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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4회] 사포, 군대보다 사랑이 더 멋지다고 외치다
    김신명숙 / 2012-03-12 12:33:06
  •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사포는 그리스를 대표하는 서정시인이다. 영웅서사시를 대표하는 시인이 호메로스라면 서정시의 대표시인은 사포다. 하지만 호메로스는 일단 실존인물인지, 한 개인인지 집단인지부터가 안개에 싸여있는 반면 사포는 분명히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달라진다. 비록 알려진 그녀의 삶이 현실과 전설이 마구 뒤죽박죽된 것이라고는 해도.

    사포는 BC 7세기에 레스보스 섬에 살면서 엄청난 양의 시를 노래로 남겨 사후 9권의 시집이 편찬되기까지 했지만 오늘날까지 남겨진 것은 단 한편을 제외하곤 전부 부분적 단편들 뿐이다. 그녀의 시세계가 ‘이교도적이고 너무 에로틱하다’는 이유로 기독교에 의해 탄압받았기 때문이다. 1073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사포의 시집을 불태워 버리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전설의 서정시인 사포 (출처: greatbookssummer.com)

     

     

    여성간의 정열적인 사랑을 노래

     

    그녀가 후일 탄압의 대상이 된 데는 여성간의 정열적인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그녀의 많은 시들이 중요한 원인이 됐다. ‘레즈비언’이란 말의 기원(그녀가 살았던 섬 이름 레스보스에서 유래)을 제공했을 정도로 그녀는 현대인들에게 원조 여성동성애자 쯤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포는 확실히 동성애자였을까?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결혼을 했고 남편과의 사이에 딸 클레이스를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의 존재는 무의미할 정도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 반면 사포의 시들에서는 여성간의 사랑의 감정이 절절하고도 자유분방하게 표현돼 있다. 사포가 사랑했던 여성으로 알려진 아티스가 멀리 떠나간 제3의 여성을 그리워하자 그녀를 위로하는 내용의 시 일부를 보자.

     

    비록 그녀는 사르디스(고대 리디아의 수도)에 가 있어도

    그녀는 여기, 우리를 그리워하네.

    그녀는 너를 여신인 듯 존중했고

    특히 너의 노래에 기뻐했지.

    지금 그녀는 리디아의 여인들 중

    가장 아름답게 빛나고 있어.

    ..........

    하지만 그녀는 지금

    여기저기를 배회하며

    다정한 아티스를 회상하고 있어.

    열망과 함께.

    그녀의 가슴은

    깊은 슬픔으로 가득찼네.

     

    하지만 사포의 사랑 노래들이 여성들간의 관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녀의 시 중에는 젊은 남성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거나 그에 대한 애타는 사랑을 묘사한 내용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또 그녀가 남성 서정시인 알카이오스와 사랑을 나눴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신화 속의 아름다운 젊은 남자 파온과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자 레우카스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내용을 소재로 한 글들도 남아 있다. 이는 사포가 결혼했다는 기록과 함께 ‘이성애자 사포’에 대한 근거를 제공한다.

     

     

    ▲사포와 그녀의 연인이었다고도 하는 알카이오스 (출처: wamtac.wordpress.com)

     

     

    섹슈얼리티와 에로스를 근대사회와는 다른 관념으로 이해하는 관계

     

    한정숙 교수는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도서출판 길)에서 “18세기까지는 ’파온의 이성애자 연인 사포‘상이 지배적”이었고 “영어권에서 레즈비언이 섹슈얼리티와 관련해 여성동성애자를 주로 의미하게 된 것은 고작해야 몇 십년 전부터의 일”이라면서 사포의 동성애 여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포가 동성애자라는 통념은 그녀의 모든 시의 화자가 사포 개인이며, 또한 그녀의 시가 사포 개인의 감정과 경험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과연 이 통념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고 설사 사포가 여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진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일단 분명한 것같다) 근대적인 동성애 관계와 동일한 것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티스를 사랑하는 제3의 여성과 시의 화자(사포)의 관계는 경쟁의 관계일까, 친구 사이일까? 세 여성의 관계는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소유욕의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배려해 주고 마음을 헤아려 주고 마음 아파해 주는 넉넉함의 세계이다. 따라서 이는 에로틱한 관계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여인들의 공동체 속에서 형성된 강렬하고 끈끈한 연대, 정서적 유대, 진한 우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감정들을 표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포와 주변여자들의 관계 속에 여성 동성애적 관계가 포함되어 있는가 하는 것 자체라기보다 여성이 에로틱한 관계를 연상시키는 표현으로 다른 여성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고 이를 공중에게 널리 퍼지게 해도 이것이 당대의 인간관계 규범에서 전혀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동성애이건 이성애이건 현대적인 의미의 배타적 애정 관계에 바탕을 둔 개념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섹슈얼리티와 에로스를 근대사회와는 다른 관념으로 이해하는 관계가 개재되어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확실히 사포가 살았던 시간과 공간 속의 섹슈얼리티와 에로스는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그것과는 상당히 달랐던 것같다. 사포 이후 시대의 인물인 플라톤만 봐도 그는『향연』에서 ‘소년에 대한 사랑은 그 고결함에 있어서 여자에 대한 사랑을 능가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여성을 더 좋아하는 여성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에 소개된, 로마시대 저자였던 튀레의 막시무스가 사포와 젊은 여자들의 관계에 대해 쓴 내용을 보자.

     

    “레스보스 섬 여자들의 에로스가 소크라테스식 사랑법과 다를 게 어디 있는가?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그들은 각기 자기들 나름의 방식대로 서로 사랑을 했기 때문이다. 곧 사포는 여성의 사랑을, 소크라테스는 남성의 사랑을 한 것이다. 이들은 둘 다, 자기네가 많은 사람을 사랑했고 아름다운 모든 것에 매혹되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알키비아데스, 카르미데스, 파이드로스가 소크라테스에게 의미했던 바 그대로를 귀리나, 아티스, 아낙토리아가 레스보스 섬의 여자들에게 의미했던 것이다”

     

     

    미텔레네의 사포와 에린나 - 시메온 솔로몬 작.1864.(출처: artchive.com)

     

     

    레스보스 섬의 여자들의 공동체

     

    한정숙 교수는 사포를 ‘여성중심적 세계의 표현자’로 규정하면서 사포 시대 여성들이 나누었던 친밀한 관계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어떤 경우건, 곧 그것이 성애를 포함하는 여자들의 사랑이었건 결혼 전 여자들이 함께 나누는 극히 친밀한 우정이었건 , 삶의 일정한 부분을 함께 나누는 여자들의 공동체가 레스보스 섬에 형성되어 있었고 이것은 가부장적인 당시 상황에서 여성의 삶 속의 해방터가 되어주었다”

     

    크리스트는 사포의 삶에 대해 설명하면서 ‘호모 소셜(homo social)' '호모 에로틱(homo erotic)' '호모 섹슈얼(homo sexual)'이란 표현을 썼다.

    “여성과 남성이 사회적으로 다른 공간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활동하는 호모 소셜은 대부분의 문화에서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그렇게 여성들끼리 어울리다 보면 섹슈얼한 관계가 없어도 서로에게 강한 감정을 느껴 그리워하게 되곤 하는데 그것이 호모 에로틱이지요. 사포의 시에 강렬하게 표현돼 있는 그 감정입니다. 사포가 호모 섹슈얼이었는가는 사실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사포 이후 그리스 남성들이 미소년과 동성애 관계를 가졌던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어쨌든 분명한 건 사포가 살았던 당시의 문화가 지금 우리의 문화와는 너무나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른 문화의 시각으로 사포와 그녀의 여자들을 이해하기란 어쩌면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포와 그녀를 따랐던 레스보스의 여자들이 만들고 꾸려갔던 아름다운 공동체, 남성도 배제하지 않고 사랑으로 끌어안았던 그 공동체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력으로, ‘오래된 미래’로 여전히 빛나고 있다.

     

    사포의 서정시는 영웅서사시들에 대한 도전

     

    크리스트는 사포의 서정시들이 호메로스로 대표되는 영웅서사시들에 대한 ‘도전’이라고 해석했다. 전쟁영웅들을 찬양하고, 여성은 수동적 존재거나 전리품 정도로 그려지는 서사시들과 달리 그녀의 시에서는 여성이 주체로 등장할 뿐 아니라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가치관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일리아스』에서는 트로이아 전쟁의 원인을 유부녀인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가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를 따라간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따라서 헬레네는 그리스에서 전쟁을 유발시킨 ‘불륜녀’, ‘악녀’로 인식됐다고 한다. 그러나 사포의 평가는 전혀 다르다. 헬레네를 언급하고 있는 그녀의 시를 보자.

     

    어떤 사람은 기마부대가, 어떤 사람은 보병부대가,

    또 어떤 사람은 군함이, 어두운 지상에서

    가장 멋지다고 말하네.

    하지만 나는 말하네.

    무엇이든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가장 멋지다고.

    이는 쉽게 증명할 수 있어.

    헬레네가 세상 남자들의 구애 가운데

    첫 번째로 선택한 남자가 바로

    트로이아의 영광을 폐허로 만든

    그 남자 아니었던가.

    그의 뜻에 취해 부모와 자식도 잊고

    그녀는 그와 함께 멀리 떠나갔네.

    그러니 아낙토리아, 비록 멀리 있는

    네가 우리를 잊어도

    네 사랑스런 발자국 소리와

    네 눈의 반짝임은

    리디아 말의 광채나

    갑옷 입은 보병부대의 행진보다

    나를 더 감동시키지.

     

    이 시에서 사포는 헬레네를 도덕을 어긴 불륜녀가 아니라 어떤 장애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선택한 사랑의 화신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사랑의 절대적 가치를 옹호하면서 아낙토리아라는 여성에 대한 자신의 그리움을 토로하고 있다.

    사포에게는 결혼한 여성의 사랑이든, 여성끼리의 사랑이든, 모든 사랑이 다 멋진 것이다. 그리고 위용을 자랑하는 군대나 말보다 사랑이 더 멋진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 시를 보며 우리는 유명한 반전구호 '전쟁이 아니라 사랑을!'(Make Love, not War!)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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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말: 마치 의도한 것처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가 핫 이슈가 돼 있는 상황에서 사포에 대한 글을 소개하게 됐습니다. 연재 순서에 따른 것인데 이렇게 되고 보니 이 우연이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네요.^^

    사포가 이 해군기지 논란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멋진 군함이나 크루즈선 보다도

    구럼비 해안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이

    더 멋진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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