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단이프
  • 이프북스
  • 대표 유숙열
  • 사업자번호 782-63-00276
  • 서울 은평구 연서로71
  • 살림이5층
  • 팩스fax : 02-3157-1508
  • E-mail :
  • ifbooks@naver.com
  • Copy Right ifbooks
  • All Right Reserved
  • HOME > IF NEWS > 여성신화
  • [18회]자청비에겐 왜 아이가 없을까?
    이프 / 2012-08-13 04:13:32
  • 여성의 일상적인 모습들,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를 개키는 일이, 다만 하루를 주기로 소모되는 지겹고 하찮은 일상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는 여성들은 자청비 여신을 닮은 여성들이다.

     

    사랑하는 문도령이 다른 여자와의 결혼식 때 폐백으로 쓸 비단을 짜는 자청비 여신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그런 순간에도, 한 올 한 올 정성을 다해 비단을 짜면서 거기에 자신의 사랑과 간절한 마음을 담는다.

    많은 현실의 자청비 아내들은 정성을 다해 반찬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이리저리 궁리를 하면서 와이셔츠를 다린다. 고슬고슬 지은 밥, 정성껏 건네는 와이셔츠는 자청비 아내들의 사랑이고 영혼이다. 자청비 남편들이 이 자잘하고, 잘 느낄 수도 없이 거듭되는 일상의 위대함에 진심어린 시선을 줄 수 있었다면 세상과 역사는 획기적으로 달라졌을 것이다. 
     

    ▲할머니는 왕실 세탁부. 토릴 코브, 캐나다, 노르웨이, 1999, 10분, 애니메이션

    왕실의 세탁을 하며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할머니가 2차 대전을 겪으며, 자신만의 능력과 방법으로 나치에 저항한다. 공식적 역사와 개인의 일상이 교차지점! (제주여민회, 2011년 제주여성영화제에서 제공받은 자료다. 올해도 9월이면 다른 관계와 다른 생각을 보게 하는 영화들이 상영된다고 한다)

     

    늘 부지런하고 단정한 자청비 여성

     

    손을 예쁘게 하기 위해 빨래를 간 자청비 여신처럼 자청비 여성은, 늘 부지런히 단장하고 예쁘게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 남성들이 활쏘기나 팔씨름, 오줌 갈기기 등 다만 남성이기 때문에 구축 가능했던 것을 바탕으로 폼을 잡는 것처럼 그녀는 섬세함, 타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 동정심, 외형적인 아름다움에 민감한 여성의 특질과 장점을 잘 알고 쓴다.

    주변과 조화를 잘하는 그녀들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일을 처리한다. 큰 부자가 아니더라도 고급 브랜드의 좋은 옷과 샤넬백도 살 것이고 상처받고 아픈 가족들을 위해 정신과의사 정혜신이 진행중인 와락프로젝트 같은 좋은 일에도 많은 돈을 기부할 것이다.

    아프고 굶주린 아이들을 살피고 보듬는 것은 그녀들 대부분에게서 볼 수 있는 위대한 영성이다.

     

    자청비 여성은 자신의 이해를 우선으로 하며 자신에게 중요한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이다. 사랑을 얻기 위하여 거리를 두거나 자신 속으로 움츠러드는 대신, 문도령의 세계 안으로 성큼 들어간 자청비 여신처럼 자청비 여성들은 때에 따라서는 남성들과 직접적으로 부딪힌다. 그런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고 바라는 것을 얻어내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기기획을 한다.

    사무실의 자청비 여성들은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합리적인 중재를 잘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녀는 상대를 적당히 치켜세우거나 섹시한 매력으로 그녀에 대한 관심을 잡아두기도 하면서 명랑하고 고조되는 분위기를 만든다. 곤란에 빠진 후배를 도와주기도 하고 예쁜 스커트의 그녀에게 껄떡거리는 남성동료에겐 따끔한 한 방을 선사하기도 한다. 감성과 논리를 고루 갖추고 있는데다가 집중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그녀는 사무실의 동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녀는 용기와 적극성, 사무실 안에서의 관리능력, 카리스마, 성공 등을 남성의 것만으로 여기는 가부장제 문화 내에서, 그런 것들을 여성들도 가질 수 있다고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여성들의 부진의 이유가 여성 개인에게보다는 사회적인 미성숙, 부조리와 상대의 유아성, 근거 없는 차별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이런 자청비 여성들은 가부장 문화가 남성들의 영역으로 한정시켜 버린 영역에서도 남성들을 압도하는 탁월함을 보여줌으로써 그 문화가 조장한 아이덴티티를 깨트리는 여성들이다.

     

                            ▲남자가 역사를 만들었다고? Man Makes Histoy? 샐리 보스로이드, 호주, 2008, 3분, 애니메이션.

                            남성중심의 역사기록, 통념에 도전하는 애니메이션. (제공. 제주여민회, 2011년 제주여성영화제)

     

    그녀는 투쟁가는 아니다

     

    자신의 일을 위해 매진하는 특성으로 그녀를 독하고 기가 센 여자로 보는 선입견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자청비는 자신을 농락한 정수남에게 자신도 똑같이 폭력적으로 응수했지만 결국에는 그를 용서해 준다. 자신들이 먹을 도시락을 남에게 정성껏 대접하는 두 노인네들을 보고 그들에게 풍년을 내린 자청비 여신처럼, 자청비 여성들은 가난함 속에서도 남에게 인정을 베풀고 남의 어려움을 도와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청비 여성들은 남편에게 한 발 뒤로 양보하기도 하고, 자신을 일방적으로 소외시키는 시댁 어른들에게도 오랜 시간을 들이면서 관계 속의 인간성을 확보해간다. 그녀는 가난하고 힘들어도 알콩달콩 살아가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애착을 가지는 여성일 경우가 많다.

     

    설득과 양보, 조화, 인내, 희생, 끈기, 동정심, 배려 등은 그녀들의 특성이다.

    그녀는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가를 외치면서 선봉에 선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부정하는 가부장제의 부모님에게 설득과 인내의 방법으로 다가갔다. 여성에게만 내려지는 부당한 심사였지만 받아들였다. 자신에게 폭력적이었던 정수남을 자청비 역시도 폭력적으로 응징했지만 결국에는 그를 용서했다. 자청비 부부의 반대편에서 불행을 감내하는 또 한명의 여자를 위해서 기꺼이 그녀는 불행과 슬픔을 나눠가졌다. 세상을 멸시하는 거만한 부자들을 거부했고 가난한 주변을 돌아보며 조화롭게 살아갔다. 땅 한 쪽, 물 한 적을 관리할 능력에 모자람이 없었으나 그녀는 오곡의 씨앗을 달라했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Kirschbluten - Hanami. 도리스되리, 독일, 2008, 127분 (제공. 제주여민회, 2011년 제주여성영화제)

    서로 평생토록 사랑하며 살던 아내가 죽자, 결혼해 살면서 그녀가 이루지 못한 꿈을 찾아보는 남편, 그리고 뒤늦은 회한(살아있을 때 그러지 쫌~! ㅠㅠ). 이래서 설득과 양보, 조화, 인내, 희생, 끈기, 동정심, 배려라는 훌륭한 여성적 특질들은 온몸을 불사르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짜증나는, 패배적인 특질로 생각되기도 하는 것일 게다.

     

    자청비 여신이 그랬듯 자청비 여성들은 명성이나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가까이에서 서로에게 따뜻함을 주고 살아가는 이웃의 마음을 가진다. 자청비처럼 능력 있는 여성이 여성평등을 위한 선봉에 서고 ‘땅 한 쪽 물 한 적’의 관리와 지배를 직접 장악했다면 더 좋은 결과들을 더 빨리 이룰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땅 한 쪽 물 한 적’을 포기한 것이 좋은 결정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만, ‘오곡의 씨앗’을 택하는 것을 여성비하라는 결정된 가치로의 순응이라 몰아세울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예쁜 자청비 여성들이 처하게 되는 위험

     

    자청비 여성들은 지극히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단순한 일에도 자신의 영혼을 담아낸다. 사회의 강요였건 개인의 선택이었건, 그건 현재의 자신에게서 스스럼없이 흘러나오는, 자신이 늘 잘할 수 있고 편하고 몸에 맞는 효율적인 경로를 선택한 것이다.

    자청비가 원하고, 자청비에게 어울리고, 자청비가 잘해내는 방법으로, 자청비처럼 평생토록 가보는 것.

    여성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한 선택들은 많은 현실의 여성들이 소화하기 쉬운 방법이어서 활활 타오르지는 않지만, 훨씬 지속적이고 넓은 유대로 이끌 수 있는 원리가 될 수 있다. ‘땅 한 쪽 물 한 적’에 대한, 하나로 집중되는 지배와 관리보다는 ‘오곡의 씨앗’이 가지는 지속적이고 다의적인 과정으로 인해 에너지는 극대화될 수 있는 것이다.

     

    예쁜 자청비 여성들의 경우, 이 여성은 억울하게 비판의 대상이 되거나 여성들에게조차 위험스러운 여성으로 인식되기 쉽다. 아직까지도 여성적인 성적 매력을 개발하고 발휘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수용하지 못하는 우리의 분위기에서 종종 자청비 여성은 그녀가 가진 여성적인 매력들로 인하여 많은 남성들에게는 물론 여성들에게도 원치 않는 시달림을 받을 수 있다. 그 흉흉한 16세기 마녀사냥의 시절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화장이란 신의 창조 위업을 모욕하는 행위이다. 여인들의 화장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증대시키는 게 아니라 내부의 병, 음란함을 겉으로 드러내는 기호다.”라고 말했다. 예쁘게 화장하는 여성들은 마녀라는 것이다.

     

                                                ▲마녀들 The Witches. 엘리자베스 홉스, 영국, 2002, 7분, 애니메이션

                남성권력의 마녀 선별법과 사냥에 대한 풍자와 위트가 넘쳐나는 환상적인 애니메이션. (제공. 제주여민회, 2011년 제주여성영화제)

     

    의도적인 반여성주의는 ‘성모 마리아와 같은 순결함’ 또는 ‘죽음과도 같은 유혹’, ‘뇌쇄적인 유혹’ 등의 말들로 극단적인 뉘앙스를 풍기면서 우리 문화의 밑바닥에서 배회하고 있다. 여성 숭배와 여성에 대한 혐오가 동시에 여성 차별을 위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자칫 예쁜 자청비 여성들은 비본질적인 존재로 전락해 버리고, 같은 여성들에게조차 죄악으로 이끄는 원흉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사실 그녀의 예쁜 코 자체는 그녀에게도 또 남에게도 좋다. 흔히들 말하는 남성스럽다는 것이 그들의 중요한 파워가 되듯 예쁘다는 것, 여성스럽다는 것은 여성이 가지는 중요한 삶의 파워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그녀의 예쁜 코는 허욕과 파괴의 상징이 되어버리고, 그녀의 언행과 상관없이 책임을 전가받곤 한다.

    예쁜 코는 누구나 원하는 것이고 사랑스러운 것이지 그것 자체가 비난의 계기가 될 수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아름다움에 경탄하며 아름다워지기 위하여 지난한 노력을 해왔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예쁜 코가 한두 개쯤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100개의 다른 코 Flawed. 안드레아 도르프만, 캐나다, 2010, 10분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성형외과 의사를 만나면서 주인공 안드레아는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외모와 자존감 둘 모두를 가져가기를! (제공. 제주여민회, 2011년 제주여성영화제)
                               

    물론 통제되지 못하는 과잉 자청비 여성의 경우 관능적인 매력만으로 남성들을 유혹하여 남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파괴해 버리기도 한다. 그런 과잉 자청비 여성들은 외모의 성적 매력만을 유일한 그녀의 것으로 삼기 때문에 그녀의 나머지 인격들을 모두 파묻고 만다. 이런 과잉 자청비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단장한 예쁜 매력을 인간적인 관계들 속의 매력으로 가져가는 자존감이다. 


    여성적 매력을 성취를 위한 수단으로, 사물로, 상품으로 쓴다 하더라도 비난받아 마땅한 것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다. 선택은 순전히 그녀 자신의 몫이다. 다만 여신 자청비처럼 ‘자신으로 가는 길’ ‘타자와 함께’라는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드 보봐르는 ‘타자’로서의 여성의 정체성, 그리고 여성이 당하는 근본적인 소외가 부분적으로는 여성의 몸, 특히 출산 능력에 기인하는 것이라 했는데, 그래서일까, 자청비에게는 아이가 없다. 바라보기에는 그지없이 완벽한데도 자청비 여신은, 지금까지도 자신을 지키기가 어려웠는데 출산으로 인한 소외까지, 더 이상은 극복하고 감당하기에 너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을까?

     

    결혼은 여성의 소외를 무수히 제조해내는 엄연함으로 여전히 존재한다. 결혼제도에 속하지 않으려는 자청비 여성들이 여러 형태로 늘어만 간다.

     

                             ▲출산공포 Birth. 시그네 바우먼, 미국, 2009, 12분, 애니메이션(제공. 제주여민회, 2011년 제주여성영화제)
     
     
     
     
    @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H*@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
덧글 작성하기 -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덧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