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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꺄르르님께
    한지환 / 2010-06-14 11: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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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꺄르르님께서 쓰신「한국여자는 백인남자에게 쉬운 여자인가?」(http://blog.ohmynews.com/specialin/rmfdurrl/334403)에 대한 저의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꺄르르님. 한지환입니다.

      올려주신 글「한국여자는 백인남자에게 쉬운 여자인가?」잘 읽었습니다. 한국 여성들이 백인 남성들에게 ‘쉽게’ 비추어지는 풍조와 관련해 글을 쓰셨더군요. 그동안 꺄르르님께서 쓰신 글들 가운데 저의 마음에 와 닿는 글들이 많았지만, 이번 글의 내용 가운데 몇 가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지적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 여성들이 백인 남성들에게 쉽게 넘어간다는 것이 정말 사실인지, 또 한국인 여성들이 쉽사리 몸과 마음을 허락한다는 백인 남성들이 정말 미국이나 호주 등 서구 사회에서 하류계층에 속하는 남성들인지 확인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확인되지 않는 한, 논의 자체가 무의미할 것입니다.

      다만 경제적 빈곤을 해결하고자 국제결혼을 선택한 개발도상국 여성들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한국 여성들이 쉽사리 몸과 마음을 허락하는 백인 남성들이 서구 사회에서 하류계층에 속하는 이들이라는 주장은, 오늘날 국내결혼시장의 동향과 ‘가부장제’라 불리는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의 메커니즘을 생각할 때 사실여부가 의심되는 주장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 여성들이 백인 남성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통로는 대학 및 학원 등의 교육기관이나 외국계 기업체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통로를 통해 한국 여성들이 만날 수 있는 백인 남성들은, 대개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았고 그러한 교육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를 갖춘 이들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국땅에 와서 학업이나 비즈니스에 종사할 정도의 남성이라면 능동성, 적극성, 진취성 같은 남성다움의 덕목을 적잖이 갖춘 이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가 게르만(German)계나 앵글로색슨(Anglo-Saxon)계라면 남성다운 외모를 구성하는 필수요소인 신장(身長) 역시 여느 한국 남성들보다 월등할 것이라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남성들에게 여성들이 쉽게 끌리는 것은,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 남성다운 외모 및 행동 등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stereotype)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국적이나 인종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요소라는 것이지요.『중년동정(中年童貞)』의 저자 와타나베 신(渡部伸) 선생은 이러한 요소들을 “연애자본”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정말 날카로운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한국 여성들이 백인 남성들에게 쉽게 끌린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아무리 백인 남성이라 해도 가족을 부양할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단순노무직 노동자들, 또는 영화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유약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너드(nerd)’들을 남편이나 연인으로 받아들이는 한국 여성은 거의 없습니다. 국적과 인종을 막론하고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에 도달하지 못한 이런 남성들에게 여성은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지요. 반면 백인이 아니라 해도,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에 어긋나지 않으며, 따라서 결혼시장에서 환영받는 고학력 전문직 남성들(흔히 ‘Gold Mister’라 불리는)에게 한국 여성은 결코 어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배우자나 연인을 고름에 있어 절대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성적(性的) 스테레오타입을 무시한 채, 한국 여성들이 백인 남성들에게 쉽게 끌리는 현상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처사라는 것입니다.

     

      글의 말미에서 백인 남성과 사귀는 한국 여성들을 구태의연한 정조관념을 가지고 섣불리 재단하려 드는 한국 남성들을 비판하셨는데, 이 문제를 제대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오히려「여자는 가난한 남자를 사랑할 수 있는가?」에서 보여주신 귀하의 시각이 보다 적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적지 않은 남성들이 구태의연한 정조관념이나 인종주의적 시각을 굳게 고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에 대해서는 저 역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온ㆍ오프라인 상에서 많은 남성들이 백인 남성과 한국 여성의 만남을 증오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를 여기서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제가 2010년 6월 1일 ‘루저 논란’과 관련해 쓴 글에서 밝혔듯이, 최근 여성을 겨냥한 다양한 형태의 공격은 남성을 억압하는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과 이를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에 동조하는 여성들에 대한 분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글의 첫머리에서 귀하께서는 “예쁘고 착하고 깨끗하고 요리 잘 하고 순결해야 한다”는 여성성의 스테레오타입 때문에 한국 여성들이 자존감이 낮다고 말씀하셨지만, 남성 역시 성적 스테레오타입에 어긋날 경우 스스로에 대해 자존감을 가질 수 없는 아웃사이더(outsider)로 전락할 수밖에 없으며, 이런 구태의연한 스테레오타입에만 의거해 남성들을 평가함으로써 그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워온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와 실망이 그동안 꾸준히 누적되어 왔다는 사실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즉 백인 남성과 사귀는 한국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감정적인 공격은 2006년 ‘된장녀 논란’ 당시 여성들에게 쏟아진 공격과 같은 맥락에서 살펴야 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귀하께서「여자는 가난한 남자를 사랑할 수 있는가?」에서 촉구하셨듯이, 만약 한국 여성들이 지금의 사회ㆍ문화적 구조 아래서 안정적인 결혼을 꿈꿀 수 없는 가난한 이주노동자들, 또는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조롱의 대상이 되어온 ‘너드’나 ‘베타보이(ß-boy)’들을 남편이나 연인으로 받아들였다면, 과연 남성들이 지금처럼 증오어린 시선을 던졌을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귀하의 말씀처럼 구태의연한 정조관념이나 인종주의적 시각을 드러내는 이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여성들이 남성을 평가하는 새로운 잣대를 가지고 그동안 결혼시장에서 소외된 남성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면, 이는 대다수 남성들에게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모습입니다. 즉 전통적인 성별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는 이러한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로 인해 전통사회에서 남성들이 감수해야 했던 성적 억압이 경감된다면, 오늘날 여성을 겨냥한 남성들의 분노 역시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남녀 모두를 억압해온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를 깨뜨리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구태의연한 성별 이데올로기를 무력화시키고 여성에 대한 분노어린 공격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국적과 인종을 막론하고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의 수혜자이기도 했던 여성들이 남성을 평가하는 잣대를 보다 다양화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여자는 가난한 남자를 사랑할 수 있는가?」의 말미에서 “성 평등 사회는 연애관의 변화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여자들은 기사가 나타나기를 손 모으고 바라지 말고, 자신이 말 타는 법을 배워 자신이 기사가 되어야 해요. 여자들이 더 야하게, 더 용기를 냈으면 합니다”라는 구절은,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자유주의적 관점의 남성운동가로서 매우 인상 깊은 구절이었습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 가운데 귀하처럼 앞서가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훌륭한 의견 기대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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