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단이프
  • 이프북스
  • 대표 유숙열
  • 사업자번호 782-63-00276
  • 서울 은평구 연서로71
  • 살림이5층
  • 팩스fax : 02-3157-1508
  • E-mail :
  • ifbooks@naver.com
  • Copy Right ifbooks
  • All Right Reserved
  • HOME > IF NEWS > 이벤트
  • 오찬호 선생님께 (3)
    한지환 / 2010-06-01 11:12:31
  •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한지환입니다.

      올려주신 글「패륜녀?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지는가?」잘 읽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 많지만, 이른바 ‘루저 논란’에 대한 선생님의 입장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지적하고자 합니다. ‘루저 논란’은 남성운동가의 입장에서도 매우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루저 논란’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는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한때 일본에서 화제가 된 신조어인 ‘남성 3고(男性三高, 키, 학력, 수입을 뜻하며 일본에서 이상적인 남편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조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남성의 키는 오래 전부터 ‘남자다운 외모’를 구성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을 형성하는 데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실제로 조지 모스(George Mosse) 박사를 비롯한 남성사(男性史)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강한 근육, 단단한 배, 훤칠한 키 등으로 대표되는 남자다운 외모가 수세기 동안 진정한 남성성의 상징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오늘날 배우자가 될 남성의 키에 대한 여성들의 집착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별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성별 이데올로기가 남성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우고, 결과적으로 여성해방 역시 가로막게 된다는 사실은 지난번 올린 글에서 말씀드린 줄로 압니다.

      그렇다면 “키 작은 남자는 루저(looser, 패배자)”라는 이도경씨의 발언은 그가 가지고 있는 구태의연한 성별 이데올로기를 공공연히 드러낸 것이며, 따라서 양성평등의 시각에 비추어볼 때 비난받아 마땅한 태도입니다. 더욱이 당시 이도경씨는 단순히 ‘키가 큰 남자가 좋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루저’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써가며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에 도달하지 못한 남성들을 비하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외모나 순결 여부를 가지고 여성을 폄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성차별적 발언’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이도경씨만이 아닙니다. 데이트 비용을 비롯한 일련의 경제적 책임이 남성에게만 요구되는 현실이야말로 남성 억압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도경씨를 제외한 나머지 출연진들의 성차별적 발언(“데이트 비용은 남성이 내야 한다”) 역시 양성평등의 측면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루저 논란’ 당시 이도경씨를 비롯한 출연진들의 발언은, 한때 여성계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발언(“여성들이 직업을 가지기보다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란다”)과 같은 맥락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입니다. 물론 공인(公人)의 신분인 최시중 위원장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책임이 더 무겁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공적(公的)인 자리에서 성차별적 발언을 내뱉어 물의를 일으켰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설마 선생님께서는 최시중 위원장의 발언 역시 단순한 ‘말(言)’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치부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선생님 같은 언론인들조차 구태의연한 성별 이데올로기에 대해 비(非)합리적인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사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아울러 인터넷상에서 쏟아지는 여성에 대한 분노도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물론 여성을 남성보다 미숙하고 열등한 존재, 미성년자(minor)와 마찬가지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간주하는 분위기는 오래 전부터 존재했으나, 지금처럼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여성에 대한 분노어린 공격이 가해지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2007년 7월 우먼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처럼 여성을 겨냥한 비뚤어진 분노는 남성들의 정당한 언로(言路)가 막혀있는 오늘날의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인터넷상에서 공격받는 이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셨지만, 온ㆍ오프라인을 통틀어 살펴보면 현실은 오히려 그와 반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성단체인 언니네트워크가 여성 폄하적인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유명 인사들을 상대로 매년 선정하는 <꿰매고 싶은 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여성성의 스테레오타입과 관련해 구태의연한 시각을 드러낸 유명 인사들에 대해서는 여러 여성단체와 언론들이 공개적이고 조직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최시중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한국여기자협회를 비롯한 여러 관련단체들이 조직적인 공격을 가했고, 그 결과 최시중 위원장의 공개적인 사과를 받아내었다는 사실은 선생님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반면 루저 논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남성을 폄하하거나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을 조장하는 발언을 내뱉은 이들에 대해서는 대다수 여론이 무관심한 것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선생님께서는 최시중 위원장은 공인인 데에 반해, 이도경씨를 비롯한 출연진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제 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공동저서『페미니즘에 대한 남성학과 남성운동』에 실린 저의 글「이화여대 함인희 교수의 부적절한 남성 비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함인희 교수와 같은 공인들이 공공연히 내뱉은 남성 비하적인 발언(“한국 남성들은 이기주의적이고 철이 없으며 엄마나 부인에게 의존하면서도 자존심은 강해 그렇다는 사실을 숨기려 한다”)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비판이 전혀 가해지지 않고 있으며, ‘루저 논란’ 역시 이러한 분위기와 관련이 깊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어떠한 시민단체나 언론도 남성 비하적인 발언과 그 이면에 숨어있는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 그리고 그에 따른 남성들의 고통과 수치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 안에는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을 묵묵히 감수하는 것이 진짜 남자’라는 생각이 숨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성이라면 여성성의 스테레오타입을 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태의연한 성별 이데올로기임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그러한 성별 이데올로기로부터 전혀 보호받지 못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로잡지 않는 한, 남성들의 분노가 인터넷상을 통해 과격하고 비뚤어진 방법으로 분출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만약 여성단체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진 남성단체가 존재하여 남성을 겨냥한 성차별적 발언에 대해 합리적인 비판과 제제를 가했더라면 남성들이 지금처럼 과격하고 비뚤어진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자신들의 분노를 절제하지 못한 네티즌들의 행동을 성숙한 행동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러한 현상을 뿌리 뽑고자 한다면 남성들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부적절한 처사라는 것입니다.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에 따른 부담감과 중압감, 그리고 이를 야기한 사회ㆍ문화적 구조에 대한 분노를 이성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자리 잡지 않는 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아직 남성주의(男性主義, Masculism)의 위상이 여성주의(女性主義, Feminism)의 그것만큼 높지 못한 현재로서는, 여성단체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갖춘 남성단체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리라고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젠더(Gender)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선생님 같은 언론인들께서는 우리 사회에 숨어있는 남성 억압에 대해 보다 진지한 문제의식을 보여주셔야 마땅할 것입니다. 물론 남성학자나 남성운동가가 아니신 만큼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시기는 어렵겠지만, 지금처럼 ‘루저 논란’이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조차 알아보려 하지 않은 채 “한 여성이 남자의 ‘키’를 아주 중요한 조건으로 단지 ‘말’했다는 것이 과연 융단폭격에 대한 정당성이 될 수 있을까?” 라며 이를 대수롭지 않게 치부하시는 것은, 젠더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언론인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처사일 것입니다. ‘루저 논란’ 당시 문제가 되었던 일련의 발언들은 여성들이 남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구태의연한 성별 이데올로기를 확인시켜 준 사례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여성에 대한 성별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사회적 문제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보다 공정하고 명확한 문제의식을 보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덧글 작성하기 -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덧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