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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회] 결혼을 피해 달아난 관음
    조승미 / 2012-04-30 01:00:29

  • 바야흐로 봄이다. 밀려오는 청첩장을 보니 결혼의 계절도 함께 왔는가 보다. 청첩장을 청구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듯이, 결혼식은 때가 되면 꼬박꼬박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같기도 하다. 그런데 청첩장을 보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결혼생활을 할 것 같지만, 정작 둘러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내 주변에도 다양한 케이스가 있다. 한 남자하고 오랜 시간을 함께 동거하고 있지만 결혼은 생각도 않는 후배가 있다. 그리고 법적으로 결혼은 유지하고 있지만, 부부가 각기 먼 나라에서 수십 년간 서로 연락도 하지 않는 채 따로 사는 선배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한 친구는 연애도 동거도 아니하고 본인 말에 의하면 ‘수녀’처럼 독신생활을 하고 산다. 다른 친구는 남편과 불화로 합의이혼했지만, 아이들 키우는 문제 때문에 여전히 한 집에서 살기도 한다.

    이처럼 사연도 여러 가지고 살아가는 방식도 각각 다르다. 어떻게 보면 처지와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결혼생활도 다양하게 변형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얼마 전 뉴스에서 우리나라 이혼율이 금융위기 11년 만에 최저를 보였다고 했다. 우리의 이혼율이 세계 최고라고 호들갑을 떨며 우려하던 것에서, 마치 이제야 드디어(?) 결혼의 안정을 되찾고 국력을 회복한 양, 자찬의 논조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 내막을 자세히 보면 ‘최저의 기쁨’은 수구(守舊)의 기대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신혼기 이혼율은 감소했다지만, 결혼생활 20년 이상자의 소위 황혼 이혼은 지속적으로 급증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이혼이 보류되고 있었을 뿐, 우리의 결혼이 얼마나 병들어 허약한 상태에 있는지는 여전히 반증되고 있지 않다. 

    더군다나 황혼기의 이혼이나 이들의 결혼생활은 자녀세대의 결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젊은 세대는 부모가 이혼을 보류하듯이 자신의 결혼을 보류하였고, 부모의 이혼 단행을 목격하면서 그들의 결혼은 기피되고 있었던 것이다. 



    비혼세대의 등장

     

     

    바야흐로 결혼기피의 시대인가? 비욘세가 아닌 비혼세대가 등장했다. 적극적으로 결혼 거부의 비혼을 선언한 이 세대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갈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또한 소극적으로 결혼을 보류하면서 결혼생활을 피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다. 결혼 외의 삶의 방식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모델이 다양해지고, 결혼 절대주의 명분도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결혼기피가 현대사회에서 처음 발생한 새로운 현상인 것은 아니다. 그 옛날에도 결혼을 원하지 않았던 여인들은 늘 있었다. 다만, 결혼하지 않아도 되는 명분과 모델은 따로 필요했다. 물론, 이 상황도 조선시대에만 해당하는 것인지 모른다. 고려시대만 해도 여성의 이혼과 재혼 사례가 적지 않게 발견되고, 부모를 모시기 위해 독신을 선택한 딸의 이야기가 효담으로 많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시절 여성들은 결혼을 피하기 위한 명분과 모델을 어디에서 구하였을까?

    이 문제와 관련해서 동아시아의 대표적 불교여신 관세음보살이 관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관음을 빌려 여성의 결혼기피를 해석하곤 하였던 것이다.

    관음과 결혼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봄 꽃 만발한 충청도 예산 수덕사로 가본다. 

     

                                                                                   ▲수덕사 관음바위
     

    수덕사 관음바위 전설



    유서 깊은 큰 절 수덕사에는 국보 대웅전 건물 뒤켠으로 큰 바위가 하나있다. 바위 옆에는 관음상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사실 주인공은 관음상도 아니고 바위도 아닌, 바위의 틈에 피어난 버선 꽃이다.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는 걸까?

    이 관음바위의 전설은 관음상 옆에 비석으로 세워져 소개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옛날 옛적에, (비문에 의하면 신라시대라고 하지만, 역사적 근거는 없고 오히려 조선후기일 가능성이 높다) 오래된 고찰 수덕사는 다 쓰러져 가는 절이 되어 중창불사를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천하의 미인 수덕각시가 갑자기 나타나, 이 절에 살면서 불사를 돕겠다고 한다. 그녀의 미모에 소문이 퍼져 연일 그녀를 보러오는 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리고 대부호이자 재상의 아들인 정혜(定慧) 도령이 수덕각시에게 청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수덕각시는 이 불사가 다 잘 끝나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정혜도령은 이 말을 듣고 10년 걸릴 일을 3년 만에 끝나게 한다. 미인과 빨리 결혼하고 싶은 마음에 엄청난 재산을 기부했던 모양이다. 공사는 빛의 속도로 마무리되었다.

    드디어 낙성식 날. 행사에 주빈으로 참석한 정혜도령은 수덕각시에게 빨리 같이 떠날 것을 독촉했다. 수덕각시 말하길, “구정물 묻은 옷을 갈아 입을 말미를 주소서.”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녀가 들어간 방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도령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자, 여인은 급히 다른 방으로 달아나려 하였다. 그 모습에 당황한 도령, 여인을 잡으려 한다. 그러나 그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며 여인은 그 속으로 사라졌다. 버선 한 짝만 남긴 채.

     

                                                                            ▲수덕각시 전설의 버선꽃



    남겨진 버선은 그녀가 본래 관세음보살이었음을 알려주는 표식이 된다. 그녀가 사라진 후 그 바위 틈에는 노란 색 버선모양의 꽃이 피어났기 때문이다. 버선 한짝만 신고 들어간 그녀가 그 속에서 대신 버선꽃을 피워 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신령스러운 일은 그녀가 관세음보살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정혜도령과의 결혼을 피하고자 한 수덕각시. 얼마나 황급했길래, 버선 한짝이 벗겨진 채 달아났을까. 그녀는 홀연히 사라졌고 사람들은 그것을 관음의 일로 해석하였다.

    그런데 수덕각시와 버선꽃의 전설은 중국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발견되고 있다. 이번에는 중국대륙으로 함께 날아가 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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