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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찬호 선생님께 (1)
    한지환 / 2010-05-11 10:43:32
  •  

      안녕하십니까. 오찬호 선생님. 한지환입니다.

      올려주신 글「여성문제, 무서워서 글을 쓸 수가 없다」잘 읽었습니다. 조금 당혹스러운 감도 없지 않지만, 어쨌든 이런 식으로 저의 목소리를 다루어주시다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선생님의 글을 읽고 몇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우선 글의 첫머리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truth)이 아니라, 상상력(imagination)”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 상상력이 사실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요? 만약 선생님의 말씀처럼 연구자나 사회운동가가 사실적인 근거도 없이 자신의 상상력에만 의존해 사회 문제를 다룬다면, 그것은 ‘학문’이 아닌 ‘3류 소설’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실제로 인터넷상을 둘러보면 젠더(Gender) 문제와 관련해 그런 허구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선생님 같은 전문가께서 이들의 행동을 옹호하시지는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말씀하신「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읽고 벌인 논쟁은, 비록 진지한 자리이기는 했으나, 애석하게도 남성주의(男性主義, Masculism)의 핵심적인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자리였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에 남긴 댓글에서도 말했듯이, “전통사회에서 여성은 성차별과 성적(性的) 억압의 피해자이며, 남성은 가해자 내지 수혜자”라는 페미니즘의 기본 전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고찰 없이는 남성주의와 관련된 어떠한 논쟁도 생산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여성문제, 무서워서 글을 쓸 수가 없다」의 말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은 도와주어야 할 사장님이 따로 있다”는 말로 여성 억압이 남성 억압보다 본질적인 문제라는 페미니즘의 기본적인 입장을 전달하셨습니다. 그러나 남성학(男性學, Men's Studies)과 남성운동(男性運動, Men's Movement)은 “과연 여성 억압이 남성 억압보다 본질적인 문제인지” 또 “전통사회를 ‘가부장제 사회’ 혹은 ‘남성 중심적 사회’로 단정 지을 수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학문 및 사회운동입니다. 물론 아직 남성학과 남성운동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굳건하지 못한 상황에서 선배격인 페미니즘의 기본 전제를 섣불리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이처럼 남성 억압을 여성 억압의 부산물로만 간주할 경우, 현존하는 젠더 문제를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구미의 여러 남성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즉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 하에서 남녀 모두는 피해자임과 동시에 수혜자라는 것이 남성주의의 기본 전제입니다. 따라서 남성의 수혜자성과 여성의 피해자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남성학과 여성학은 동반자적인 관계로 해석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의 수혜자성과 여성의 피해자성만을 인정할 뿐, 그 이면인 남성의 피해자성과 여성의 수혜자성을 선뜻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제가 문제의 글에서 지적하려 했던 핵심도 바로 이것입니다. 제가 남긴 댓글들을 꼼꼼히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말씀하신 “전혜영씨의 구조적 의심”에 대해서는 저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문화인류학자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 박사의 말처럼 남녀노소는 “지역적이고 특수한 개개 문화의 강조점에 따라 엄격하게 길들여지는” 존재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이 사회ㆍ문화적 구조에 길들여있다는 사실에는 섣불리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눈치 채셨겠지만, 전혜영님의 글은 기본적으로 전통사회가 ‘남성 중심적 사회’였으며, 그러한 사회에서 모든 남성은 예외 없이 전통적인 성별 이데올로기에 젖어있다는 사실을 전제해두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이와 관련해 “일상의 폭력이 무의식적으로 체화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즉 이것은 1988년 12월 도쿄에서 결성된 일본의 남성단체 <아시아의 매매춘(賣買春)에 반대하는 남자들의 모임>의 입장처럼 남성이라는 성(性)을 “근본적인 가해자(억압자)로서의 측면을 가진 존재”로 간주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수혜자였던 여성들 역시 예외 없이 전통적인 성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남성에게 전통적인 굴레(남성학계에서는 이를 치사적 역할-致死的 役割, lethal role이라고 부릅니다)를 강요하고 있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진보적인 페미니스트 또는 의식이 깨인 여성 가장(家長)이라 해도 이에 대한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논리를 확대할 경우, 한때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된장녀 논란’과 관련해 여성들에게 쏟아진 비난 역시 정당화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된장녀 논란’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논란도 처음에는 구태의연한 성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여성들에 대한 제법 건설적이고 사실적인 비판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물론 대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이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라는 사회ㆍ문화적 구조 속에 길들여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ㆍ문화적 구조가 허락한 권리와 그로부터 강요된 굴레를 거부한 소수의 선각자(先覺者)들의 존재를 간과할 경우,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고찰할 수 없을뿐더러, 심한 경우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를 타파할 동력마저 잃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남녀 구성원이 예외 없이 성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은, 곧 아무도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를 떳떳하게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을 테니까요.

     

      실례가 될지 모르나, 이 문제와 관련해 제가 쓴 글을 한 편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하단에 첨부한「한국 여성에게 고하는 글」은 조만간 한국남성학연구회장이신 정채기 교수님의 글과 함께 출간될 저의 에세이입니다. 학부생으로서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한 번 읽어보신 뒤 선생님의 의견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남성학과 남성운동에 대한 보다 권위 있고 상세한 설명을 원하신다면 하단에 정리한 참고서적들을 참고해주십시오. 저보다 이 분야에 대해 훨씬 깊이 있게 연구하신 권위자들의 저서이니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젠더 문제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벌써 읽어보셨겠지만 말입니다.

     

      아울러 몇 가지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여성문제, 무서워서 글을 쓸 수가 없다」에서 제가 네티즌들과 벌인 논쟁을 ‘재미있는 댓글놀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이 말 속에는 빈정거림이 담겨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제가 비록 젊은 학생이기는 하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런 식으로 상대를 폄하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수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혹시라도 앞으로 저를 소개하실 기회가 있으면 ‘남성학자’가 아닌 ‘남성운동가’라고 소개해주셨으면 합니다. ‘학자(學者)’라는 과분한 칭호를 받기에는 아직 공식적인 권위를 부여받지 못한 학부생이니까요.

      그럼 앞으로도 소중한 고언 기대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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