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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회] 이건 분명히 여신이 내게 보낸 손짓이야.
    김신명숙 / 2011-12-19 06:21:14
  • 협곡의 길은 바다로 이어져 있었고 그 길이 끝난 한 쪽 편, 작은 만(灣)으로 이어지는 평지에 카토 자크로스 성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가 본 성소 세 곳보다 확실히 작았지만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그리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성소였다. 자갈이 깨끗하게 깔린 해변과 언덕으로 둘러싸인 어머니 품안같은 지형에다 유적의 작은 규모 덕인 듯했다.

    카토 자크로스 성소(약 1600-1450 BC)는 멸망후 약탈 혹은 도굴된 적이 없어 많은 유물들이 나왔다고 한다. 그 중 시테이아 박물관에서 본 선형A문자가 새겨진 점토판들, 크노소스에서 발굴된 것과 비슷한 황소머리 헌액용기, 수정으로 만든 아름다운 의례용기, 커다란 청동 양날도끼 등이 유명한 것들로 꼽힌다.

     

     

      ▲ (시계방향으로) 수정으로 만든 의례용기, 양손잡이 단지, 황소머리 헌액용기, 대형 청동양날도끼.

     

    전체적인 구조는 역시 다른 성소들과 같았다. 커다란 중앙뜰이 있었고 그 서쪽에 중앙 신전이 있었다. 또 그 주위에 사람들이 살았던 거주지가 이어져 있었다. 미노아 시대에는 이곳이 근동과 이집트를 향하는 관문으로서 상당히 번성했을 것이라고 한다.

     

     

     


                                              ▲카토 자크로스 평면도(상)와 고대 이집트 무덤벽화에 그려진 미노아인들.(하)

     

     

    자연의 요소나 생명체들과의 교감 능력

     

     

    특이한 것은 바닷가에 있어 그런지 물과 관련된 특별한 공간이 있다는 것. 동쪽에 둥그렇게 돌을 둘러쌓아 만든 작은 물웅덩이가 있는 방이 있었고 그 근처에 분수시설도 있었다.

    “자, 여기 와서들 보세요”

    크리스트의 손짓에 가서 보니 웅덩이 안에 자라 몇 마리가 한가롭게 유영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가리키는 크리스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자라 여신이지요”

    이틀전 아기오스 니콜라오스 박물관에서 보았던 ‘자라 여신’이 떠올랐다. 물이 생명의 원천으로서 숭배됐다면 그 곳에서 사는 자라가 여신으로 숭배되는 일이야 크리스트 말대로 자연스런 연상과 상징 작용으로 짐작해 볼 수 있는 일인지 모른다. 물웅덩이는 의례용으로 사용됐을 거라는데 정말 미노아인들이 자라를 그 곳에 기르며 여신으로 숭배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생명체가 아닌 ‘식품’으로 가축을 사육하다 병이 생기면 ‘살처분’이란 무시무시한 도살을 자행하는 현대 인간 종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 작은 생명체인 자라를 여신으로 느껴보려는 시도는 낯설지만 감동적이었다.

     

     

                                                                      ▲자라가 한가로이 유영하고 있는 물웅덩이

     

     

    한 때 맹수들의 먹잇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하며 지구어머니를 ‘정복’하고 ‘개발’하고 ‘통제’만 하려는 현대인들. 그러면서 자연과의 교감능력을 상실하고 마침내는 인간생태계도 파괴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가 나무든 물이든 흙이든, 호랑이든 뱀이든, 자연의 요소나 생명체들에 대한 존중과 숭배, 영적 교감이라면, 눈 앞의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자라에게서 여신을 볼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얼마나 필요한 능력인 것일까?

    그런 능력이야말로 여신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고, 우리가 매일의 수련을 통해 끊임없이 키워가야 할 영혼의 씨앗일 것이었다.

     

     

    한적한 성소에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그만큼 자유로웠다. 여기저기 발길 닫는 대로 돌아다니고 있는데 크리스트가 나를 비롯한 몇을 중앙뜰에서 불렀다.

    “자, 여기를 눈을 감고 발길 닿는대로 걸어보세요. 어떤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나는 그녀가 시키는대로 눈을 감고 걸었다. 양 팔을 옆으로 벌리고 돌부리에 걸리지 않을까 긴장하며 천천히....

    하지만 긴장해서였을까, 그런 일에 낯설어서였을까? 발길이 닿는대로 걸었을 뿐 특별히 에너지라고 할 만한 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조금 걷다 눈을 뜨니 크리스트가 좀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짓는 것같았다.

    그녀는 집중하는 태도로 천천히 중앙뜰을 걷기 시작했다. 미카엘라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들이 걷기에 몰입하는 태도가 너무 진지했기 때문에 나는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슬쩍 뜰에서 빠져나왔다. 저들은 정말 에너지를 느끼나 보다, 부러워하면서.

     

     

                                                     ▲중앙뜰을 걷고 있는 일행들. 맨 오른쪽 붉은 상의가 크리스트.

     

     

    “나는 트랜스 상태에 있었다”

     

     

    그 중앙뜰이 크리스트에게 특별한 장소라는 걸 나는 돌아온 후 그녀의 책 『여신과 함께 한 오디세이』를 읽고 알았다. 그 책에서 크리스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성소 안에 들어서서 나는 엄청난 피로를 느꼈다. 너무 피곤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갈 수 없을 정도로. 우리가 중앙뜰의 북서쪽을 향해 돌벤치를 지나갈 때 나는 그곳에 누워 눈을 감았다. 내가 정말로 잠들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여간 눈을 떴을 때 나는 트랜스 상태에 있었다. 나는 다른 현실에 깨어 있었다. 공기가 진동하는 게 보였으며 북쪽 언덕, 마을이 있던 유적지를 바라봤을 때 그곳의 계단길을 오르내리고 있는 여자들이 거의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나는 자리를 옮겨 중앙뜰 가에서 남쪽을 향해 앉았다. 아직도 공기의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뜰을 바라보며 나는 어떤 기대감(sense of anticipation)을 느꼈다.

    “춤이 시작되려 하고 있어요”

    캐슬린이 내게 왔을 때 나는 말했다....해가 지기 한 시간쯤 전이었고 고대의 돌들은 마지막 햇볕을 받고 있었다.....

    갑자기 캐슬린이 일어나 외쳤다.

    “뜰에 나 있는 춤추는 길이 보여요. 크노소스 파이스토스 말리아에서 보았던 행진길같은. 당신도 보이나요?”

    무언가가 나를 뜰 안에 들어서게 했고 나는 천천히, 천천히 양 팔을 들고 팔굽을 구부리고 양 손바닥을 앞으로 했다. 나는 고대 리츄얼 댄스의 길을 찾아 뒤로 앞으로 뜰을 가로질러 걸어나갔다. 뜰의 중심에 다가갔을 때 더 이상 걷기가 어려워졌다. 정확히 중심점에서 멈춘 나는 몸을 돌려 캐슬린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걸은 길은 내가 본 길과 정확히 일치해요”

    캐슬린은 놀라서 소리쳤다.“

     

     

     
                                                   ▲카토 자크로스 성소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자갈해변과 해변가 식당.

      

    그날 저녁 모클로스 식당에서 크리스트와 저녁을 함께 하면서 나는 뜻밖의 손님을 만나게 됐다. 마라 켈러(Mara Keller). 여신영성 혹은 여성영성을 가르치는 대표적인 미국 대학인 CIIS(California Institute of Integral Studies)의 교수였다. 크리스트와 예일대 동기로 막역한 친구 사이였다. 안식년을 맞아 크레타에서 머물고 있던 그녀가 크리스트와 약속을 잡은 것이었다.

    그녀에 대한 소개를 들은 순간, 나는 속으로 뛸 듯이 기뻤다. CIIS는 여신학을 공부하기로 작정한 후 언젠가 한번 가서 강의를 듣거나 온라인 강의라도 들어보려고 작정하고 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트와 달리 체구도 작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그녀는 내가 궁금해 하는 것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연락하라며 자신의 명함도 건넸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한국여성도 소개해 줬다. 이름이 이인희라고 했다.

    ‘이건 분명히 여신이 내게 보낸 손짓이야.’

    시원하고 부드러운 바닷바람 속에서 특별히 제공된 와인을 마시면서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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