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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회] 바닷가에서 미궁 속으로 들어가다
    김신명숙 / 2011-12-05 11:14:06
  • 저녁에는 바닷가에서 하는 바다 리츄얼(sea ritual)이 있었다.

    바다를 환기시키는 푸른색이나 초록색, 흰색의 옷을 가능한 한 흐르는 듯한 스타일로 입으라는 요청이 있었고, 한낮의 시간을 편안하게 쉬며 보낸 사람들은 가뿐한 발걸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크리스트의 뒤를 따랐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바닷가 길은 포근하고 아름다웠다.

     

     

                                                                      ▲ 핑크빛 구름이 환상적이었던 바닷가 길.
     
     

    우리가 도착한 곳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넓은 공터였다. 바다를 마주한 공터 한쪽에는 돌로 그려진 미궁이 있었고 그 옆에는 비슷한 크기로 땅을 살짝 파서 만들어놓은 둥근 터가 있었다.

     

     

     
                                                               ▲돌로 그려진 미궁(위)과 그 옆의 둥근 터.
     
     

    우리는 나이가 젊은 순서대로 줄을 지어 둥근 터로 다가갔다. 처녀여신 역을 맡은 안내자는 “바다의 소리, 새 소리를 듣고 하늘과 바다와 땅의 색채들을 보라”고 했다. 그리고 “발이 땅에 닿을 때 소금기 섞인 공기를 마시고 자신의 몸 자체가 되어 스스로 풍경의 한 부분이 되라”고 말했다.

    둥근 터 가장자리에 모인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에너지를 모았다.


     


    바다는 지구의 시원이라네

    모든 생명은 바다로부터 나오네

     

     


     

     

    “당신은 중심을 찾았습니다. 집에 왔어요”

     

     

    이어 처녀여신 안내자는 일행을 옆에 있는 미궁으로 이끌고 갔다. 그녀가 미궁 입구에 멈춰서자 할머니 여신 역을 맡은 안내자가 그 옆에 섰다. 그리고 크노소스에서 낭송했던, ‘미궁의 여주인’ 아리아드네를 찬양하며 여성적 지혜를 얻기를 간구하는 시를 읊기 시작했다.

    처녀여신은 미노아 여신처럼 팔굽을 굽혀 양팔을 들고 손바닥을 앞으로 편 포즈로 미궁 안으로 떠났다. 다음엔 가장 나이가 적은 참가자가 입구로 가서 양팔을 들고 서 있다 잠시 후 할머니 여신의 신호에 따라 미궁 속으로 걸음을 떼었다. 이어서 다음으로 나이가 적은 사람이 입구로 가서 서고....

     

     

    한 사람 한 사람 미궁으로 들어갈 때마다 할머니 여신은 시를 낭송했고 미궁에 들어간 사람들은 걷기 명상을 하듯 침묵 속에서 천천히 걸으며 중심을 향해 나아갔다. 걷다가 옆길에서 오는 사람을 만나면 손바닥을 부딪쳐 서로를 격려했고, 길을 잘못 들어 마주보고 걷게 되면 몸을 돌려 서로 양손을 부딪친 후 엇갈려 나아갔다.

    처음 중심에 도달한 처녀여신은 그곳에 서서 사람들을 맞았다. 그녀 앞에 서자 그녀는 들고 있는 그릇에 담겨있는 달팽이 껍질들(내가 섬에서 주운 것과 똑같은) 중 하나를 내 배꼽에 대고 말했다.

    “당신은 중심을 찾았습니다. 집에 왔어요”

    그리곤 그 달팽이 껍질을 내게 주며 다시 말했다.

    “평화롭게, 기쁨에 넘쳐 가세요”

    나는 몸을 돌려 온 길을 다시 되짚어 가기 시작했다. 입구를 향해, 천천히....

    점점 햇살이 힘을 잃어가는 가운데 공터에는 우리들 밖에 없었고 들리느니 나지막한 바닷물 소리 뿐이었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을 헛갈리지 않으려 애쓰며 되돌아 나오자니 기분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나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차올랐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느낌인 듯 눈을 내리깔고 무언가 생각에 빠져 걷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중요한 것, 삶의 중심과 연관된 것이었으리라.

     

     

    직선적인 시간관 혹은 세계관에 물들어 살아 온 내게 미궁 리츄얼은 깊은 감동을 남겼다. 삶의 끝은 죽음이고 죽음은 영원한 무(無)이며, 따라서 ‘단 한번 뿐’인 삶이라는 생각이 주는 허망함, 또는 성취를 향해 더 앞으로 나아가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만이 성공이라는 생각에 후퇴와 추락을 좌절로만 받아들이는 태도....이런 것들이 직선적 시간관 혹은 세계관이라면 미궁의 시간관 혹은 세계관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중심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것처럼 죽음은 새로운 탄생과 연결되며 중심에 도달하려면 전진과 후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해야 한다는 깨달음....중심은 결국 모든 것을 다 품는 온전함이며 모든 존재들의 영원하고 궁극적인 집이라는 희망....

    그 중심, 현재의 내게는 ‘여신’으로 불리는 그 중심을 아직 내 전존재로 만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입구로 가는 실마리는 찾은 것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니 아리아드네에게 간절히 빌고 싶었다.

    ‘나를 인도해 주소서.

    집으로 이끄소서.‘

     

     

    일몰의 감동과 아름다움

     

     

    미궁에서 나온 사람들은 차례차례 옆의 둥근 터로 다시 모였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신비로 가는 길이 있네

    내가 걸어갈 때 그것은 모습을 드러낸다네

    심연과 어둠 속 그 길

     

     

    마지막으로 온 처녀여신과 할머니여신까지, 사람들이 다 모이자 모두 손을 잡고 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계속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었다. 누구든 먼저 노래를 시작하면 함께 따라부르며 노래들이 이어졌다. 제일 인기 있는 노래는 역시 <우리 모두는 여신에게서 왔네>였다.

     


     

     

    리츄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펼쳐진 주변 풍경은 말 그대로 석양의 향연이었다. 핑크빛 구름에 금빛으로 불타는 듯한 산등성이....낮과 밤의 경계, 그 모호한 신비의 시간 속을 걸으며 이 시간이 오래전 내가 죽음의 공포를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시간이었음을 떠올렸다. 문득 크노소스를 비롯한 성소들의 신전, 신성한 방들이 서쪽건물에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는 사실도 상기됐다.

    미노아인들에겐 지는 해가 뜨는 해보다 더 성스럽게 느껴졌던 것일까?

    그 몇 달전 여름, 덴마크 북해 해변가에서 거센 바닷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빠져들었던 장엄한 일몰도 생각났다. 언어와 사고가 정지되고 다만 몸이 깨어나던 그 시간.

     

     

                                                                          ▲황금빛으로 불타던 석양
     
     


    왜 우리는 한 해를 보내고 맞을 때도 새해 일출만 보고자 하는 것일까? 가는 해의 마지막 일몰이 주는 감동과 아름다움, 성찰은 도외시하고? 직선적 시간관에서야 앞 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나선형 순환적 시간관에서는 가는 것이 곧 오는 것이고 오는 것이 곧 가는 것인데.

    이제 순례일정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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