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단이프
  • 이프북스
  • 대표 유숙열
  • 사업자번호 782-63-00276
  • 서울 은평구 연서로71
  • 살림이5층
  • 팩스fax : 02-3157-1508
  • E-mail :
  • ifbooks@naver.com
  • Copy Right ifbooks
  • All Right Reserved
  • HOME > IF NEWS > 여성신화
  • [24회] 가믄장아기 원형 4
    이프 / 2012-11-27 05:25:33
  • 가믄장아기는 체제에 의해 전도되어 버린 가치들에 저항하고 권위적인 질서와 타성을 깨는 비판적 실천의 소유자다. 체제, 관습, 고정관념이란 건 언제나 별일 없이, 무료한 듯 지나가는 편한 일상의 나날들을 위한 것일지 모른다.

    가믄장은 어느 비오는, 여전히 무료한 날, 부모님이 장난삼아 낸 수수께끼를 푸는 중에 그녀의 편안한 일상을 깨버린다. 그녀가 자식으로서든, 여자로서든, 아버지/남편/아들에게 종속된 존재는 아니라고, 체제와 관습이 된 부모님 가치의 일방적인 주입에 저항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기 때문이다.

     

    가믄장아기는 부자 아버지 앞에서 감히, 독립된 존재임을 주장했다가 쫓겨났다.

    저항의 길은 고달팠다. 아버지라는 든든한 빽을 거부하자 쫄딱 거지가 되었고 허허벌판을 홀로 걸어가야 했다. 은혜도 모르는 딸이 되었다. 친근한 사람들에게서조차 주변상황도 돌아보지 않고 혼자 잘난체 한다는 비아냥거림을 받아야 했다.

     

    그녀의 효는 다르다.

     

    그녀의 효는 바리데기의 효나 심청이의 효와는 다르다. 딸, 그것도 일곱 번째까지 딸이라니, 왕짜증을 내는 아버지가 내다버려도 생명수를 구해다 바쳤던 바리데기의 사회규범적인 효와는 다르다. 아버지 심봉사의 입장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또 과연 눈을 뜰 수 있을 지의 결과도 모르는 것인데, 딸 된 착한 마음으로만 인당수에 덜컥 빠진 심청이의 전통적인 효와도 다소 다르다.

     

                         ▲영화<길버트 그레이프>.개인 존재를 억누르는 가족의 무거움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이미지)
     

    바리데기와 심청이는 아버지가, 사회가 지금껏 요구하는 효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았다.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내쫓겨져도 죽을 각오로 생명수를 구해 올리고, 봉사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라면 앞뒤 재지 않고 인당수에 빠졌다. 규범, 전통과 관습은 이미 권력을 획득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효행을 권력에 대한 순응의 결과일 수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착한 딸이 행하는 자연스러운 효였을 뿐이다.

     

    가믄장의 효는 좀 다르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라는, 아주 친근한 것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마퉁이 형제들이 그들의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는 장면에서, 살이 많은 부분을 부모님께 드리는 막내 마퉁이를 유심히 살펴보는 그녀에게 느낄 수 있듯 그녀는 좋은 것, 맛있는 것이 있으면 먼저 건네고, 좋은 곳을 보면 같이 와야지 하는 마음이 사랑일 거라 생각하는 여자다. 부모님에 대한 효에도, 사랑도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지극히 소박하고 진실된 마음.

     

    그런데 수수께끼를 낸 아버지가 딸들에게 하는 것을 보니, 부모님은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대답하고 무조건 복종하는 효도를 원하고 있었다. 독립된 존재로서의 딸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바리데기처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로 상징되는 사회의 지배논리와 그 욕망이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인 가정이라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폭력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며 이에 저항하게 된다.

     

    그렇게 부모님께 저항하고 집을 나오지만 그 후, 결혼도 하고 부자가 되면서 가믄장은 점점 눈 멀고 가난한 부모님 생각으로 간절해진다. 가믄장은 돈을 원하는 거지에게는 돈을 주고, 밥을 원하는 거지에게는 밥을 주고, 물을 그리워하는 거지에게는 물을 주며 거지잔치를 연다. 석 달 열흘 백일 만에 부모님이 들어오지만 그녀는 하인들에게 눈먼 부모님의 밥그릇을 이리저리 치워버리도록 시킨다. 밥도 못 먹고 쩔쩔매는 부모님을 다른 거지들이 가버린 후에야 안방에 청해 들이고는 한 상 가득히 차려놓는다. 가믄장은 옆에 와 앉으면서 살아온 바를 말해보시라 청한다.

     

                                                             ▲큰굿 전상놀이 중 가믄장의 부모가 가믄장에게 가믄장을

                                                   내쫓고 살아온 내력을 회한과 함께 노래하는 장면 (2012. 9.12. 제주 큰굿)

                                             

    신화의 마지막은 딸을 내쫓고 살아온,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말한 부모님이 비로소 눈을 뜨게 되는 장면이다. 개안. 비로소 보이게 되는 것들이 있음을 가믄장은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억지로 시간을 잡으면서라도 부모가 자녀에게 한 잘못을 일일이 얘기하도록 해야 옳은 것일까, 부모를 다그치고 가르치기까지 하고 있으니 도가 지나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가믄장은 잘잘못이 누구에게 있었는가에 우선 집중한다. 부모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말하고 나서야 그녀는 부모를 받아들인다.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의 진실에 대한 인식과, 의지와 능력을 기반으로 체제와 관습의 강요로 이루어지는 효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효를 실천한다. 그리고 그녀는 사회적 약자 다수를 위한 잔치를 열고 자신의 부모 뿐만 아니라 대사회적인, 인류애적인 모습으로 효를 확장시킨다.

     

    그녀가 행한 것은 부모님의 말씀이라면 옳고 그름과는 무관하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효도해야 한다는 기존의 관례적인 효 관념에 반하는 것이지 불효가 아니다. 우리 곁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엄연한 체제, 고정관념, 권위에 의해 전도된 효에 대해 저항하고 본질적인 효를 추구한 것이다.

     

    남성지배적 성 관념에 대해서도 저항

     

    부모님에 대하여 가믄장은 자녀였지만 독립된 존재이기도 했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부장문화는 독립적인 여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여자란 어려서는 아버지에게, 젊어서는 남편에게, 나이가 들어서는 아들에게 늘 의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규정했다. 가믄장아기는 그런 부모님 슬하에서,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거부했다. 삼종지도를 거부하는 그녀에게 독립을 위한 경제력의 확보는 가장 중요했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과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일과 돈이 필요했다. 물론 그녀는 결혼을 했고 남편과 같은 방에 기거하며 같이 일했지만 자기만의 방을 가지게 된다.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대접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중요했던 것은 부정되거나 무시당해 온 여성성을 복원시키는 것이었으며 삼종지도의 틀에 가두었던 여성성을 구해내는 것이었다.

     

    힘든 길을 걸으면서도 가믄장아기는 힘들어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이를 추진해야 하는 명분이 그녀의 내부에 확실했기 때문이다. 여신 가믄장아기는 독립적인 인간 존재로 살아가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을 거부했다. 바로 옆에 있는 형제들이라도 잘라낸다. 


    여성적 매력이나 밀고 당기는 사랑의 기술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그녀는 많은 여성들이 추구했던 예쁘고 여성적인 외모나 낭만적 사랑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자청비처럼 예뻐지려 노력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여성적 매력을 가꾸는 일도, 밀고 당기는 사랑의 기술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었다. 세상에는 좀 더 힘들게 성취되어야 할 가치와 일들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런 것은 하찮고 사소하다고 옆으로 밀어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화에도 나타나듯이 가믄장은 자청비처럼 한 눈에 사랑에 빠지고 낭만적 사랑에 자신을 소모하지 않는다. 가믄장아기 원형은 사랑과 결혼에서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된 자신이고, 그러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데 매진한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러더라 저러더라’ 하면서 끊임없이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상대가 별로 힘을 가지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를 선택한다. 추워서 따뜻하게 발을 맞댈 남자가 필요했던 가믄장은 가장 어려서 뒷전으로 밀리지만, 효를 제대로 실천하고 관습이나 고정관념을 버릴 줄 알았던 막내 마퉁이를 남편으로 선택한다. 인간적인 신뢰의 관계를 원한 것이다.

     

    가믄장아기 원형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강력하게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목표까지 가는 동안 주변 사람들의 요구나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 때문에 어수선해지지 않는다. 그녀는 확고부동한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매진하는 삶의 방식을 즐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우물쭈물하지 않고 과감하게 결정을 내리고 저돌적으로 추진한다. 상대방의 준비부족과 소극성 정도는 괜찮다. 엄연한 반대의 주장으로 덤벼드는 것이 아니라면 상대방의 소극성 때문에 추진력이 떨어지는 일은 없다. 어지간한 상대들은 자신의 대오에 끌어들일 수 있는 논리와 힘을 가지고 있다.

     

    ▲리세테 아르게요 감독,<랜드레이디>. 2011년 칸국제영화제 단편영화 부문 초청작품. 멕시코를 거쳐 북미로 불법 이주를 시도하는 중남미 이민자들에게 ‘라 페트로나’, 라는 여성 커뮤니티에서, 달리는 기차 안으로 먹을 것을 건네주기 위해 서 있는 모습(출처/제13회 제주여성영화제)
     

    남자같은 여자

     

    남자와 여자, 이 비슷한 것들이 정반대의 것으로 개념화되어간 역사적 과정과 그 사이에 약자 여성들이 치고받으며 헷갈리고 복잡해진, 남자라는 단어와 여자라는 단어의 개인적 선택에 먼저 양해를 구하며…,

    가믄장은 남자같은 여자다.

    자신의 신념을 향하여 정면돌파하는 그녀는 세세함, 친밀함, 동정심, 멈칫거림 등의 여성적 특성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막내마퉁이를 택하고 구석에 밀어둔 돌에서 금을 보듯, 예리한 시선으로 많은 것을 종합적으로 보고 알 수는 있지만 좀 더 큰 목적을 위해서 자잘한 것들은 과감하게 접는다.

     

    자청비의 경우, 그녀의 모든 동기가 문도령이라는 사랑이었다면 가믄장의 가장 중요한 동기는 자아이다, 자신의 일과 욕구이다. 낭만적인 기질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관계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아중심적인 삶을 위해 아주 현실적인 선택과 결정을 한다는 점에서도 그녀는 다분히 남성적인 성향이 강한 여성이다.

    자청비가 여성적인 특성을 잃지 않은 채 남성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성과 사랑과 목표를 실현시키고 있다면 가믄장아기 원형은 이미 남성적인 기질이 강한 여성이다. 그녀는 현재의 생활에도 미래의 계획에도 여성들처럼 감정적이기보다는 남성들처럼 현실적 이해에 주도면밀하다.

     

    자청비는 사랑에 목숨을 걸었지만 가믄장아기는 자아실현에 목숨을 건다. 자신의 요구를 중요시했고, 자신이 가는 길에 따뜻함을 나눌 남편감을 눈 여겨 골랐고, 그를 재촉하며 가정경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부를 성취해낸다. 사탕발림 같은 거짓의 말로 효도를 하기보다는 부모님이 잘못을 자기 앞에서 인정하게 한다. 거지 잔치를 열어 그 부를 사회로 환원하며 자아를 확장한다. 관계보다 자아의 실현이 우선이기 때문이다.<끝>

     

     

     

     

    @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H*2012/11/121127_50b477de4f7e8.jpg|36697|jpg|사진1.jpg|#2012/11/121127_50b4784555a50.jpg|38249|jpg|사진2.jpg|#2012/11/121127_50b478d0f2ed2.jpg|33023|jpg|사진3.jpg|#2012/11/121127_50b478d4c196f.jpg|27160|jpg|사진4.jpg|#@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
덧글 작성하기 -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덧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