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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회] 즐겁게 만나고, 즐겁게 헤어지니, 다시 즐겁게 만납시다.
    김신명숙 / 2012-05-22 11:27:47
  • 노래가 끝나고 마침내 선물교환의 차례가 왔다. 안내자가 말했다.

    “크레타에서의 시간 동안 우리는 위대한 아름다움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 각자는 답례로 그 아름다움의 상징을 골랐습니다. 이제 가장 젊은 사람부터 차례로 선물을 꺼내도록 합시다”

    가장 젊은 캐시에게 선물들을 담은 백이 건네졌다. 그녀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선물을 꺼냈고 그것을 풀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곤 동봉된 카드를 읽었다. 선물들은 다양했다. 크레타에서 산 물건들이 가장 많았지만 집에서 직접 만들어 가져온 물건도 있었고 특별히 비싸 보이는 것도 있었다. 선물들이 하나씩 개봉될 때마다 기대에 찬 표정을 짓고 있던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축하해 줬고, 카드에 적힌 내용을 들으면서 ‘구웃~’ 하며 공감, 혹은 감동을 표시하기도 했다.

     

                                                 ▲마침내 선물교환의 차례가 왔다.(출처:organizerightnow.wordpress.com)

     

    “우리가 크레타에서 함께 했던 모든 식사들을 생각하세요.”

     

    내 차례가 되어 백에 손을 넣자 무언가 큰 것이 불쑥 손에 잡혔다. 그걸 꺼낼까말까 잠시 망설였다. ‘일단 큰 게 좋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과 ‘오히려 값 나가는 것은 부피가 작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욕심을 부리는 자신이 우스워져 그냥 꺼내는데 꽤 묵직했다. 꺼내고 보니 뭔가가 종이에 둘둘 말려 있는데 부피가 컸다.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집중됐다.

    “와아~ 크네. 그게 뭘까?”

    종이를 벗기니 직물이 나왔다. 면으로 된 매우 커다란 테이블 보였다. 그것을 펼쳐 보이니 사람들이 좋겠다며 부러움의 탄성을 쏟아냈다. 나도 선물이 마음에 들어 웃으며 카드를 들고 읽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아리아드네 자매에게.

    당신이 집에서 이것을 테이블 위에 깔 때, 우리가 크레타에서 함께 했던 모든 식사들을 생각하세요. 좋은 음식, 좋은 대화, 그리고 지금까지 시간 속에서 여성의 손에 의해 창조된 모든 아름다움도 생각하세요.

    축복받기를!

    캐롤리나“

     

    캐롤리나....바로 캐롤 크리스트였다. 그 이름을 읽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말했다.

    “정말 감사해요. 캐롤리나. 내가 정말 운이 좋네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테이블 보가 전통적인 크레타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그 동안 쇼핑 기회들을 통해 그녀가 직물 생활용품들을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걸 선물로 내놓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그걸 내가 집을 줄이야....목화든 양털이든 누에고치든 그것들을 처리해 실을 만들고 아름다운 직물로 짜내는 과정이야말로 여성들의 창조력, 변환의 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크리스트는 강조했었다.

     

                                                                                  ▲크리스트에게 받은 테이블보.
     
     
     ▲크리스트의 선물카드 앞뒷면.

     

    “이번 순례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요”

     

    탄성과 웃음과 축하의 소리들로 시끌벅적했던 선물교환이 끝나자 우리는 또 함께 노래를 불렀다.

     

    당신으로부터 나는 받고, 당신에게 나는 주네.

    우리 함께 나누니 이로써 우리는 살아가네.

     

    다음 리츄얼 안내자는 와니타였다. 원색의 화려한 드레스로 잘 차려입은 그녀는 다른 때와 달리 활기차 보였고 뚱뚱하기보다는 파워풀해 보였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는 의례’로 끝을 내도록 합시다. 여러분 각자 우리가 함께 한 여행과 헤어짐에 대해 가슴 속에 있는 말들을 털어 놔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잠시 침묵한 후 자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이번 순례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요. 처음부터 여러 사람들이 내 건강을 염려해 줬지요. 아시다시피 나는 이렇게 뚱뚱하잖아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렇지 않다’며 여러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뭔가 긍정적인 말들을 던지느라 애들을 썼다. 그녀에게 가장 금기시해야 할 ‘뚱뚱하다’는 말을 스스로 해버리니 다들 좀 당황해 하는 것같았다. 그러자 와니타는 웃으며 ‘어떤 표현을 쓰든 뚱뚱한 것은 사실’이라며 말을 이었다.

    “이미 여행 초반 박물관에 들렀다 크노소스를 방문했을 때부터 내 몸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어요. 다리는 무겁고 머리는 아프고...세상에,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스스로에게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자로스에서 낮에 산길을 좀 걷고 내려와 지쳐서, 춤추기로 돼 있던 식당에 가기를 포기하고 침대에 누워있던 때 나는 ‘일정이 며칠이나 더 남았는지’를 암담한 심정으로 헤아렸어요.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지요.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스스로의 모습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우리는 이 아름다운 몸을 갖고 있는데 내가 이 몸을 잘못 건사해 왔구나 하는 사실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몸을 새롭게 고쳐야(repair) 할 필요를 느꼈어요. 그건 내게 일종의 변환(transformation)의 순간이었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모두 큰 소리로 “축복받기를“ 하고 외쳤다. 그만큼 그녀의 얘기는 진솔했고 감동적이었다. 아마도 그녀 인생의 가장 큰 약점이자 짐이었을 ‘지나치게 비만하고 건강하지 못한 몸’에 대해 그녀는 비로소 사람들 앞에서 말할 용기 혹은 깨우침을 얻게 됐던 것이다.

     

    여신 순례를 통해 ‘우리는 다 아름다운 몸을 가지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어서였을까? 어찌 됐든 미국 사회에서는 부인과 혐오의 대상이었을 자신의 몸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고, 건강한 몸으로 거듭 나고자 하는 새로운 각오와 힘을 얻게 된 와니타에게 진심으로 이번 순례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길 빌었다.

     

                                                             
    ▲여성들의 서클naturallynourishedwoman.com

     

    인생의 단계와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들이...

     

    와니타의 얘기를 이어받은 것은 캐나다에서 온 캐롤이었다. 그녀는 “와니타가 지금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해 얘기했는데 나도 이번에 내 몸에 대해 교훈을 얻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내 몸의 한계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앞으로 내 몸을 더 잘 보살펴야겠다는 것도 느꼈고요. 내게는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이 공동체가 큰 힘이 됐기 때문에 함께 해준 여러분에게 정말 감사를 느낍니다”

    같은 여행을 통해 와니타는 현재 몸의 한계를 극복해 보겠다는 각오를 한 반면 캐롤은 한계를 인정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각자 서 있는 인생의 단계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것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은 순례를 통해 드러난 여신의 품이 그만큼 넉넉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모두 빠짐 없이 이번 순례가 자신에게 남긴 것, 의미한 것, 혹은 가장 인상 깊었던 일 등에 대해 털어놓았다. 첫 만남이 있던 날 ‘이야기나누기’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인생의 다음 여정을 찾고 있다는 의미의 말들을 했었는데 그 때문인지 ‘삶의 다음 단계에 이번 여행이 큰 계기가 될 것같다’는 말들이 여러 번 나왔다. 그런가 하면 레이키 치료사인 마사는 틸리소스를 소재로 쓴 자작시를 낭송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룸메이트인 캐시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그 동안 내가 가진 지식을 나누고 내 경험을 통해 다른 여성들을 돕고자 해왔어요. 그런 일이 내게 축복이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부대끼며 많이 힘들어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특히 내 미래의 삶, 일, 관계의 문제 등에서 지쳐 있었지요. 내가 이 여행에서 얻고자 했던 것은 그냥 조용히 순례의 현장에 함께 하는 것이었어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그냥 나 자신을 편안하게 놔두려 했던 거지요. 여성을 존중했던 크레타라는 장소에서 그 동안 지적이고 강하고 파워풀한 여러분들과 단순히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어요. 여행하는 동안 잠도 전보다 더 잘 잤고 지금 원기가 회복된 느낌이에요. 단순히 영적으로만이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많이 좋아졌어요. 감사드립니다”

     

    내가 캐시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를 제외하고는 다 40대 후반 이상, 70대 초반까지인 참가자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남자친구와의 고민을 털어놓을 때는 영락없는 20대였지만 자기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참가자들과도 마치 친구처럼 얘기를 나눴다. 다른 참가자들도 그녀를 딸처럼이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대했는데 나이에 따른 위계관계가 강한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이 서클은 이제 해제됐으나 끝은 아닙니다.”

     


    크리스트는 “매년 두 번씩 순례를 이끌어오고 있지만 매 번의 순례가 나에게도 역시 중요한 사건”이라면서 “이제 나이가 들고 건강도 예전같지 않아 순례를 잘 이끌지 걱정이 됐었으나 별 탈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돼서 기쁘다. 여러분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특히 다른 때에 비해 참가자들 간에 불평이나 갈등이 거의 없어 정말 고맙다는 것이었다.

    크리스트의 마무리 인사를 끝으로 이야기나누기는 끝났다. 그리고 모두 일어나 해가 지고 있는 서쪽을 향해 서서 노래 <빛과 어둠>을 반복해 불렀다. 양 팔을 들어 미노아 여신들의 포즈들을 차례로 흉내내며.

     

                                                                             ▲여성들의 댄스(출처:shaktinj.com)

     

    다시 자리에 앉자 첫 모임에서처럼 애멀릿 읽기 순서가 이어졌다. 각자의 애멀릿을 집어들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잠시 가져보라는 것이었다. 그 시간이 끝나자 우리는 다시 둥글게 둘러 앉아 손을 잡고 합창을 했다. 이야기나누기 모임이 끝날 때면 늘 그랬듯이.

    “즐겁게 만나고, 즐겁게 헤어지니, 다시 즐겁게 만납시다”

    이어 안내자가 말했다.

    “이 서클은 이제 해제됐으나 끝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집으로 돌아갈 때 여러분 안에 크레타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담아가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마지막 만남(last circle)이 끝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함께 하는 저녁 식사만 남겨 두고.

     

    암퇘지 애멀릿의 의미는?

     

    내가 집은 애멀릿은 암퇘지(sow)였다.『여신의 애멀릿』에는 암퇘지에 대해 ‘듣기’(listening)라는 설명을 달아놓았다. 듣기는 조용한 사랑의 행위인데 다른 사람들의 얘기 뿐 아니라 자기자신의 소리에도 온전히 귀기울이라는 것이었다. 말해지는 얘기 뿐만 아니라 말해지지 않는 것들도 들으라고 했다. 그럴 때 새로운 성장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암퇘지 애멀릿

     

    첫 번 째 만남에서 내가 집었던 애멀릿인 뱀은 ‘공포를 벗어버리고 희망을 새롭게 하기’란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순례기를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 생각해 보니 두 애멀릿이 서로 연결되는 것같기도 하다. 순례를 통해 죽음의 공포를 벗고(최소한 그럴 가능성을 얻고) 여신의 희망을 새롭게 했으니 이제 조용히 듣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성장을 도모하라는 얘기인가?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꽤 마음에 드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족하다.

    해석은 자유고 무엇이든 내게 힘을 주는 것이면 그게 정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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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달 전에 정리해 놓은 이 마지막 모임의 애멀릿 얘기를 이번에 최종적으로 점검하다가 화들짝 놀랐다. 내가 요즘 큰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는 티벳 불교의 대표적 여신 중 하나인 바즈라요기니(Vajrayogini)의 상징이 암퇘지이기 때문이다. ‘온전히 귀기울이기’ ‘말해지지 않는 것 듣기’도 불교의 핵심적인 수행내용으로 볼 수 있다. 몇 달 전까지도 나는 티벳 불교의 여신들에 대해 무지했는데 크레타에서 이미 애멀릿은 나의 갈 길을 드러내 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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