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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8회] 우리는 지금 피를 흘리는 신이 필요해
    김신명숙 / 2012-04-23 02:42:48

  • 크리스트는 우리 앞에 있는 바위벽의 위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높이가 8미터쯤 되는 그곳에는 움푹 파인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그곳이 아기 제우스를 어머니인 레아가 감춰놓은 곳이라고 했다. 제우스는 울음소리가 아주 커서 레아는 쿠레테스란 정령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창으로 방패를 두드리게 해 그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했다고 한다.
     
     

                                                               ▲제우스를 감춰놓았던 곳이라는 움푹 파인 구멍. 
     

    죽음을 부르는 아버지의 권력욕으로부터 아기 제우스의 생명을 보호했다는 그 구멍, 동굴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로 여겨져 온 자궁같은 그 구멍 앞에서 크리스트는 흑인 여성 문필가 엔토자케 샹게(Ntozake Shange)의 시 <우리는 지금 피를 흘리는 신이 필요해>를 읊었다.



    우리는 지금 피를 흘리는 신이 필요해

    그의 상처들이

    하찮은 남자들의 복수가 아닌

    .......


    우리는 피를 흘리는 신이 필요해.

    그녀의 달의 음문(陰門)을 벌려

    그녀의 숨처럼

    진하고 따뜻하게

    주홍의 색조로

    우리를 흠뻑 적시는.

    우리를 여기에 내 놓으려

    몸을 찢는 우리 어미들은

    깨지며 열리네.

    피 흘리는 어미들처럼


    지구는 우리의 무지를 애도하며

    요동을 치고

    달은 그녀를 안으려고/안으려고

    바닷물을 끌어당기네

    솟구치는 언덕들을 껴안으려고


    나는 상처 입지 않았네

    나는 생명을 향해 피를 흘리네


    우리는 지금 피를 흘리는 신이 필요해

    그의 상처가 어떤 것의 끝장도 아닌.

     

                                                                           ▲거대한 홀같은 동굴 안쪽



    예수를 ‘흑인 여성’으로 그린 그림



    감동적인 시였다. 기존의 가부장제 종교들이 생리든 출산이든 ‘피를 흘리는’ 여성들을 부정하다고 폄하하며 차별해 온 역사를 떠올리면, ‘피를 흘리는 신’이란 얼마나 전복적이고 새로운 신관인가? 예수를 ‘흑인 여성’으로 그린 그림 <민중의 예수>(자넷 매킨지)처럼.

    우리는 <산어머니><빛과 어둠><우리 모두는 여신에게서 왔네> 등등 그 동안 익숙해진 노래들을 즉흥적으로 부르면서 동굴 안에서 잠시 더 시간을 보냈다. 사실상 마지막 순례지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이다 동굴의 편안한 쉼터같은 느낌 때문이었을까, 동굴을 떠나는 발걸음은 유난히 아쉬웠다.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는 바닥과 계단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는 새의 깃털 몇 개를 기념품으로 주웠다. 깃털과 새똥이 여기저기 있는 걸 보면 새들이 많이 서식하는 모양이었다. 미노아인들에게 의례 중에 나타나는 새는 여신의 현현이었다.

     
     

                                                         ▲미국의 유명한 가톨릭 잡지인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

                               (National Catholic Reporter) 밀레니엄 특집호 표지에 실린 <민중의 예수>pages.interlog.com

     

     

    “정말 오랜만에 처음으로 벽이 없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날 저녁 모임에서 캐시는 틸리소스의 돌기둥에 자신이 느꼈던 강력한 끌림에 대해 털어놓았다.

    “뭐라고 정확히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겠는데 그 돌기둥에 어떤 열정적인 끌림, 에너지를 느꼈어요. 이번 순례 중 가장 강력한 경험이었는데 뭐랄까, 슬픔이랄까 외로움이랄까, 과거에 숭배됐던 그 기둥이 그렇게 덩그마니 버려진 것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격한 감정이 쏟아져 나온 것같아요”

    후일 이 순례를 회상할 때 그녀는 아마도 틸리소스를 먼저 떠올리게 되리라. 내가 모클로스를 떠올리게 되듯이. 흥미로운 건 사람마다 ‘자신의 성소’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레이키(Reiki)라는 기치료를 하면서 오랫동안 여신 영성을 추구해온 미국여성 마사는 말리아 성소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했고, 은퇴한 공무원인 캐나다 여성 로자는 자라여신이 나온 미르토스 유적지가 하일라이트였다고 했다. 사람들이 각자 사는 곳에서 가져 온 돌을 놓으며 리츄얼을 한 부분이 아주 좋았다는 것이었다.

    미르토스 유적지에서 그곳이 마음에 든다며 모처럼 환하게 웃어보였던 캐나다에서 온 카렌도 입을 열었다.

    “나도 미르토스가 하일라이트였어요. 내가 그곳 높은 데까지 올라갈 수 있어서 우선 행복했고 리츄얼도 파워풀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터놓고 얘기했던 것이 정말 좋습니다. 여기 크레타의 자연이 우리들에게 매일의 생존을 위해 지금까지 굳게 쌓아온 벽들을 없앨 수 있게 해 준 것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터 놓고 개인적인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겠지요. 지금까지 우리들이 끊임없이 서로 얘기를 해왔다는 것, 비록 그것들이 어떤 차원의 것들이었든, 그 사실 자체가 나는 정말 소중하게 느껴져요. 미르토스에 서 있는 동안 나는 정말 오랜만에 처음으로 벽이 없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우리는 각자 자기 인생의 여정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이 순례를 계기로 이렇게 함께 모여 2주라는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지요. 모두 다 자기만의 목표를 가지고 이 중요한 여행에 참가했고 또 나름대로 필요한 것들을 얻었겠지요. 난 정말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낸 모든 것들에 감사해요.....“

    얘기가 길어지고 목소리에 감정이 실리면서 그녀의 어조는 마치 연설처럼 변해갔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장애인 아들이 있다는, 항상 웃는 얼굴의 최고령 참가자 리즈가 외쳤다.

    “축복받기를!(Blessed be!)"

     

     

                                                                         ▲여성들의 서클 댄스 강강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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