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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이트 밀레트와의 마지막 인터뷰
    최고관리자 / 2017-09-22 10:36:03
  • 케이트 밀레트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누구인가?

    전세계의 수많은 여성들을 단숨에 페미니스트로 만들어버린 '성의 정치학 Sexual Politics'의 저자가 아닌가?

    나도 그 중 하나였다. 내가 1997년 페미니스트저널 이프를 창간하고 창간특집을 '지식인 남성의 성희롱'으로 정했을 때

    이문열과 송기원, 김원우, 김완섭(창녀론) 등 네 명의 남성작가들의 성희롱을 고발(?)하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성의 정치학' 영향이 크다. 그런 그녀가 세상을 떠나다니!

    그녀의 사망소식을 들으며 난 뉴욕에서 내가 만난 밀레트를 떠올렸다.

    1990년 뉴욕에서 그녀와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당시 그녀와의 인터뷰기사는 그 때 내가 연재 중이던 여성신문의 미국 여성운동의 현장시리즈 기사로 실렸다

    하지만 현재 난 그 원고를 갖고 있지 않은관계로 생략하기로 하자

    성의 정치학의 저자인 그녀는 전세계의 페미니스트들에게 꿈에 그리는 전설의 주인공이었지만

    실제 만난 그녀는 너무나도 소탈하고 놀랄 만큼 겸손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가족과의 갈등이나 수차례 있었던 정신병원 입원 병력도 처음 만난 외국인 기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았다

    그렇게 소박하고 털털했던 그녀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보도에 따르면 양성애자였던 그녀는 그 때 같이 살았던 동성 파트너와 최근에 결혼을 한 것 같다

    뉴요커지에 그녀가 사망한 파리로 떠나기 전날 했던 마지막 인터뷰가 실렸다

    레이철 스타이어의 케이트 밀레트와의 마지막 인터뷰를 소개한다.

     


    케이트 밀레트와의 마지막 인터뷰

    A Last Interview with Kate Millet

     

    작가이자 미술가이며 활동가였던 케이트 밀레트가 지난 96일 휴가차 갔던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다

    그녀는 그 주에 83세가 될 예정이었다

    밀레트는 1970년 출판된 제2물결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섹스의 정치적인 측면을 파헤친 성의 정치학의 저자로 유명하다

    그 책에서 밀레트는 성해방의 기수로 알려진 작가들, 헨리 밀러, 노만 메일러, D.H.로렌스 등과 또 한편 그와는 대조적으로 동성애 작가로 명성을 얻은 장 쥬네의 소설들을 분석해 그 들의 작품 속에 숨은 폭력적인 여성혐오를 폭로했다.

     


    지난 2년 반동안 나는 제2물결 페미니즘의 어머니라고 불리우는 베티 프리단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아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있었는데 성의 정치학1963년에 출판된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 The Feminine Mistique’의 딸로 묘사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둘은 서로 너무 달랐다

    살아있는 동안 밀레트와 프리단은 페미니즘의 서로 상충되는 이데올로기를 대표했고 아직도 진행 중인 여성운동의 경쟁적인 접근법을 상징했다.

     

    한동안 나는 밀레트를 인터뷰할 것을 포기했다

    나는 많은 제2물결 페미니스트들처럼 밀레트가 프리단에 대해서 말하기를 꺼려할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좋은 얘기가 나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한 많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에 대해서 나쁜 얘기를 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난 8월 나는 밀레트와 가까운 친구인 미국 제2물결 페미니스트 조직미국베테랑페미니스트회(The Veteran Feminists of America) 엘리노어 팜 회장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나는 팜회장에게 내 말을 잘 전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곧 밀레트의 파트너인 소피 키어로부터 연락이 왔고 우리는 91일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왜냐하면 다음날 그들은 파리로 휴가여행을 떠나기 때문이었다.

     


    밀레트의 아파트는 쿠퍼유니온 근처 저층건물인 5층에 있었다

    커다랗고 빛이 가득한 맨 앞방은 책과 미술품들로 가득했다

    키어는 나를 홀을 따라서 뒤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밀레트는 거기 농부가 만든 나무탁자 같은데 앉아 있었다

    그녀는 친절하고 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보행기가 그녀의 의자 옆에 자리하고 있었고 그녀의 이마에는 밴드가 붙여있었다

    그녀는 내가 키어에게 이메일로 보낸 질문지를 프린트해 들고 있었다

    그녀는 때때로 종이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는데 마치 질문지에 있는 모든 것에 대답하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밀레트는 그녀가 옥스퍼드대학에 있을 때 시몬 드 보봐르의 2의 성과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를 읽은 기억이 난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맞는 얘기가 아니다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는 그녀가 옥스퍼드대학을 떠나고 맨해튼의 로워이스트에 정착한 다음인 1963년에 출판되었다

    어찌됐든 밀레트가 프리단이 설립한 전미여성기구(NOW)에 가입한 1967년까지 그 책을 읽었던 것은 확실하다

    1968년 밀레트는 전미여성기구 교육위원회에서 배움의 시늉: 미국 여성고등교육에 대한 연구라는 팸플릿을 썼는데 그것은 프리단이 세븐시스터스라고 불리우는 미국의 여자명문대학들에서 모두 아내가 되기 위한 학위를 따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고여성의 신비에서 주장한 것을 되풀이한 것이었다.

     

    밀레트는 감상적으로 얘기했다

    우리는 매일 행진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나에게 그녀가 콜럼비아대학 박사학위 프로그램에 들어간 1968년을 상기시키며 

    그때는 아무도 페미니스트책을 읽지 않았고 나만이 페미니스트 서적을 읽는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키어는 우리에게 물을 한 피처 두고 갔는데 우리는 대화를 하며 물을 여러 잔 마셨다

    전미여성기구와 일하는 외에도 밀레트는 더 급진적인 동성애단체들과도 활동을 했다

    프리단은 1969커밍아웃을 하기 원하는 전미여성기구의 레즈비언들을 라벤더 위험분자들이라고 불렀다.

     


    1970년 여름 성의 정치학이 출판되고 그것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해 8월 밀레트와 프리단은 둘 다 뉴욕에서 5만명이 참여해 열린, 평등을 위한 여성파업에 동참하였다

    그들은 둘 다 브라이언트 공원에서 열린 시위에서 연설을 했는데 

    밀레트는 이 자리에서 이제 우리는 거대한 사회 운동이다라고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밀레트가 프리단의 연설을 기억하는지 궁금했다.

    와우, 대단했지밀레트가 말했다

    그녀는 마치 세상을 바꾼 일들에 자신이 한 역할에 놀라는 듯 인터뷰 동안 여러 번 말했다

    엄청났지. 프리단은 쇳 소리같은 목소리를 가졌는데 우리 모두 함께 하기를 원했지

    그녀는 대단한 연설가였어.”


    그해 11월 밀레트는 콜럼비아대학에서 열린 포럼행사에 연사로 참석했다

    래디컬레즈비언이라고 불리우는 그룹에 속한 여성이 관중석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왜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밝히지 않느냐고 물었다

    2주후에 성 의 정치학이 신기원을 이룬 작품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타임지가 밀레트가바이섹슈얼이라고 폭로하며 그녀의 성정체성이 프리단과 그 외 다른 이들에게 운동을 분열시킬 우려를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곧 밀레트를 지지하는 시위가 열렸다

    거기에서 프리단은 연대를 의미하는 라벤더 완장을 찰 것을 요구받았는데 많은 활동가들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이 기억 속에서 프리단은 누구의 기억이냐에 따라 그 완장을 던져버리거나 아니면 짓밟거나 한다

    이제 이 연극적인 행위에 대해 밀레트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신은 선명하고 명쾌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밀레트는 대답을 시작했다

    프리단은 동성애자들을 증오했다

    그들이 그녀의 프로그램을 망친다고 생각했다우리는 심술궂은 애들이었다

    그녀는 우리가 공손하게 행동하기를 바랬다우리는 그러기를 원치 않았다

    그녀는 모든 시위에 질서를 원했다그녀는 라벤더완장을 떼어서 땅바닥에 내팽개졌다.” 

    리고 밀레트는 덧붙였다


    나는 그녀에게 미안하다.”


    내가 그녀에게 1960년대에 왜 그렇게 여성운동에 싸움이 많았느냐고 묻자 

    그녀는 그것이 인기경쟁이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녀는 운동의 일반적인 목적과 그것이 얼마나 이뤄졌느냐에 대해 더 이야기 하고 싶어했다

    문제는 어디로 가느냐에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포인트는 엄마와 잘 지내는 것의 불가능성딸과 잘 지내는 꿈

    그녀는 계속했다당시는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너무 어려웠어

    우리는 놈들에 의해 페미니스트가 되지 말라는 얘기만 듣고 살았거든.그 때는 그런 시절이었다구.” 

    그리고 그녀는 프리단에 대해 덧붙였다"그녀는 싸움꾼이야누구하고라도 싸웠을거야.”


    인터뷰 내내 나는 밀레트가 프리단에 대해 관대한 것에 놀랐다

    나는 원한이 남아있을 것을 기대했지만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심지어 프리단이 돈을 받지 않고는 어디도 가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도 그녀는 프리단은 많은 일을 했다정말 놀랄만하다.”고 말했다

    밀레트는 계속했다

    프리단은 결코 자기 혼자 만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그녀는 여성이슈들을 위해서 그런 것이다우리는 찢어졌지만 그녀는 훌륭했고 나는 내가 그녀에게 좀 더 공손했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한다.”


    내가 인터뷰를 끝내고 떠나려고 짐을 싸자 밀레트는 파리로 가는 여행을 고대한다고 말했다

    파리에서 밀레트는 그녀의 1971년 영화 세 인생 Three Lives’을 갖고 프랑스 정부와 이야기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세 인생은 세 여성이 각자 그들의 경험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영화다

    탁자 위로 털많은 커다란 고양이가 뛰어 올라왔다

    고양이는 한참을 가르랑거렸다

    밀레트는 사람들이 우리가 파리에 가 있는 동안에 누가 이 고양이를 돌보느냐를 놓고 싸우고 있다.”고 말하고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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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덧글(4)

  • hjh1984 [2017-09-23]
  • 케이트 밀레트와 같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문제점은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 중 여성억압에 해당되는 사실들만 선별해 자신들의 사상적 체계를 쌓아올렸다는 것입니다. 2015년 봄호 『계간 시대정신』에 실린 「영화 〈말레피센트〉를 통해 본 한국사회 성(性)해방의 미래」에서 지적했듯이, 어느 한쪽 성(性)에 치우치지 않은 시각에서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가부장제’라 이름붙인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는 여성의 육체를 자의적으로 유린하는 남성의 행위를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중죄(重罪)로 간주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가 여성에게 사회구성원의 재생산이라는 부자유스러운 의무를 지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물질적, 육체적 힘을 이용해 사회구성원의 생활과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남성의 책임과 대칭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따라서 전통적인 남녀관계는 기본적으로 쌍무적인 성격의 상호관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아가 2013년 10월호 『월간조선』에 실린 「‘남성해방’을 위한 제언(提言)」에서 지적했듯이, 남성해방과 여성해방을 아우르는 진정한 성해방을 위해서는 자신의 육체, 그리고 결혼이라는 보편적인 사회문화 기제를 매개로 다른 성의 힘을 빌려 생활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여성의 전통적인 권리, 이른바 ‘보호받을 권리’가 남성에게 동등하게 주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쌓은 사상적 체계를 가지고는 이런 주제를 다룰 수조차 없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 hjh1984 [2017-09-23]
  • 물론 케이트 밀레트가 사상계의 거목(巨木)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런 인물이 세상을 떠난 것은 누구나 애도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가 저지른 오류에 대한 자각 없이 그를 맹목적으로 추켜세우기만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열사(烈士)’라는 과장된 표현까지 써가며 고(故) 성재기씨를 맹목적으로 우러르는 〈남성 인권연대〉나 〈안티 페미 협회〉 회원들의 모습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게 됩니다.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노발대발할지 모르나, 둘 다 자신들만의 도그마(dogma)에 함몰된 편협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라는 점은 다를 바 없다는 것이지요.
  • hjh1984 [2017-09-29]
  • 기존의 글에 새로운 내용이 덧붙여졌군요.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함에 있어 주장을 전개하는 그들의 방식이 과격한지 온건한지의 여부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급진적 페미니즘을 비롯한 페미니즘의 여러 노선이 고수하는 기본 전제가 과연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지의 여부입니다. 역사적으로 남성과의 관계에서 여성은 과연 일방적인 희생자였는지, 바꾸어 말하면 흔히 ‘가부장제’라 불리는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가 과연 남성의 일방적인 욕망에 따라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이었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hjh1984 [2017-09-29]
  •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가 남녀 모두의 욕망에 따라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이었고 전통적인 남녀관계 역시 기본적으로 쌍무적인 성격의 상호관계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2017년 4월 26일 「팜므 파탈 :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하단에 남긴 댓글에서 지적했듯이 여성들은 그동안 자신들에게 주어진 수혜자성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이를 매개로 남성들과의 상호적인 거래를 통해 성(性)해방을 이룩하고자 노력하는 게 바람직한 처사입니다. 주장을 전개하는 방식이 과격한지 온건한지의 여부에 상관없이, 남성억압과 여성억압의 상관성, 그리고 그동안 대다수 여성들이 여성으로서 누린 권리와 혜택을 외면한 채 여성억압에 대해서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뻔뻔스러운 사실 왜곡임과 동시에 소모적인 남녀갈등을 조장하는 부조리한 행태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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