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단이프
  • 이프북스
  • 대표 유숙열
  • 사업자번호 782-63-00276
  • 서울 은평구 연서로71
  • 살림이5층
  • 팩스fax : 02-3157-1508
  • E-mail :
  • ifbooks@naver.com
  • Copy Right ifbooks
  • All Right Reserved
  • HOME > IF NEWS > 여성신화
  • [42회] 한국 여신과 크레타 여신이 만나다
    김신명숙 / 2012-02-15 12:02:21
  • 버스는 한적한 해안 도로 한 편에 멈춰섰다. 버스에서 내리니 평소와 달리 거센 해풍이 몰아쳐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양손으로 꼭 잡고 있어야 했다. 푸르누 코리피(Phournou Koriphi) 주거지는 언덕 위에 있어 그곳까지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서로 손을 내뻗어 이끌고 도우며 꼭대기 유적지에 오르니 눈 아래 펼쳐진 탁 트인 해안 풍경이 또 절경이었다.

     

    주거지의 규모는 3일전 갔던 고니아보다 훨씬 작았다. 90여개의 방이 발굴됐고 거기서 도자기들, 인장들, 큰 검, 직조 용구들이 나왔다. 그런데 집들이 모두 같은 규모로 오밀조밀 모여있어 사회계층 분화가 일어나기 이전 시기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초기 미노아 사회가 공동체적이고 평등한 사회였다고 주장한 고전학자 루시 구디슨(Lucy Goodison)이 그 예로 든 것이 바로 이 푸르누 코리피 주거지라는 것.

     

     

    ▲푸르누 코리피 주거지를 알리는 안내판

     

    워낙 오래된, 무려 4천 5백여년 전에 존재했던 주거지라 그런지 보존상태는 좋지 않았다. 내 눈에는 그저 흩어져 있는 돌무더기들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 주거지에서 사람들이 도자기를 만들고 직물을 짜며 살았던 시기가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시기거나 그보다 더 앞섰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단군의 고조선 건국은 기원전 2333년.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나 여기서는 그냥 따르기로 한다)

    정말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느낌이었다. 이 곳의 사람들이 뱀여신, 자라여신을 숭배하고 있을 때 한반도에서는 곰여신을 숭배하고 있었던 것일까? (유명한 신석기 시대 뱀여신이 그 동쪽 옆에 있는 지역에서 발굴됐다)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던 무렵 크레타와 한국에서 숭배되던 여신들. 
     뱀여신, 자라여신, 곰여신(충남 공주 곰사당에 있는 熊神)
     

     

    우리는 당신들 할머니의 할머니의 뼈들이다

     

    리츄얼은 자라여신이 발굴됐다는 작은 신전의 낮은 돌제단에서 시작됐다. 그냥 보기에는 평평하게 다듬어진 평범한 돌같았다. 그런데 그것이 거의 5천년전에 만들어져 쓰인 제단이라니...

     

     

     

    ▲리츄얼이 시작되기 전 준비하는 모습.

     

     

    그 날의 리츄얼 안내자가 제단 정돈을 마치자 우리는 일렬로 서서 제단을 향해 걸어나아갔다. 그리고 제단을 둘러싸고 둥글게 모여섰다. 몇 사람이 자라여신상과 뱀여신상을 비롯해 돌장식품 등으로 제단을 장식하는 사이 우리는 이곳에 살았던 까마득한 고대의 여성들을 생각하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고대의 어머니여, 당신이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들어요.

    고대의 어머니여, 당신이 우는 소리를 들어요.

    고대의 어머니여, 당신의 웃음이 들려요.

    고대의 어머니여, 당신의 눈물을 맛보네요.

     


     

     


     

    이어 다음과 같은 시(패트리샤 라이스 지음)가 세 번 반복해 낭송됐다. 

    우리는 말하노니 기다림의 시간은 끝났다.

    우리는 말하노니 침묵은 깨져버렸다.

    우리는 말하노니 이제 망각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말하노니 들어라,

    우리는 당신들 할머니의 할머니의 뼈들이다.

    우리는 지금 돌아왔다.

    우리는 말하노니 우리는 당신들과 함께 있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와.

     

    낭송이 끝나자 안내자가 말했다.

    “우리는 조상들이 살았던 이 장소에 집에서 가져온 돌을 가지고 왔다. 우리보다 앞서 여자들이 왔었고 우리 다음에 여자들이 올 장소에 우리는 온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가 집에서 가져온 돌을 제단에 놓으며 말했다.

    “나는 (어디에서) 가져온 이 돌을 제단에 놓는다. 이 돌은 내게 (무엇을) 상징한다”

    그런 다음 그녀는 제단에 헌액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함께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우리 앞에 왔고, 우리 다음에 올 것이다”

    이어 사람들은 하나씩 앞으로 나아가 안내자가 한 것처럼 제단에 돌을 놓으며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 또 자신에게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말한 후 물이든 꿀이든 우유든 자신들이 가지고 온 액체를 제단에 부었다.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또 함께 “그들은 우리 앞에 왔고, 우리 다음에 올 것이다”라고 합창하듯 말했다.

     

    나는 내 차례를 기다리며 가져온 돌이 작은 가방 안에 잘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행을 준비하던 때 실무자 미카엘라가 보내 온 준비사항에는 리츄얼에 꼭 필요하니 ‘각자 사는 곳에서 돌을 하나씩 준비해 가지고 올 것’을 잊지말라는 당부가 명기돼 있었다.

    어떤 돌을 가져갈까 고민하다가 나는 집 앞 동산에 있는 돌을 하나 가지고 가기로 했다. 아파트 거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작은 동산은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여인의 모습을 닮아 있어 나는 그 동산을 여신으로 여겼다. 그 곳의 돌을 크레타로 가져오면 한국의 여신과 크레타 여신의 만남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지구의 기억을 담고 있는 돌인간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가져온 작은 화강암을 제단에 놓으며 말했다.

    “나는 집 앞 작은 동산에서 가져온 이 돌을 제단에 놓는다. 이 돌은 내게 사랑과 연결(connection)을 상징한다”

    모두의 순서가 끝난 후 또 다 함께 노래를 했다.

     

    우리는 나이 든 여자들

    우리는 젊은 여자들

    우리는 같은 여자들,

    전보다 더 강한.

     

    이어 안내자가 말했다.

    “미국 원주민 신화에서는 바위들을 돌 인간이라고 한다. 그들은 지구의 기억들을 담고 있다. 부디 이 돌들이 우리 각자에 대한 기억들을 담고 있기를, 또 모든 존재들, 모든 사람들, 그리고 우리의 어머니인 지구의 치유를 위해 우리의 에너지와 고대인들의 에너지가 합쳐지기를! 축복하며.”

    이로써 리츄얼은 끝났다. 우리가 가져온 돌들은 그곳에 그냥 남겨둔다고 했다. 자리를 떠나며 제단에 남아 있는 내 돌에 눈길을 던졌다. 누가 일부러 집어서 버리지 않는 한 저 돌은 앞으로 이 오래된 주거 유적지에 남아 있을 것이었다. 오래고 오랜 한국에서의 기억을 담고 있는 채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말하는 것처럼 돌인간이 되어 이 곳의 토박이 돌들과 서로가 담고 있는 오래된 기억들을 나눌 수도 있을까? 그 돌이 나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길 바라듯 나도 그 돌을 내 기억에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언젠가 미래의 시간에 이곳에 왔을 때 다시 만나기를 바라면서.

     

     

    ▲ 참가자들이 집에서 가지고 온 돌들로 장식된 제단 모습. 내 것은 정중앙 바로 왼쪽에 있는 큰 화강암이다.

     

    이제 사람들이 함께 내려가려 하고 있는데 캐나다에서 온 카렌이 내려갈 생각이 없는 듯 이곳저곳을 계속 왔다갔다 하는 게 보였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모처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정말 이곳에 마음에 드네요”

    그리고 그녀는 유적지의 한쪽 끝으로 가 발 아래 펼쳐진 개활한 바다에 긴 시선을 던졌다. 처음보다 순해진 바닷바람이 그녀의 머리와 치마를 보기좋게 날려주고 있었다. 그녀에겐 여기가 자신의 성소로 느껴지는 것인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모처럼 밝아진 분위기를 보니 다행이었다.

     

     

    ▲유적지 끝에서 내려다 보이는 개활한 바다.

     

     

     

     

     

     

    @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H*2012/02/120215_4f3b3255b0621.jpg|68123|jpg|1.jpg|#2012/02/120215_4f3b32598cfd6.jpg|86009|jpg|2.jpg|#2012/02/120215_4f3b325e19b91.jpg|45552|jpg|3.jpg|#2012/02/120215_4f3b32615edc8.jpg|63833|jpg|4.jpg|#2012/02/120215_4f3b32667e081.jpg|224541|jpg|5.jpg|#2012/02/120215_4f3b326bae6df.jpg|262158|jpg|6.jpg|#2012/02/120215_4f3b32706158d.jpg|205419|jpg|7.jpg|#@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
덧글 작성하기 -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덧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