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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회]가믄장아기 여신원형 3
    이프 / 2012-11-13 03:34:04
  • 가믄장아기 원형은 여성해방, 인간해방의 선구자다. 자청비와 달리 그녀는 머리띠를 두른 모습이다. 머리띠를 두른 그녀는 체제유지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삼종지도의 가치관, 맹목적인 효도주의, 가족주의, 장유유서의 질서와 같은 지배계급의 논리에 저항한다.

     

    자청비의 여성해방, 인간해방에 대한 동기는 사랑 때문이었다. 그녀가 불평등한 성차별을 느끼게 된 계기는 자신의 사랑을 성취해 나가는 대남성관계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성 안에 여성차별을 비롯한 사회의 모순이 사랑의 와중에도 끊임없이 나타나고,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을 통해 적나라하게 갈등과 모순을 겪어내야 하는 일은 더 절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어떤 고통도 감내하게 하는 사랑이란 것이 있었다.

     

    머리띠를 두른 페미니즘

     

    가믄장아기의 여성해방, 인간해방에 대한 동기는 아버지로 대표되는 기존 사회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된다. 가믄장아기는 ‘내 배꼽 아래 선그믓(음부, 자궁) 덕으로 먹고 산다’고 아버지에게 저항한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에게, 이어서는 남편에게, 또 늙어서는 아들에게 꼼짝없이 기대어 살아가야 한다는 해당 사회의 문화, 삼종지도의 여성 정체성을 거부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지배관념에 저항하며 밖으로 나온다. 밖은 아버지가 집단적으로 구현되고 통째로 구조화된 사회다. 그녀는 그 견고한 세상으로 나오면서 ‘물에 말아 식은 밥이라도 먹고 가라’는 윗세대 어머니의, 세대를 따라 전해져온 두려움과 걱정을 이겨내야 했다.

    적들은 가까이 있었다. 가믄장아기가 떠나버리면, 남은 자신들의 지위가 좀 더 확고해질 것이라는 떡고물을 위하여 거짓말을 하면서 동생을 집밖으로 떠미는 언니들의 속물근성에도 한 방 가해야 했다.

     

                                         ▲피를 나눈 적(모르 요게브, 이스라엘, 2010, 20분) 스틸사진. 오빠에 의한 성추행과
                         원한 속에서도 가족, 여성으로서의 굴레를 쉬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 루스. (출처/ 제12회 제주여성영화제)

     

    가믄장아기는 머리띠를 두른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질서에 저항하고, 그 질서의 현현인 가족관계를 잘라내고, 반대되는 동료들에 대해 일갈한다. 그 속에서 따뜻함, 동정심, 조화와 안정, 배려와 양보 같은 심성을 단호하게 버린 것같은 가믄장아기의 페미니즘은 가깝게, 멀게 여러 측면에서 비난받기 쉽다. 댓가도 없이 전 생애에 걸쳐 외롭고 고단한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자청비의 페미니즘은 사랑이라도 얻었지만, 가믄장아기가 겪는 어려움은 신화에도 나오듯 ‘이 재 넘고 저 재 넘고 신산만산 굴미굴산을 넘는’, ‘달빛도 없이 미여지벵뒤 만여지벵뒤(허허 벌판)’를 걸어가는 고난인 것이다.

     

    가믄장과 같은 샛길족들에 의해 무수한 길들이 열리고...

     

    힘든 길을 선택한 그녀의 정체성에는 전도된 가치들을 완강히 거부하는 진보적인 모습이 있다. 무기력과 타성에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악습이 되어가는 차별적 규범과 제도들에 대해 저항하고 그 저항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불이익과 고통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차별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차별이 가해진다면, 그게 억울하다면 저항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방해가 되는 것들은 밀쳐내고, 같이 못 간다면 혼자서라도 가야하는 길이었다.

    대가나 안전을 추구하지 않는 그녀의 미래는 불안하다. 아무도 가지 않는 깜깜하고 울퉁불퉁한 샛길로 들어서서 그녀는 막히고 되돌아가야 하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가믄장과 같은 샛길족들에 의해 무수한 길들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쉽게 그 길들을 가고 있고, 큰길이 되어가고 있다. 샛길족 가믄장에게, 힘들고 불안하다 하여 행복하거나 즐겁지 않으리란 법은 없어 보인다.

     

                                         ▲2011년 말에 공연된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스틸사진(출처/네이버블로그vjshot)
     

    자신을 불안하고 위험하게 만들면서 행하는 이 위반과 저항은 결국 그 사회와 그 사회의 관계들을 개안, 개선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가믄장의 부모는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쳤으며, 가난한 가믄장과 막내마퉁이는 부자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부를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살피고 나눈다. 그런 진보의 핵심에 가믄장아기 원형들이 있다.

     

    발 막아 누울 아들이나 하나 보내 주시오

     

    가믄장아기 원형은 실용적이면서도 호기심 많고, 습관이나 타성에 젖어 있지 않은 진취적인 기질의 여성 원형이다. 당돌한 호기심과 관심은 자신과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이다.

    이 재 넘고 저 재 넘고 신산만산 굴미굴산을 넘고, 달빛도 없이 미여지벵뒤 만여지벵뒤 허허벌판을 고달프도록 걷던 가믄장은 쓰러져 가는 마퉁이의 집을 발견하고 하룻밤 머물게 해달라고 한다. 그 와중에도 세 아들 마퉁이들의 성품을 자세히 관찰하고 부모에게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막내마퉁이를 눈여겨 본다. 밤이 되자 ‘발이 시리니 발 막아 누울 아들이나 하나 보내 주십사’ 요청한다. 육체적인 욕구와 정서적인 외로움에 대한 욕구가 내재된 대목이다.

     

                                                                 ▲연극 <가믄장아기> 스틸사진(출처/극단 북새통)
     

    초록은 동색이라고, 결국은 그녀의 남편이 되는 막내마퉁이 역시 실용적이면서도 호기심 많고 습관이나 타성에 젖어 있지 않은, 당돌한 가믄장아기의 성향을 일부분 가지고 있다.

    자신을 받아들여 준 것이 고마워 가믄장아기는 기름이 반지르르 흐르는 밥상을 준비하여 들여간다. 평생 마만 먹고 살던 부모님과 아들들은 ‘이건 한 번도 본 적 없고, 들은 적도 없고, 먹어 보지도 않았던 것이다.’며 상을 물린다. 그러나 막내마퉁이는 받아먹었다.

     

    마찬가지로 ‘발이 시리니 발막아 누울 아들이나 하나 보내 주십사’ 청하는 가믄장의 당돌한 요청에 마퉁이 어머니는 깜짝 놀라면서도 아들을 셋이나 둔 어미로서는 반가운 소리라, 아들들에게 권해 본다. 큰마퉁이와 둘째마퉁이는 ‘근본도 모르는 여자에게 보내서 공연히 아들들을 죽여 먹으려 한다.’고 화를 낸다. 그러나 이번에도 막내마퉁이는 기뻐하며 가믄장아기의 방으로 들어가 연분을 맺는다.

     

    막내마퉁이와 함께 부자가 되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막내마퉁이와 한방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가믄장아기는 마 파는 곳을 따라나선다. 따라가 보니 큰마퉁이가 마 팠던 데는 똥만 물컹물컹 쥐어지고, 둘째마퉁이가 마를 파던 데는 지네, 뱀, 짐승들만 가득하고, 막내마퉁이가 마를 팠던 곳에는 쓸모없는 것이라 여기저기 던져버린 자갈들만 가득했다. 그걸 주워, 겉에 묻은 흙을 박박 쓸어 자세히 보면 금덩이이고, 또 박박 쓸어 보면 은덩이였다.

     

    편견이나 타성에 젖지 않는 열린 마음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것, 부자가 되는 것 역시 지금껏 해 온 방법 그대로를 답습하며 농사를 짓고 아무 생각도 없이 관례적으로 일처리를 해오는 방법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쉽고 새롭게 마를 파내는 방법들을 궁리하지도 않고, 필요한 것만 쏙쏙 빼내면서 제대로 치우지도 않고, 정작 중요한 것은 몰라보고 당장 눈앞의 필요한 것만을 취하는 마퉁이들이 새로운 삶을 맞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찮게 생각해 왔던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새로운 방법으로 일과 인간관계를 들여다 보면서 막내마퉁이처럼 운명이 바뀌고 삶과 생활이 바뀌고, 부자가 되기도 한다. 제도화되어 있는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해 왔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본다는 것은 중요하다.

     

    가믄장아기가 인연과 운명에 좋은 전상을 가지는 여신일 수 있었던 것은 편견이나 타성에 젖지 않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물과 현상들을 남다른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호기심과 관심은 숨어있는 문제를 보게 한다. 다른 발견을 하게 하고 새로운 해결 방안을 궁리하게 한다.

    막내마퉁이 역시 부모님이나 형님들과는 다르게 편견이나 관습, 타성에 젖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가믄장아기라는 커다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중요한 일들 중에는 운이 따라 주고, 요행이 있어야만 정복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내 앞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는 것은 형님 마퉁이들처럼 편견이나 관습, 타성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힘든 일이 될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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