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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회] 남북한 여성들의 수다 속에 평화의 꽃이 피어났습니다.
    2011-05-30 08: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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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회 이프 페스티벌 ‘평화의 꽃이 피었습니다’ 참가기



    한의대를 4년간 다니면서, 제 가슴속에는 떠나지 않는 몇 가지 단어가 남게 되었습니다. 문화식민지, 주체성(=존엄성), 타자화, 전통, 약자….

    그런 단어들은 계속해서 제 마음을 두드려댔습니다. 태어날 새로운 아이를 임신한 산모처럼 저는 그 단어들이 저의 몸속에서 자라나는 것을 깨달았지만, 또한 불안함과 초조함이 저를 감싸고돌았습니다. 내 안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나는 누구일까? 내 안에 아직 깨어나지 않은 나의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바쁜 한의대 생활 가운데 저는 그런 단어들을 잊지 않고 쥐고 있는 것조차 버거웠고, 이대로 생각 없이 계속 흘러가면 결국 그 아이는 태어나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에게는 산파가 필요했습니다. 내 안에 깨어나고 있는 나 때문에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시간 속에 ‘괜찮다’고 혹은 ‘더 힘을 주라’고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



    이러한 절박한 마음 때문에 저는 현경 교수님의 메일주소를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읽었던 《미래에서 온 편지》는 항상 제 잠자는 머리맡에 꽂혀있었기 때문이었지요.

    현경 교수님을 취재한 기자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교수님 메일주소 좀 알려주십사 하고 구구절절 이야기를 했던 모양입니다. 2개월이 지나서 답장이 왔습니다. 그것도 딱 두 줄로 말입니다.
     
     

     
            ▲행사장 전경
                                                                 

    여자가 먼저 평화에 힘써야 하는 이유


     

    현경교수님이 5월23일 한국에 오셨습니다. 제가 그날 저녁 7시에 은덕 문화원에서 열린 이프 페스티벌 ‘평화의 꽃이 피었습니다’에 참석하게 된 이유입니다.     

    은덕문화원은 참 예뻤습니다. 이프도 처음 알았기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저는 참으로 쭈뼛거리며 문화원에 들어섰습니다. 자원 봉사자분이 따뜻한 웃음으로 음식을 건네주셔서 긴장이 조금은 풀렸습니다. 


                     ▲따뜻한 웃음으로 음식을 건네 준 자원 봉사자들 

     

    이프 페스티벌은 케이크 붙이기(bonding)로 개막되었습니다. 케이크 자르기(cutting)가 아니라 웬 붙이기인가 하겠지만, 한반도 모양의 케이크를 나누는 것은 이미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자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분단된 한반도를 합치는 붙이기로 바꾸었다고 하네요.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고려하는 감수성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절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광경이었습니다.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떡 케이크
     
     
    현경 교수님과 글로리아 스타이넘, 에이미 리차드 그리고 이프 대표이신 엄을순님이 차례로 축하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네 분의 말씀 가운데 기억에 남는 구절들을 몇 가지 나눠보고자 합니다.



    ‘평화를 이뤄나가는 데는 3가지가 필요합니다. 우선, 평화가 이뤄질 수 있음을 굳게 믿는 것, 두 번째는 평화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마지막은 바로 내가 평화가 되는 것입니다’.



    ‘힘이 있는 사람들은 변화와 평화가 그들이 있는 윗자리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와 변화란 바로 밑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임을’.



    ‘여성이 먼저 평화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2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더 평화로운 사람이기 때문도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여성이 먼저 평화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첫째, 전쟁이 났을 때 더 많은 피해를 보는 이들은 바로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났을 때 피해를 보는 사람은 전쟁을 하기로 결정한 자들이 아닙니다. 바로 가장 약한 자들이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보기 마련이지요.  두 번째는, 우리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깨달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전쟁은 더 이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이제까지 우리는 피라미드의 사회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들이 추구하는 사회는 바로 원의 사회입니다. 바로 ‘관계의 원’인 것이지요‘.


     


     

                                         ▲위에서부터 이프 대표 엄을순, 현경교수, 글로리아 스타이넘, 에이미 리처드 
      
     

    여성들이 나서서 분쟁 끝낸 아일랜드와 라이베리아

     

      

    특히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이야기해준 여성이 평화를 만든 두 가지의 사례는 정말로 가슴 뛰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일랜드와 라이베리아에서 절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갈등을 여성들이 마음과 마음을 맞대어서 풀어간 이야기는 ‘평화는 진정으로 꿈이 아니다. 그것을 현실로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자들에게는’ 이라는 구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에버 디즈니의 〈Pray the Devil back to Hell〉이라는 작품이 있다고 합니다. 꼭 보고 싶습니다.



    감동적인 축사에 이어 페미니스트 아티스트인 레드 걸이 마고 여신을 표현하는 무대를 가졌습니다. 한반도를 바라보며 “내가 사랑하는 땅에 미움이 너무 많구나, 다툼이 너무 많구나”라고 외치며 눈물 맺힌 마고 여신 앞에서 저 또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분단된 한반도를 전심전력으로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건너는 마고 여신 앞에 모두들 숨을 죽였고, 여신이 한 번 한반도를 건넌 후 활짝 웃으며 다시 한 번 뛰어다니면서 건너자 모두들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마고 여신은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번 건너는 것이 힘들고 괴롭고 죽을 것 같은 일이지만, 한번 건너고 나면 그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 거라고.

      

    ‘희망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길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면 하나의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

     

                                                              ▲마고여신의 평화와 축복의 세레모니(레드걸)
     

     

    밝고 당당한 새터민 여성들



    레드 걸의 공연이 끝난 후 남북한 여성들의 대화의 장이 마련됐습니다. 새터민 여성의 제안에 따라 서로 마주보고 있던 구도를 바꾸어 우리 모두는 동그랗게 원으로 앉았습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사람 수가 조금만 더 적었더라면 아마 깔깔깔 웃으며 수다를 떨 수 있었겠지만, 사람 수가 많은 관계로 ‘남한에 와서 좋은 점, 남한에 와서 힘들었던 점’을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진행자는 새터민 여성들의 신변보장을 위해 절대 사진을 찍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조금 긴장이 감도는 분위기-이런 긴장이야말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잊고 사는 그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건처럼 그것이 폭발할 때만 그 긴장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어수선한 찰나, 한 새터민 여성이 일어나서 아주 밝게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웃으면서 하기로 해요. 잠깐 분위기가 너무 이상해져서 집에 갈 뻔 했어요. 반갑습니다” 라며 너스레까지 떨면서 말이죠. 일순간 폭소가 터졌고, 분위기는 봄바람을 만난 개울물처럼 다시 졸졸졸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평화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그저 우리가 이렇게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나의 피부에 와 닿는 그것이 바로 평화가 아닐까요.

     

     

    새터민들이 남한에 와서 힘들었던 점



    1. 차별

    2. 자식 키우기

    3. 자유에 대한 책임

    4. 외로움(고향, 형제)

    5. 각박한 생활(경쟁, 개인주의)



    네 명의 새터민 여성이 자신의 경험담을 말했는데, 마음에 진실하게 와 닿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남한에 오자마자 브로커 비용을 갚기 위해서 뼈 빠지게 일해야 했다는 말, 여기 와서 살이 포동포동 찌고 있지만 북한에 두고 온 형제들(그분 표현에 따르면 뼈에 살가죽만 입혀놨다고 하네요)만 생각하면 너무 외롭고 괴로워서 눈물이 난다는 말, 북한에서는 학교에만 맡겨놓으면 자식 키우는 걱정은 없었는데 여기서는 학교에만 맡겨놨더니 아이를 망쳐놨다는 말….



    특히 지금은 노래 강사로 일하시는 분이 자신이 경험했던 차별에 대해서 말할 때는 다들 몹시 화가 난 분위기였습니다. “북한에서 온 사람이 남한 사람을 어떻게 가르치나?”라고 무시하던 공무원 앞에서 정말 쥐구멍이 있다면 도망가고 싶었던 순간, 그리고 너무 속이 상해서 3일 내내 울었던 기억…, 하지만 다시 한 번 해보자며 힘을 냈다는 이야기까지.

    모두들 숨을 죽여 가며 그분의 말을 들었고 그 분이 ‘다시 한 번 해보자’며 크게 외쳤을 때는 모두들 ‘와∼’ 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남한에 와서 힘들었던 일들을 잠재운다는 의미로 한의사 고은광순선생님께서 해금을 연주했습니다. ‘엄마가 섬 그늘에∼’로 시작하는 자장가를 모두들 따라 부르며 조금은 평안해진 분위기였습니다.


     

                                                                                   ▲해금 연주(고은광순)

     

    새터민들이 남한에 와서 좋았던 점



    1. 자유

    2. 경제적 자립

    3. 여성 교육의 기회

    4. 물질적 풍요

    5. 여성에게 경조사가 수월하다(돈만 있으면)



    우리가 익히 생각할 수 있는 장점들이 이야기의 주제로 올라왔는데, 저는 특히 여성의 권리가 높아졌다는 측면이 재미있었습니다. 새터민 여성 가운데 한 분이 자신과 남편의 권력관계를 이야기 하면서 북한에서는 배급이나 생활 측면에서 남편에게 의존적이기 때문에 여성이 남편을 하늘처럼 떠받들어야 하는 반면, 남한에서는 여성의 권리가 참 높은 것 같다면서 남한에 내려와서 남편에게 ‘대꾸질’을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남한에 내려와서 이득 본 사람은 너밖에 없다”라고 한 남편의 말을 구수한 이북 사투리로 말씀하셨을 때 어찌나 웃었는지요.  

     
     
     

    한반도 평화, 6자회담만이 답이 아니다



    이렇게 우리의 웃음 넘치는 대화가 끝난 후 노래 강사로 일하시는 새터민분이 〈휘파람〉을 불러주시고, 참석자들이 다같이 〈반갑습니다〉를 부르면서 12번째 이프 페스티벌 ‘평화의 꽃이 피었습니다’를 마무리했습니다.

    정말 흥겨운 시간이었습니다. 현경 교수님은 어찌나 흥이 나셨던지 중앙에 나와 열심히 춤을 추셨더랍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모두들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현경 선생님과 중앙에서 열심히 춤을 추시던 한 여성분이 갑자기 마이크를 잡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날 제가 꼭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습니다. 저는 70살입니다. 제가 10살 때 6․25전쟁이 났습니다. 저희 집은 부산이었는데, 참으로 많은 피난민이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때 북에서 내려온 소녀가 있었는데, 이 노래를 저에게 가르쳐줬습니다. 그 소녀가 살아있는지 아니면 죽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평화를 바라면서 그 소녀가 가르쳐준 노래를 불러보고 싶습니다.”

    그분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참으로 짧은 노래였고, 젊은 세대인 제게는 낯선 노래였습니다. 하지만 새터민 가운데 한 분은 그분의 노래를 들으면서 펑펑 우시더라고요. 제게 페스티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었습니다.

     


                                                 ▲6.25때 북에서 내려 온 소녀에게 배운 노래를 부르는 70대 참가자

     


    저는 이번 남북 여성간의 대화가 참으로 의미 깊은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남북한 여성들이 대화를 나누면서 정말로 사람과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앞서 현경 교수님이 이야기하셨던 것처럼, 6자회담만이 답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북한의 여성들이 남정네 흉도 보고 사는 이야기도 하면서 웃고 떠들 때,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야 비로소 상처의 회복과 진정한 평화가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는 새터민과 함께 했지만 정말이지 남북 여성들 간의 수다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평화를 기원하는 꽃지도 완성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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