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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성해방의 관점에서 본《겨울왕국》
    한지환 / 2014-03-25 12:35:11
  • 들어가며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겨울왕국》의 열기가 뜨겁다. 2014년 1월 중순 개봉한《겨울왕국》은 2월 중순까지 8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들이며 애니메이션 역대 최고 흥행대작이 됐다. 애니메이션 역사상 유례없는 흥행을 몰고 온《겨울왕국》에 대해 언론은 “과거 디즈니의 부흥기를 이끌었던《인어공주》,《미녀와 야수》등의 계보를 잇는 공주 이야기인 동시에 기존과 확연히 다른 주인공을 등장시켜 디즈니의 변화를 알린다”고 평가했다.

    《겨울왕국》을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가진 기존의 틀을 깬 작품으로 평가하는 논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당당하고 자립적인 여주인공 엘사와 안나, 그리고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빠짐없이 등장했던 소위 ‘왕자의 키스’를 대신하는 둘의 뜨거운 자매애이다. 이를 근거로 이 영화를 여성해방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거나, 심지어 급진적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정치적 레즈비어니즘(lesbianism)’과 결부시키려는 논자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 영화를 해석해볼 생각이다. 1970년대 초 미국에서 거론되기 시작해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남성해방(men's liberation)은 여성해방(women's liberation)과 더불어 성해방(gender liberation)을 지탱하는 양대 기둥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그동안 엘사와 안나에게만 초점을 맞추며 여성해방의 관점에서 이 영화를 해석한 이들과 달리, 남성해방의 관점에서 이 영화를 해석해보려 한다. 남성해방의 관점에서도《겨울왕국》은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남주인공 크리스토프

    필자가 눈여겨본 것은 남주인공 크리스토프이다. 다들 알다시피 그동안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남주인공은 소위 ‘백마 탄 왕자’가 대부분이었다. 실제 신분이 왕자가 아닌 경우라도 알라딘과 존 스미스, 리샹처럼 뛰어난 용기와 지략을 갖춘 남성이거나, 적어도 플린 라이더처럼 여주인공보다 풍부한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그녀를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남성이었다.

    반면 크리스토프는 첫 등장에서부터 이들과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도입부에서 크리스토프는 억센 사내들 사이에 끼어 힘겹게 얼음을 캐는 소년으로 나온다. 자기처럼 어린 순록 스벤이 끄는 작은 썰매에 얼음조각을 싣고 어른들의 행렬을 따라가는 그의 모습은 다소 애처롭게 느껴질 정도이다. 성장한 크리스토프의 모습도 여느 남주인공과 다른 어수룩하고 유약한 모습이다. 답답할 정도로 세상물정을 모르고 사회성이 부족한 얼음장수로서, 그의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은 함께 자란 스벤과 숲속의 트롤들뿐이다. 그러던 중 엘사로 인해 닥친 갑작스러운 추위로 장사를 망치게 된 크리스토프는 홧김에 가게주인에게 허세를 부리다 길거리로 내동댕이쳐지고, 결국 안나의 도움으로 필요한 물건과 먹거리를 구한 뒤 함께 엘사를 찾으러 떠난다. 안나를 만나기 직전, 헛간에서 몸을 녹이며 부르는 노래를 통해 관객들은 그동안 사람들 속에서 매 맞고 모욕당하며 오직 순록에게만 마음을 주었던 그의 서글픈 인생살이를 읽어낼 수 있다.

    안나와 함께 엘사를 찾으러 가는 여정에서도 여느 남주인공이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인다. 유일한 재산이라 할 수 있는 썰매가 망가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쫓아오는 늑대들을 따돌리는 과정에서도 안나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특히 얼음거인의 추격을 피하는 장면에서 그의 모습은 알라딘의 용감하고 재치 있는 모습과 크게 비교된다. 병사들의 추격을 피해 건물 아래로 뛰어내리기에 앞서 겁먹은 자스민에게 날 믿을 수 있느냐고 물으며 자신 있게 손을 내미는 알라딘과 달리, 크리스토프는 로프에 묶인 채 머뭇거리다 먼저 뛰어내린 안나에 의해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얼음거인에게 도로 끌려올라간 뒤에도 과감히 로프를 끊은 안나의 용단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다.

    요컨대 시종일관 상대를 위기에서 구하며 여정을 이끌어가는 것은 크리스토프가 아닌 안나이다. 전반적으로 크리스토프의 모습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유약한 ‘오타쿠(otaku)’의 그것과 유사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몇몇 논자들은 안나와 크리스토프의 사랑을 과소평가하며 엘사와 안나의 자매애에만 주목한다. 그러나 제니퍼 리(Jennifer Lee) 감독이 2월 3일자 언론을 통해 스스로 밝혔듯이, 엘사와 안나가 보여주는 뜨거운 자매애는 성별을 초월한 가족애를 보여주는 것일 뿐, 동성애(同性愛)를 전면에 내세워 이성애(異性愛)를 배척하는 것은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다. 만약 엘사와 안나의 자매애에만 초점을 맞추어《겨울왕국》을 해석할 경우, 왜 굳이 크리스토프라는 남주인공을 등장시켰느냐는 의문이 남게 된다.《메리다와 마법의 숲》에서처럼 연인으로서 남주인공을 등장시키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토프를 등장시킴으로써 전달하려 한 바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유약한 크리스토프와 안나의 사랑이야말로 이 영화를 성해방의 관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전례 있는 여주인공, 전례 없는 남주인공

    사실 강인한 ‘디즈니 프린세스’는 이미 오래 전부터 관객들에게 낯설지 않다. 성별을 숨긴 채 아버지 대신 군공(軍功)을 세워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는 뮬란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구혼자들 앞에서 놀라운 활솜씨를 과시하고, 급기야 곰이 된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이름난 전사(戰士)인 아버지와 칼을 맞대는 메리다는 강인한 ‘디즈니 프린세스’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밖에도 에리얼과 벨, 자스민과 포카혼타스 등 1980년대 말 이후 등장한 ‘디즈니 프린세스’ 중 상당수는 연약하거나 수동적이라 말하기 어려운 이들이다.

    그러나《겨울왕국》이전까지 좀처럼 깨지지 않았던 고정관념이 있으니, 바로 남주인공은 여주인공 이상으로(적어도 버금가게) 뛰어난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끝내 연인을 만들지 않은 메리다를 제외하면, 강인한 ‘디즈니 프린세스’와 맺어진 남주인공들은 그녀들보다 더 강하고 유능한 인물들이다. 뮬란의 연인 리샹은 전도유망한 청년장수로서 그녀를 지도한 훈련대장이며, 포카혼타스의 연인 존 스미스는 신대륙 탐험을 지휘하는 선장으로서 다른 선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바다의 사나이’이다. 에리얼과 벨, 자스민의 연인들도 모두 그녀들 이상의 힘과 능력, 또 그에 어울리는 지위를 갖춘 인물들이다. 물론 알라딘은 자스민처럼 고귀한 태생은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용기와 지략으로 이를 극복해낸다. 남주인공은 여주인공 이상으로 뛰어난 인물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심지어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노골적으로 풍자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슈렉》에서도 발견된다. 여주인공 피오나는 털털한 행동거지와 뛰어난 무술실력을 자랑하는 강인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남주인공 슈렉은 럭비선수 같은 용기와 배짱을 뽐내며 화룡(火龍)이 지키는 성(城)에 갇힌 피오나를 구출해내는 인물로 나온다.

    따라서《겨울왕국》을 성해방이라는 관점에서 다룰 경우 엘사와 안나보다 더 주목해야 할 캐릭터는 크리스토프라 할 수 있다. 여주인공으로서 유사한 전례를 찾을 수 있는 엘사와 안나와 달리, 크리스토프는 남주인공으로서 전례가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여주인공의 역할’을 맡은 남주인공 크리스토프

    또 하나 눈여겨보아야 할 사실은 엘사와 안나가 사회적 압력에 따라 자신들의 모습을 바꾸려하지 않듯이, 안나와의 사랑도 크리스토프의 유약한 모습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트롤들의 노래〈fixer upper〉를 통해 감독은 인간 개개인의 본성은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고 또 바꾸려 해서도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본성의 변화를 통해 ‘보호자’, ‘구원자’의 모습을 갖추리라 기대할 수도 없고, 따라서 어찌 보면 강인한 안나에게 오히려 짐이 된다고 할 수도 있는 크리스토프가 가진 본연의 장점은 따뜻하고 소박한 그의 성품, 그리고 안나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헌신이다.

    이를 사랑에 대한 진부한 예찬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미녀와 야수》에서 여주인공 벨은 한결같은 사랑으로 왕자에게 걸린 저주를 풀고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낸다. 미숙한 사내가 진정한 남성으로 거듭나기 위해, 때로는 위급한 상황에서 숨겨진 힘을 끌어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여성의 사랑이라는《미녀와 야수》의 모티프는 동서양을 막론한 수많은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중요한 모티프이다.

    혹자는 마법에 걸려 얼어붙은 안나를 되살린 것은 크리스토프가 아닌 엘사라는 사실을 지적할지 모르나, 안나를 되살린 것이 크리스토프의 뜨거운 키스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크리스토프는 안나를 구원할 사람이라 믿었던 한스 왕자에게 그녀를 부탁한 뒤 떠나려다 눈보라가 아렌델을 휩쓰는 모습을 보고 안나의 안위를 염려해 돌아왔을 뿐이다. 얼어붙은 안나를 바라보며 무력하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통해, 크리스토프가《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왕자들처럼 자신이 안나를 구원할 수 있다 믿고 자신 있게 달려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스벤의 등에 매달려 정신없이 아렌델로 달리는 크리스토프의 모습은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하는 이의 안위를 염려하는 순수한 마음 하나로 야수의 성(城)을 향해 말을 달리는 벨의 모습과 훨씬 유사하다.

    벨이 한결같은 사랑으로 왕자에게 걸린 저주를 풀고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내듯이, 결말부에 이르러 안나에 대한 크리스토프의 변함없는 사랑과 헌신은 보잘것없는 얼음장수에 불과했던 그에게 새 썰매와 아렌델 왕실의 ‘공식 얼음공급 대사’라는 지위, 그리고 공주의 배필이라는 감히 바랄 수 없었던 명예를 안겨준다. 물론 여느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달리 둘의 성대한 결혼식이 열리지는 않지만, 안나와 크리스토프의 다정한 모습에서 관객들은 크리스토프가 왕자와 결혼한 벨과 똑같은 보상을 받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전례 없는 남주인공 크리스토프가 맡은 역할은 그동안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여주인공들이 맡은 역할과 여러 모로 유사하다. 물론 초창기 ‘디즈니 프린세스’처럼 하염없이 구원을 기다리는 캐릭터는 아닐지라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그동안 ‘디즈니 프린세스’의 연인들이 갖추었던 남성성을 대부분 털어낸 캐릭터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성해방 영화는 남성해방과 여성해방을 아울러야 한다

    그렇다면 성해방과 관련해 크리스토프라는 전례 없는 남주인공이 가지는 의의는 무엇일까? 이 영화를 성해방의 측면에서 해석하면서 당당하고 자립적인 엘사와 안나, 그리고 둘의 자매애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이런 해석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며, 이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성해방도 ‘반쪽짜리’에 그치게 된다. 일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망상과 달리, 남녀는 어떤 형태로든 사회 내에서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남성을 배제한 채 성해방과 관련된 논의를 여성만의 잔치로 만든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이다. 어떤 영화가 진정한 성해방 영화라 평가받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 성(性)만이 아닌 남녀 모두에게 새롭고 발전적인 삶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2013년 10월호《월간조선》에 게재된 글〈‘남성해방’을 위한 提言〉에서 설명했듯이, 성해방은 비단 여성해방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혹자는 가부장제라 불리는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 아래서 여성이 일방적으로 부자유(不自由)를 요구받은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 구조 아래서 남성 역시 여성 못지않은 부자유를 감수해야 했다는 것은 오늘날 젠더(gender) 연구자들 사이에서 널리 인정되는 사실이다. 뮬란이나 메리다처럼 남성성을 지향하는 여성들은 자신들의 ‘보호자’, ‘구원자’가 되기를 자처하는 남성들이 그런 삶을 스스로 선택한 것인 양 이야기하곤 하지만, 남성이 여성의 ‘보호자’, ‘구원자’가 되는 것은 남성 개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무관한 것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성은 오직 여성의 ‘보호자’, ‘구원자’로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을 때에만 비로소 사회와 다른 성(性)으로부터 진정한 남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 뮬란이나 메리다 같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낙인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성이 사회와 다른 성의 욕망에 부합하기 위해 우아하고 정숙한 모습만을 보여야 했듯이, 남성도 같은 이유로 강하고 의연한 모습만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근 남성사 및 여성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이런 남성성과 여성성 간의 상호관계이다. 남성사(男性史) 및 여성사(女性史) 전문가 조지 모스(George Mosse) 교수는 저서《남자의 이미지》에서 현대 남성성의 구성요소에 대해 설명하면서, 남성은 결코 고립된 채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남성의 자기 이미지 속에 늘 여성이 있다는 점”, 즉 ‘영웅적인 남성’은 언제나 ‘겁에 질린 여성’과 함께 등장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대 남성성은 부분적으로 여성성과 대비를 통해 구축됐다는 것이다. 현대 남성성이 구축되는 과정에서 여성은 ‘남성과는 다른 아름다움과 수동적인 본성을 지닌 존재’, ‘남성에게 종속적이지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의존은 남성성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인식됐다고 모스 교수는 주장한다. 이를 근거로 재고해보면 “여성은 남성과 관련해 규정되고 구별되지만, 남성은 여성과 관련해 규정되지 않는다”는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말은 잘못된 지적임을 알 수 있다.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성도 그 자체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남성성 또한 여성성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안나와 크리스토프의 사랑은《겨울왕국》의 메시지를 완성하기 위한 또 하나의 기둥

    여기서 우리는 크리스토프가 얼마나 중요한 캐릭터인지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엘사와 안나는 매우 강하고 유능한 캐릭터이다. 최근 주목받는 골드 미스(gold miss), 알파걸(α-girl)의 또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함 또는 약함이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다. 즉 강함과 약함은 궁극적으로 둘 이상의 사회구성원이 맺는 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한다면, 안나의 강함과 유능함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은 유약한 크리스토프가 곁에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사실 앞서 언급한 여러 ‘디즈니 프린세스’는 강함과 유능함에서 안나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들의 그런 성향이《겨울왕국》에서만큼 빛을 발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녀들과 관계를 맺은 남주인공들이 그녀들보다 더 강하고 유능한 이들이고, 이를 통해 그녀들보다 능동적인 ‘해결사’로 자리매김하기 때문이다.

    만약 크리스토프가 알라딘과 존 스미스, 리샹 같은 캐릭터였다면 안나가 남주인공과의 관계에서 지금 같은 위치에 설 수 있었을까? 만약 크리스토프가 여느 남주인공처럼 용기와 지략을 발휘해 쫓아오는 늑대들을 따돌리고 얼음거인을 물리치며 수많은 문제들을 앞장서서 해결했다면, 안나는 자신의 강함과 유능함을 증명할 기회를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근래의 여러 ‘디즈니 프린세스’가 그러하듯이 안나도 최선을 다해 크리스토프를 도왔을지 모르나, 그녀의 강함과 유능함은 결코 지금처럼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게 틀림없다. 모스 교수가 말한 ‘영웅적인 남성’과 ‘겁에 질린 여성’이 그러하듯이, 강인한 안나의 이미지와 유약한 크리스토프의 이미지는 서로를 지탱하고 보완하는 관계이다. 따라서 이 둘의 사랑은《겨울왕국》이 진정한 성해방 영화로 자리 잡는 데에 있어 엘사와 안나의 자매애와 더불어 결코 빠뜨릴 수 없는 또 하나의 기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오며

    물론《겨울왕국》도 성해방이라는 측면에서 완벽한 작품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일단《슈렉》에서 풍자된 고정관념, 즉 ‘디즈니 프린세스’는 하나같이 젊고 아름다운 인물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겨울왕국》에서도 답습되고 있다. 대부분의 ‘디즈니 프린세스’와 마찬가지로 엘사와 안나는 모두 빼어난 미인들이다. 또한 ‘보호자’, ‘구원자’의 성별이 달라졌을 뿐, 구원의 대상은 여전히 여성이라는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그동안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가 위험한 도전과 인내를 요구받는 ‘보호자’, ‘구원자’라는 역할을 남성에게 지우고 그로 하여금 여성의 안전을 전적으로 책임지도록 한 것은〈‘남성해방’을 위한 提言〉에서 설명한 ‘보호할 권리’, ‘보호받을 권리’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물론 크리스토프는 안나에 의해 수차례 위기를 모면하고 마지막에는 안나와의 사랑으로써 놀라운 신분상승을 이루지만, 수많은 ‘디즈니 프린세스’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누렸고 이제는 성해방을 통해 남성에게도 마땅히 주어져야 할 ‘보호받을 권리’가 크리스토프를 통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필자는《겨울왕국》을 보고 난 뒤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성해방이라는 목표를 향해 올바른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성해방의 궁극적인 목적은 남녀 개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성해방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데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남성성과 여성성에 얽매임 없이 최대한 다양한 남녀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순박하고 유약한 크리스토프의 존재가《겨울왕국》에 꼭 필요한 것인 만큼, 1980년대 이전에 등장한 순수하고 연약한 ‘디즈니 프린세스’의 존재도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는 것이다. 남성성과 여성성 간의 긴밀한 상호관계를 생각할 때, 남성성을 갖춘 인물과 여성성을 갖춘 인물은 둘 중 어느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자연히 존재의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 크리스토프의 순박함과 유약함이 없이는 안나의 강함과 유능함이 빛을 발할 수 없듯이, 과거 순수하고 연약한 ‘디즈니 프린세스’가 없었다면 제아무리 용기와 지략을 겸비한 왕자라 해도 남성으로서 자신들의 존재의미를 찾지 못했을 게 틀림없다.

    따라서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남성성과 여성성 자체가 아니라, 생물학적 성별을 이유로 남녀 개개인의 능력과 성향을 무시한 채 요구되는 부자유이다. 남녀 개개인이 생물학적 성별에 얽매임 없이 강하면 강한 대로, 약하면 약한 대로 각자 본연의 모습을 인정받으며 다른 성과 상호적이고 쌍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때에 우리는 남녀 모두의 자유와 다양성이 보장되는 성해방을 향해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겨울왕국》에 묘사된 강인한 안나와 유약한 크리스토프의 사랑은 이 때문에 빛날 수 있는 것이고,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지금보다도 한층 더 다양하고 새로운 남성상과 여성상을 제시하는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미래지향적인 성해방 영화로서《겨울왕국》이 지니는 의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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