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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회]미륵은 어떻게 커플이 되었을까?
    조승미 / 2012-11-06 05:47:15
  • 지난번 소개한 미륵할미는 미륵이 된 여신 혹은, 여신이 된 미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땅 곳곳에는 이러한 미륵할미가 오랫동안 지켜져 오고 있었다. 그런데 불교와 결합된 미륵할미 신앙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려시대 커플미륵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미륵불의 여성형태가 이 커플미륵에서 먼저 발견되기 때문이다.

     

    아니, 근데 ‘커플미륵’이라니 무슨 말인가? 부처님이 커플이 될 수도 있나?

    답은 ‘그렇다’ 이다. 남녀 쌍으로 조성된 불상이 있다는 얘기다. 남자붓다와 여자붓다의 커플 스타일 말이다.

    준엄한 남자 모습의 불상만 보아온 우리들에게 이런 불상의 존재는 매우 생소하고 의아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현실 속에서 실현되어 온 신앙문화와 그 유적에는 이처럼 다양한 모습이 공존해 왔음을 여기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안성 기솔리의 커플미륵

     

    본래 불교교리적으로는 두 부처가 나란히 앉았다 하면, 대개 법화경을 근거로 한 석가여래와 다보여래를 의미한다. 경주 불국사에 있는 석가탑, 다보탑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미륵의 경우에는 두 미륵불이 서 있을 경우, 대체로 남녀 한 쌍의 형태로 인식되고 불려온 것이 명백한 차이점이다. 


    자, 그럼 이 독특한 커플미륵을 보러 가보자. 우선 일반적으로 제일 많이 알려진 운주사의 와불부터 볼까 한다. 누워있는 불상이 일어서는 날, 미륵의 세상이 온다는 전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온 그 와불 말이다. 그런데 이 불상의 명성에 비하여, 이것이 커플로 조성되어 있다는 것은 의외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일명 ‘부부와불’로도 불리는데, 큰 와불이 좌상의 남자미륵이고, 옆에 작은 와불이 입상의 여자미륵이다. 원래는 불상을 조각해서 세우려고 했는데 바위가 워낙 단단해서 밑부분이 떨어지지 않아 그냥 와불로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녀 두 미륵으로 조성하려고 했던 것은 처음부터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운주사 미륵부부가 누워있지 않고 처음 계획대로 세워졌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당하게 세워진 커플미륵을 만나기 위해서는 경기도 안성으로 가야 한다. 안성은 본래 죽주(竹州)라고 불렸는데, 이곳은 지난번에 말한 전라도 김제땅에 버금가는 또 다른 미륵의 고장이기도 하다. 유달리 많은 미륵불이 집약적으로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정치문화적으로 중요한 곳이어서 그렇다 한다. 그리고 그 형태 또한 매우 다양하다.

    그 중 가장 개성 넘치는 우리의 커플미륵은 안성 기솔리에 모셔져 있다. 이 곳은 아예 절 이름도 쌍미륵사인데, 서쪽의 여미륵과 동쪽의 남미륵이 시원한 키와 날씬한 몸체로 대칭을 이루며 서있다.

     

                                                                                 ▲전라도 화순 운주사의 부부와불
     

    ▲경기도 안성 기솔리 쌍미륵사의 쌍미륵불



    안성에는 또 다른 쌍미륵이 있다. 부러지고 잘려진 석불을 주민들이 다시 복원하여 세운 ‘아양동 미륵’이 그것이다. 모양도 이상하고 서로 균형도 맞지 않지만 그래뵈도 고려시대 불상이다.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미륵보살입상, 석불입상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것을 할머니, 할아버지 불상이라고 불러왔다. 눈이 크고, 얼굴 몸통 모두 큰 쪽이 할머니미륵이다. 얼룩덜룩한 색깔은 미륵불의 수난사를 보여준다. 미륵불상들은 하나같이 목이 잘려졌다가 복원된 흔적을 안고 있다. 그리고 수난을 이기기 위해서였는지 몸은 땅 속 깊이 묻혀 있는데, 아마도 종교적으로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경기도 안성 아양동 미륵-할머니, 할아버지 불상으로 불린다.

                                   

    커플 미륵은 왜 커플이 되었던 것일까?

     

    안성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파주 용미리에 또 다른 쌍미륵불이 있다. 거대한 자연암석에 불두를 조각해 조성한 이 불상은 전체 높이가 20미터 가까이 되어 산 속 멀리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불상은 둥근 갓을 쓰고, 한 불상은 네모난 관을 써서, 일설에는 미륵보살과 미륵불이라고 명명하기도 하지만, 역시 민중들은 이 두 불상을 남녀 커플로 해석해 버렸다.

    그리고 이 쌍미륵불 조성의 한 설화가 있어 흥미롭다. 고려 중기 한 왕실의 부인이 자식이 없다가 꿈에 두 도사를 만나 바위에 쌍불을 조성하고, 여기에 치성을 드리자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쌍미륵불이 고려왕실과도 연관되었다는 점, 그리고 자식을 바라는 기자신앙의 성격도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경기도 파주 용미리 쌍미륵

                                                                      

    그러면 언제부터 이렇게 불상을 커플로 조성하기 시작했을까? 현재로서는 고려시대 불상에서 쌍미륵불 형태가 주로 나타나고 있지만, 전북 정읍지방에서 발견된 한 쌍의 불상은 백제시대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어, 이것이 백제의 그것을 계승한 것인가 추측하게 된다.

     

     ▲전북 정읍 보화리 석불입상 (출처: 한국사진작가 협회 정읍지부)

     

    이 불상 역시 몸의 여기저기가 부러지고 몸의 반이 땅에 파묻힌 채 발견되었다 한다. 형제부처라고도 불리지만, 역시 남녀 부부부처로 불려왔다. 조성 당시인 백제시대에 남녀 커플불상의 개념이 있었는지 여부를 알 수는 없다. 다만 불상을 쌍으로 조성한 문화가 이 무렵 일부에서 발생하였으며, 이것을 민간에서는 남녀 커플로 인식하여 여러 가지 신앙문화와 연결되어 전개해 왔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커플 미륵은 무엇과 관련되어 있기에 커플이 되었던 것일까? 그리고 조선시대에 그 많은 미륵할미들은 왜 홀로 다시 솟아난 것일까? 미륵의 미스터리는 끝이 없는 것 같다. 다음 호에 다시 미륵할미 여행을 이어가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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