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비웃는 여자’ 앨리스 슈바르처
페미니즘은 더욱 강력해졌다
독일의 영향력 있는 페미니스트잡지 ‘엠마’가 올해로 창간 40주년을 맞았다.
창간부터 현재까지 40년째 편집인을 맡고 있는 앨리스 슈바르처는 비록 젊은 여성들의 지지는 줄어들었을지언정 오늘도 여전히 거침없이 발언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시위들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십만명의 여성들이 페미니즘의 슬로건 아래 전세계에서 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들은 핑크 모자를 쓰고 여성혐오와 동성애 차별, 인종차별 등 각종 차별 철폐에 대한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한다.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다음날에는 워싱턴D.C., 시애틀, 뉴욕같은 미국의 도시뿐만 아니라 런던, 베를린, 나이로비, 도쿄, 시드니까지 세계 여러 도시들에서 연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1970년대 독일의 여성해방운동의 시작을 회상해보자.
그 때는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불이익을 받는 여성의 법적 지위에 항의하는 여성들이 지금처럼 거리로 나왔었다.
70년대 독일에서 기혼 여성들은 가정을 돌보도록 법률로 강제되었고 아내와 엄마로서의 책임을 등한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직업을 갖는 것이 허용되었다.
반면 남성들은 아내의 동의 없이도 그들의 직업을 그만 둘 수 있었다.
그럼에도 1949년부터 내내 독일의 헌법은 “남성과 여성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독일 여성들은 이 불평등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들의 가장 중요한 대변인 역할을 한 것은 잡지 ‘엠마’였다.
여자이름 엠마는 해방이라는 뜻의 ‘emancipation'에서 따온 것이다.
부제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잡지였으며 ’엠마‘는 곧 페미니스트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최초의 ‘엠마’가 신문 가판대에 등장한 것은 1977년 1월 26일.
창간 편집인 앨리스 슈바르처는 모든 미디어에 의해 난도질을 당했는데 전국적인 일간신문 ‘디벨트’는 그녀를 ‘남자를 비웃는 여자’라고 평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났지만 ‘엠마’는 여전히 인쇄되어 나온다.
슈바르처에 따르면 “내가 아는 한 ‘엠마’는 페미니스트의 손에서 발행되고 있는 최후의 전문 페미니즘 잡지이다.”
‘엠마’는 매호 3만부씩 발행되며 그중 2/3가 구독자의 우편함으로 직접 배송된다.
앨리스 슈바르처는 ‘엠마’를 창간하기 이전에 이미 유명인이었다.
1971년 그녀는 프랑스에서의 유사한 캠페인에 근거해 독일에서 “우리는 낙태를 했다”는 여성들의 낙태고백 캠페인을 시작했고 그것은 전국적인 스캔들이 되었다.
1975년 그녀는 성적 대상으로 여겨지는 여성들의 성적 불만족과 불감증을 토로한 책 ‘아주 작은 차이’로 또 다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지난 40년 동안 ‘엠마’는 수많은 여성이슈들을 다뤄왔다.
1978년 그것은 여성혐오적인 이미지를 표지로 다룬다고 ‘스턴’지를 고소했으며 포르노그라피, 여성할례, 젊은 무슬림여성에 대한 차별반대 등의 캠페인을 벌였다.
‘엠마’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그 자체가 논란이 되기도 했으며 또 직접 논쟁을 시작하기도 했다.
‘엠마’가 비록 40년 동안 여성운동을 지켜보고 동반해왔지만 새로운 인터넷 페미니스트 세대와 갈등과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판과 충돌이 자주 있었다. 논쟁의 주요포인트는 매춘을 규제하려는 ‘엠마’의 입장과 반인종주의와 관련된 것들이다.
‘엠마’는 이슬람과 근본적 이슬람주의를 구별하지 않는다. 이 입장은 이민여성들에 대한 ‘엠마’의 입장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앨리스 슈바르처 자신의 독재적 리더십 스타일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슈바르처가 ‘엠마’의 편집인 자리를 내려놓을 것을 고려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눈에 띄는 후계자가 없어 그녀는 아직까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녀는 40주면 기념호에서 독자들로부터 온 편지들이 그녀를 계속 갈 수 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 편지들은 매우 확신에 차있긴 하지만 가슴 아프기도 하다.
그들은 ‘엠마’가 어떻게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의 삶을 변화 시켰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페미니스트적인 생각과 행동이 계속 필수 불가결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신은 4000년 가부장제 역사를 40년에 지울 수는 없다.”
글 유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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