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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6회] “아리아드네 자매가 된 걸 환영합니다.”
    김신명숙 / 2012-03-26 02:23:43

  • 10월 15일 아침.

    공식일정상으로는 17일이 순례의 마지막 날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이 날이 순례지를 찾는 마지막 날이었다. 3일 오후에 도착했으니 어느새 12일이 훌쩍 지나가 버린 셈이었다. 이제 남은 순례지는 두 군데. 미노아 시대 빌라(큰 저택)들이 발굴된 유적지와, 딕티 동굴과 더불어 제우스의 탄생지로, 또 양육지로 알려져 있는 이다 동굴이었다.

    올림픽 호텔을 떠난 버스는 자로스를 갈 때 이미 한번 올랐던 이다(‘프실로리티스’라고도 함)산을 향해 달렸다. 날씨는 늘 그랬듯이 “오~아름다운 크레타여”였다.



    커다란 청동솥들 발굴



    이다 산 기슭에 있는 큰 마을 틸리소스(Tylissos)에 있는 유적지의 보존상태는 꽤 양호했다. 크노소스나 파이스토스 등 성소들이 번성했을 당시 함께 문명의 꽃을 피운 마을이었던 그곳은 크노소스와 비슷한 시기에 발굴이 시작돼 3개의 빌라를 찾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흔히는 그 빌라들이 당시 왕족이나 귀족들이 살았던 주거지라고 해석하지만 미노아 사회의 평등과 공동체성에 무게를 두는 크리스트는 ‘집의 크기가 꼭 부나 권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부자가 아니어도 큰 집을 갖고 있는 전통적 크레타 농가들을 미노안 빌라들과 비교한 글도 있다는 것이다.

     

     

     
                                                                          ▲틸리소스 빌라 유적지의 모습.



    유적터를 둘러보니 미노아 시대 주거지의 특징들이 고스란히 다 보였다. 사이사이의 좁은 돌길들, 중앙뜰, 필라 크립트(돌기둥이 있는 어두운 방)들, 의례용 방(Lustral basin), 커다란 저장용기들을 둔 저장실, 하수시설 등...

    우리는 틸리소스 유적터를 설명하고 있는 자료를 참조해 가며 빌라들을 돌아봤다. 세 개의 빌라는 편의상 A,B,C로 불리고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이 빌라 A였다. 그곳에서 청동제 커다란 솥(cauldron) 3개가 발굴됐다고 했다. 솥은 서구문화에서 마녀들(witches)-여신 신앙의 전승자로도 알려진-이 신비의 묘약을 만들 때 약초나 갖가지 재료들을 넣어 끓일 때 썼던  것으로 여겨져 마녀의 상징처럼 돼 있기 때문에 청동 솥 발굴 얘기는 우리의 흥미를 강하게 끌었다. 그 밖에 유명한 틸리소스 발굴 유물로는 신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는 자세의 작은 남자 청동상이 있고, 리니어A 문자가 새겨진 점토판들도 나왔다고 한다. 
     

                                                                       ▲틸리소스에서 발굴된 큰 청동솥



    배관을 이용한 상하수 시설이 잘 돼 있었다는 유적터에는 당시 방식의 수세식 화장실 자리도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 모여 설명을 듣고 틸리소스에 살았던 미노아인들의 생활 수준과 양식을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발전된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솥 얘기가 나와서 그랬는지 크리스트는 이런 말도 했다.

    “미노아인들이 약초를 이용한 치료에도 상당한 지식을 가졌다고 하지요. 차 주전자도 발굴됐고요. 심지어 외과수술을 했다고도 합니다.”

     

     

                                                                            ▲미노아 방식의 수세식 화장실



    그러자 미카엘라가 재닌 베니어스(Janine Benyus)라는 여성 생물학자가 생체모방학(biomimicry)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대해 인터뷰한 기사 내용을 봤는데 너무 인상적이었다면서 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했다. 생체모방학에서는 자연을 단순한 자원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배운다’는 기본전제를 갖고 다양한 생물체들의 활동을 연구해 당면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쓴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미노아인들의 생활방식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이었다.



    자연의 천재들에게서 배워라



    자연을 성스럽게 여기며 경배하고 그로부터 배우는 자세야 미노아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었다. 우리 조상들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던 삶의 자세였다. 서구에서도 이성과 과학만을 앞세운 근대적 인간이 출현해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마음대로 착취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미신’을 널리 퍼뜨리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세계관이었다.

    당시 나는 생체모방학이란 말 자체도 생소했었는데 얼마전 재닌 베니어스를 유명한 TED 강연을 통해 보게 됐다. 그녀는 강연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근대 문화에서 감춰진 무언가를 내가 드러내 보일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과거에 익숙하게 알았던 것이지만 한 동안 잊어온 무언가를 드러내 보이는 걸 겁니다. 그것은 우리가 능력이 충만한 우주에 살고 있다는 것, 우리는 이 똑똑한 행성의 일부라는 것, 그리고 우리 인간 주위에 천재적 생명체들이 널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설계해 만들고 문제를 해결할 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가를 강조했다. 인류는 자식들을 위해 집을 지은 최초의 건축가도 아니며 최초의 종이발명가도 아니고, 방수 시스템 등 많은 과학적 장치들을 처음으로 고안해낸 생명체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생체모방학자들은 ‘자연의 제자’들이다. 자연의 가르침을 우리가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일례로 미국의 한 시멘트 회사는 이산화탄소를 자신의 몸을 만드는 원자재로 쓰는 산호의 방식에서 배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것이다.



    베니어스는 이런 말도 했다.

     

     

    “생명체들은 에너지를 아주 조금씩 아껴서 사용합니다. 그걸 얻기 위해서는 일을 하거나 교환을 해야 하니까요”


     

    미카엘라도 ‘자연은 에너지를 보존하려 한다’며 ‘필요한 만큼만 아껴 쓰고 재생해서 쓰고 하는 게 자연의 가르침’이라고 열을 올렸다. 다른 참가자가 그에 동의하며 미국의 에너지 정책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미노아식 수세식 화장실 주변에서는 한 동안 환경문제에 대한 의견교환들이 오갔다.

    인간을 낳고 살게하는 자연. 능력이 충만한 자연. 인간을 일부분으로 감싸 안고 있는 자연. 천재적인 지혜로 가득 찬 자연.....자연의 메타포로서의 여신이란 존재와 이어지는 ‘과학적 인식’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침내 여신의 종족이 되다


     

    하우스 A에서는 간단한 리츄얼도 있었다. 하우스 A의 입구쪽에는 양쪽으로 돌기둥 두 개가 서 있었는데 미카엘라가 돌기둥 안에 서고 나머지는 밖에 줄을 지어 서 있다가 하나씩 미카엘라 앞으로 나아갔다. 미카엘라는 자기 앞에 선 참가자의 이마에 향유를 찍어주며 말했다.

    “아리아드네 자매가 된 걸 환영합니다.”

    그리고 포옹이 이어졌다. 미카엘라의 말을 듣는 순간 무언가가 울컥하는 게 느껴졌다. 이로써 이번 순례참가자 13명은 93년 이래 매년 봄 가을 크레타 여신순례에 참가해 온 수백명의 여성들, 즉 아리아드네 자매들(Ariadne Sisters)과 같은 자매가 된 것이었다. 아리아드네 자매가 됐음이 선언된 사람들은 하나씩 하나씩 원을 만들며 모여 섰다. 그리고 함께 서로의 자매됨을 축하하는 노래를 불렀다.



    아리아드네 자매가 됐다는 건 무슨 뜻일까?

    여신의 종족이 됐다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1970년대 이래 북미와 유럽, 호주 뉴질랜드 등 세계 곳곳에서 여신을 찾는 여성들, 그리고 남성들이 꾸준히 증가해 왔다. 특히 환경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고 지배와 착취, 대결과 무한경쟁을 빚어내는 가부장제의 폐해를 목도하면서, 그리고 배타적이고 호전적이며 성차별적인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기존 제도종교들에 대한 거부감들이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그 성장세가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리아드네 자매들은, 수천년 만에 부활한 그같은 여신종족의 아주 작은 한 무리일 뿐이다. 이들은 미노아 사회가 역사적 실례를 제공하고 있는 사랑과 평화와 조화, 자연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가득한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려 애쓴다. 자기 안과 밖의 여신, 신성을 끊임없이 일깨우고 느끼면서....  

     

     
                                                 ▲뱀 모양이 새겨진 돌(상), 여신의 상징으로 숭배의 대상이었던 돌기둥.


     

    리츄얼을 마친 우리는 잠시 자유시간을 가졌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한가한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하우스 A의 필라 크립트에 있는 돌기둥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룸메이트 캐시가 보였다. 돌기둥을 껴안는가 하면 고개를 숙이고 경배의 자세를 취하기도 하면서 그녀는 완전히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사제라고 해도 그 동안은 개성 강한 20대 미국여성으로만 보였는데 비로소 감춰진 진면목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유적터에서 나온 우리는 크리스트와 오랜 친교가 있는 스텔라라는 여성의 집에 들러 집구경을 한 후(직물과 꿀을 팔기도 했다) 점심 식사 시간을 이용해 근처 마을에서 전통 직물을 파는 상점들을 둘러보기도 했다. 검은 원피스에 에이프런(뱀 여신상에도 있는)을 두르고 검은 스카프를 쓴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들이 상점을 지키고 있었는데 한쪽 구석에는 전통적 직물기도 있었다. 크레타를 크레타이게 하는 그 할머니들은 언제 보아도 인상적이었다.

     

                                                                       ▲크레타를 크레타이게 하는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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