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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도성모2
    이프 / 2012-05-02 03:38:33

  • 그런데 일연의 선도성모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지난회 내용 참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선도성모가 중국 왕실의 공주라는 다소 ‘생뚱맞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정리하자면 성모는 본래 중국 왕실의 딸로 이름이 사소인데 진한에 와서 성자(聖子)를 낳았고, 이 성자가 동쪽나라의 첫 임금이 되었다는 것이다. 첫 임금이란 바로 혁거세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앞에서 선도성모가 혁거세를 낳았다는 시조신화는 신라의 건국신화 만들기에서 배제되었다고 했는데 이건 또 무슨 이야기란 말인가? 둘째 고개를 좀 쉽게 넘었다 했더니 셋째 고개가 딱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한데 이 이야기는 일연이 처음으로 한 것이 아니다. 이미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언급한 일이 있다. 김부식이 송나라 사신으로 가서 우신관(佑神館)이란 곳에 참배를 했는데 그 곳에 있는 여선상(女仙像)을 두고 왕보라는 사람이 중국 제실(帝室)의 딸이 바다 건너 진한에 이르러 아들을 낳아 해동의 시조가 되었고, 그 후 지상신선이 되어 선도산에 있는데 이게 바로 그 신상이라고 소개했다는 것이다. 느닷없이 웬 중국 왕실의 딸인가? 김부식의 이런 언급에는 뭔가 수상쩍은 혐의가 풍긴다.

     

                                                             ▲출처:httpblog.naver.comsapa0wa867457141


     

    중화주의의 개입



    이 기록에 대해 일찍이 15세기 서거정은 ‘필원잡기(筆苑雜記)’에서 ’유화 이야기를 오인한 것‘이라고 오해한 바 있고, 20세기 초 대종교 교주 김교헌은 ’신단실기(新檀實記)‘에서 중국이 아니라 부여에서 왔다는 다분히 민족주의적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최남선도 중국은 ’지나(支那)‘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 건너 서쪽 어딘가를 말한다면서 중국을 부정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는 왜 중국 제실이라는 전승이 끼어들었느냐는 것이다. 있는 기록을 실속도 없이 틀렸다고 애써 부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신라 건국신화에서 혁거세의 신성성을 보장해 주는 존재는 하늘이다. 알에서 태어난 것도 범상치 않은 일이지만 그 알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라는 데 더 신성스러움이 있다. 건국신화에서 최고신 천신은 왕의 권력을 정당화해 주는 강력한 배후다. 그런데 김부식이 소개한 전승에서는 천신의 자리에 중국 제실이 들어가 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을 하늘보다 강력한 힘의 배후로 새롭게 끌어들인 것이다. 신라 건국신화의 재구성이라고 할 만하다. 김부식이 만난 송나라 학사 왕보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중화주의의 표현이다. 그리고 비록 ‘어느 왕인지는 모르겠다’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그런 주장을 받아들여 국내에 전파한 김부식의 처지에서 보면 내심 뿌듯했을 것이다. 중국의 황실과 신라의 왕실이 혈연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에서 자부심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중화주의를 추인하는 모화주의, 나아가 소중화주의가 아닐 수 없다.



    건국신화의 재구성



    일연이 김부식의 기록을 받아들이면서 혁거세와 알영이 바로 사소가 낳은 동국의 첫 임금이라고 추단한 것을 보면 김부식 이후 중국을 신성성의 원천으로 삼아 건국신화를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이 고려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부식과 비슷한 시기에 김관의가 편집해서 의종에게 바친 고려 건국신화를 보면 왕건의 할아버지인 작제건이 당나라 숙종의 아들로 설정되어 있다. 당나라 숙종은 신라에 온 일이 없지만 고려 건국신화는 고려 왕가와 중국 왕실 사이에 혈통관계가 있다는 ‘신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이는 기자(箕子) 조선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중화주의의 발원지로 알려진 한나라 때 만들어진 기자동래설이 고려시대에는 역사적 실재로 받아들여졌으니 말이다. 이처럼 김부식 이후 고려 지배층에 퍼져나갔던 모화주의가 드디어는 선도성모의 본적마저 지워버렸던 것이다.



    한 혈족집단의 시조모였던 서술성모, 그러나 신라 건국신화에서는 배제된 서술성모, 불교가 진흥된 진흥왕 시대에는 불사를 무진장 좋아하는 여산신으로 화장을 고친 선도성모, 끝내는 소중화 의식에 따라 신라 건국신화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중화의 매개자로 성형한 선도성모. 선도성모의 얼굴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우리 신화의 역사가 시나브로 선연해지는 것도 같다.



    **윗 글은 책『우리신화의 수수께끼』(조현설 지음. 한겨례출판(주))에서 발췌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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