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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회]여원치 마애불에는 왜 한쪽 가슴이 없을까?
    조승미 / 2012-07-09 03:42:41
  • -불교와 동거한 지리산의 여신들3

     

    지리산이 열리고 있는 것일까? 지리산을 오르는 길이 달라지고 있다. 밤차로 내려가 다시 그 다음 밤차로 올라올 지언정 정상 천왕봉을 기어이 오르고자 했고, 혹은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면 능선종주의 꿈을 품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지리산을 둘레길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정복, 성취의 등산방식이 치유의 걷기로 문화가 바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길을 다니는 방식이 달라지니까 길이 달라지고, 길이 달라지니까 잊혀졌던 그 길의 옛이야기가 다시 되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주능선 코스에 있는 유명한 지명들 대신, 조금 낯설지만 여러 가지 봉우리이름, 마을이름, 개천이름, 그리고 그 길이 품고 있는 가지가지 유물들의 이름이 우리에게 속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여, 이번 글에서는 지리산 둘레길에서 만날 수 있는 유적, 여원치(女院峙)의 마애불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름부터 전설까지 심상치가 않다

     

    그런데 이 불상, ‘여원(女院)’이라는 이름부터 그 전설까지 심상치가 않다. 우연히 길에서 주운 돌멩이가 수천억의 값을 갖는 진귀한 보석일지 모른다는 느낌으로 비유하면 너무 속되고 과장된 것일까? 하지만 그만큼 이 불상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길이 너무나 흥분되는 순간의 연속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여원치 마애불이 이끄는 곳을 따라가는 이번 여행은 고요한 힐링캠프가 아니라 ‘익사이팅’한 탐험길이 될 것이다. 자, 그럼 마애불이 있는 여원치 고갯길부터 찾아가 보기로 하자.

     

    여원치는 전라북도 남원과 운봉 사이에 있는 고개다. 이 고개길에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한 불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불상 앞에는 100여 년 전 조선말기에 이 고장의 한 관료가 쓴 불상의 유래가 비문으로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먼저, 여원(女院)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여자의 형상으로 조각상을 만들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물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그러면 이 조각상의 주인공 여자는 누구인가? 고려말에 이성계 대장이 왜구를 무찌르기 위해 이곳에 파견되었을 때, 한 도고(道姑)가 나타나 대첩일시를 알려주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 도고의 형상으로 조각상을 만들어 모셔왔던 것이다.

     

    비문의 설명에 의하면, 이 고개의 이름 여원치의 ‘여원’은 여신의 사당이라는 뜻, 그리고 그 여신은 도고, 즉 도교의 한 여신 또는 여자 산신이었다는 것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도 이전의 일을 후대 500년 뒤에 채록해서 비문에 새겼으니, 그 자체를 모두 역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할 것이다. 다만, 이 마애불상은 여신의 상으로 오랫동안 믿어져 왔던 것이고, 사당으로 모셔질 정도로 지역민들의 신앙대상이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만일 이성계가 이 마애불상 조성에 관여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가 이곳 지리산 여산신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그의 정치적 목적에 부합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불상을 조성하면서 그 지역 민중의 신앙과 정치적 민심을 수용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영웅적인 승리를 기억하게 하는 것 말이다.

     

                                                                                    ▲여원치 마애불

     

    한쪽 가슴이 없는 여신

     

    아무튼 여원치 마애불상에는 별로 재미없는 이성계 영웅담이 먼저 나온다. 그런데, 한편으로 민중들이 구전으로 전해 온 버전에는 좀 다른 이야기가 있다. 우선, 이성계가 만난 그 여신이자 여인에게 남은 스토리가 더 있었다. 즉, 그 여인은 전생에 고갯길 주막집의 주모였는데, 왜적 놈이 그만 가슴을 희롱하여서 정절을 지키고자 한쪽 가슴을 도려내어 자결을 했다는 것이다. 여자들의 극단적인 정절자살을 칭송했던 것이 조선 중후기의 일인 것을 보면, 이 전설이 이성계 시대 당시의 일이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그리고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전설이 단지 여인의 정절 강조나 한풀이를 위해서 말도 잘 되지 않는 스토리를 구성했던 것 같지는 않다. 여신의 전생과 주막집 배경, 그리고 왜적의 희롱, 정절자살 등은 설정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무언가 강력한 원형성이 이런 이야기를 만들게 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한쪽 가슴이 없다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한쪽 가슴이 없는 여신, 이것이 매우 강한 상징이었기 때문에, 굳이 주모가 희롱을 당해 가슴을 잘랐다고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했는지도 모른다.

     

    마애불은 오랜 세월 침식되어 선명한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조형적으로 한쪽 가슴이 없는 것을 명백히 드러냈는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 다만, 다른 불상과는 달리 오른 손을 가슴 쪽에 두고 가리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독특한 점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마애불이 한쪽 가슴이 없음을 표현하였든 아니든, 민중들은 오랫동안 그것이 한쪽 가슴이 없는 여신이 투영된 것으로 이 마애불을 기억하고 신앙해 왔음을 구전설화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가슴이 없는 여신의 계보

     

    그러면 여원치 마애불은 왜 한쪽 가슴이 없는 것일까? 한쪽 가슴을 갖는다거나 가슴을 절단한다는 것은 우리 신화나 설화에서 보기 드문 내용이다. 이 독특한 코드는 과연 무엇과 연결되는 것일까?

    여신문화 탐색 작업을 지속하면서 부족하지만 나름 몇 가지 원리가 스스로 터득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와 ‘모든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가슴절단 설화에 명백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 후자의 원리였다면, 전자의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의 입장에서 이것의 원형을 찾아보고자 한다.

     

    가슴이 없는 여신의 계보를 찾아보면, 우선 그리스 역사에 등장하는 아마존(Amazon) 여전사가 있다. 그리스군과 용맹하게 싸우는 모습이 많은 유물 유적 속에 등장할 정도로 아마존 여전사는 세계사에 선명하게 그 모습을 남겼다.

    아마존,하면 아마존의 눈물, 브라질 밀림의 아마존을 떠올리지만, 서양인들이 가지고 있던 여전사의 이미지와 그 기억 때문에 이 지역을 아마존이라고 불렀다고 할 정도로, 고대 여성의 강력한 힘의 역사를 보여준 이름이 아마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아마존 여전사들은 왜 한쪽 가슴이 없을까? 모든 아마존 여전사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이들은 오른쪽 유방을 어려서부터 크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활을 쏘고 칼을 휘두를 때 장애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스군과 전쟁을 벌이는 아마존 여전사의 모습, 3세기 작품,(출처 British Museum)
     

    한편, 한쪽 가슴이 없는 또 하나의 모델은 인도 힌두교의 아르다나리슈바라(Ardhanarishvara)가 있다. 남성신 쉬바(Shiva)와 여신 파르바티(Parvati)가 결합된 형태로서, 힌두와 그리스 문화에 그 연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기원전 1세기 쿠샨왕조 때부터 그 형태가 형성되기 시작하여 굽타왕조 때 완성된 것으로 본다.

    아르다나리슈바라는 힌두교 전파로 인해 인도 인근 지역과 함께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지역으로도 유포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반은 남자, 반은 여자인 인도 힌두교의 아르다나리슈바라(Ardhanarishvara)

     

    ▲캄보디아의 아르다나리슈바라(Ardhanarishvara)동상(7-8세기 유물로 추정) 이 신상은 인도와 반대로 왼쪽 가슴이 없는 형태를 하고 있어 흥미롭다. (출처:http://www.metmuseum.org/toah/works-of-art/1993.387.4)

     


    그녀는 세계 여전사의 계보를 잇고 있었던 것일까?

     

    힌두교의 아르다나리슈바라는 보다 완전한 신성을 표현하기 위한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이유로, 반은 여자, 반은 남자의 형태를 띠면서 한쪽 가슴이 없는 조형적 특징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한쪽 가슴이 없는 이미지의 보다 오래된 기원은 여전사(female warrior)의 역사에 있다. 그리고 여원치 마애불의 여신원형도 전쟁과 더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성계에게 결정적인 공격시간을 조언한 것이 그것이다.

    그녀는 세계 여전사의 계보를 잇고 있었던 것일까?

    인류 문명권 곳곳에 여전사의 역사가 있었다. 세계 여전사는 얼마나 오래된 기원을 갖고 있을까? 그리고 여전사의 계보는 과연 우리 한반도와 그리고 이 지리산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지리산 고갯길에 오랫동안 침묵해 온 한 불상이 이 뜨겁고 놀라운 여전사의 길로 이어지게 한다. 우리의 여행길이 조금 더 길어져야 할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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