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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회] 여성적인, 동시에 여성해방적인...
    이프 / 2012-04-03 02:32:42
  • -자청비 여신 원형

     

    자청비는 여성적인, 너무나 여성적인 여성의 원형이다. 우선 그녀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담론 그대로, 시주가 모자라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나게 된 완전하지 못한 존재, 결핍된 존재다. 의미심장하고 강한 것들에 비해 늘 하찮고 방해나 되는 것으로 지적받곤 하는 ‘사랑’에, 빠지고 몰두하고 목숨도 걸 것 같은 젊은 처자다. 많은 여성들이 그렇듯 사랑만큼 그녀에게 큰 동기가 되는 것은 없다.

     

    자청비의 부모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태어난 아이가 딸인 것도 별로 섭섭해 하지 않을 만큼의 개방적 사고를 지녔지만, 자청비가 밖으로 나돌다가 일을 해야 하는 힘 좋은 하인 정수남을 죽여 버려 그들의 사회 경제적 지위에 타격을 가하자 그녀를 머슴처럼 부린다. 여자인 그녀는 집에 다소곳이 앉아서 아무런 탈 없이 모두를 평안히 지내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 그녀에 의해 탈이 나면 안 된다.

     

    자청비가 15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그녀에게 베틀을 만들어 준다(신화에서 15세는 성인으로 가는 시기다.) 이 시기에 자청비는 해당 기득권 사회에서 여성으로서의 전형적인 일들, 실을 곱게 잣고 조신한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을 배워 간다. 빨래를 하여 손이 고와졌다는 몸종의 말을 듣고 손을 곱게 하기 위해 빨래를 하러 가기도 한다.

     

    그녀는 이렇게 사회적, 생물학적 여성의 영역으로 인식되어지는 것들,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찬사와 규정들을 경험하고 배운다. 여성에 대한 사회의 규정과 개인이 가지는 본능, 둘 모두를 그녀는 부정하지 않는다. 완전치 못한 존재로서의 출생, 성장과정에서의 여성적 교육, 외모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 무엇보다도 사랑을 중요시하는 욕구 등은 그녀가 너무나 여성적인 여성 원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청비(류준화그림donga.com)

     

    여성해방의 선구자

     

    자청비는 여성해방 선구자로서의 원형이다. 이 모습 역시 머리띠를 두른 과격한 모습이기보다는 다분히 여성적인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불평등한 성차별을 느끼게 된 계기는 사랑 때문이었다.

     

    그녀는 남장을 한다. 그녀의 남장은 이집트의 여왕이 콧수염을 길러 자신의 여성을 부정하거나 남성의 우월함을 동경, 지향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남장을 한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사랑하는 문도령을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자청비는 곧 그녀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남성과의 만남의 기회도, 그 남성을 사랑하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남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도 금지하고 있는 세상의 질서에 부딪힌다.

     

    사랑의 극치는 다른 사람의 인격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깊게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녀는 문도령을 만나기 위해 부모를 설득하고 남장을 하여 문도령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렇게 겨우 들어간 문도령의 세계는 여성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글공부의 세계였다. 겹겹이 둘러쳐진 벽이었다.

     

    가부장적인 문화는 사랑마저도 이루어낼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

    안과 밖, 사랑채와 안채, 과거를 보러 가는 시험의 길과 베틀을 짜는 수도의 길은 남성과 여성을 만날 수 없게 했다. 사회는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고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sex roles)을 분리시켰다. 남성은 세계로 열려있었고, 여성은 집 안으로 가두었다.

     

    그런 구분은 배제와 차별로 이어졌다. 남성은 사회관계와 현상의 주체였다. 여성들은 거기에서 소외되었다. 그녀들은 고려되지 않았으며 남성 앞에서 그들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의미심장한 타자가 아니라, 비인간이었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엄격한 논리만이 부조리하고 불공정한 세계를 인식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동기유발의 장소는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사랑에 빠진 자청비는 처음에는, 다만 문도령을 만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이 사물의 질서에 저항한다. 그리고 자청비는 바로 거기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바로 그 남성을 통해 ‘자기, 여성’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맞으며 남성들만이 주체이며 절대자가 되는 불평등한 사회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청비가 남성중심의 불평등한 세계를 적나라하게 인식하게 된 동기는 논리라기보다는 사랑이라는 단순한 감정에서 시작되었으나, 그래서 더더욱, 온 몸으로 불평등한 세계를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굳이 사회내의 불평등을 지적하지 않더라도 문도령 한 개인 안에서 그것은 똑같은 강도와 내용으로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자청비가 여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든 문도령은 시합을 제안한다. 그 시합은 남성적 힘겨룸의 상징인 오줌갈기기, 활쏘기, 말타기 등이다. 경쟁은 남성의 영역 내에서만 이루어졌고 가치판단의 유일한 기준은 남성성의 잣대였다.

     

    여성이라는 옷이 몸으로 하여금 움직임을 제한하고 끊임없이 질서를 따르게 하는 효과를 가지듯 남성이라는 옷이 우월하게 규정하고 구획하는 것들을 남장을 한 자청비는 적나라하게 체험하게 된다.

     

    어쨌거나 자청비는 그런 상황들 속에서 아름다운 외모나 베 짜는 능력에 못지않게 남성적인 영역들―남성적 정력겨룸의 상징인 오줌갈기기, 활쏘기, 말타기―에 대해 문도령, 남성보다도 더 높은 성취를 이루어 낸다. 그녀는 융의 ‘아니무스’(Animus)를 통해 인간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며 이로써 가부장적인 차별에 첫 번째로 기여하는 성과 성역할 구분의 위선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자청비와 문도령(araco.kr.ec21csom)

     

    지속적이고 다정한 그녀의 여성주의

     

    그러나 그녀는 이런 성차별의 모순과 비인간성을 인식하고 또 극복하면서 성과 사랑을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도, 여성집단의 면에서도 그리고 사회 전체의 구도에서도 성공적으로 실현시켜 나간다.

     

    자청비의 여성주의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역시 그녀답게 여성적인 페미니즘을 선택한다.

    하늘의 난을 평정한 상으로 옥황상제가 ‘땅 한 쪽, 물 한 적’을 내어주지만 그녀는 사양하고 ‘오곡의 씨앗’을 내려주라 한다. 결국 그녀는 땅과 물이 의미하는 남성적인 지배나 관리보다는 ‘오곡의 씨앗’이라는 민중적이고 여성적인 풍요와 생산을 택하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자청비 원형은 하나의 밀알처럼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한, 사소한 것들에서 원대한 가치들을 일구어내는 다정한 방법, 여성성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땅 한 쪽, 물 한 적’은 지배와 관리의 질서를 필요로 한다. 좀 더 많이 그리고 공고히 차지하기 위한 파괴와 싸움,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분석과 탐색이 필수다. 반면 오곡의 씨앗은 지배와 관리라는, 강하고 권위적인 칼로 단번에 베어버리는 접근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인간관계처럼 늘 수고하는, 수고해도 뒤통수를 맞는, 그럼에도 끊임없이 살피고 정성을 다하는 접근을 필요로 한다. 언제 어떻게 변심할지 모르는 햇빛과 비를 살피면서, 땀 흘리는 실제의 삶 속에서, 실패와 수고를 거듭하면서 열매를 꿈꾸어야 하는 것이다.

     

    자칫 이 선택은 여성집단적인 요구를 거스르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인간관계들에 있어 불평등한 관계와 문화를 오래도록 겪어왔고, 그런 사회에서 여성집단의 질곡을 확 풀 수 있는 ‘땅과 물의 지배’라는 정치적인 선택을 먼저 해야 할 요구와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청비가 땅과 물을 거절하고 오곡의 씨앗을 택한 것에 대해, 여성은 역시 분석에 서툴고 사회의 결합관계들을 잘 인식하지 못하며 그 질서를 다루는 데도 역량이 없는, 그래서 소극적일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임을 재확인하는 지점으로 삼는 것은 지나치게 도식적이다.

     

    신화에 보이듯 사랑을 얻어가는 과정, 부모님을 설득하고 그들에게 밉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과정, 며느리 되기 심사 과정, 자신을 겁탈한 정수남을 가혹하게 벌하고 이용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용서하고 품어주는 과정 등에서 나타나는 자청비의 모습은 사회관계와 사회질서의 본질을 다루는데 특히 뛰어난 역량을 보였으며 그 와중에도 개성과 지성을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자청비의 선택은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여성들을 피지배자로 영원히 종속하게 하고 약자임을 인정하는 체념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상대 남성들을 배제시키거나 대립시키지 않고 남성성이 만들어낸 묘미와 성과들을 선취하면서 역동적인 동행을 이끌어내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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