대에서 맞아봤어?” 이런 식인 것이다. 이렇게 강제징집경험은 제도와 권력으로부터 받는 고통과 피해경험을 남자가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로 만들면서 우리 사회를 타인의 고통에 무감동하게 만드는 비인간적인 사회로 만든다.

    여기서 군대에 징집되지 않는 여성들의 경험은 고통의 서열에서조차 밀리게 된다. 남성이 징병을 통해 사회적 고통을 분담하고 있으므로, 여성도 분담해야 한다는 생각은 성차별을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그럼 여자도 군대갈까?

     

     

    남성만을 징집하는 걸 빌미로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런 상황은 남녀를 공동으로 징병하면 문제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안겨준다. 이 고민은 여성도 징병해야 한다고 헌법소원을 내는 일부 남성들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명쾌하게 정리해서 정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를 던져준다. 남녀공동징병제에 찬성하는 여성이라고 해서 성차별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녀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사회적 역할에서도 역시 같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에 남녀공동징병제에 찬성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있다.

     

     

    또 남녀공동징병제에 반대하는 남성이라고 해서 그가 페미니스트인 것은 아니다. 남녀공동징병제에 반대하는 남성들은 전통적인 남성 영역에 진출하는 여성들이 불편하거나, 혹은 여성들의 군사적 능력을 의심하기 때문인 경우도 많다. 남녀공동징병제에 대해 대부분의 남성들은 현재 징집대상자들이 적지 않음에도 또 징집대상자를 늘리는 것은 경제적, 군사적 효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굳이 여성징병을 찬성하지 않는다. 현재 18세에서 25세 사이의 남성 40여만 명이 징집대상자인데, 여성징병을 하게 되면 80여만 명으로 늘어나게 되지만, 현대전에서는 절대병력수가 군사적 우위를 나타내지는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여성징병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징병을 바라보는 시각은 좀더 복잡하다. 유엔개발기구(UND)의 2002년 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특히 입법, 고위행정직, 기업인의 여성비율이 5%에 채 미치지 않아 조사가능 68개국 가운데 67위에 머무르고 있다. 이렇게 고위의사결정직에 여성들이 유리천장을 뚫고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여성들의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전 최초의 여성총리지명자였던 장상 전 이대 총장이 여자라는 이유로 ‘국방’ 수행능력에 대해 의심받았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에서 병역의무 수행여부는 곧 위기관리능력이자 애국심의 표상, 더 나아가 능력을 검증하는 리트머스시험지가 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페미니스트들 역시 여성이 군대에 가서 동등한 의무를 수행하면 성차별이 덜어지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한다.

     

     

     


     

    이스라엘, 동등한 징병, 동등한 권리?

     

     

    그렇다면 여성과 남성 모두를 강제징집하는 이스라엘에서는 성차별이 사라졌을까? 이스라엘은 1948년 국가재건의 부작용으로 이슬람과 팔레스타인 해방군 등 반이스라엘동맹이 이스라엘을 끝없이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스라엘은 총예산의 30% 이상을 군비로 책정하고 여성과 남성을 모두 강제징집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국방의 의무를 신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징병기피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 병역기피에 대한 처벌조항이 매우 약함에도 불구하고 강제징집제도가 잘 유지되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에서조차도 종교적 이유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는 연기신청을 통해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결혼을 했거나 종교상의 이유로 면제요청이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징집을 피하기 위해 결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종교적 신념이란 유대정교의 전통에 따르는 여성을 의미하는데 종교적 신념에 대해 판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아버지가 랍비인 경우 등을 감안하여 면제를 허용한다. 그러나 이 법안은, 딸은 아버지의 권위에 따라야 하며 성역할을 지켜야 한다는 유대전통에 기반하고 있어 성차별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결혼한 여성들이 징병을 피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의 요청에 의해 징병을 면제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에서도 전통적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여전히 건재하며, 여성이 ‘동등하게’ 징병된다고 해서 성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스라엘 유학생 A씨는 “페미니스트들이 우리를 군대로 보냈지만, 남성과 군대는 변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여자군인들은 남성적인 군인으로서의 역할과 어머니이자 애인으로서의 역할까지 같이 수행해야 한다는 이중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사례는 군대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없이 여성징병을 성평등으로 가는 길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외침의 위협이 고조되어 있는 전시상황에서 여성들이 국민됨을 증명하기 위해 병역의 의무를 한다고 해도, 여성들에게 남성들과 ‘똑같은’ 역할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이스라엘 등에서 여군들이 활약을 펼쳤지만 이러한 활약은 몇몇 여군의 지위는 높였을지 몰라도 전쟁 이후 여성의 지위가 격하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모병제로의 전환이 세계적인 추세

     

     

    한국의 징병제도가 26개월의 복무연한, 대체복무제 불인정, 비현실적인 수당 등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비해 세계의 징병제도는 이제 세계적인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현재 징병제를 택한 국가는 90개국 정도 되는데, 복무연한은 대부분 18개월 이하이고 복무시 월급은 생활보호가 가능한 수준으로 지급된다. 징병제 실시국 중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는 나라는 독일, 대만, 이스라엘, 스페인, 노르웨이, 폴란드 등 40여개국에 해당한다. 군사적 대치상황에 있거나, 외부위협이 높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중남미와 한국 등에서는 대체복무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사병월급이 한달에 1만 6500원(“최저임금 1만 6500원, 대한민국 사병은 거지인가” <한겨레21> 2002년 427호)이고 종교적 사유에 의한 대체복무도 인정되고 있지 않고, 복무시 수당이 매우 적고 복무연한이 상대적으로 길며, 복무시 사고와 구타에 노출되는 정도가 높아 징병국가 중에서도 인권침해수준이 매우 높은 편이다.(한국 같은 나라는 없다‘ <한겨레21> 2002년 427호 김소희 기자) 복무연한의 경우 유럽연합 이후 외침에 대한 불안감이 줄어든 서유럽국가들에서는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의 의무징병기간이 10개월이며, 아시아권 국가인 대만은 22개월, 중국은 2년이다.

     

     

    강제징병제도는 개인의 인권과 국가에의 의무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내포하므로, 국가와 개인간에 의무가 아니라 계약관계를 맺는 모병제 도입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프랑스와 스페인 등 전통적으로 징병제를 택했던 나라들이 모병제로 변화하고 있는 추세이다. 대표적인 징병제국가였던 프랑스는 냉전종식과 함께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줄어들었다는 판단하에 91년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했다. 1992년에는 벨기에, 네델란드는 냉전종식을 이유로 1993년에 모병제를 도입했고, 스페인도 2002년에 징병제를 폐지했다. 이탈리아는 2006년에 징병제를 완전폐지하기로 2000년 결정해 27만 명의 정규군을 19만 명으로 감축하고 군인 월급도 대폭 올렸다(조선일보, 2002.3.15). 


     

    모병제도 안에서 활약하는 여성군인들

     

     

    여군은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모든 나라에서 모병에 의해 선발된다. 최근 여군은 전통적으로 여군의 업무였던 간호, 의전 뿐만 아니라 법무관, 군의관 등에도 진출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육군, 공군에 이어 해군사관학교도 여성들에게 문호를 개방했고, 2002년 9월에는 박지원(24) 박지연(24) 편보라(23) 중위 등 세 명의 여성이 최초의 여성 전투기조종사가 되었다. 이처럼 여성들에게 참여와 기회의 폭이 넓어지자 여성들도 군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최근 육해공군 사관학교의 여성경쟁률이 18대 1로 높아졌다. 이렇게 군인을 지망하는 여성들이 늘어난 이유는 실직률이 높아지고 군대에 계급에 따른 역할구분이 엄격하게 적용되어 상대적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 덜하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국방부도 최근 현재 전체 군의 2%를 차지하는 여군을 2020년까지 10%로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군대가 성차별의 무풍지대는 아니다. 특히 여군들은 보직배치상의 불평등을 겪고 있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는 여군의 최전방 전투참여여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제프 훈 국방장관이 여군의 최전선 전투임무 투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훈장관은 신체적 능력의 차이 때문이라기보다는 팀워크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전투부대가 혼성으로 구성되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존 하워드 호주 총리가 여군이 신체적으로 동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전투에 투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여군의 전투참여를 허용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한편 독일에서는 헬무트 콜 정권 당시 여성들이 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헌법에 배치된다고 하여 여성을 전투에 참여시키지 않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여성의 역할은 출산에 있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독일의 여군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전투에 참여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성차별이라고 유럽민사재판소에 소송을 걸어 승리함으로써 2001년부터 전투부대에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과 군대, 어떻게 해야 할까

     

     

    군대와 연관되어 있는 강력한 성차별주의에 맞서기 위해, 여성들은 과연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특히 한국과 같은 군사적 위협이 상존해 있는 상황에서 병역의무는 곧 국민됨을 가늠하는 척도이고 여성은 영원히 2등국민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 지금 여성도 징병하라는 외침은 모병제를 실시하라는 주장보다 비현실적이다. 남녀공동징병제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이들은, 결국 불안과 전쟁은 곧 여성에 대한 폭력과 인권침해와 직결된다는 점을 감안해볼 때 그것이 매우 근시안적인 정책이라는 점을 감지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군대에 대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새로운 대안이다. 이를 위해 여성들은 ‘안보개념’을 다시 재구성하고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이것은 국가간 갈등의 조정수단으로 군대가 지금과 같은 절대적 영향력을 가지지 않도록 하는 일부터 시작될 것이다. 여성들이 주장하는 권리들이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편견과 차별이 없는, 분쟁과 폭력이 없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권리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여성들이 새로운 개념의 분쟁해결 전문가로서, 반전과 평화의 운동가로서, 생명과 인권의 수호자로서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고 이에 해당되는 새로운 안보분야의 공적 영역을 만들어가는 것(예를들면 여성과 평화운동가들의 국방위원회 참여 등과 같은)은 지금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불가능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또한 여성들은 병역세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기부금을 내고, 반전과 평화를 위한 자원활동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많은 여성들이 반전과 평화를 위한 자원활동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이 반전과 평화를 위한 싸움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혹시 이런 활동들이 군대의 입지를 좁히기 때문에 여성군인들과 민간인 여성들 사이에 갈등이 생길까봐 걱정된다면, 독일 녹색당의 안젤리카 베이 의원의 행동이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베이 의원은 군축과 징병제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한편, 여성들의 전투부대 배제에 대해 항의하는 여군들의 소송을 지원하고 있다. 이는 군대에 대해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굴면서 동시에 여성군인들이 겪고 있는 군대내 성차별 문제를 간과하지 않음으로써 정치적으로 올바른 정치학이 갖는 ‘원칙주의’의 함정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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