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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회] “땅 가르고 물 갈라 살림 분산합시다”-공정한 재산 분배를 요구하는 여신들
    이프 / 2012-01-10 05:31:18
  • 제주신화에서 여신은 농경과 관련되는 지식, 종자 등을 가지고 외지에서 들어와 결혼한다. 여신들은 지금까지의 수렵문화 중심의 생활을 비집고 들어와 농경사회의 질서를 연다. 이 새로운 질서는 토착 수렵문화와 끝없이 갈등을 일으킨다.

     

     

                       ▲왼쪽, 입춘 굿 축제장의 사농바치(사냥꾼을 일컫는 제주어). 가운데, 일제 강점기 화전마을의 가죽옷을
                           입은 사농바치의 모습. 오른쪽, 목축과 농업의 결합인 바령 장면(송당 신화축제에서 재현한 장면).
     

    땅에서 솟아난 목축의 남신과 외지에서 종자 등을 가지고 들어와 결혼한 농경 여신 또는 해안마을 여신의 결혼생활은 맞지 않는다. 여타 현실의 결혼생활처럼 자주 갈등이 생긴다. 본성이 다른 둘이 만났으니 바람 잘 날이 없다.

     

     

    앞서도 살폈지만 이들 부부는 식성의 차이로, 주로 밭을 갈 때 이용할 소를 먹어버리거나 해안마을의 임신 중인 여신이 돼지고기의 냄새를 맡거나 먹어버려서, 별거 또는 이혼하게 된다.

    이혼은 이제는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계속 지켜져 온 관례를 여신들이 깨면서 이루어진다. 게다가 여신들은 ‘땅 가르고 물 갈라’ 살림을 나누자며 자신의 소유권을 당당하게 요구한다.

     

     

    ‘관계’가 없는 제우스와 헤라

     

     

    신화는 그 신화가 반영하는 사회가 지녀온 특수하고 객관적인 구조를 분석할 수 있게 한다. 여성과 관련해서도 신화는 그 사회에 존재하는 질서, 남성 지배를 반영한다.

     

     

    세계의 많은 신화들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언제 어디서나 아주 보편적이고 오래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남성지배-여성비하를 모든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 안에 그리고 사회구조 안에 자연스러운 질서로 만든다.

     

     

    제우스의 여성들은 제우스에 의해 일방적으로 간택된다. 그의 아내 헤라는 최고의 여신이다. 하지만 그녀의 자리와 권력은 남편 제우스에 의한 것이고 그녀는 그걸 잃을 생각이 없다.

    제우스는 사랑과 결혼이라는 약속을 깨트리고 뭇 여자들과 놀아난다. 질투의 여신 헤라는 남편이 아니라 남편과 바람이 난 상대여성에게 분풀이를 한다.

     

     

     

              ▲위 왼쪽, 제우스와 헤라(안니발레 카라치 그림). 위 오른쪽, 제우스와 이오(안토니오 알레그리 다 코레조 그림).

              아래, 제우스와 칼리스토(루벤스 그림)(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결혼의 신인 헤라는 머리에 관이나 장식을 하고 긴 옷을 걸치고 있다. 여유 있고 당당한 모습이다. 방은 품격이 있고 빛은 밝고 안정적이다. 제우스는 응석을 부리듯, 자기를 믿어주라는 듯 헤라를 바라보고 있다.

     

     

    이오와의 관계는 검은 구름으로 뒤덮인 곳에서 이루어진다. 제우스는 어디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데, 그의 색욕처럼 엄청난 크기와 어두운 색깔을 가진 어떤 동물 같다.

    이오와의 관계 후에 제우스는 헤라에게 들키지 않으려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킨다. 헤라는 제우스가 또 바람을 피운 것을 알지만 모른 척한다. 헤라는 제우스에게 암소를 선물로 달라고 하고는 100개의 눈을 가진 거인 아르고스에게 이오를 꼼짝 못하도록 감시하게 한다.

     

     

    칼리스토와의 관계도 어두운 곳에서다. 아르테미스를 섬기는 칼리스토에게 홀딱 반한 제우스는 아르테미스로 변장하여 칼리스토에게 접근해 간절히 바라보고 있다.

    질투의 여신 헤라는 칼리스토를 곰으로 만들어 버린다. 헤라의 음모로 결국 칼리스토는 아르테미스의 사냥에서 죽는다.

     

     

    헤라는 남편 제우스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여성을 곰으로 만들거나 태워 죽이기도 하면서 화를 풀고, 오로지 아내라는 자리와 권력, 결혼이라는 제도를 유지하는데 집중한다.

    제우스와 헤라의 이야기엔 ‘관계’가 없다. 둘의 관계는 유령 같다. 제우스만 있고, 헤라만 있지, 둘의 역동적인 관계는 없다. 이오와 칼리스토에 의해 구성되는 ‘새로운 관계’도 없다.

    제우스와 헤라는 아무 일도 없는 척 계속 딴청을 부린다. 제우스는 별별 짓을 다하며 계속 바람을 피우고, 헤라 역시 상대여성에게만 별별 짓을 다하며 복수한다.

    관계는 계속 달라지고, 다차원이 되었는데 제우스는 한결같이 전지적 제우스 시점, 헤라도 한결같이 전지적 헤라 시점으로 행동한다.

     

     

    바리데기, 순종의 스테레오 타입

     

     

    바리데기는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버려진다. 아무 잘못 없이 버려졌는데도 그녀는 아버지가 위독하자 온갖 고생을 다 견디며 생명수를 구해다 아버지에게 바친다. 또 세 아들을 3년, 또 3년, 또 3년에 걸쳐 낳고서야 아버지를 뵈러 가겠다는 말을 남편에게 할 수 있었다.

     

     

                                                    ▲바리데기(김동성 그림/출처 http://blog.naver.com/cibaba12)

     

     

    바리데기 신화는 우리 사회 제일의 전통윤리라 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효를 가장 중요한 메시지로 보여준다. 또 ‘눈 막고 3년, 귀 막고 3년, 입 막고 3년’이라는 여성의 결혼생활을 묘사하면서 성차별의 역사적인 자연스러움과 '삼종지도’라는 순종의 전형적인 예를 각인시키고 전파해 왔다.

     

     

    헤라는 질투라도 하지만, 우리 아내들은 더 딱하다. 감히 남편의 행동에 화를 낼 수도 없었고, 남편의 바람기나 폭력에도 말없이 참아야 했다.

    질투도 안 된다. 부당한 것에 대해서도 어떤 감정을 가지거나 행동을 하면 안 된다. 시부모를 잘 섬기지 못하거나 아들을 못 낳는 것과 함께 부정한 행위와 질투는 여성들에게 내려진 칠출, 칠거지악이었다.

    심지어는 남편의 부정행위나 폭력 앞에서도 ‘나 때문인가?’, ‘내게 잘못이 있나?’ 돌아보았다. 미운 마음 다 버리고 예쁘게 살아내고 있는데도 어느 날 달랑 보따리 하나와 함께 문 밖에 내던져지기도 했다.

     

     

    바리데기 류의 무조건적 순종은 남성지배 논리가 배포한 스테레오 타입의 품성이 똬리를 틀어온 것 아닐까. 심청, 춘향 또 그밖의 열녀들은 바로 그렇게 생겨난 가부장적 남성지배의 표찰일 것이다. 설령 지고지순한 희생이 선한 의지였다 하더라도 세상의 권력에 대한 지각능력이 없이 행하는 그들의 선함은 진실한 사회를 만드는데 해악이 되기도 한다.

     

     

    관례도 구태도 깨버리는 제주 여신들

     

     

    반면 제주신화에서는 남성지배-여성순종이라는 익숙한 질서, 규정된 가치에 대한 위반과 전복 행위가 심심치 않게 나타나 주목을 끈다. 제주신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전복 행위는 제주사회에 오래도록 있어온󰡐역사적인󰡑정신임을 확인해준다.

     

     

    제주신화는 제우스의 본능이나 헤라의 질투 같이 인간 감정,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그리스 신화와 다르다. 모든 차이를 여성 쪽에서만 견디고 양보하며 살았는데도 칠거지악과 같은 일방적인 악습으로 덜렁 보따리 하나와 함께 문 밖에 쫓겨나야만 했던 한반도 지역의 신화와도 다르다.

     

     

    가믄장아기는 “난 부모님 덕에도 먹고 살지만 내 운명으로도 먹고 산다”고 부모에게 이야기했다가 쫓겨난다. 그녀는 부모의 생각을 거역하고 그들의 생각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행동은 기존의 관례적인 효 관념에 반하는 것뿐이지 불효는 아니다. 부자가 된 그녀는 거지잔치를 벌여 거지가 된 부모가 자신을 찾아오게 한다. 또 부모와 함께 세상의 많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창조적인 효를 실천한다.

     

     

    자청비의 부부관계는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자청비는 온갖 고생 끝에 문도령과 어렵게 결혼하고는 자신들의 결혼 때문에 희생당한 여자에게 사랑하는 문도령을 한 달의 반, 보름 동안 보낸다.

     

     

    제주신화에는 자식, 부모, 형제, 부부 같은 친밀하고 일차적인 관계에 대한 새롭고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달라진 관계, 새로운 관계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나눈다.

    여전히 막강하게 지켜지는 무서운 관례도, 질리는 구태도 확 깨버린다. 습속이 굳어져 악습으로 군림하는 상황에서도 그녀들은 고분고분하지 않는다. 위반하고 뒤집는다.

     

     

     바람의 신화(제주신화 형상화 작업을 하고 있는 홍진숙의 그림)

     

     

    자유의 첫 걸음, 나와 내 마음이 일치하기

     

     

    ‘자유로운 너와 나’의 가치를 꿈꾸며 사는 우리들에게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남성지배-여성순종의 모습은 우리를 질리게 한다.

    바람난 남편에 대해 아내가 우선 소리 질러야 할 대상은 바로 옆에 있는 남편인데도 아내는 대뜸 상대 여성의 머리채를 뽑아놓으러 보무도 당당하게 나간다.

    또 그렇게 망가진 관계 이후 느끼는 환멸과는 별도로, 아내는 말없는 아침상을 내놓고 그녀의 자리를 보전한다. 자신에게 또 상대에게 질리지 않을 수 없다.

     

     

    관계의 불공정함을 어떤 형태로든 느끼고, 그 불공정한 관계의 눈치를 보느라 나와 내 마음이 불일치해지며, 억압과 계산된 순종이라는 질리는 구태 속에서도 하루하루 넘기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로 가야 한다는 것은, 그것의 실현 여부와는 별도로 공리(公理)이지 않은가. 적어도 평등과 공정함을 향해 가고 있고, 나와 내 마음이 일치되도록 하는 것이 존재의 핵심인 듯하다. 제주의 여신들, 가믄장, 자청비, 백주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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