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프북스가 다섯 번째 출판 펀딩 프로젝트로 1999년 이프 봄호와 안티미스미스코리아 페스티벌 히스토리를 믹싱한 소장판 제작을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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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거울에 침을 뱉는가!!
왜 안티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변 모아봤습니다!
Q : 안티미스코리아가 뭐죠?
A : 1997년 대한민국 최초의 페미니즘 잡지로 창간했던 이프가 가장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가 바로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입니다.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은 사실 출판사이프의 첫 단행본인 [미스코리아대회를 폭파하라]의 출간이벤트로 기획된 행사였습니다. Q : 그래서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이라는 행사의 취지나 형태는 어떤 것이었나요?A: 1990년대말 미스코리아 대회는 온 가족이 TV앞에 모여 앉아 마치 한일전 축구관람 하듯 수영복 입은 여성의 몸을 심사하고 점수를 매기고 우열을 가리는 축제로 여겨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미스코리아 되라”는 말을 칭찬으로 덕담으로 하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어떻게 엄마, 아들, 딸, 아빠, 할머니와 할아버니까지 모두 둘러앉아 벗은 여자의 몸을 보고 점수를 매기는 프로그램을 공중파 생중계로 봐야하냐”는 질문으로부터
이 불편부당함을 이야기해보자는 취지로 “미스코리아대회를 폭파하라”는 본격 페미니즘 무협소설이 1999년에 출간되었고
그 소설의 출간이벤트로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 즉 여성들이 자신의 미를 스스로 뽐내는 어떤 무대를 만들어보자, 했던 겁니다.Q :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이 얼마나 화제가 되었던거죠?A ;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의 영향으로 결국 2002년도에 미스코리아대회의 공중파 생중계가 중단되었습니다. 2002년도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에는 미스코리아들이 참관해서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은 99년 1회부터 2009년 10회까지 매회 치러질 때마다 각 지역 뉴스방송은 물론 방송3사의 8시, 9시 뉴스를 장식했던 이슈였습니다. Q : 왜 그토록 화제가 되었던거죠?A ; 일단 모든 면에서 미스코리아 대회와 경쟁했고 미스코리아 대회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은 무대가 처음인 이들이 “메시지”를 가지고 무대에 올라 자신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출전자들이 매회 30~50여명이 모였고 합숙훈련까지 거쳤으며 출전자들에게는 웃자상, 놀자상, 뒤집자상, 안티미스코리아상 등 차별화 된 수상을 통해 격려와 영광을 나눠받았습니다. 출전자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와 이야기가 다 달랐기 때문에 재미있었고 아마추어리즘이 가득한 무대는 관객이 같이 즐길 수 있도록 흥미를 유발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Q : 이번 출판 프로젝트에서 이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A : 1999년은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이 처음 치러진 행사이고 그 해 봄호 특집은 외모지상주의를 다각도로 점검한 “네 거울에 침을 뱉어라”였습니다. 그러므로 1999년 이프 봄호와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을 같이 기록하는 이번 작업은 현재 탈코르셋에 대한 논쟁이 1999년부터 그 시작과 조짐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여성들이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재정의하고 나름의 방법으로 추구하려는 노력이나 논의들은
어느날 일부에 의해 갑자기 생겨난 바람이 아니라 꾸준히 다각도로 이어지고 있었다는 계보를 확인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한 프로젝트입니다.
또한 각종 젠더관련 연구소, 센터, 학자, 학생들이 이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에 대한 기록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프가 한번도 제대로 안티를 기록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자각이 이 출판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한 주요 계가기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후원으로 이프가 안티를 제대로 기록하고
여성들의 미에 대한 다양한 노력과 논쟁과 고민들이 어떤 역사를 가진 이야기인지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