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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회] 예비역남성, 그들은 누구인가?
    2011-12-27 06:48:27
  • -한국 군필남자들의 피해의식의 근원을 찾아서

     

     

    이 글은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2003년 봄호에 특집으로 다뤘던 “여자, 군대를 말하다”에 실린 글들 중 권혁범 교수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입니다-편집자 주

     

     

    1. 믿거나 말거나 나는 아직도 군대 꿈을 꾼다. 몸 상태가 좋지 않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런 ‘악몽’을 꾸게 된다. 제대한 지 올해로 23년째인데 말이다. 꿈은 대체로 세 가지 주제를 갖고 있다. 1) 제대가 내일 모레인데 갑자기 연기된다. 2) 군대 갔다 왔다고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아 또 다시 입대를 하게 된다. 3) 얻어 맞는다. 너무 억울해서 괴롭히는 고참에게 대들고 싶지만 그런 용기가 없어 굴욕적으로 당하기만 한다 (언젠가는 용감하게 대들어 그 고참을 죽도록 때린 적이 있다. 신기하게 그 다음부터 그는 내 꿈에서 사라졌다).

     

     

    내 나이에도 이런 꿈을 꾸는 것을 보면 한국 ‘재향군인’ 남자에게 군대경험이 얼마나 뼛속 깊이 남아있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소심하고 예민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지만 말이다. 지금도 내게 남아있는 우울증, 조급성, 정서불안, 시간과 전화벨에 대한 강박은 군대시절에 생겨난 것이다. 오죽하면 제대하고서 한동안 전화 없이 살았을까.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렸기 때문이다. 특히 내 경우는 ‘사이코’ 같은 인간에게 나무몽둥이 그리고 쇠파이프로 난타당하다 결국 머리를 다쳐 생사를 왔다갔다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강박증이 더 심할지도 모른다.

     

     

    사실 군경험은 일종의 정신적 육체적 트라우마(외상)이기 때문에 매우 정밀한 정신분석학적 연구나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20년 넘게 내 군대경험을 이리저리 따져보고 분석해왔고 그게 내가 누구인지, 한국사회가 어떤 곳인지를 깨닫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제자들이 휴가 나오거나 제대해서 인사오면 ‘프라이버시 침해’라 할 정도로 군생활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인지도 모른다.

     

     

                                              ▲남자들에게 외상이자 훈장인 군경험(출처:digitalcamp.tistory.com)
     

     

    2. 하지만 대다수 한국남자들에게 군 경험은 외상이며 동시에 ‘훈장’이다. 왜 이런 전환이 일어날까? 군대에서 남자들이 ‘특별하게’ 경험하는 것은 네 가지다. 획일적이고 위계적인 질서체험, 안보의 ‘가상’ 담당자로서의 체험, 남자로서의 경험, 육체적 폭력과 고통의 체험.

     

     

    1) 상명하복이 규율화되어 있는 군대공간에서 비판적이거나 창조적인 상상력과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물리적 폭력이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강압과 위협에 의한 강제는 여전하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배경과 성격과 세계관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입대날짜를 기준으로 엄격한 서열을 매기고 그것에 의존하여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어떤 강압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물론 위계질서 문화는 군대만의 책임은 아니다. 중고교에서 이미 학생들은 군대식 제식훈련과 집단생활을 통해서 선후배 위계문화를 내면화한 상태다. 복학생들이 교수에 대해 ‘예의’가 바른 것은 후배들에게 선배대접 받으려는 의지와 상관관계를 이룬다. 그것을 한국사회에서는 ‘사람’이 되었다고 혹은 ‘어른’이 되었다고 표현한다. 덧붙여 집단적 동질성의 문화 역시 군대에서 극단화된다. 연대체벌을 통해서 한 사람의 이탈이 전체의 손해로 이어진다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결과 획일적 집단주의문화가 체화된다.

     

     

    불안감 주입의 메커니즘도 큰 역할을 담당한다. 익명의 페미니스트 제자 ‘엠퍼시’에 의하면, “어떤 사람을 가장 잘 통제할 수 있는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불안감을 유발하는 상황을 만들어놓고서 ‘나-권력자’는 그 상황을 해소시킬 수 있는 해법을 지닌 자이고 ‘너-피권력자’는 그 해법을 따라야 ‘너’의 불안감을 해소시킬 수 있다는 구도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군대에서 남자들은 그런 게임의 룰을 익히고 학습하고 훈련하는 것 아닐까? 군대에서 습득하는 것은 ‘불안감 조성’에 의해 전선을 긋고 내부의 동일성을 유도해 내고 ‘타자’에 대한 이유없는 아니 이유를 생각할 필요없는 논리의 회로를 통해 상대를 증오하고 파괴하고 싶은 메커니즘이다.

     

     

    ‘천하무적’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복학생 제자는 이렇게 분석한다.

    “군복무 동안 형성된 집단 의식은 그들이 제대하는 순간 다시 사회로 환원되며 50년 동안 군대라는 조직을 거쳐 온 그들의 선배들과 조우하여 거대한 집단의식을 형성한다. 이것은 하나의 연대의식으로 한국남성들을 강하게 묶어주고 계급적 질서를 자동적으로 정립시키고 사회지배논리의 한 축을 이룬다.”

    군대비판에 대해 남성들이 집단적 연대의식으로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2) 육체적으로 힘든 훈련을 거치면서 그리고 ‘사고하지 말 것!’ 의 명령체제를 요구받으면서 민간인은 ‘군인’으로 거듭난다. 사람들에게는 고통에 대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치기 때문이다. 도저히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규율과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 이유를 ‘국방’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국가주의 정치문화가 강한 한국사회에서 분단의 현실은 선험적인 것으로 들어오고 자신의 존재이유, 즉 군인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국방’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병영 밖에 있는 가족, 애인, 친구 등의 ‘민간인’을 위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번에 입대한 한 제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내 홈페이지 게시판에 남겼다.

    “안녕히 계십시오. 잠깐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제가 나라 잘 지키고 올 테니 두 다리 쭉 펴고 주무십시오. 교수님도 푹 쉬세요. 제가 무슨 일 생기면 총들고 바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비판의식이 강했던 제자들이 휴가중에 만나면 ‘탈분단’을 가르치는 내게 ‘분단의 현실’ ‘북괴의 심각한 적화야욕’ 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설교’하려 든 적도 많았다. 복학생일수록 통일에 대해 관심은 높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수준은 ‘국민윤리’에 머물렀다. 이들은 병영 밖에 있는 민간인들이 안보현실과 자신들의 ‘우국충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을 습관적으로 토로한다. 그 중에서도 타겟은 ‘국방’과 먼 거리에 있다고 추정되는 ‘여성’ 집단이다. ‘방위’라는 이름의 사이버마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국민을 보호하고 있는 우리 군이 그렇게 못마땅하다고 하면 나는 정부에 다시 강력히 건의한다. 고 가시내들 몽땅 군에 입대시키고 찐하게 굴려라. 그리고 보스니아, 아프리카 종족분쟁 등등에서 여자들이 어떻게 당했는지 비디오 교육 쫙 시켜라. 그래야 군생활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알게 되어 현역과 예비역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또 군의 필요성을 절절히 느끼게 될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여성들이 군의 존재이유를 알지 못하고 감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군복무에 대해 비판적인 여성들에게 갖는 적대감과 자신의 군경험에 대한 정당성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예비군 훈련장의 예비군들(출처:kr.blog.yahoo.com)
     

                                                                      

    3) 요즘 세상에 남자들은 여자들과 별다른 체험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성주의 의식은 여전하다. 그런 남자들을 여성과 구분하게 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주는 곳이 군대다. 입시경쟁에 찌들려 초중고를 다닌 후 대학 혹은 일반사회에 나오자마자 남자들은 군대에 끌려간다. 스무 살 신체 건장한 남자는 삼대독자가 아니라면 특권층 부모의 ‘빽’이 없는 한 군대에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가기 싫어한다.

    스무 살의 나 같이 ‘철없는’ 사람, 즉 징병제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았거나 혹은 그게 무슨 ‘사내된 자의 씩씩한 기백’과 상관있는 것으로 신비화했던 사람만이 ‘신성한 국방의무’ 운운하며 훈련소에 자랑스럽게 걸어들어간다. 남자들만의 성역에 대한 독점적 경험을 통해서 남자들은 그들의 경험을 ‘특권적인 것’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더구나 그 경험은 ‘국가’가 요구하고 승인하고 찬양하는 경험이기까지 하다. 이제 유약하고 평범했던, 심지어 ‘계집애같은’ 남자들도 군경험을 통해 뭔가 여성들과 구별되는 남성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제 성인남자는 여자에게서 독립한다. 따라서 남자들은 여성(그리고 미필자, 기피자)에 대한 우월의식과 적대의식을 동시에 갖게 된다. 특권과 손해봤다는 느낌은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4) 군대훈련은 대체로 극한상황을 경험하게 한다. 그것을 이겨냈을 때 자신에 대한 자긍심과 자신감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것을 비경험자에 대한 특권의식의 근거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특히 힘들게 고생했을수록 술자리에서 그 사람의 ‘권력’은 커진다. 후방보다는 전방 근무자가, 행정직보다는 전투병과 근무자의 목소리가 크다. 해병대나 특전사 출신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침묵은 금이다’라는 명언을 되새겨야 한다.

     

     

    물론 그때뿐이지 제대하고 나면 전혀 다른 차원의 현실에 접하며 오히려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훈련, 얼차려 등에서 경험하는 물리적 폭력문화다. 폭력, 위협과 폭언은 군생활의 불가피한 부분으로 이해된다. 구타가 사라졌지만 넓은 의미에서 폭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근 군병영에서 일어난 자살사건들은 언술적 협박과 괴롭힘이 폭력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군대라는 집단 자체는 폭력을 합법적으로 사용하도록 가르치고 배우는 집단이다. 이 과정에서 군인들은 ‘폭력’의 불가피성을 내면화한다. 이런 이유로 군필자들에게는 폭력적 사디즘-마조히즘이 흔히 보인다. 요즘 물리적 폭력은 거의 사라졌지만 징병제 군대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단지 느리다는,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혹은 반항적인 눈매를 가졌다는 이유로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는 공간에서, 유사시 오로지 명령에 따라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훈련을 받으면서 사람들은 어떻게 변해가는가?

    공포를 내면화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포기하고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어떤 부당한 조건에도 순응할 수 있는 의식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명령-복종체제의 폭력적 주입 속에서 ‘현실’은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벽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유약한 철부지가 ‘사람이 되어가는’ 혹은 ‘착실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일로 오인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병자’다. 동시에 그는 다른 사람에게 언제라도 폭력적 상해를 입힐 수 있는 잠재적 가해자로 변해있다. 한 ‘예비역 병장’ 마초의 거친 목소리를 들어보자.

     

     

    “군대 가보지 않은 인간들은 양심선언이니 뭐니 하면서 군대이야기 꺼내지도 말어, 쌍년, 쌍놈들아! 이북여자들이 총들고 들어오면 가장 작살나는 애들이 누구간디. 위안부 생각이나 해보았남....“

     

     

    여기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약자에게 언제든지 폭력을 가할 준비가 되어있는 자, 상처입은자의 분노를 읽을 수 있는가? 유사시에 타국가 군대에 의해 한국여성에게 가해질 수 있는 폭력을 예상하는 이 마초는 사실 자신이 그러한 류의 성폭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출처:milyung.tistory.com
     

     

    3. 군복무자는 굴욕, 억압, 복종으로 점철된 2년여 ‘고난의 행군’이 끝났을 때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총기, 윤리의식, 이탈적 상상력 등은 사라진다. 이제 다시 ‘사회’에 재진입해야 하는 강박 속에서 불안감이 커진다. 동기생은 졸업을 했고 여학생들은 이미 직장에 취직해서 자신의 선배가 되었다. 굳어진 머리를 움켜쥐고 책을 잡아 보지만 예전과 같은 집중력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억울함, 따라잡아야 한다는 불안감, 군대로 인해 청춘을 손해보았다는 결손의식이 뒤엉키며 ‘예비역병장’은 강한 보상심리를 갖게 된다.

    거기에 덧붙여 군대에 있을 동안에는 온갖 비리, 부당한 명령, 폭력적 질서에 쉽게 굴복했던 자신의 자존심을 어떤 식으로든 회복해야 하는 무의식적 의도가 생겨난다. 그는 이제 국가방위의 주체이며 사회적 책임을 떠맡은 자이며 “남들(특히 여자!) 판판이 놀 때” 혼자만 죽도록 고생한 군인이다.

    “이제 군경험은 ‘나’라는 인간의 뼈와 살이며 본질이다. 군비판은 ‘나’라는 인간의 뼈와 살이며 본질이다. 군 비판은 ‘나’에 대한 인격모독이며 ‘나’를 짓밟는 폭력이 된다. 병역 관련 문제가 한국사회에서 제기될 때마다 사이버 항해자들이 갑자기 일사분란하게 ‘총화단결’하며 ‘구국의 테러리스트’가 되는 이유다. 이제 그는 국가와 안보 그리고 남성중심적 위계질서의 수호신이다.” (<말>지 2002년 12월호, ‘남성깨기’).

     

     

    그가 만약 자신의 경험을 객관화할 수 있고 그것을 넓은 정치적 지평 위에서 조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징병제’와 병역의무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국가/국민/국방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전혀 논의하고 있지 않은 현행 교육제도와 정치문화에서 그런 능력을 갖기 어렵다.

    따라서 제대 군인은 오히려 자신의 경험을 정당화하고 그것을 특권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사실 군필자의 손해는 자신들이 정상적인 ‘국민’이 되는 특권의 이면이다. 여성이 ‘국민’에서 소외되는 중요한 이유는 군복무 경험의 부재와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정치적 무지로 인해 군필자들은 자신의 분노를 징병제 자체나 국방의 의무 이데올로기에 투사하지 않고 표면적으로 자신들의 ‘손해’를 상기시키는 미필자집단, 그 중에서도 가장 사회적으로 약자인 여성에게 쏟아붓는다. 그 분노에는 항상 얘기한 네 가지 차원의 경험, 그리고 자기정당화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해석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군필자들이 부르주아고 고학력자라면 과연 ‘손해보았다’는 느낌을 그렇게 강하게 투사하게 될까? 그들은 특권층의 병역기피나 면제에 대한 분노를 ‘자기계급에 대한 피해의식’의 형태로 갖게 된다(내가 가르치고 있는 ‘지방대’ 제자들이 왜 한결같이 고성, 인제, 원통, 등 전방 산간지역으로 배치되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지 아는가?). 실증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대체로 병역의무 거부의 권리 및 군가산점 폐지를 주장하는 여성운동에 적대적인 사이버마초들은 계급/학력/학벌 차별의 희생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 상처를 ‘국방’과 ‘군대’의 이름으로 건드릴 때 그들은 폭발한다. 하지만 군문제를 남성 대 여성의 이분법적 대결로 몰고가는 데서 누가, 어떤 집단이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일까?

     

     

    나는 군필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분노, 억울함, 자긍심, 사회적 인정에 대한 욕구를 이해한다. 하지만 그들은 애당초 대상을 잘못 설정하고 있다. 그들의 화살은 국방부, 헌법재판소, 청와대와 국회, 그리고 특권층을 향해야 한다. 그들이 진정으로 자신들의 군경험에 대해 뭔가를 보상받고 싶다면 급진적으로는 징병제 폐지, 중도적으로는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 최소한 보수적으로는 군생활 개선 등을 위한 운동에 참여하거나 그것에 지지를 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군필남성들은 군대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여성이나 사회적 소수자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느끼는 소외감 불안증, 차별에 감정이입하는 계기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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