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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신명숙 선생님께
    한지환 / 2010-09-29 05:40:49
  •  안녕하십니까. 김신명숙 선생님. 한지환입니다.

      최근 일본 페미니스트들에게 온라인이프를 소개하고자 애쓰시고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페미니즘 저널인 온라인이프를 이웃나라 일본에 소개하시려는 선생님의 노력은 여성해방운동의 범주를 넘어 양성평등운동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라 되리라 믿습니다. 좋은 성과 거두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온라인이프에 올라온 일본의 원로 페미니스트이신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이 많지만, 최근 가장 예민한 젠더(gender) 이슈라 할 수 있는 병역 문제와 결혼 문제를 다룬 부분과 관련해 몇 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우선 여느 페미니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께서도 군필자 가산점제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셨더군요. 일전에 오찬호 선생님과의 토론을 통해 밝혔듯이, 저 역시 군필자 가산점제도는 남녀공동병역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보조수단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들과 달리 불가피한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장애인들의 불만을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성 징병제라는 근원적인 성적(性的) 억압을 남겨둔 채 군필자 가산점제도만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부적절한 처사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에 징병제나 전쟁에 반대한다’는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의 말씀은 현실성이 부족한 이상주의의 발로로 해석될 수밖에 없으며, 오늘날 병역 문제를 둘러싼 남녀 갈등을 해소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문명이 존재하는 이상 전쟁과 폭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는 일정 수준 이상의 군사력과 경찰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것입니다. 특히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께서도 인정하셨듯이, 남북한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 징병제 자체를 폐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남성들이 남북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평화운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셨지만, 아무리 평화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해도 남과 북이 하루아침에 통일될 리가 없으며, 적어도 그때까지는 징병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께서는 그때까지 지금과 같은 남성 징병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또 지난 수천 년 간 병역을 비롯한 각종 공적(公的) 의무가 남성에게만 요구되어온 현실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페미니즘(Feminism)과 매스큘리즘(Masculism)의 입장에서 우선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징병제 자체가 아니라 그동안 징병제가 남성만을 병역대상자로 간주했다는 사실입니다. 젠더리즘(Genderism)에 바탕을 둔 시각에서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왜 지금껏 남성에게만 목숨을 바쳐 사회구성원을 보호할 책무가 요구되었는가?” “그러한 책무가 남녀의 사회적 역할과 지위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지 않는 한, 병역 문제를 둘러싼 남녀 갈등을 해소할 해법을 찾을 수 없습니다.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남성 징병제 하에서의 병역이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가 남성에게 강요한 성적 억압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문제를 논하며 ‘남성’이 아닌 ‘징병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의 태도는 사회구조를 여성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하려는 아전인수(我田引水)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양성평등사회에서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공적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께서 단 한 번도 고민해보신 적이 있으신지 솔직히 의문스럽습니다.

     

      그리고 “남성들은 이제 여성들에게 소비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씀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우선 말씀하신 이른바 “소비재로서의 남성(경제적으로 힘이 약하지만 여성들을 즐겁게 해주는 남성)”이 제공하는 ‘즐거움’이 오늘날의 사회ㆍ문화적 구조 속에서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제가「한국 여성에게 고하는 글」에서 지적했듯이, 여성의 경제력과 무관하게 오늘날 결혼시장에서 배우자감으로 각광받는 것은 소위 “생산재로서의 남성(여성의 생활을 보장해주고 의지할 수 있는 남성)”입니다. 즉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에 부합하는 “생산재로서의 남성”에게 남성으로서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매력이 말씀하신 즐거움과 무관한 것일까요?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고학력 전문직 여성들(흔히 Gold Miss라 불리는)조차 자신이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하는 “소비재로서의 남성”을 배우자로 맞이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결과적으로 여성들을 즐겁게 해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지금의 사회ㆍ문화적 구조 속에서 여성에게 참된 즐거움을 제공하는 쪽은 오히려 “생산재로서의 남성”이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남성들이 다양한 모습을 보이기를 거부하며 “생산재로서의 남성”이라는 모습만을 고집하는 것은, 남성들 못지않게 여성들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재로서의 남성”이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을 여성들이 참된 즐거움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그들을 외면하는 현실 속에서, 남성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남성 3고(高), 중년동정(中年童貞)과 같은 신조어가 화제가 되고 있는 사회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께서도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셔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소비”라는 단어 자체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최근의 남성사(男性史) 연구에 비추어 보면 역사적으로 남녀 모두는 서로를 ‘소비’해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녀 모두는 사회와 다른 성(性)의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만들어져왔으며, 남성 역시 여성들이 매긴 우선순위에 부합하기 위해 여성이 요구한 성적(性的) 스테레오타입에 자신들을 맞추어왔다는 것이지요. 즉 말씀하신 ‘소비’라는 측면에서 젠더 문제를 고찰할 경우, 이는 남성과 여성 간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성과 여성성의 스테레오타입에 부합하는 인사이더(insider)와 그렇지 못한 아웃사이더(outsider) 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은 그동안 끊임없이 서로를 ‘소비’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소비’의 대상인 남녀 구성원의 성별이 아니라 이성(異性)으로서 그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입니다. 결혼시장을 비롯해 남성 혹은 여성으로서 가치를 평가받는 자리에서, 성적 스테레오타입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그동안 이성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아웃사이더들이 바람직한 남성 혹은 여성으로 새롭게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녀 모두가 서로를 평가하고 또 서로로부터 평가받는 이러한 상황에서, 남녀 구성원의 성별은 논의될 가치가 없습니다. 남녀 모두가 똑같이 사회와 다른 성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지는 “문화적 산물”이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마치 그동안 남성은 여성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었던 것처럼 말씀하시는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의 주장은 절름발이 페미니즘에 근거한 편파적인 주장일 것입니다.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공동저서『남성학과 남성운동』(동문사, 2000) 제2장「남성운동에 관한 제(諸)연구」에 소개된 미국의 남성운동가 워렌 패럴(Warren Farrel) 박사와의 대담을 떠올리게 됩니다. 1차적 가족부양자라는 남성의 전통적인 성역할과 관련해, 선생님께서는 “여성해방운동에 의해 변화가 일어나면서 이전보다 여성은 남성에게 성공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고 당연한 듯 이야기하셨지만, 이것은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신 페미니스트로서의 한계를 보여주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는 보호와 부양, 사적(私的) 영역에서의 역할과 지위라는 측면에서 남성에게 허락되지 않은 권리를 여성에게 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페미니즘은 이러한 권리를 간과해왔습니다. 오늘날 여성들이 그동안 누리지 못한 새로운 권리를 누리게 되었다고 해서,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할까요? 그리고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남성들과 똑같이 나누지 않는 상황에서, 남성들이 누렸던 권리를 포기하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요구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를 논함에 있어 지금처럼 남성의 피해자성과 여성의 수혜자성을 외면할 경우, 페미니스트들이 내세우는 어떠한 주장도 남성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여성해방도 걸림돌에 걸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울러 글 중간에서처럼, 매스큘리즘에 근거해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기존의 페미니즘에 근거한 해석에 반대하는 이들의 움직임을 싸잡아 “반동(backlash)”이라고 단정 짓는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의 행동은 매우 위험한 행동일 것입니다.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에 대한 페미니즘의 해석에 대해 근본적인 이의가 제기되고 있는 오늘날,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이들은 비단 과거로의 회귀를 원하는 보수주의자만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원로 페미니스트이신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새롭게 자라나는 일본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선배들이 저지른 실수를 답습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이 분야와 관련된 한일 양국의 학문적 교류는, 페미니즘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페미니즘과 매스큘리즘 양쪽 모두를 아우르는 젠더리즘에 바탕을 둔 채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라 믿습니다. 한일 양국의 양성평등운동에 지대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러한 자리가 앞으로도 자주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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