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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회] 부처가 된 할머니 : 경주 남산 할매부처 이야기
    조승미 / 2011-11-29 12:51:30
  • 언제부터인가 TV 방송에 자막 서비스가 많아졌다. 외국말이 아닌 우리말이라고 해도 자막이 나오니까, 이제는 소리를 듣는 것 대신 자막을 읽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 일부러 자막을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소리를 듣고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직접 소리를 듣는 일이 종종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넘쳐나는 시각정보에만 의존하고, 소리에 점점 둔감해져 가는 우리의 뇌는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 같다. 문자와 소리는 뇌가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는 정보이다. 문자가 스피디한 시각정보처리 대상이라면, 소리는 보다 많은 신경과 뇌조직을 동원해야 하는 고차원 정보라 한다. 우리가 점점 시각정보를 선호하고 더 많이 의존하는 것은 그 정보처리의 빠른 속도 때문일 것이다.

     

     

    인문학이 다루는 자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빠른 속도로 마음을 사로잡는 자막처럼, 일차적으로 눈앞에 있는 문헌자료가 학자들에게 ‘이것이야 말로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게 한다. 하지만, ‘소리’라고 하는 실물이 엄연히 있듯이, 문헌 역시 실물(實物)의 현장(現場)을 표상(혹은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장을 읽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마치 소리를 듣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많은 부분이 종합적으로 활용되어야 하는 것처럼, 현장의 이해는 축적된 인문학적 능력이 총동원되어야 하는 일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적, 유물에 대한 연구는 그 나라 인문학 나아가 문화의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여신연구에는 문헌보다 유적유물이 더 중요

     

     

    특히나 여신연구에 있어서 유적유물 연구는 너무나 중요하다. 문자로 기록된 문헌이 가부장제 검열을 가장 강하게 받은 것이라면, 민중의 입으로 전승된 구술자료는 그 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성격을 갖는다. 가장 오래된 것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역시 ‘땅에 속해 있는 것들’이다. 땅에 속한 것은 사람의 말과 글이 덮어버릴 수 없는 물적 공간을 확보하면서 탄생시절의 모습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문헌 속의 여신을 찾아다니기만 바빴다면, 이제는 땅에 속한 것들에서 여신의 흔적을 찾고자 한다. 물론 온 신경을 동원해야 소리를 겨우 들을 수 있을까말까 하게 우리는 이미 가부장제 역사 속에서 귀머거리가 되어 있지만, 이제라도 익숙한 자막 정보를 내려놓고, 본래의 감각에 의지하면서 더듬거려 나간다면 잃어버린 옛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여, 이번에는 경주 남산으로 가서 ‘땅에 속한 것’이 어떤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보고자 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할매부처’! 얼마 전 KBS 1박2일 프로그램에서 이승기가 찾아간 곳이라고 ‘승기부처’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한다. 유홍준 선생이 멤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경주 남산의 유적을 하나하나 느끼면서 볼 수 있게 해주었는데, 마지막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이 할매부처였다.

     

     

                                         ▲할매부처로 불리는 경주 남산불곡 석불좌상(慶州南山佛谷石佛坐像) 보물 198호.

     
     

    경주 남산에서 현재 발굴된 유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7세기 초, 삼국시대)이라고 하니, 신라 성소인 남산의 터줏대감이자 말 그대로 유물 유적(遺物 遺跡)의 ‘조상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불상을 보면 지금껏 우리가 보아왔던 근엄하고 남성적인 혹은 세련되거나 심각한 느낌의 그것이 아니다. 부드럽고 친근하면서도 위엄이 살아있는 그리고 명백한 여성의 느낌이 강한 불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이것을 ‘할매부처’로 불러왔다는 사실이다.

    ‘할매’라기보다는 얼굴이 팽팽한 것이 아직은 젊은 ‘아지매’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할매’란 오래 전에 우리에게 여신을 지칭하는 이름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 설화나 지명 속의 할멈, 할미, 할망, 노고, 한미 등이 모두 그러하지 않았던가.

     

     

    여성적 얼굴의 불상들

     

     

    여신 할매가 부처가 된 이 불상은 독특한 점이 매우 많다. 단단한 화강암으로 된 바위를 90cm나 파서 동굴 같은 감실을 만들고, 불상을 사람 몸 크기와 비슷하게 조각해서 그 안에 좌정시켰다. 감실형 불상 그리고 앉은 자세의 좌상 마애불이 우리나라에서 많이 보이지 않는지라 그 자체만으로도 독특하다고 하겠지만, 이는 당시 당나라 산동지방의 영향일 수 있다고 미술사학자들이 지적한다. 하지만, 학자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불상만의 특이한 점은 바로 불상의 얼굴, 손모양 그리고 버선을 신고 있는 점 등이다.

     

     

    우선, 얼굴에 대해서 말하자면, 7세기 삼국시대 불상조성의 변화를 그 배경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시기에는 백제와 신라에 마애불(磨崖佛)이 많이 조성되었던 시기이다. 마애불이란 커다란 암벽에 불상을 새긴 것을 말하는데, 기원전후 인도에서부터 시작되어 이후 간다라, 서역 지방을 거쳐 중국 각지에서도 마애불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마애불 자체가 백제 신라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삼국의 불교전래기에는 금동불이나 소조불이 주류였던 것에 비해, 이 시기에는 석조불상 특히 마애불이 많이 조성되면서 불상의 얼굴에 특히 변화가 발생한 것을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휴대나 이동이 가능한 불상은 외래적 요소를 반영할 가능성이 더 높지만, 마애불과 같은 소위 붙박이형 불상은 그 땅의 문화적 속성을 반영할 여지가 더 높을 것임을 알 수 있다.

     

     

                                    ▲할매부처는 그저 산에다 갖다 놓은 돌 불상이 아니라, 산, 바위와 한 덩어리의 몸을 하고 있다.

                                    할매부처의 얼굴은 그 땅에 살던 사람과 그 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땅에 속한 것을 불상으로 만들어 내면서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의 문화를 반영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조건에서 친근한 여성형 얼굴이 불상에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더욱 주목되는 점이다.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신라 배리 삼존불 중 주존불의 얼굴도 매우 여성적이다. 학자들의 연구에서 이 불상이 여성적이라는 평가는 전혀 없었지만, 보는 이가 여성적인 느낌을 받게 되는 경험적 사실은 분명 제작자가 가진 의도(민중에게 친근한 이미지의 불상제작)와 함께 그 불상에 대한 신앙문화의 성격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경주 남산 배리 삼존불 중 주존 석가모니불
     

     

    보다 명료하게 여성형을 취한 불상도 있다.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 마애불의 경우가 그것인데, 이 불상도 비슷한 7세기 초에 조성되었으며, 주존불 오른쪽 협시불 제화갈라 보살상의 얼굴은 영락없이 충청도 아주머니가 웃고 있는 모습이다.

     

     

                                              ▲충남 서산 마애불의 제화갈라 보살상 (지금은 보호각이 설치되어서

                                              아침햇살에 비친 이 보살님의 환한 미소를 보기 어렵다)
     

     

    마애불이 조성되면서 불상의 얼굴이, 익숙한 지역 사람의 얼굴로, 민중의 친근한 얼굴로 그리고 여성형의 얼굴로 변화된 사례를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할매부처는 이 밖에도 또 다른 차별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할매부처만의 독특성

     

     

    서산마애불이나 배리삼존불이 친근한 민중, 여성형 얼굴을 포함한다고 해서 그 불상들이 불교 도상의 규칙을 변형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할매부처는 소매 속으로 맞잡은 손을 감추는 방식의 모양을 취하고 있으며, 더군다나 버선을 신고 있는 점이 그 유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할매부처의 형태를 가장 유사하게 계승했다고 생각되는 불상이 지리산 쌍계사에 하나 있다.

    이 마애불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할매부처의 감실형 스타일과 손모양 등이 유사하여, 할매부처의 불상형식이 이후에도 계승되었는지 추측해 볼 수 있다. 다만 쌍계사 불상은 앉은 좌법이 좀 달라졌으며 버선인지 맨발인지 알 수 없고, 무엇보다 여성의 얼굴이 아닌 점이 큰 차이점이다.

     

     

                                                                               ▲지리산 쌍계사 감실 마애불
     

     

    불상에서 맨발이 아닌 버선을 신은 사례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손을 드러내지 않고 소매에 감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점 때문에 할매부처의 토속적인 면은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그리하여 할매부처는 삼신할매상이다, 선덕여왕 시기에 조성된 선덕여왕상이다, 또는 도교의 여신 서왕모상이다 등등의 설들이 많다.

    할매!, 할매는 정말 누군교?

     

     

    그런데 할매불상 주변의 지형과 신앙형태를 현장 조사한 한 연구에 의하면 조금 다른 각도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할매부처가 있는 감실 주변에는 용왕당, 수량이 풍부했던 지하 용출수 연못, 감실 바위에 새겨넣은 수로(水路)와 소(沼)의 조각, 인근의 남근석 등이 있었으며, 그리고 지금도 매년 많은 무속인들에 의해 할매부처제가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김정화, “경주 남산 불곡감실석조여래좌상에 관한 고찰” 경주대학교 문화재연구소, <<경주문화연구>> 2003.)

    할매부처가 토착적이고 민중적인 신앙형태를 그대로 껴안고 탄생하였으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생명이 시작되는 물이 할매부처의 신성한 공간에 이어지도록 상징적으로 배치된 점이 눈에 띈다. 우리에게 큰 암석은 죽음과도 연관되었고 생명과도 연관되었던 것이다. 고인돌이 죽음이었다면, 할매부처 바위는 생명의 공간이었다. 죽음의 암석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듯이, 생명의 물은 감실이라는 작은 동굴로 상징적으로 흘러 응결되도록 바위표면에 물길이 새겨져 있었고, 소(沼)가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 할매에게 여인들은 잉태를 바라고 치병을 빌기 위해 찾아왔던 것이다.

    할매가 부처님인지, 도교나 무속의 여신인지, 아니면 통치자 여왕인지 그들에게는 별의미가 없었는지 모른다.

     

     

    할매의 본래 이름은?

     

     

    하지만 할매의 본래 이름을 되찾는 일은 무의미한 것이 아닐 것이다. 부처의 이름으로 그리고 불상의 형식을 수용하기는 하였지만, 할매부처에 대한 신앙은 오래된 전통 여신신앙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잠깐, 선도산 성모 이야기를 통해 신라에 여신의 상(像)이 존재했을 수 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선도성모는 지혜비구니에게 ‘내 자리 밑에서 금을 파내어 쓰라’고 말했었다. 성모의 자리라고 하는 것이 성모의 상인지 불분명하지만, 성모상을 지칭한다고 유추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더구나 지혜비구니의 꿈에 선도 성모가 아름다운 장식을 한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하지 않았던가.

     

     

    할매부처가 조성된 시기는 선도성모가 지혜비구니의 꿈에 나타난 시기와 그리 차이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혜비구니가 점찰법회를 봉행한 시기는 원광법사가 활동한 7세기 초 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신라의 종교적 열정이 가장 응집된 성소 남산에서 할매부처가 가장 먼저 생긴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 할매, 신라의 전통 여신이 불상화된 것이 할매부처라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신라인들은 불상의 양식을 받아들이고, 부처의 이름을 빌려왔지만, 부처가 취하지 않는 손모양과 버선을 통해 차별화를 보였던 것 아닐까?

    “이 할매는 그냥 부처가 아니고, 우리의 여신이란 말이요”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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