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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회]여원치 마애불에서 여전사 로드로
    조승미 / 2012-08-13 04:08:58
  • 경주 남산에 있는 용장사곡 삼층석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고 불린다. 탑의 하단부가 따로 없이 산 자체를 기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이 탑은 높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몸집도 거대하다. 소담한 삼층의 탑이 산 전체를 자신의 몸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처럼 깊은 산 속, 평범해 보이는 형상의 돌들이 종종 엄청난 스케일의 그 무엇을 품은 채 시치미 뚝 떼고 있는 경우가 있다.

     

                                                                            ▲경주 남산의 용장사곡 삼층석탑
     

    우리의 여원치 마애불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애불이 가지고 있는 ‘한쪽 가슴이 없는 여인’의 전설을 따라 가다보면, 그 안에 세계 여전사 로드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존 시기, 중원대륙에서도 여전사가 존재

     

    지난 글에서 잠시 언급한 아마존 여전사들이 세계사 속에 등장한 시기 즉, 트로이 동맹국으로서 그리스군과 전쟁을 벌이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3300여 년 전의 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한편, 흥미로운 점은 중원대륙에서도 비슷한 시기의 여전사 유적이 선명하게 발견된 것이다. 상(商)나라(중국 고대의 왕조, 은나라라고도 함, BC1600~BC1046)의 수도 은허(殷墟)의 부호묘(婦好墓)가 그것이다.

     

    묘의 규모 및 순장자의 수, 그리고 2000여점에 달하는 부장품의 가치를 볼 때 이 무덤의 주인은 매우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주요 부장품은 주로 무기와 제사용품이었는데, 이는 이 사람이 군사와 제사 종교적 특권을 가졌음을 의미했다. 유골이 그대로 남아있어, 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판명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부호(婦好)라는 이름의 왕후. ‘여자’였다.

     

    ▲은허 부호묘 유적지에 세워진 여전사 부호의 동상

    부호는 상나라 왕 무정(武丁)의 세 부인 중 하나였으며 신(辛)이라고도 불렸다. 그녀와 관련된 갑골문에서는 임신한 그녀가 아들을 낳을까, 딸을 낳을까 하는 내용이 있었고, 조상과 하늘에 지내는 제사의 주관과 관련한 것이 있었으며, 수천의 대규모 군대를 징집하여 주변 적국을 정벌한 기사들이 있었다.

    즉, 그녀는 왕후이자, 나라의 제사장이고, 동시에 사령관직의 여성전사였던 것이다. 이 시기는 부족 연합국가의 형태로서 아직 강력한 중앙권력이 형성되지 않았다. 따라서 은왕조는 유력한 부족과의 혼인을 통해 제사권과 군사권을 확보함으로써 정치권력을 유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BBC에서 제작한 부호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여전사 부호는 누구인가?

     

    부호는 유력한 씨족 출신의 여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여 정복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녀의 출신씨족의 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 부호 외에도 다른 여전사의 존재도 확인되었다. 군사와 관련하여 부정(婦妌)이라는 이름이 발견되었다. 이는 당시 여전사의 존재가 부호에만 한정되는 특수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한다.

    군대의 큰 북 앞에서 북을 치는 무녀. 군사문제와 제사는 둘이 아니었다. 전사이자 제사장일 수 있었던 존재가 바로 여성이었으며, 부호의 씨족은 그런 여성의 위치가 매우 강고했던 부족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은 누구였을까? 아마존 여전사들은 흑해를 건너고 우랄 산맥을 넘어, 강력한 유목민족 스키타이인들과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거나, 이들과 충돌하기도 하면서 역사에 지속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서는 이들의 뼈와 부장품이 발견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DNA검사 결과, 그 유전자가 몽골여성에게까지 확인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미국 PBS 방송에서 관련 내용이 방영되기도 했다.)

    중원대륙의 부호 부족과 아마존 여전사들과의 관계는 그다지 연구된 바가 없는 것 같다. 굵직한 여성 전사들의 역사가 비슷한 시기에 중첩되고 있는 현상은 그 자체가 주목되는 일이지만, 이들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가 심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다만 현재로서는 3000여 년 전, 광활한 대륙을 거침없이 활보했던 여전사의 역사가 있었던 것만으로도 우리의 인식이 상당부분 바뀌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가야에도 여전사가 있었다

     

    그런데 혹시 이것이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가? 3000년을 뛰어넘어 그대로 지리산 마애불에 적용하기에 비약이 크다고 느껴진다면, 다시 잠시 인도로 건너가 보기로 하자. 인도에는 여성 호위무사가 왕을 호위하는 풍습이 기원전 아쇼카왕 때부터 6세기 굽타왕조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직책에 발탁되기 위한 후보 여성들은 오랫동안 검도, 활쏘기, 레슬링 등의 훈련을 받았다.

     

                          ▲남인도 벨루르(BELUR)의 여전사 유적 (출처:http://www.fscclub.com/history/indian-combat-e.shtml)

     
     

     

    자, 그러면 이제 한반도에, 특히 지리산에 이 여전사로드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살펴볼 시간이다. 우선 지리산은 흔히 백제의 땅으로만 생각되어 왔지만, 최근 이 지역 고분군의 고고학적 발견에 힘입어 5세기 무렵 이곳이 일부 가야세력의 중심지였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지리산권으로 진출하기 이전, 금관가야 고분군에서는 우리나라 유일의 여전사 유적들이 확인되었다. 관련 연구사항을 반영한 내용이 얼마 전 역사스페셜 <가야에 여전사가 있었다>편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특히, 경남 김해 대성동의 한 고분은 3명의 무사가 순장된 것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여성이었으며 골반뼈의 구조로 보아 아이를 출산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유골을 근거로 가야 여전사의 얼굴이 복원되기도 했다.

     

                                                                   ▲복원된 가야의 여전사 얼굴(출처 KBS 역사스페셜)
     

    예안리에서는 여성전사의 유골과 유적이 다수 출토되었다. 그중에는 지도자로 보이는 여성전사의 고분도 있었는데, 귀한 철기 무기류 등이 부장된 것도 놀라웠거니와 남자 부하가 순장된 경우도 있어 더욱 그 놀라움을 배가시키기도 했다.

    다큐에서는 여성들까지 전쟁에 나서야 했던 당시 가야의 어려웠던 정세를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었지만, 군사 지휘면 에서도 지위가 높았던 여성전사의 존재를 유추해 볼 때, 이것은 비단 총단결 체제의 가야 정세만을 반영한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강한 여전사 문화가 이때 가야에 수용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즉 여전사 로드가 가야에 이어졌던 것이다.

     

    가야는 왕성한 교역국가였다. 시조 허황옥이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전설에서부터, 낙랑군 및 일본 등과의 왕성한 교역을 증명하는 화폐 덩이쇠 유물, 그리고 신라에게 빼앗긴 남해해상 교역루트를 다시 확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백두대간을 넘어 지리산권을 자기 영역권으로 삼았던 것 까지, 모두 가야의 활발한 교류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지리산은 여전사 로드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야의 여전사는 이런 교류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예안리와 대성동 고분군의 여성 유골을 DNA 분석한 결과, 인도 타밀계인일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보고는 우리를 또 한번 놀라움에 빠뜨린다.

    지리산 여원치마애불 -가야의 여전사-인도의 여성 호위무사 - 아마존, 은나라 부호

    이 여전사 로드가 각각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아직 매우 일천하다. 하지만 여전사의 역사가 문헌보다는 땅의 기록 즉, 고고학 유물과 유골로 증명되고 있는 현상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지리산을 그토록 가슴뛰는 곳으로 생각해 왔던 것은 어쩌면 이 여전사 로드를 품고 있었던 오래된 기억 때문은 아닐까. 여원치 마애불이 땅위로 온 몸을 다 드러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다 드러낼 수 없는 여전사들의 그 큰 길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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