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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회]자청비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여성 원형
    이프 / 2012-06-11 06:46:59

  • 시선을 장악한다는 것은 권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선생님들 앞에서 제자의 시선은 아래로 향해 있어야 했다. 부모님과 얘기하는 아이들의 시선도 그래야 했고 남편과 얘기하는 아내의 시선도 그래야 했다. 상사 앞에 선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임금이나 고위관직 어른들 행차에 어린 백성들은 엎드려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내리깔아야 했다.



    그녀는 거침없고 자유롭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그녀는 그녀가 생각하는 바를 숨기려 들지 않으며 가면을 쓰고 위장을 하지도 않는다. 시선을 내리깔고 어떤 상황이라도 감수하겠다는 미지근한 표정으로 있지도 않았다.



    문도령, 너 투명인간이니? 



    이 자유로움은 세상의 부정한 힘, 탐욕적인 권력에 대한 일탈이고 저항이어서, 파란 초원을 자유롭게 뛰어가다 뒤돌아서 손을 흔드는 사람을 볼 때처럼, 같이 뛰고 싶게 한다. 



    죽음을 불사하고 문도령을 찾아 헤매고 기다리던 자청비는 어이없게도 문도령의 결혼소식을 듣는다. 자청비는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혼사 때 폐백으로 쓸 비단에 ‘가령하다 가령비, 자청하다 자청비’라고, 힘들게 기다리는 그녀가 있다는 암시를 한 땀 한 땀 새겨 넣어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그걸 보고서야 문도령은 자청비를 만나러 온다.

    그러나 자청비는 막상 문도령이 자신을 만나러 오자, 치마를 펄럭이며 맨발로 달려 나가 반기지 않는다.



    사랑을 나누고 평생을 약속하고도 문도령은 아무 소식 없었으며 장가까지 들려 했다. 자청비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떨어지는 감이나 냉큼 받아먹는 문도령이 미워 심술을 부린다. 그녀는 문도령에게 창문에 구멍을 내어 그 구멍으로 자신을 보라고 요구한다. 그리고는 문도령이 그 구멍에 눈을 대고 안을 들여다보자 손가락으로 문도령의 눈을 찔러 버린다.



     ▲정소동 감독 동방불패(사진출처:씨네21)

    이 영화에서 임청하는 자청비처럼 매력적인 양성인간으로 나온다. 이 영화의 기본적 배경은 신화다. 동방불패의 카리스마, 깊이를 더할수록 여성화되어가는 힘, 아름다움과 양성적 인간, 남자가 여자로 되고 자기의 남자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창호문에 구멍을 내어 안을 보게 하고 그 눈을 찔러버리는 모티프와 에피소드들은 우리 신화 자청비와 닮았다.



    자청비는 ‘몰래보기’의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든다. 자청비는 왜 문도령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었을까?



    많은 신화에서 몰래 엿보는 행동은 비참한 결과를 만드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묘사되곤 한다. 하회마을의 허도령은 마을을 구하기 위하여 열두 개의 탈을 만드는데 그를 사모하는 마을의 처녀가 창문에 구멍을 내고 허도령을 엿보자 그는 그만 피를 토하며 죽어버린다. 일본의 신화에서도 이자나기는 이자나미를 몰래 봤다가 낭패를 당한다. 푸시케는 에로스를 몰래 봤다가 에로스를 잃고 만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반지를 소유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 대상들에 대해 절대권력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제멋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양치기 기게스도 반지를 손에 넣고, 필요에 따라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어, 탐욕이 빚어내는 부정한 힘으로 왕비를 간통하고 왕을 암살한 다음 자신이 왕에 오른다. 



    일부러 ‘몰래 엿보는’ 상황을 만든 자청비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투명인간이 되는 반지를 가지고 탐욕으로 빠져들었던 사우런(반지의 제왕)이나 기게스처럼 문도령의 권력이 잘못된 권력임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피터잭슨 감독 ‘반지의 제왕’(사진출처:씨네21). 세계를 멸망시킬 힘을 지닌 절대반지를 없애기 위한 원정대의 여정.



    탐욕에 어두운 문도령을 지적질하다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의 부당함과 폭력성을 그녀는 일깨운다.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자신의 탐욕만을 취하려는 절대권력은 잘못된 권력임을 자청비는 탐욕에 어둔운 문도령의 ‘눈’을 찔러버림으로써 보여주는 것이다.

    문도령의 제멋대로의 자유와 자청비의 제멋대로의 자유는 이처럼 차원이 다르다. 탐욕에 제멋대로 빠지는 사람에게서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스멀거리는 불쾌감, 그걸 제멋대로 잘라내는 사람에게서 느끼게 되는 눈부신 경쾌함은 너무나 다른 것이니 말이다.



    영화의 카메라도 남성들이 찍은 몰래카메라에 가까웠다. 섹스 장면에 남자는 없다. 등만 설핏 스친다. 카메라는 남녀, 둘의 행위와 교감을 잡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은 여성들의 헉헉대는 모습과 교성만을, 가까이, 더 가까이 잡아냈다. 카메라는 남자의 눈, 남자가 바라보는 모습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이창’(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Ace). 우리에겐, 진정한 관심은 없고
                        관음증의 시선만이 있는 것일까?, 관음증의 시선을 오히려 즐기기도 하는 요즘 그것의 긍정성은 무엇일까?

     

    열쇠 구멍, 창호의 구멍을 통해 안을 훔쳐보는 것, 투명인간으로 사랑하는 상대 앞에 서 있다는 것은 그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장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절대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고, 제멋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권력이 탐욕과 어우러지면 폭력은 스스로 알을 까면서 곳곳에서 일어나게 된다.

    나선처럼 잠기지 않고 모든 것을 삼키면서 위를 향해 탐욕은 열려나간다. 너무 사랑해서 엿보다가, 너무 사랑해서 가두고, 너무 사랑해서 때리고, 너무 사랑해서 때린 곳을 쓰다듬는다.



    이런 폭력의 맹점은 폭력을 행하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 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런 폭력은 그 본질을 잘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폭력적 질서를 은밀하고도 자연스럽게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져 자연스러워진 남성적 폭력들 앞에서 그 폭력들을 폭로하고 이에 대하여 일침을 가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여성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소모적인 싸움과 이어지는 더 큰 불행을 만들기도 해서, 나만 참아버리면 모두 좋게 끝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넘겨 버리는 경우가 많다.



    자청비에게도 역시 그런 일침은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주모 할머니는 문도령의 눈을 찔러 버린 자청비를 심술궂다 하며 내쫓아 버렸다. 사랑하는 문도령은 화가 나서 돌아가 버렸고, 그녀는 또 그를 찾기 위해 더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인간이 지향해야 할 어떤 가치로운 모습들을 위해서, 예를 들어,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지는 남성적 폭력을 인식시키고 그에 일침을 놓는 태도들을 지니고 살아야 함을 자청비 원형은 보여준다. 심술과 잔소리 속에서 남성들의 이기적 행동들은 고쳐지기도 한다.



    자청비에게 사랑은 무조건 일방적으로 기다리거나 참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부당한 것에 대해 요구할 줄 아는 사랑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청비는 화가 난 것을 알리며, 심술을 부린다. 그 때문에 다시 문도령을 만나기 위해서 자청비는 또 다시 돌고 돌아가는 결과를 감당해야 했지만, 바로 그렇게 소외된 자들의 권리는 획득되어 왔던 것이다. 자청비는 사랑의 불가해함을 이해하는 것과 그 욕망의 황폐함을 지적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임을 인식하는 것의 중요성을 아는 여자다.     



    자청비는 생활문화의 원형이다



    신화의 말미에서 자청비는 하늘에서 일어난 난을 평정한 대가로 오곡의 씨앗을 선물로 받고 내려오는데, 내려오다 보니 씨앗 하나가 모자라 도로 올라가 받아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 받은 그 씨앗은 메밀 씨앗이었다.

     

                                      ▲오곡(사진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주례>에 의하면 벼, 기장, 피, 보리, 콩을 말하며
                                      제주의 경우는 밭벼, 보리, 조, 콩, 메밀을 말하기도 한다. 보통 모든 곡식을 지칭한다.


     

    신화에서는 ‘그런 법으로 메밀은 다른 씨앗보다 늦게 뿌리거나 거친 땅에 뿌려도 수확을 하는 강한 곡식이 되었다. 또 여름 장마나 태풍에 농사를 망치게 되면, 그 대신에 뿌려 흉년에도 먹을 수 있게 짧은 기간에 열매를 맺는 곡식이 되었다.’고 하고 있다.



    메밀은 8월 하순, 처서 전후에 파종을 하고 10월 하순, 상강 전후에 수확하는 작물이다. 여름이 거의 지나 파종을 하기 때문에 쉴 새 없이 자라나는 검질(잡초)을 제거하는 일에 다른 작물들처럼 인력이 많이 들지 않는다.

    풍수해와 가뭄, 척박한 화산회토와 섬이라는 자연조건으로 늘 식량에 대한 불안을 키워가야 했던 제주의 환경에 메밀은 선물같은 곡식이다. 보리나 조, 콩 농사가 가뭄이나 홍수로 실패를 하면 급히 메밀을 파종하여 식량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품에 품었다가도 먹는 음식’이라 하여, 물도 귀하고 땔감도 모자라고 부엌도 따로 떨어져 있는 제주에서 단시간에 작은 화력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으로 이만한 재료가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제주의 대표적인 전통음식인 메밀수제비, 빙떡이다. 사람들은 자청비를 이야기하면서 먹고살기 힘들었던 생활의 방편들을 배우고, 경험의 과학과 삶의 문화를 전수했던 것이다. 



                      ▲메밀가루를 묽게 반죽하여 후라이팬에 둥글고 얇은 전을 부쳐낸다. 채를 썬 무를 살짝 데친 다음  소금과 깨로
                     간을 해 소로 넣고, 빙빙 말아 무가 나오지 않게 양끝을 살짝 눌러주면 빙떡이 된다.(사진출처:향토문화전자대전)

    사람의 일생 중에 몸과 마음이 가장 바쁠 때를 말하다



    사랑에 목숨을 걸고 다른 여자와의 삼각관계 속에서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와중에 자청비는, 사람의 일생 중 가장 바쁜 때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라고 말한다.



    자청비는 문도령이 새 각시에 홀랑 빠져 시간 가는 것도 모르고 보름을 넘기자, 보름을 넘기고 있다며 쪽지를 보낸다. 문도령은 급한 김에 모자를 쓴다는 게 발목에 감는 행전을 머리에 둘러쓰고, 두루마기는 한 어깨에만 걸친 채 돌아왔다. 문도령 돌아오는 소리에 자청비 역시 바쁜 김에 풀어헤친 머리를 옆에 있던 짚으로 얼른 묶어 마중을 내달았다.



    신화에는 이 때 난 법으로, 사람의 일생 중에 가장 경황이 없고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때는 부모님 상을 당했을 때이니, 초상이 나서 성복하기 전에는 남자 상주는 통두건을 쓰고 두루마기는 한쪽 어깨에만 걸치는 법을 마련하였다고 하고 있다.

    통두건이란 윗부분을 꿰매지 않은 두건으로 문도령이 급한 김에 썼던 행전의 모양이다. 여자 상주는 자청비가 했던 것처럼 머리를 짚으로 묶어 매는법을 마련하였다. 지금도 여자 상주들은 머리에 하얀 무명천으로 머리창을 한다.

     

     

    결혼식의 예법을 말하다



    며느리 되기 심사에서 떨어진 서수왕따님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물 한 모금, 쌀 한 톨 먹지 않더니 시름시름 기어이 죽고 말았다. 그 죽은 몸에서 새가 날아올랐다. 머리로는 두통새, 눈으로는 흘긋새, 코로는 악숨새, 입으로는 헤말림새가 나와서 서수왕따님애기는 원한을 지닌 채 이곳저곳 다니며 흉험을 주고 얻어먹는 새가 되었다.

    그 때의 일로 오늘날도, 이 새가 들어서 다정한 부부간의 살림을 분산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혼인할 때 신부상을 받으면 먼저 음식을 조금씩 떠서 상 밑으로 놓는 법이 생겼다. 서수왕따님애기에 대한 대접인 것이다.



    자청비는 결혼을 하기까지 그 과정에서 일어난 오해와 미움, 원한, 다툼, 이간질을 이해하고 용서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사랑을 하는 법, 지혜롭게 주변을 설득시키면서 같이 살아가는 법, 언제 씨앗을 뿌리고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삶의 방편과 사람 사는 도리를 나누고 전해주는 책이고 스승이며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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