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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스바티
    이프 / 2012-02-15 06:01:06
  • 인도에 들어온 아리아인이 최초로 정착했던 곳에는 강이 있었다. 이 강은 사라스바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강을 신격화한 여신이 숭배받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사라스바티는 물의 신이 되었으나, 원래는 정화(淨化)와 풍요를 주관했다.

    『베다』에서는 갠지스의 강가 여신과 함께 강의 여신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사라스바티에 대한 찬가의 수는 다른 여신들을 압도한다. 아리안에게 사라스바티 강은 그만큼 중요한 생명의 젖줄이었던 것이다.

    사라스바티는 산스크리트어의 발명자일 뿐 아니라 언어와 지혜, 음악의 수호신으로 숭배받았다. 그리고 뛰어난 지혜를 이용하여 소마, 즉 암리타를 발견했다는 설도 있다.

     

     

                                                              ▲사라스바티 여신(출처:tourismtheworld.com)
     

     

    비나를 연주한 여신

     

     

    사라스바티는 흰 피부를 가진 대단히 젊고 아름다운 여신이었다. 때에 따라서는 네 개의 팔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손에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흔한 것이 비나라는 악기다. 비나는 물 흐르는 소리를 상징하는 악기로서 사라스바티가 강의 신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비나 외에도 구슬이나『베다』경전, 꽃, 물병 등을 들고 있는데, 이는 모두 물이나 학문과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이 여신의 탈것은 백조나 공작, 연꽃이며, 그 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힌두 신화에서 사라스바티는 브라마 신에게서 태어나 그의 아내가 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 여신은 불교 신화에도 받아들여져 변재천(辨財天)이라는 여신으로 등장한다.

     

     

    탄생과 결혼

     

     

    어느 날 브라마 신은 아름다운 여신이 보고 싶어 자신의 몸에서 한 여성을 만들어냈다. 이 여신이 사라스바티인데, 브라마니, 사비트리 같은 여러 가지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브라마 신은 자신이 만들어냈음에도 너무나 아름다운 사라스바티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여신은 이 창조신의 뜨거운 시선에 당혹감을 느끼고 그의 눈길을 피하려고 좌우로 이동했다. 그러자 브라마 신의 이마 가운데에 새로운 눈이 생겨났다. 그래서 뒤로 숨자 이번에는 뒤쪽에도 얼굴이 생겨났다. 도망칠 장소가 없어진 여신이 공중으로 도망치자 브라마 신의 머리 위쪽에도 얼굴이 나타났다. 이런 연유로 브라마 신은 몇 개의 얼굴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브라마 신이 그만큼 뜨겁다는 사실을 안 사라스바티는 마침내 결혼을 승낙했다. 그런데 사라스바티의 결혼에 대한 다른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그녀는 원래 락슈미, 강가와 함께 비슈누 신의 아내였다고 한다. 하지만 세 아내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언제나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세 아내의 반목으로 입장이 난처하게 된 비슈누 신은 사라스바티를 브라마 신에게, 강가를 시바 신에게 보냈다고 한다.

     

     

                                                               ▲브라마와 사라스바티(출처:harekrsna.com)
     

     

    오해로 인한 저주

     

     

    어느 날 브라마 신은 세상에 새로운 힘을 주기 위해 의식을 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사라스바티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서 브라만 승려를 보냈지만 그녀는 “아직 화장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1)하고 대답했다.

    그래서 신들이 회의한 결과, 의식을 위해 새로운 여성을 대신 내세우기로 했다. 인드라 신은 우유를 짜고 있던 가야트리라는 처녀를 데리고 와서 사라스바티 대신 신부 역할을 맡겼다. 그런데 이때 사라스바티가 의식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했다. 그녀는 자신의 자리에 알지 못하는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격노했다. 이에 브라마 신은 “의식을 빨리 진행하려고 여기에 있는 신들이 모두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고 사라스바티를 설득했다. 하지만 이 말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되고 말았다. 사라스바티는 브라마 신은 물론이고 다른 신들도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식장에 있던 모든 이들을 향해 무서운 저주의 말을 내뱉었다.

    “인드라는 적에게 붙잡힐 것이며, 시바는 사람의 모습을 잃고, 비슈누는 몇번이나 인간으로 전생하여 아내를 찾아 헤맬 것이다. 또 브라만 승려는 강한 욕구에 시달릴 것이다, 그리고 브라마 신은 1년에 한 번 밖에 인간에게 숭배받지 못할 것이다.”

    이 저주에 책임을 느낀 가야트리는 사라스바티를 뒤쫓아가 “뜻하지 않게 당신의 일을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함께 브라마 신을 위해 의식에 참석하시지요” 하고 애원했다. 가야트리의 마음씨에 감동한 사라스바티는 그렇게 하기로 했지만, 그녀의 저주는 풀리지 않았다.

    그후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인드라 신은 악마에게 공격을 받아 부상당하고, 시바 신은 인간의 모습이 아닌 남근(男根) 형태로 인간의 숭배를 받게 되었다. 또 비슈누 신은 몇 번이나 전생을 되풀이하면서 그때마다 아내를 찾아 헤매게 되었고, 브라만 계급은 부패로 물들게 되었다.

    그리고 브라마 신은 유력한 신이었음에도 사람들에게 그다지 열렬하게 숭배받지 못하게 되었다.

     

     


    1)이때 사라스바티가 “아직 집안일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 끝내고 나서 다른 신들과 함께 가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시의 탄생

     

     

    사라스바티는 히말라야 산에서 고행을 하면서 브라마 신과 관계를 가져 남자아이를 낳았다. 갓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의 발 밑에 엎드려 인사를 하고, 운문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카비야 푸르샤였다고 한다, 이는 ‘시를 처음 지은 자’ 라는 뜻으로, 남성적 원리로서의 시가 신격화되었던 것이다. 사라스바티는 비록 자기 아들이지만, 문학의 어머니인 자신을 능가한 카비야를 칭송했다고 한다. 이는 『베다』경전이 신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그 이후에는 운문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신은 아들을 나무 그늘에 재우고, 성스러운 갠지스 강에 목욕을 하러 나갔다. 카비야가 태양의 뜨거운 열기로 고통받고 있을 때 마침 성자 우샤나스가 그곳을 지나고 있었다. 그는 카비야를 미아로 생각하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강에서 돌아온 사라스바티는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크게 당황했다. 그리고 이후 비탄에 잠겨 살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연히 만난 현자 발미키가 카비야의 행방을 알려주었다. 여신은 감사를 표하며 그에게 운문을 지을 수 있는 지혜를 주었다. 발미키는 그후 『라마야나』라는 유명한 서사시를 지었고, 그의 시를 공부한 비아사 또한 10만 구에 이르는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를 지었다고 한다.

     

     


    **윗 글은 책『여신』(다카히라 나루미 지음. 이만옥 옮김 도서출판 들녘)에서 발췌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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