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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훈 선생님께
    한지환 / 2010-10-25 11:20:10
  •  

      안녕하십니까. 이지훈 선생님. 한지환입니다.

      지난번에 쓰신 글「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를 죽이는 딸」하단에 남긴 댓글과 관련해 글을 써주셨더군요. 관심 가져주신 데에 감사드립니다만, 몇 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아마 그동안 제가 주장했던 내용들을 정리하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우선 여성 억압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기하신 “여성으로 살겠는가? 아니면 남성으로 살겠는가?” 라는 질문은 매우 감정적인 질문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질문을 받은 사람의 가치관과 인생관, 심지어 그때그때의 감정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선생님께서는 위의 질문에 대해 전자를 선택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짐작하시고 이 같은 질문을 던지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마 선생님께서 남성의 삶과 역할을 동경하시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이름 있는 아르바이트 정보 사이트 <알바몬>이 2010년 7월 대학생 1,09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남학생은 응답자의 53.4%가 “여자로 사는 것이 남자로 사는 것보다 훨씬 편한 것 같다”고 답한 데에 반해, 여학생은 39.9%만이 “남자로 사는 것이 여자로 사는 것보다는 훨씬 편한 것 같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여러 차례 이야기했듯이, 저는 여성에게 주어진 삶과 역할을 동경하는 남성이며, 따라서 현 사회에서 남성으로서 주어진 삶과 역할에 대해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남성해방운동(男性解放運動, Men's liberation movement)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이며, 저의 스승이신 정채기 교수님을 비롯한 많은 남성해방운동가들도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기왕 감정적인 질문을 던지셨으니, 여기에 대해서도 한 번 고민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삶이 남성의 그것보다 편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선생님께서 제기하신 질문은 시사적, 학문적 관점에서 젠더(gender) 문제를 다룸에 있어 그다지 의미가 없는 질문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성을 “불완전한 남성”으로 간주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말을 소개하셨는데, 물론 대다수 문명사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미숙하고 판단력이 부족한 미성년자(minor) 같은 존재로 간주된 것은 사실입니다. 나아가 후기 산업사회인 오늘날에는 더 이상 이런 불평등한 성별 이데올로기를 고수할 이유가 없다는 데에도 십분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전근대사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미숙한 존재로 간주된 이면에는, 여성이 필연적으로 남성의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당대의 현실이 숨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지난번 오찬호 선생님의 글「‘암탉이 울면’ 사교육이 없어진다」하단에 남긴 댓글에서도 밝혔듯이, 인간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여도 생존에 어려움이 따랐던 전근대사회에서, 여성은 오직 남성의 생산노동에 의존해서만 자신들의 의식주를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과학기술의 뒷받침이 없는 상황에서 자연재해나 외적(外敵)을 상대로 투쟁을 벌임에 있어, 물리적인 힘이 부족한 여성은 남성의 보호가 없이는 생존 자체를 보장받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여성에게도 나름의 역할이 부여되기는 했으나, 스스로 생존을 책임질 수 없는 여성이 자신을 보호해주는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설 것을 기대했다면, 이것은 당시의 현실을 무시한 처사일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ㆍ로마를 비롯한 대다수 문명사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미숙한 존재라는 관념이 왜 만들어졌는지, 그 원인을 보다 심도 있게 파헤쳐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물론 여성의 위상이 남성의 그것보다 열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에게 주어진 나름의 명예와 위상을 간과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남성에 의해 생존을 보장받았을지언정, 출산과 수유(授乳)는 남성이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여성 고유의 영역이었고, 따라서 여성을 사회 전반에서 배제된 아웃사이더(outsider)로 간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14∼16세기 르네상스(Renaissance)를 거치며 개인의식이 성립되기 전까지, 대다수 문명사회의 구성원들은 혈족(血族)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았으며, 따라서 남성과 혈연적으로 맺어진 여성은 신분제사회의 피지배층처럼 비천하고 상스러운 존재일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대다수 문명사회에서 여성은 ‘없어서는 안 될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았으며, 자신이 속한 신분에 걸맞은 “고결함(respectability)”이라는 관념을 부여받았다는 것이지요.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제가 이곳 게시판에서 몇 차례 소개해드린 조지 모스(George Mosse) 박사를 비롯한 남성사(男性史) 및 여성사(女性史) 연구자들의 저서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여성이 자유를 빼앗겼다”는 선생님의 주장에도 다소 어폐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흔히 ‘가부장제(家父長制, Patriarchy)’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 하에서, 남성 역시 자신의 성(性) 정체성을 만들어감에 있어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누차 지적했듯이,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 하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은 이중적인 관련성과 상호 지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남성 역시 자신의 의지로 자유롭게 성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와 이성(異性)의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만들어지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물론 남성이 선천적으로 우월한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이 사회ㆍ경제적 생산수단을 수반하는 만큼, 성 정체성이 완성된 뒤에는 현실적으로 여성보다 많은 방종이 허용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사가 콘스탄스 브리텐 부셔(Constance Brittain Bouchard) 박사의 지적처럼, 그것은 어디까지나 힘에 바탕을 둔 방종이었을 뿐, 사회ㆍ문화적 구조가 원칙적으로 허락한 권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난번 아가멤논의 경우와 관련해 지적했듯이, 남성들의 방종은 남성성의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 하에서는 남녀 어느 누구도 사회ㆍ문화적 구조가 강요한 성적(性的)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며, 따라서 자유의 유무(有無)를 남성과 여성의 차이라고 주장하시는 것은 부적절한 처사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남자로 사는 것도 쉽지 않다”고 가볍게 얼버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남성과 여성의 역할 중 어느 것을 선택하든 일정한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고 그에 따른 반대급부를 부여받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성(性)의 보호 아래 가정이라는 사적(私的) 영역의 지킴이로 남는 것과, 위험을 무릅쓰고 공적(公的) 영역으로 진출하여 다른 성보다 우월한 위상을 차지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은 선택인지는 개개인의 가치관과 인생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많은 남녀 구성원이 전통적인 성별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 페미니즘(Feminism)과 매스큘리즘(Masculism) 간의 발전 격차로 인해 남성의 의식개혁이 여성의 그것보다 상대적으로 뒤떨어졌다는 사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자신들이 겪었던 성적 억압에 훨씬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기본적으로 전통사회가 요구한 남녀의 역할은 각각 일장일단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성별 이원체계는 남녀 어느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여성이 남성의 “소유”였다는 주장도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전근대사회에서 딸의 배우자 선택권이 아버지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셨는데, 동서양의 거의 모든 문명사회에서 결혼이 당사자 간의 사랑을 매개로 이루어지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즉 전근대사회에서의 정략결혼은 비단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또한 가정 내에서 남편은 아내의 보호자였으며, 따라서 딸이 아버지에게 복종하듯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계서제(階序制)가 발달한 전근대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자신의 상급자에게 복종해야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동서양의 지배계급인 귀족이나 양반 역시 자신의 군주에게 복종해야 했고, 장성하여 일가(一家)를 이룬 아들이라 해도 부모의 권위에 반드시 복종해야 했던 것이 당대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이들의 관계 역시 소유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실 생각이신가요?

      만약 여성이 남성의 소유였다고 이야기한다면, 여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소유의 대상인 ‘노예’와 같은 입장이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물론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Eduard Fuchs)를 비롯해 그러한 주장을 내세우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대다수 문명사회에서 남성에게 요구된 ‘여성에 대한 보호의 책임’이 남성성이라는 관념을 형성하는 데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는 사실, 그리고 남성성과 여성성이 상호 지시 관계를 맺으며 서로를 만들어왔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명백한 소유의 대상인 노예에 대한 처우는 어디까지나 주인의 자의(自意)에 달려있었으며, 고대 그리스ㆍ로마시대 사람들은 오늘날 버릇 나쁜 개를 때려죽여도 벌을 받지 않듯이, 노예를 제멋대로 해코지해도 벌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만약 여성이 남성의 노예나 다름없었다면, 그런 여성의 생활과 안전을 보장할지의 여부는 어디까지나 남성 개인이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문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다수 문명사회에서 남성에게는 자신과 동일한 신분의 여성을 모든 종류의 위험과 불명예로부터 보호할 책임, 자신에게 속한 여성을 신분에 걸맞게 부양할 책임이 요구되었으며, 이러한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경우 그는 진정한 남성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성이 단순한 소유의 대상이었다면, 왜 사회ㆍ문화적 구조는 남성에게 여성에 대한 책임을 요구했던 것일까요?

      나아가 만약 여성이 노예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고대 그리스ㆍ로마에서 노예가 시민계급의 정체성을 결정할 수 없었듯이, 여성도 남성의 성 정체성을 결정할 수 없었어야 마땅합니다. 즉 남성성이라는 관념이 만들어짐에 있어, 여성은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남성은 단지 여성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며, 남성성의 창조에 여성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하고 있다는 것은 우테 프레베르트(Ute Frevert), 카렌 하게만(Karen Hagemann), 카스파 마제(Kaspar Maase),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 등 수많은 젠더 연구자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결국 이러한 사실들은 여성이 남성의 “소유”였다는 선생님의 주장이 지나친 비약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남자는 아내를 보호해야 하고 여자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나폴레옹 법전』213조의 내용처럼, 원칙적으로 여성은 보호자인 남성에게 복종해야 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보호와 피보호의 관계에 바탕을 둔 필연적인 귀결이었을 뿐, 이러한 복종의 의무가 여성이 노예와 같은 존재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성이 남성의 “소유”였다는 선생님의 주장은, 남성이 자유로운 입장에서 자신들의 기분에 맞추어 여성을 만들어왔다는 매우 편향적인 시각에 바탕을 둔 주장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이곳 게시판에 올린 글들과 댓글들을 통해 주장해온 내용들을 이번 기회에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어 보람 있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진지한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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