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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회] 나의 성소를 발견하다
    김신명숙 / 2011-10-31 06:12:12

  • 크레타 북동부, 아기오스 니콜라오스로부터 더 동쪽으로 훌쩍 떨어져 있는 모클로스는 작은 항구를 둘러싸고 형성된 아담하고 한적한 어촌이었다. 늦은 오후, 구불구불 아래로 경사진 길을 내려가 마을 초입에 들어서니 바닷가에 바로 붙은 그림 같은 작은 카페들이 나를 들뜨게 했다. 버스 안에서도 탄성이 나왔다.



    가정집을 증축해 만든 듯한 펜션같은 호텔에 짐을 푼 후 사람들은 각자 마을산책에 나섰다. 호텔에서 몇걸음 나서면 바로 개활한 바다였다. 작은 섬들을 품어 안고 부드러운 바람에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는 ‘이제 편히 쉬라’고 말해주는 것같았다. 마침 다음날은 저녁때 바다 리츄얼만 예정돼 있는 ‘프리 데이’였다.

    나는 들어올 때 보았던, 바닷가에 바로 붙은 예쁜 카페에 홀려 서둘러 그곳으로 향했다. 거기서 바다를 바라보며 혼자 조용히 커피 한잔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호사를 누릴 수 있을 것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카페는 문이 닫힌 상태였다. 나 외에 카페를 찾은 일행 몇 명도 실망한 빛으로 발길을 돌렸다.

     
     

                                                                    ▲바닷가에 바로 붙은 그림같은 작은 카페
     


    첫 눈에 반한 곳, 나의 자리

     

     

    바닷가를 따라 정처없이 발길 닿는대로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보다 좀 거세진 바닷바람이 오히려 기분을 더 고양시키는 듯했다. 보트들이 묶여있는 자그마한 항구 너머로 앙증맞아 보이는 꼬마섬 하나가 바짝 다가앉아 있었는데 그게 아마 유적지로 유명한 모클로스 섬인 것같았다. 미노아 시대에는 그 섬이 마을과 붙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중요한 무역항 중 하나로 꽤 번성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조용한 휴식을 위한 관광지로서의 성격이 두드러지는 것같았다. 

    바닷바람을 충분히 쐰 나는 숙소를 향해 가다가 숙소 가까이 바다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하얀 교회로 방향을 틀었다. 교회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에도 정말 마음에 꼭 드는 장소를 만나게 됐다.

    말 그대로 ’첫 눈에 반한‘ 그 장소.

    교회 앞의 바다가 바로 보이는 작은 공터였다. 공터 가운데는 돌단을 둥글게 두른 나무 하나가 서 있었고 그 앞으로는 사각 돌기둥을 그냥 눕혀놓은 것같은 단순한 돌벤치가 놓여 있었다.

    자석에 끌리듯 돌벤치에 가서 앉았다. 땅거미가 지기 전 힘을 잃은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와 앉고, 주변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눈 앞까지 잔잔하게 밀려와 속삭이듯 부서지기를 반복하는 바닷물 소리 뿐....

    한 순간에 세상이 정지된 듯, 혹은 사라져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은 연한 핑크빛으로 번져가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완전한 평화라고나 할까.....

     
     

     
                                                                                  ▲바닷가 교회와 돌벤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나’라는 의식을 잠시 놓아버린 것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렇게 조용히 차오르는 충일한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을 테니까.

    ‘나의 자리’(my place) 라는 말이 저절로 머리에 떠올랐다. 순례가 끝난 후 언제고 순례를 회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를 ‘나의 성소’가 바로 그 자리가 될 것임을 나는 직감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이런 성소를 허락해준 나의 여신에게....



    알겠다. 왜 바다가 여신인지...



    다음날 아침 식사를 마친 나는 바로 나의 자리, 나의 성소로 향했다. ‘프리 데이’였으므로 발길은 가뿐했고 마음은 느긋했다. 날씨도 최상이었다.

    공기가 커팅이라도 된듯 반짝이며 빛나는 지중해의 아침 햇살 아래서 마주한 바다는 어제와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돌벤치 아래로 내려가 물가에 이르니 물이 워낙 깨끗하고 맑아 속의 바위와 돌들이 그대로 다 들여다 보였다.

     
     

                                                                                   ▲깨끗하고 투명한 바닷가
     
     

    신발을 벗고 물에 발을 담근 채 눈을 감았다. ‘차르르~ 차르르~’ 쉬지 않고 이어지는 물결소리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것같았다. 장단이라도 맞추듯, 관음의 휘날리는 옷자락같은 산들바람이 온몸을 휘감았다. 바다의 신비가 그곳에서 펼쳐지는 듯했다.

    임신한 여자의 자궁안에 있는 양수의 성분은 바닷물의 성분과 거의 똑같다고 한다. 인류의 조상이 물고기일 것이라는 ‘과학적’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었고 최근에도 제기된 적이 있다.(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1008601004) 그렇다면 바다는 지구 어머니의 양수인 것인가?



    어디로 가나?

    알 수 없는 그곳.

    삶과 함께 죽음을 본 후

    언제나 두려웠고

    그만큼 갈망했던,

    그 깊은 그리움이

    더듬는 그 곳.

     
     

     
                                                                        ▲ 저녁의 작은 항구 풍경과 아침바다.
     


    갑자기 물살을 가르며 무언가가 요란하게 지나가는 소리에 눈을 떴다.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파랗고, 그 무한하게 펼쳐진 눈 시린 파란 세상을 가르며 모터보트같은 것이 모클로스 섬 쪽을 향해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좇다가 눈 아래를 보니 일렁이는 물결 위에 내 그림자가 뚜렷했다. 그 형상이 마음에 들어 카메라로 찍다가 문득 여신상이 생각나 여신상 포즈를 흉내내 사진을 찍어보기도 했다.

     
     

                                                                          ▲여신상 포즈를 흉내내 찍어본 사진
     



    그래, 내가 여신이다!

    이 바다는 한때 내 안에 있었던 그 양수이기도 하다.

    이 바다가 여신이고 저 바위가 여신이듯, 저 태양과 내 뒤의 나무가 여신이듯, 나 또한 여신인 것이다! 아니, 여신에게서 나와 여신에게로 돌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여신이다! 살아있음의 신성함과 죽음의 거룩함, 바다의 영원함과 찰나마다 바뀌는 물살의 무상함이 결국은 하나라는 걸 내 눈 앞의 바다는 말해주고 있었다. 수천년전 미노아인들에게 그랬듯이.

    나는 그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 숙소에서 녹음기를 가져다 물가 바위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녹음기가 돌아가는 동안 내가 캠코더라도 된 듯 주변의 소리와 풍광, 감촉을 내 몸속에 빨아들였다. 


     

    푸른 바다는 끊임없이 잔물결을 토해내며 시시각각 색채를 달리했다. 저 멀리 인디고 블루부터 사파이어 블루, 터키 블루 등 다채로운 파란색 사이사이로 올리브 그린과 에메랄드 그린의 초록빛들이 스며들어 주변의 작은 섬들과 어울리며 완벽한 조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단 한 순간도 멈추는 일 없이.

    왜 고대 신화들에서 바다가 여신으로 상징됐는지, 아프로디테가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났고 해수관음이 숭배됐는지 알 수 있을 것같았다. 바다가 상기시키는 먹먹한 원초적 그리움과 거대한 아름다움, 그것이 바로 여신의 모태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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