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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5회] 미노아 여신과 아프로디테
    김신명숙 / 2012-03-19 02:55:12
  • 딕티산 서쪽면에 있는 카토 시미는 자로스와는 또 다른, 더 험하고 높고(해발 780 미터) 숲이 우거진 느낌을 주는 산골마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눈 부신 햇살 아래 상쾌한 공기가 온 몸을 감쌌고 자로스에서처럼 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을 받는 예쁜 샘터에서 들리는 소리가 조롱조롱 평화로웠다. 샘물은 우리가 갈 신전터 근처에서 솟아나는 것이라고 했다.

    신전터는 그곳에서 6킬로미터를 더 올라가야 하는데 울퉁불퉁한 흙길인데다 좁고 뱀처럼 굽어져 있어 픽업 트럭으로 옮겨타야 했다. 한 트럭에 너댓명씩 올라탄 후 우리는 바람에 날아갈까 봐 모자를 손으로 누른 채 한참을 산길을 달려 올라갔다. 그 과정이 무슨 야생탐험이라도 떠나는 듯한 느낌이어서 전부 들뜬 표정이었다. 아이들처럼 서로 소리를 질러 부르고, 웃음을 터뜨리고 한껏 기분들이 고양됐다.

     

     

     

    ▲마을의 예쁜 샘터(상)와 픽업 트럭에 올라탄 일행.

     

     

    산어머니의 신전이 아프로디테와 헤르메스 신전으로

     

    돌무더기들만 남아 있는 신전터엔 아무도 없었다. 산꼭대기가 아니어서 주위로는 딕티산의 봉우리들이 솟아 있었고 참나무와 소나무 숲 넘어 남쪽으로는 저 아래 멀리 크레타 해안이 내려다 보였다. 동쪽에 있는 바위 사이에서 샘물이 흘러나오고 있어, 한낮의 땡볕에 달궈진 우리들은 샘물에 손을 씻고 세수를 하기도 했다.

    이 곳의 신전은 미노아 시대부터 로마시대 기독교가 공인될 때까지 거의 2500년간 계속 쓰였다고 한다. 미노아 시대에는 산어머니의 신전이었다가(딕티 산의 여신은 딕티나(Dictynna)인데 브리토마르티스와 같은 여신이다) 후일 그리스인들에 의해 아프로디테와 헤르메스의 신전으로 바뀌었는데 이를 크리스트는 ‘미노아 여신과 젊은 남신에 대한 숭배가 아프로디테와 헤르메스 숭배로 변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르메스는 아프로디테와의 사이에서 헤르마프로디토스라는 아들을 얻는다. 그런데 헤르마프로디토스는 그에게 반한 님프 살마키스와 한 몸이 돼 양성구유자로 변한 특이한 신이다.

     

     

     

    ▲돌무더기만 남아있는 신전터(상). 아프로디테와 헤르메스. 반 루(Van Loo) 작.

     

     

    신전터에서 미노아 시대 신전 모습을 그려보기란 어려웠다. 그 위에 그리스 신전이 세워졌었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유구한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였다. 한때 숭배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그 나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밑동이 활짝 벌어져 부채꼴을 이루며 속을 다 내보이고 있었는데 터키인들에 의해 불에 타기까지 했었다고 한다. 그런 수난을 겪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당당한 모습으로 신전터를 지키고 있었다.

    몇 명은 충분히 들어갈 밑동 안으로 들어가 앉으니 넉넉한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아늑하고 편안했다. 등을 기대고 앉아 책을 읽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지낼 수 있을 것같았다.

    제 몸의 상처를 벌리고 벌려 찾는 이에게 넉넉한 쉼터를 제공하고 있는 나무. 견디고 살아남는다면, 잘만 숙성시킨다면 상처가 타인의 치유도 품을 수 있는 터전이 된다는 걸 일깨워주는 성스런 나무였다.

     

     

    ▲밑동이 쩌억 벌어지고 불에 탄 흔적까지 남아 있는 신성한 나무.

     

     


    우리는 기억을 통해 서로에게 연결된다

     

    리츄얼은 샘물이 흐르는 곳 옆에 있는 한 나무에서 시작됐다. 나무 아래 깔린 돌들 위로 작은 아프로디테 여신상과 기둥, 그곳의 샘물을 담은 도자기 주전자가 놓였고 우리들은 그 주위에 모여 섰다.

    먼저 크리스트가 문학과 예술의 여신인 아홉명의 뮤즈들을 부르는 노래를 했다.


     

    나를 위해 노래해줘요. 뮤즈

    내 아름다운 노래를 시작해요.

    당신의 숲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내 무심한 마음을 휘젓네.


     

     

    나무밑의 소박한 제단. 사포의 시집이 앞에 놓여 있다.

     


     

    그리고 이어 그녀는 아프로디테에게 크레타를 떠나 레스보스로 오라고 청하는 내용의 사포의 시(지난 회 소개)를 읊었다. 사실상 여사제가 되어 아프로디테 여신을 부르는 행위였다. 사실 모든 사포의 시들은 아프로디테를 부르는 청신가(請神歌)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트는 사랑과 아름다움이라는 아프로디테의 스피릿이 사포의 시들에 다 녹아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트에 이어 우리 모두는 한명씩 제단 앞에 나아가 사포의 시를 하나씩 읽었다. 그리고 님프 역을 맡은 내 룸메이트 캐시가 건네주는 도자기 주전자를 받아 제단에 물을 부었다.

    모클로스에 도착한 다음날 크리스트는 우리에게 사포 시집을 건네주면서 각자 하나씩 마음에 드는 시 하나씩을 점찍어 두라고 얘기했었다.

    내가 고른 시는 짤막한 것이었다.

     


    너는 잊을지 몰라.

    하지만 말해둬야겠어.

    미래의 누군가가 우리를

    기억할 것이라고.

     

    그 시를 보는 순간 나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택했다. 그녀가 살았던 시기로부터 2600년이나 후에, 동아시아 한국이란 나라에서 온 내가 그녀를 기억하며 아프로디테를 부른 리츄얼에 참가하고 있으니 그보다 더 적절한 시구가 없을 것같았다. 문득 그녀의 넘치는 자부심에 내가 응답하고 있는 듯해 묘한 감동까지 일어났다.

    기억되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억들을 통해 서로에게 연결된다.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마을의 멋진 식당, 아프로디테.

     

     

    이제 다시 출발지로...

     

    리츄얼은 “우리가 생명의 원천을 축복하듯 우리도 축복받네”라는 노래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신전터에서 내려온 우리는 ‘아프로디테’란 이름의 멋진 식당에서 푸르게 우거진 골짜기를 내려다 보며 점심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다음 방문지는 크레타 도자기 생산지로 유명한 트라프사노(Thrapsano)였다. 그곳에서 도자기 만드는 과정을 견학한 후 우리는 맨 처음 출발지였던 헤라클리온으로 향했다.

    순례가 종착점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었다.

     

     

    ▲트라프사노의 한 도자기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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