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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회] 서천꽃밭 생명의 꽃들, 오곡의 씨앗
    이프 / 2012-03-19 05:46:01
  • -자청비 신화2

     

    자청비는 말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부모님께 종을 죽인 사연을 이야기했다.

    “집안 망할 일이로구나. 하루 콩 석 섬 가는 힘 좋은 머슴을 죽이다니 당장 정수남이를 살려내라.”

     

    부모님은 독설을 퍼부으며 넓은 밭에 좁쌀 씨를 닷 말 닷 되 뿌려 놓고, 그 좁쌀 씨를 하나 남김없이 주워 오라 했다. 눈에 진물이 나도록 좁쌀 씨를 찾았으나 딱 한 알만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여기 저기 기웃거려도 보이지 않아 단념을 하고 밭담을 넘는데 개미 한 마리가 그 좁쌀 한 알을 물고 바지런히 기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말 모른 벌레지만 정말 야속하구나.” 중얼거리던 자청비는 좁씨를 빼앗으며 개미허리를 발로 지끈 밟아주었다.

    그때 난 법으로 개미허리는 홀쭉하고 가느다란 법이다.

     

    서천꽃밭으로 가는 길

     

    자청비는 좁쌀 씨를 부모님께 갖다 바쳐 두고, 집 떠날 결심을 하였다. 부모님의 구박을 받아가며 계속 종처럼 살 수는 없었다.

    자청비는 일단 ‘서천꽃밭으로 가서 사람 살린다는 그 꽃을 따다가 정수남이를 살려 놓으리라’는 생각으로 입었던 여자 옷들을 전부 벗어버리고 남장을 하고 집을 나왔다.

     

    서천꽃밭으로 가는 길은 얼어서 삼년, 더워 삼년, 물 한 방울 먹을 수 없는 험한 길이었다. 바람에 불리고 비에 젖고 햇볕에 온 몸이 삭아 내리는 고행의 길이었다.

     

    터벅터벅 낯선 마을을 지나는데 아이들이 죽은 부엉이를 잡고 다투고 있었다. 돈 서푼을 주고 그 부엉이를 사서 등짐 속에 넣고 서천꽃밭으로 가고 또 갔다.

    생명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길이었다. 자청비의 몸은 마른 대추처럼 쪼그라들고 옷은 걸레처럼 너덜거렸다. 가물가물 정신이 멀어져 가는데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더듬더듬 기어 가보니 새파란 맑은 물이 넘실대는 아름답고 찬란한 곳이 펼쳐졌다. 물을 마시니 쪼그라들고 초라한 자청비의 모습이 다시 활기차고 어여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공중에서 은은한 광채가 사방에 비쳤다. 은빛 두레박이 내려오고 있었다. 자청비는 뛰어가 두레박에 올랐다. 두레박을 타고 오르다 서천꽃밭 입구에 뛰어내렸지만 담장이 너무 높았다.

    자청비는 오는 길에 산 부엉이를 꺼내 꽃밭 안으로 던져 넣었다. 꽃밭을 지키는 개가 짖어댔다.

     

    자신을 겁탈하려한 정수남을 이용하다

     

    개가 짖어대자 서천꽃밭꽃감관은 막내딸에게 나가보라 했다. 막내딸이 나가보니 잘생긴 귀공자가 서있었다. 막내딸은 자청비와 눈이 마주치자 수줍어서 얼굴이 빨개졌다.

    “아버지, 어떤 도련님이 우리 꽃밭에 새가 날고 있어서 화살로 쏘았는데 꽃밭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화살이나 찾고 가려 하신답니다.”

    “그래? 예사 젊은이가 아니구나. 부엉이 맞힌 솜씨를 보니 활 솜씨도 보통이 아니고. 그 도령을 안으로 모셔라.”

     

    꽃감관은 서천꽃밭에 밤이면 부엉이가 날아와 울어 멸망을 주는데, 여기서 나머지 한 마리도 잡아 주면 사위를 삼겠다고 하였다.

    밤이 되자 자청비는 아무도 몰래 노둣돌 위에 옷을 홀랑 벗고 누워 정수남이의 혼령을 불렀다.

    “정수남아, 혼령이 있거든 부엉이 몸으로 환생하여 원(怨)진 내 가슴에 앉거라.”

     

    부엉이 한 마리가 울면서 날아와 자청비 젖가슴 위에 앉았다. 자청비는 부엉이 두 다리를 꼭 잡고 화살 한 대를 찔러 윗밭으로 던져두었다. 잠자면서 부엉이를 잡자 꽃감관은 크게 칭찬하며 자청비를 막내 사위로 삼았다.

     

    서천꽃밭의 사위가 된 자청비

     

    서천꽃밭막내딸과의 새살림이 시작되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손 한번 잡아주지 않자 막내딸이 울며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높으신 사위를 한 것 같습니다. 이레가 지나도 손목 한번 잡아주지 않습니다.”

    “내 딸이 얼굴이 못생겼소?, 심보가 궂소? 무엇이 부족하여 그리 박대하는 거요?”

     

    여자의 몸으로 여자와 부부 관계를 할 수는 없었다.

    자청비는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야 하기 때문에 몸 정성으로 그런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 거짓을 하고, 떠나기 전에 그대와 서천꽃밭이나 한 번 거닐어 보는 게 소원이라 말하였다.

    꽃감관인 아버지는 서천꽃밭은 인간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피어나는 곳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위라도 사람의 몸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으나 결국은 딸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좌)글을 읽는 여러분이 서천꽃밭을 채워 주세요. (우)강정의 구럼비. 강정의 구럼비도 서천꽃밭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사진을 올렸습니다. (사진출처: 네이버블로그 16212by.)

     

     

    서천꽃밭의 꽃을 따다

     

    과거를 떠나기에 앞서 자청비는 부인인 막내딸과 서천꽃밭을 구경하였다. 꽃밭을 들어서보니 오색찬란한 꽃들로 뒤덮인 언덕과 물과 계곡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저기 꽃밭에는 인간세상 생명의 숫자만큼 꽃이 피어 있답니다. 낭군님 꽃도 있을 겁니다.”

     

    “이 꽃은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환생꽃입니다.

    이 꽃은 무성하게 가지를 뻗게 하는 번성꽃입니다.

    이 꽃은 시들시들하다가 죽게 되는 검뉴울꽃입니다.

    이 꽃은 웃음 짓게 하는 웃음꽃입니다.

    이 꽃은 살 오르게 하는 살오를꽃입니다.

    이건 피 오르게 하는 피오를꽃입니다.

    이건 죽음을 주는 수레멸망악심꽃입니다.

    이건 싸움하게 하는 싸움할꽃입니다.…”

     

    자청비는 꽃들을 몰래 따서 슬쩍슬쩍 주머니에 놓았다.

    자청비가 서천꽃밭을 떠나려 하자, 막내딸은 본메라도 주고 가라고 졸랐다. 자청비는 얼레빗을 반으로 쪼개 주었다.

     

    살오를꽃으로 정수남을 살려내다

     

    자청비는 은빛 두레박을 타고 내려와 밤낮을 쉬지 않고 정수남이가 죽은 곳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죽은 정수남의 뼈만 살그랑하게 남아 있었다. 자청비는 살오르는꽃, 숨쉬게하는꽃, 말하게하는꽃, 번성꽃, 환생꽃을 죽은 정수남의 뼈에 올려놓았다.

    “아이고, 봄잠을 너무 많이 잤습니다.”하며 정수남이 훌쩍 일어났다.

    자청비는 정수남이를 살려, 함께 부모님께 돌아 왔다.

     

    집에서 쫓겨난 자청비

     

    그러나 부모님은 계집년이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하니 만정이 떨어진다며, 집에 두었다가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니 어서 집을 떠나라 소리 쳤다. 다시 자청비는 집을 나와 정처 없이 걸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설움이 복받쳐 울고 있는데 마침 청태국마구할망이 빨래를 하러 왔다가 자청비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누구기에 무슨 일로 이리 서럽게 울고 있느냐?”

    “제 이름은 자청비입니다. 부모님 눈에 밉보여 쫓겨났습니다.”

    마구할망은 그녀를 수양딸로 삼았다.

     

    눈물로 비단에 사랑을 수놓은 자청비

     

    그녀는 베틀에 올라 비단을 짜며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망이 짜는 비단이 하늘 옥황의 문도령이 서수왕의 딸에게 장가드는 데에 폐백으로 쓸 비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청비는 눈물로 비단을 짜면서, 문도령과의 사연을 아름다운 무늬로 새겨 놓았다. 비단은 하늘 옥황에 바쳐졌고, 문도령은 자청비가 짠 비단인 것을 단박에 알고 자청비를 만나려고 내려왔다.

     

    문도령과 만났으나 심통을 부리다

     

    자청비는 반갑고 기뻤으나 한편 얄미운 마음도 들었다.

    “어디 내가 찾는 도령님이라면 이 창구멍 안으로 손가락이나 들여놓아 보시오.”

    손가락을 보니 정녕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문도령의 하얗고 긴 손가락이었으나, 원망하는 마음과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바늘로 손가락을 콕 찔러버렸다. 하얗고 긴 손가락에 피가 났다.

     

    문도령은 화를 내며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마구할망은 자청비에게 들어오는 복도 쫓아버린다고 하면서, 꼴도 보기 싫다고 자청비를 내쫓았다.

     

    돌고 돌아 어렵게 문도령을 만나다

     

    연화못에 시름겨워 앉아 있는데 하늘나라 선녀들이 두레박을 타고 내려왔다.

    무슨 일로 하늘에서 내려 오냐고 까닭을 물으니, 문도령이 자청비와 목욕했던 연못의 물을 떠오면 물맛이라도 보겠다고 하여 물을 뜨러 내려왔다고 하는 거였다.

    자청비는 물을 찾아 떠주고 그 대신 궁녀들과 같이 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다.

     

    문도령 집에 이르렀을 때는 둥그런 보름달이 언덕 위에 올라 있었다.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로 나누고 문도령은 자청비를 제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둘은 그립던 사랑의 품에 안겨 만단정화를 나누고 오랜만에 사랑을 풀었다.

     

    숨어 사는 자청비

     

    그날부터 문도령은 방안 병풍 뒤에 자청비를 숨겨놓고 살았다.

    둘이 있으니 세숫물도 예전에는 맑더니 텁텁하게 되어 나오고, 밥상도 그릇마다 깨끗이 비어서 나왔다. 하녀가 의심이 들어 밥상을 들여 놓고 살그머니 방안을 엿보았다. 문도령이 병풍 뒤에 있는 아가씨를 데려나오더니, 무릎 위에 앉혀놓고 깨가 쏟아지게 밥을 먹는 거였다.

     

    병풍 뒤에 숨어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자청비는 이렇게 계속 지낼 수는 없다며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달라고 문도령을 졸라댔다. 물론 그 방법도 소상히 일러주었다.

     

    “새 옷이 따스합니까? 묵은 옷이 따스합니까?”

    “새 옷은 보기는 좋지만 따습기는 묵은 옷만 못하다”

    “새 간장이 답디까? 묵은 간장이 답디까?”

    “달기는 묵은 간장이 달다.”

    “새 사람이 좋습니까? 묵은 사람이 좋습니까?”

    “새 사람은 오래 길들인 묵은 사람만 못하다.”

    “그러면 부모님, 서수왕따님에게 장가들지 않겠습니다. 저도 묵은 사람하고 살겠습니다.”

     

    며느리되기 심사

     

    부모님은 수수께끼의 뜻을 알아차리고 화를 내며 서수왕따님과 자청비를 불려들여 무서운 과제를 내 걸었다. 쉰 자 구덩이를 파 놓고, 숯 쉰 섬에 불을 피워 작도를 걸어 놓고 작도를 타 나가고 타 들어와야 며느릿감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서수왕막내딸이 와들와들 떨며 뒤로 물러났다. 자청비는 작도 위에 올라 아슬아슬하게 칼날 위로 걸어 나갔다. 작도 끝에 다다라 한 발을 땅에 내리려는 순간 발뒤꿈치가 슬쩍 끊어졌다. 붉은 피가 불끈 솟았다. 자청비는 속치맛자락으로 얼른 싹 쓸었다.

    그 법으로 여자 아이 열다섯 살이 넘어가면 다달이 몸에 생리 오는 법을 마련했다.

     

    땅에 내려서자마자 문도령의 부모님이 달려들어 며느릿감이 분명하다며 얼싸 안았다.

    칼선다리를 건너지 못한 서수왕따님은 그날부터 방문을 걸어 잠그고 물 한 모금, 쌀 한 톨 먹지 않더니 시름시름 기어이 죽고 말았다.

    그 죽은 몸에서 새가 날아올랐다. 머리로는 두통새, 눈으로는 흘긋새, 코로는 악숨새, 입으로는 헤말림새가 나와서 서수왕따님애기는 원한을 지닌 채 이곳저곳 다니며 흉험을 주고 얻어먹는 새가 되었다.

     

    그 때의 일로 오늘날도, 이 새가 들어서 다정한 부부간의 살림을 분산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혼인할 때 신부상을 받으면 먼저 음식을 조금씩 떠서 상 밑으로 놓는 법이 생겼다. 이는 서수왕따님애기에 대한 대접인 것이다.

     

    자청비와 문도령의 신혼생활

     

    자청비와 문도령은 백년가례를 올렸다.

    그들은 자청비의 소원대로 시부모의 허락을 받아 세상에 내려와서 살았다. 홀딱 빠져 서로 죽어라 사랑하며 사는 그들을 모두 부러워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잔치에 나간 문도령이, 시샘에 빠진 동네 청년이 준 독술을 받아 마시고 싸늘하게 죽어 말 등에 실려 왔다.

     

    자청비는 황급히 다시 남장을 하여 서천꽃밭으로 찾아갔다.

    꽃감관막내딸은 과거보러 간 자기의 남편, 자청비를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었다.

     

    자청비가 돌아와 기뻐하는 꽃감관막내딸의 눈물 배웅을 뒤로 하고, ‘이제는 나 같은 놈 믿지도 말고 기다리지도 말라’며 또 소매에 꽃을 감추고 자청비는 부랴부랴 문도령에게 돌아왔다.

     

    서천꽃밭에 다녀오는 동안 문도령의 살은 모두 녹아버리고 하얀 뼈만 살그랑하였다.

    자청비는 뼈를 제자리에 맞추어놓고 서천꽃밭에서 가져온 살오를꽃, 피가도는꽃, 숨을쉬는꽃을 올려 놓았다. 문도령이 일어났다.

     

    서천꽃밭막내딸에게 사랑하는 문도령을 보내다

     

    자청비는 사랑하는 문도령의 생명을 살린 서천꽃밭과 서천꽃밭막내딸 얘기를 해 주었다.

     

    “그러니 당신은 이제부터는 한 달에 보름동안은 여기서 나와 살고 나머지 보름동안은 남편을 기다리고 있을 서천꽃밭의 따님께 가서 사십시오. 사랑하는 당신을 다른 여자에게 보내는 건 고통이지만, 그 따님 덕분에 사랑하는 당신을 살릴 수 있었으니, 그 은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문도령은 자청비가 주는 반쪽 얼레빗을 가지고 서천꽃밭을 찾아갔다.

    서천꽃밭 막내딸과의 새살림은 너무나 달콤해서, 보름만 살고 오겠다던 문도령은 한 달이 다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의 일생 중에 몸과 마음이 가장 바쁠 때를 말하다

     

    이 날이나 올까 저 날이나 올까 기다리던 자청비는 편지 한 장을 까마귀 날개에 끼워 보냈다.

    문도령은 급한 김에 모자를 쓴다는 게 발목에 감는 행전을 머리에 둘러쓰고, 두루마기는 한 어깨에만 걸친 채 돌아 왔다. 문도령 돌아오는 소리에 자청비 역시 바쁜 김에 풀어헤친 머리를 옆에 있던 짚으로 얼른 묶어 마중을 내달았다.

     

    “낭군님아, 이거 우리 차림새가 제 정신이 아닙니다. 이 기회에 법지법法之法이나 마련하십시다.”

    이 때 난 법으로, 사람의 일생 중에 가장 경황이 없고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때는 부모님 상을 당했을 때이니, 초상이 나서 성복하기 전에는 남자 상주는 통두건을 쓰고 두루마기는 한쪽 어깨에만 걸치는 법을 마련하였다.

     

    통두건이란 윗부분을 꿰매지 않은 두건으로 문도령이 급한 김에 썼던 행전의 모양이다. 여자 상주는 자청비가 했던 것처럼 머리를 짚으로 묶어매는 법을 마련하였다. 지금도 여자 상주들은 머리에 하얀 무명천으로 머리창을 한다.

     

    자청비, 하늘의 난을 평정하다

     

    이때 하늘 옥황에 큰 난리가 일어났다. 난을 평정하는 자에게는 하늘나라의 영토를 나눠주겠다는 방이 붙었다. 자청비는 용감하게 전장으로 달려 나갔다. 서천꽃밭에서 가져온 싸움꽃을 뿌리니 지들끼리 싸우고, 수레멸망악심꽃을 뿌리니 수만 병사가 쓰러지며 죽어갔다. 난은 평정되었다.

     

    난을 평정한 대가로 땅과 물을 내려주었으나 거절하고, 오곡의 씨앗을 받다

     

    하늘에서는 난을 평정한 대가로 땅 한 조각 물 한 조각을 내어 주었다. 그러나 자청비는 사양하고 꼭 상을 내리시려면 땅과 물 대신 오곡의 씨앗을 내려주라 했다.

     

    오곡의 씨앗을 받고 자청비는 문도령과 함께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그런데 씨앗 하나가 모자랐다.

    도로 올라가 메밀 씨를 받았는데 담을 그릇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속에 입었던 소중이를 벗어 거기에 담아가지고 돌아왔다.

     

    그런 법으로 메밀은 다른 씨앗보다 늦게 뿌리거나 거친 땅에 뿌려도 수확을 하는 강한 곡식이 되었다. 또 여름 장마나 태풍에 농사를 망치게 되면, 그 대신에 뿌려 흉년에도 먹을 수 있게 짧은 기간에 열매를 맺는 곡식이 되었다.

     

     

    ▲사랑과 농경의 신 자청비. 제주그림책연구회 초록주멩기 일부

     

     

    자청비, 농경신이 되다

     

    자청비가 세경 너른 땅에 가보니 정수남이가 배가 고파 휘청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자청비를 만나자 밥을 달라고 사정하였다. 자청비는 저기, 아홉이나 되는 머슴과 소 아홉을 거느리고 밭가는 부농에게 가서 얻어먹어라 하였다. 그 부자는 우리 머슴들 밥도 모자란 판에 너 줄 게 어디 있냐며 욕만 바가지로 해댔다. 보고 있던 자청비는 고약하다 하여 이들에게 흉년을 불러 주었다.

     

    그 곳을 벗어나 좀 더 걸어가니 이번에는 가난한 두 늙은이가 사이좋게 호미로 밭을 갈고 있었다. 정수남이가 밥을 달라고 하니 두 늙은이는 자신들은 조금만 먹는다며 밥을 정성껏 대접하였다.

     

    밥 먹은 값을 하려고 정수남이는 밭을 씽씽 갈고 자청비는 씨앗을 뿌렸다.

    할망이 그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끼어들었다.

    “나도 심심하니 잡초 씨라도 하나 내려 주오. 심심하니 소일이나 하게”

    그 때 난 법으로, 농사지을 때는 밭에 잡초가 생기게 된 것이다. 잡초를 매는 것도 농사다.

     

    자청비는 두 가난한 노인들에게, 비록 호미농사를 지어도 대풍년이 되게 해 주었다.

    할망이 다시 끼어들었다.

    “아니 그렇게 많을 걸 어찌 다 먹습니까? 암쇠에 싣거든 등이 조금 오그라질 만큼이면 됩니다.”

    그 때 난 법으로, 부지런히 농사를 짓는데도 겨우 먹을 만큼의 소출만 나게 되었다.

     

    이리하여 문도령은 상세경, 자청비는 중세경, 정수남이는 가축을 돌보는 하세경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상세경 문도령은 사계절의 운행과 풍수재해 등의 자연현상을 관장한다. 중세경 자청비는 인간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오곡의 씨앗과 생명력의 대지를 관장한다.

     

    * 신화의 내용은 현용준과 문무병 선생님의 채록본을 기본으로 하였습니다. 신화 속 이름들, 신들의 이름, 새나 꽃의 이름들은 ‘속성’으로 생각하여, 맞춤법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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