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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회] 자청비의 성은 감춰져 있지 않다.
    이프 / 2012-04-30 04:37:41

  • 자청비 원형은 개방적이고 도전적이며 자기기획적인 여성 원형이다. 그녀가 자기애를 가지고, 이 자기애를 구체적으로 추구할 의도로 이루어진 외출에서 남성을 만난다는 것, 사랑의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그녀는 손을 곱게 하고 싶어서 못에 빨래를 하러 간다. 그녀가 원하는 ‘예쁜 손’은 예쁜 외모이기도 하고 능력을 추구하는 손이기도 하다.



    문도령은 글공부를 하러 가는 도중에 목을 축이려 자청비가 있는 샘에 들렀다. 문도령이 자청비에게 물을 달라고 하자 자청비는 물바가지에 나뭇잎을 띄워 건넨다.



    샘이라는 장소와 이야기의 흐름은 다분히 성적인 암시를 품고 있다. 자청비의 외출이 지극히 여성적인 것이었다면 문도령 역시 지극히 남성적인 외출의 와중이었다. 인간, 여자와 남자. 젊은 청춘들, 감탄과 호기심, 현재와 꿈꾸는 미래 속에서 사랑이 시작된다. 



    가면도 필요없고, 쓰개치마도 필요없는

     

      

    사회의 질서는 사랑에 대립되었다. 사실 사회는 애초에 사랑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남성과 여성이 얘기를 건네는 것은 방자한 짓이요, 집안에 존재하는 여성과 성공의 길을 떠나는 남성은 서로 만날 수가 없었다. 쓰개치마로, 가리개로, 부채로 서로 가렸다.



    한반도 지역 여성들의 남성들에 대한 내외의식, 불평등의식은 사유재산과 유교적인 질서가 고착화되어 가면서 더욱 심해졌다. 남녀칠세부동석이나 부부유별의 습속이 엄격한 사회에서 외간 남자와 여자가 얼굴을 맞대고 말을 건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여성들은 얼굴과 몸을 가리고 다녀야 했다.
     

                                          ▲내외용 쓰개인 장옷을 쓰고 있는 여자(출처/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혜원풍속도)


                                                 ▲왕골로 짠 가리개를 쓰고 거리로 나선 여인.(출처. 네이버 블로그 br8412)


     

    인간 감성을 존중하는 자유로운 그녀는 도그마화된 것들에 의해 인식의 지평이 제한되는 것에 반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문도령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물바가지에 물을 건네며 나뭇잎을 물에 띄워 준 그녀에게 ‘무슨 까닭에 물에 티를 넣고 주느냐’고 문도령이 묻자, 현상에 갇힌 그에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도령님아’라고 응수한다.



    그녀의 성은 감추어져 있거나 그늘져 있지 않다. 가리고 숨기기는 커녕, 예쁜 손을 만들기 위하여 그녀는 ‘가지 말라’는 밖으로 나갔다. 여성에게 금지되어 있는 공부를 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하여, 남장을 하고 사랑하는 문도령을 쫓아간다. 그리고 남성만의 영역이었던 글공부에서 남성을 압도한다.



    자신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자청비는 이미 고착화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 부모를 설득시킬 뿐 아니라 거짓말도 한다. 그녀는 문도령이 15세가 안 되었다고 부모에게 거짓말을 함으로써 문도령을 자신의 방에 들여놓았다.

    샘에서 먼저 목욕을 제안하는 것도 자청비이다.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문도령을 맞이하여 만단정화를 푸는 것도 그녀에 의해서다. 술 석 잔 마시며 첫날밤을 보내자고 제안하는 것도 그녀다. 자청비의 집에도 몸종이 있었지만 ‘향단’이 같은 중간자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오해와 편견을 딛고 개방적이고 도전적으로 자기를 기획한다.



    자청비, 지적이고 폭력적인 여성 원형



    자청비 원형은 지적이고 폭력적인 여성원형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부딪혀오는 잘못된 상황에 대하여 지혜롭고 당당하게 대처한다.



    신화에 나타나는 문도령은 사회적 가치와 도덕, 관습에 충실한 인물이다. 한편 또 다른 상대로서의 남성인 정수남은 어디까지나 수면욕, 식욕, 성욕 등에 충실한 본능적 인물이다.



    문도령과의 경험이 사회적 관계에 속하는 것이었다면, 정수남과는 본능적인 관계에 속하는 것이었다. 자기주장과 표현이 뚜렷한 자청비는 두 남성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하여 자신에게 주어지는 ‘여성’현황을 더 깊이 인식하며, 사회적 남성의 반여성성을, 본능적 남성의 반여성성을 거부한다.



    문도령을 찾을 수 있을까 하여 정수남을 따라나선 산 속, 자청비와 정수남과의 밤. 이 부분은 다분히 두 사람간의 성행위를 암시하는 부분이다.



    시시때때 자청비를 훔쳐보며 응큼을 떨던 정수남은 밤이 되자 노골적으로 자청비에게 덤벼들었다. 몸은 몸대로 욕을 보고 목숨도 죽게 생겼다 싶은 자청비는 ‘그래, 오늘 밤 꽉 껴안고, 긴긴 밤 짧디 짧게 보내 보자’며 움막을 짓도록 했다. 얼씨구나, 정수남이 땀을 뻘뻘 흘리며 움막을 다 짓자 이번에는 ‘하늘이 보는데 어찌 벌거벗고 정을 통하겠느냐. 바깥에 나가서 숭숭 뚫린 구멍을 잘 막아라’고 달랬다.



    정수남이 밖에서 다섯 구멍을 막으면 자청비는 안에서 두 구멍을 빼며, 그렇게 밤새도록 시간을 벌었다. ‘이것도 막아라, 저것도 막아라’ 하다 보니 먼동이 트고 날이 밝았다. 자청비는 지치고 악에 뻗쳐 살기등등한 정수남이를 부드럽게 달래면서 자기 허벅지에 누워 쉬게 하고는, 스르륵 잠이 든 정수남을 죽여버린다. 



    문도령이라는 사회 남성에 대하여 본질의 들춰냄을 통해 인식을 확장하고 개혁적인 변화를 유도하고 있는 반면, 본능 남성인 정수남에게는 눈에는 눈, 살벌한 복수의 방법으로 폭력의 싹을 뽑아내고 있는 것이다. 



                                      ▲성적 모욕을 가하는 남자를 살해하고 도주하는 두 여자 델마와 루이스. 자유와 평등을
                         꿈꾸는 여성들과 현실과의 간극을 그린 영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사진출처/네이버 영화포토)



                                     ▲‘여자가 밤늦게 그런 으슥한 곳에 왜 간 거야?’, ‘술 먹고 관능적으로 춤추면서 꼬리쳤잖아?’
                            그렇게 강간당한 사라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조나단 카프란 감독의 <피고인>(사진출처/네이버 영화포토) 


     

    다섯 구멍을 막으면 두 구멍을 빼고 - 그녀의 성



    만지고, 바라보고, 껴안는 애정으로 가득 찬 은밀한 경험들로 더욱 만족한 성생활을 할 수 있는 여성들과는 달리 남성들은 성기 중심의 삽입과 사정, 힘의 정복이라는 일방적인 섹슈얼리티를 규정하고, 그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은 ‘맷돌’ 이나 ‘구멍’이라는 비유와 이미지로 여러 부분에서 희화화되곤 한다. 자청비 신화의 ‘다섯 구멍을 막으면 두 구멍을 빼고’의 표현은, 보통 어느 한쪽만 움직이는 ‘맷돌’, ‘드나들도록 뚫어진 물리적 구멍’이라 경원시되는 여성성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성적 표현보다 훨씬 풍부하고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 장면이다.



    ‘밖에서 다섯 구멍을 막으면 안에서 두 구멍을 빼내었다’는 것은 사랑이라는 내면적 동기와 합의 없이 이루어지는 육체적 행위들은 언제나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여자 역시도 육체적인 본능만을 가지고, 별 다섯 개는 아니지만 별 셋 정도의 섹스는 가능하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녀의 성기는 물리적으로 뚫린 단순한 구멍을 넘어 그녀의 인격과 쾌락의 장소다.



    사회적으로도 성적으로도 남성은 일방통행의 소통, 즉 폭력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자청비는 때로는 고정된 생각과 상황을 깨는 인식의 확장을 보여줌으로써, 때로는 가차 없이 복수하고 제거함으로써 그 폭력에 대응한다.

    그녀는 문도령의 세계에 들어가 그들이 만들어 놓은 남성지배의 사회질서가 얼마나 취약하고 허무맹랑한가를 밝히며, 남성이라는 물리적 힘만으로 자청비를 농락한 정수남 앞에서는 그녀 역시 정수남을 폭력적으로 응징하여 죽이며 또 성적인 매력으로 농락하고 이용한다.



    사랑과 섹스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다



    서천꽃밭에서 자청비는 꽃감관의 신임을 받기 위해서, 꽃밭을 망쳐놓는 부엉이를 잡아야 했다. 자청비는 아무도 몰래 노둣돌 위에 옷을 홀랑 벗고 누워 정수남이의 혼령을 불렀다.

    “정수남아, 혼령이 있거든 부엉이 몸으로 환생하여 원(怨)진 내 가슴에 앉아라.”

    시시때때 자청비를 탐해왔던 정수남은 ‘어이쿠, 이게 웬 횡재냐’, 그녀를 범하려고 밤새도록 움막을 짓다가 그녀에게 죽임을 당한 것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부엉이로 변해서라도 자청비의 젖가슴 위에 살포시 앉는다. 그녀는 간단하게 부엉이를 잡고는 부엉이에게 활을 꽂아 꽃밭에 툭 던져둔다. 이렇게 누운 채로, 식은 죽 먹기로 부엉이를 잡은 자청비는 꽃감관의 마음을 얻었고 신비한 꽃들을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자청비는 사랑과 섹스에 대한 남성들의 일방성에 대하여 그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청비처럼 자신의 의사와 상태를 충실히 표현하고 반영하고 있는 섹스는 결과적으로는 남성의 대여성 섹스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게 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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