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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회] 자청비에게서 페미니즘을 읽는다
    이프 / 2012-04-16 01:22:39

  • 자청비는 사실 페미니즘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여성들, 그 아름다운 마음이 한 남성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 사랑하는 남성 앞에서 차별받고 모욕당하며 의미있는 타자로 인정받지 못한 여성들은 남장을 하고 그들만의 영역에 속해있던 가치를 얻기 위해, 그들보다 서너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육아를 책임지면서 동시에 커리어의 성공도 이루어야 하는 슈퍼우먼이 되어야 했다. 남장을 한 잔다르크가 알고 보니 여자였기 때문에 숭앙되기도 했듯, 자청비의 페미니즘도 남장을 하고, 남성적인 영역의 남성적인 가치들 근처에서 그것의 통제권을 놓고 싸우면서 서너 배로 힘이 들었음은 물론이다.

     

     

                                                              ▲뤽베송 감독, <잔다르크>.(사진출처, 네이버영화 포토)



    여성이 성공하는 것은 남성적인 것들 안으로 들어가 그것을 획득할 수 있었을 때 가능했다. 남장을 한 자청비가 느꼈듯 인간의 권리는 남성의 권리였다.



    안에서건 밖에서건 그녀들의 페미니즘은 이미 자신 안에 체화된 여성, 여성적 경험을 스스로 부정하는 자기소외와 왜곡의 과정도 겪어야 했다. 숏커트에 깃을 올린 하얀 티셔츠를 면바지 속으로 담아 입고, 서류파일을 들고 휘리릭 뛰어다니면서 그녀들의 상냥과 조화로움을 접었다. 예쁜 다리를 보여주는 것은 불공정하고 평등에 위배되는 일이라 스스로 강박했다. 정치적인 의도에서 담배를 대놓고 피우거나 머리띠를 두르면 거센 편견과 거부를 당면해야 했다. ‘평등은 너네 집에서나 외치라’는 거였다.



    성공은 남성의 영역 내에 있었다



    집밖으로 나가보니 성공은 남성의 영역 내에 있었다. 남자들은 밤늦도록 사무실에 앉아 일하고 상사와 술 마시면서 성공하지만, 그 상사에게 미소 한 번 지은 것도 천대시되곤 했다. 능력이나 지적인 부분에서 당당한 그녀들도 남성중심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시때때로 가면을 차용하고 당당한 지성과 헤픈 접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이중의식 속에 살아야 했다.

    ‘미녀’의 인권도 또 다른 방식으로 무시되었다. ‘아니 이렇게 예쁜데 주차요원이라니?’ 라는 우리의 생각은, 그 주차요원과 싸우게 되자 ‘얼굴값 하네~’로 끝이 나곤 했다.



                       ▲영화 <여섯 개의 시선> 중 박광수 감독의 <얼굴값>. 지진희는 예쁜 주차요원을 보고 ‘아니 이렇게 예쁜데
                           주차요원이라니?’ 생각하다가 그녀와 다투게 되자,  ‘얼굴값 하네’ 라 욕한다.(사진출처, 네이버 포토)



    어쨌든 눈물겨운 노력과 결과들이 모이면서 여성들의 지위향상에 일정 정도 기여를 했지만, 오만과 편견은 여전했고 여성들은 슈퍼우먼 콤플렉스에 진저리가 났다. 바지를 입으면 여자가 바지를 입는다고, 시스루 룩을 입으면 성폭행을 조장한다고, 실수를 하면 집에 가 애나 보라고, 수도 없이 들었다.


     

                                                    ▲유윤숙 감독 단편영화 <슈퍼우먼>. (사진출처, 네이버 포토)

     

                                           ▲더글러스 맥그라스 감독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사진출처 네이버 포토)

     

    자청비가 그랬다.

    여자라는 한계에 부딪혀 남장을 하고, 남성의 영역 내에만 있던 글공부를 하면서 남성 이상의 능력을 보여줘야 했다. 예쁘다는 이유로 성폭행의 위기에 빠지고, 며느리가 되기 위해 시험을 쳐야 했다. 그녀가 사랑을 위해 그렇게 뛰어다니는 동안 문도령은 멀뚱히 서 있다가 떡고물만 맛있게 받아먹었다. 다른 여자에게 가라고 하니 이게 웬 떡이냐, 좋다고 뛰어가고, 사실은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데도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을 가졌다.



    여성의 한계? 그것은 남성의 한계이기도 하다.

    남자인 문도령과 여자인 자청비의 다른 점은 문도령이 플러스 알파를 가지고 덜 어렵게 살아가는 동안 자청비는 고단한 현실의 삶, 인간정신의 한계들과 쉼 없이 부딪히고 극복해 왔다는 점이다.

    더욱 자청비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 한계와 극복의 과정을 항상 자신을 발전시키고 인간관계의 풍부함을 열어주는 계기로 삼았다는 것이다. 항상 새로운 말을 건네면서, 설득시키면서, 약자와 같이 가면서, 용서해주면서… 눈물겹게 그리고 행복하게 번져나간 페미니즘처럼.  


     

    개인의, 사회와의 조화



    자청비는 개인의, 사회와의 조화를 보여주는 원형이다.

    자청비가 처음 남장을 한 것은 그녀 속에 불현듯 찾아온, 사랑이라는 단순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다.

    남녀 간의 사랑은 사적이고 배타적인 것이어서, 사실 사회 속에서 공정하고 분별 있게 사는 것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의 과정 역시도 여성성의 체화 →양성성의 수용 →인간성의 실현이라는 창조적인 모습으로 완성해 낸다. 그 모순 많은 개인의 사랑도 그녀는 사회의 ‘인간’을 이루어내며 완성시켜 가는 것이다.

     

     

                                          ▲샐리 포터 감독 <올란도>. 영화에서 올란도는 남성적인 영역의 감각과 사고,
                      여성적인 영역이라 불리는 감성과 직관을 함께 갖춘 양성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출처 네이버 포토)

     

    남성들에 의해 여성들이 억압당하고 있다면, 사실 남성 역시도 억압된 상태일 것이다. 가부장제는 남성에게도 억압이 되고 상처가 된다는 점에서 여성과 남성은, 또한 세상 속에 존재하는 여러 구분들은, 이제 다르게 생긴 이유로 한쪽은 억압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 풍요로운 삶의 주체로, ‘따로 또 같이’ 존재해야 한다.

    여성 담론, 평등의 담론들이 내거는 많은 부분을, 우리는 이 옛날이야기인 자청비에게서 뽑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특성들을 잃지 않으면서,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인간이라는 하나의 관점에서, 의미심장한 타자로서 남성들도 인식하고, 의미심장한 타자로서 또 다른 여성들도 인식하면서, 인간으로서의 평등과 권리를 함께 나누는 지속가능한 여성주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여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과 성과를, 자청비가 그랬듯, 더 어리고 더 가난한 약자들, 여러 지역, 여러 분야, 여러 계층과 통섭의 미를 이루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도령의 하얀 고운 손을 바늘로 콱 찌른 뜻은?



    앞서 살폈지만 신화에 나오는 자청비의 여러 선택들은 자청비라는 여성 개인의 사적인 선택이었지만, 여성집단과 사회 전체의 발전과 대치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에 기여한다. 서천꽃밭의 막내딸과 같은 더 약한 여성, 쟁기로 밭을 가는 가난한 노인들과 같이 가는 선택이었고, 남성들과 같이 가는 선택이었다.



    한편 자청비는 죽을 고생을 하면서 사랑하는 문도령을 만나게 된다. 문도령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 설레고 기쁜 일이었지만, 자기를 찾을 생각도 안하고 멀뚱히 살아갔던 문도령이 한편으로는 너무 얄미워서 문도령의 가늘고 하얀 고운 손을 바늘로 콱 찔러버린다. 

    만날 수 있기를 절절히 원하면서, 자기는 손이 무너져라 베틀을 짜면서 온갖 고생을 다했는데, 그동안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었던 문도령의 가늘고 하얀 고운 손이 싫었고 얄미웠던 것이다. 



    온갖 고생을 한 페미니즘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를 했다고 인정한다면, 이 세상의 반이나 되는 남성들이, 문도령처럼 모르는 척 떡고물만 받아먹으면서 좋아진 세상을 맞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자청비의 일침이리라. 그녀는, 페미니즘의 남은 숙제는 문도령들의 남성주의에 대한 숙고, 수많은 토론과 싸움, 실천과 같이 갈 수 있으리라 희망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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