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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미니즘은 2500년 전에 부처, 공자와 함께 시작됐다
    최고관리자 / 2015-09-22 10:02:29

  • Ferminism started with the Buddha and Confucius 25 centuries ago


    공자와 소크라테스, 부처. 4대 성인 중 예수가 빠진 3대 성인 남성의 이름들이다. 이들은 페미니즘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영국 텔레그라프지에 이들과 페미니즘과의 관계를 밝힌 기사 페미니즘은 2500년전에 부처, 공자와 함께 시작됐다(Feminism started with the Buddha and Confucius 25 centuries ago)"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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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와 소크라테스, 부처는 그들의 가르침에서 여성의 권리와는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역사학자 베타니 휴즈박사는 그 선입견을 바꿔놓으려 한다. 소크라테스와 공자, 부처는 정확히 가족적인 남자의 모범은 아니다. 부처는 그 자신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아내와 갓난 아들을 떠나 구도의 길로 들어섰으며 소크라테스는 전해진 바에 의하면 두 명의 아내를 두었는데 그 중 하나인 크산티페는 철학자 남편과 그의 젊은 라이벌 아내 둘 다를 경멸한 것으로 유명하다.

     

    공자는 기원전 5/6세기 중국에서 나라를 돌아다니며 왕들에게 덕으로 통치할 것을 설파하면서 젊은 남학생 무리들을 끌어모으며 즐겁게 학문을 설파했다. 죽기 전 그 중국의 성자는 그의 아내와 딸을 무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책들은 심지어 그들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와 부처의 가르침의 행간을 읽다보면 그들의 나이에 비해 반직관적이고 그러므로 발상의 전환을 이뤄내며 여성을 포함하기 위해 애쓴 것 같다. 심지어 가족의 가치와 교육을 중시한 공자의 가르침은 모든 인간의 마음에 작동하며 여전히 여성에게 잠재적으로 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

     

    지난 몇 달간 나는 중국과 인도, 그리스를 돌아다니며 이들 세 거대한 철학자들의 역사적 자취와 나의 발견에 기분 좋게 놀라는 중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감안해 이들 세 인물들의 여성에 관한 행적들을 살펴보면 거의 기적같이 여겨질 정도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들은 개 취급 하거나 인간을 타락시키는 악마로 묘사되었다.

     

    당시에 인기 있는 저자였던 세모니데스는 마누라를 침묵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돌덩어리로 그녀의 이빨을 녹아웃 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과 인도에서 소녀들은 10세가 되면 집밖에 나가지 말고 집안에서만 머물도록 했다.

     

    소크라테스는 리퍼블릭에서 플라톤을 통해 여성이 사회에서 진정한 위치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가는 그 자체로 반쪽 밖에 구실을 못할 것이다”. 제노폰의 충분히 토론되지 않은 심포지움에서 우리는 여성의 본성은 남성보다 전혀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 급진적인 철학자는 여성들에게 낮에 입 다물고 가만히 있기보다는 어떤 확실한 역할을 하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스파르타인들에 아주 매료당한듯했는데 스파르타 여성과 소녀들은 아테네여성들보다 훨씬 더 많이 혈기왕성했기 때문이었다. 스파르타여성들은 땅을 소유할 수 있었고 남자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었으며 똑같이 벌거벗고 훈련을 하고 마차를 몰았다. 그는 논란이 일겠지만 사실로 상정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우리가 여성을 남성과 똑같이 쓴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남성과 똑같은 것을 가르쳐야만 한다.”

     

    비슷한 시기에 그러나 6000마일 동쪽에서 부처는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설파함으로써 사회를 흔들어놓고 있었다. 초기의 저항에도 불구하고한때 왕자였던 이 사람은 비구승뿐만 아니라 비구니도 존재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물론 장밋빛 색안경의 위험은 있다. 소크라테스는 여성을 또한 말과 노예에 비교하기도 했으며 공자는 그들을 하인에 비교해 소녀들에게 순종과 집안일을 가르치라 했다. 그러나 어떤 지역적인 어려움과 역사적인 수용에 시련이 있을지라도 커다란 메시지는 의심할바 없이 임파워링하다. 이들 세 명의 고대 철학자들의 근본적인 신념은 자기수양과 마음과 영혼을 단련하여 세상에 선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소크라테스로부터 사랑이 내가 이해하는 한가지라고 듣고 부처는 우리에게 한계가 없는 사랑을 얘기한다. 이들은 인간의식의 선구자들이며 우리가 운명이나 신의 단순한 피해자나 희생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말썽쟁이들이다. 신분이나 사회적 계급, 환경 또는 젠더를 무시하고 우리 모두 임무가 있으며 우리의 마음이 세상을 바꿀 수가 있는 것이라고 그들은 얘기한 것이다.

     

    글&번역 유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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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덧글(6)

  • hjh1984 [2015-09-22]
  • 주지하다시피 공자와 소크라테스, 석가모니는 페미니스트들이 ‘가부장적 사회’라 규정한 문명사회를 지탱하는 사상적 기반을 이뤄낸 인물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여성에게 남성과 대등한 권리 및 기회를 제공하고자 노력한 페미니스트 중 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한낱 말장난일 뿐입니다.
  • hjh1984 [2015-09-22]
  • 다만 윗글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절름발이 페미니즘’이 간과한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자와 소크라테스, 석가모니의 주장은 과연 그들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요? 아무리 위대한 사상가라 해도 그가 속한 사회 공동체를 지배하는 사회문화 구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리트 카(E.H. Carr)의 말처럼 위인(偉人) 역시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자 대리인’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공자와 소크라테스, 석가모니가 여성의 역할과 지위를 높이 평가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살았던 ‘가부장적 사회’가 여성의 존재에 일정한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며 그들을 존중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 hjh1984 [2015-09-22]
  • 남녀의 성적(性的) 결합에 신성함과 존엄함을 부여하는 결혼은 모든 문명사회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중요한 사회문화 기제입니다. 결혼을 통해 남성과 맺어진 여성에게는 ‘아내’ ‘어머니’라는 고정된 지위가 부여됐고, 플라톤 등의 주장처럼 그런 여성은 사회를 구성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여성보다 우월한 물리적 힘을 갖춘 남성에게는 그런 여성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며 그들의 생활과 안전을 보장할 책임이 주어졌지요.
  • hjh1984 [2015-09-22]
  • 만약 ‘가부장적 사회’가 여성의 필요와 욕망을 존중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사회문화 기제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남성은 노예나 우마(牛馬)처럼 여성을 필요하면 이용하고 불필요하면 버릴 수 있는 존재로 규정하는 게 훨씬 편리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성이 단순한 타자(他者)에 불과했다면, 여성에게 ‘아내’ ‘어머니’라는 고정된 지위를 부여한 뒤 거기에 얽매일 이유가 전혀 없었겠지요. 여성에게 고정된 지위를 부여하는 결혼이라는 사회문화 기제가 ‘가부장적 사회’에서 당연시됐다는 사실은 ‘가부장제’라는 사회문화 구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여성의 필요와 욕망이 반영됐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013년 10월호 『월간조선』에 실린 「‘남성해방’을 위한 제언」에서 거론한 여성 고유의 ‘보호받을 권리’는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지요.
  • hjh1984 [2015-09-22]
  • 물론 선천적으로 여성보다 생존에 유리했던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한 위상을 차지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남성에게는 여성을 교도(敎導)하거나 체벌할 권리가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사회문화 구조가 여성에게 부여한 고정된 지위와 ‘보호받을 권리’에는 어떤 남성도 자의적으로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공자와 소크라테스, 석가모니가 살았던 시대보다 훨씬 후대의 일이지만, 필리프 존엄왕(Philippe Auguste)과 헨리 8세(Henry VIII), 숙종 등이 배우자의 지위에 함부로 손을 대려 했을 때 그들이 여론의 비난에 직면해야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hjh1984 [2015-09-22]
  •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바와 달리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남녀관계는 남녀 모두의 필요와 욕망이 반영된 쌍무적(雙務的)인 성격의 상호관계이며,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자 대리인’으로서 공자와 소크라테스, 석가모니의 주장은 전통적인 남녀관계의 이런 성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글쓴이는 여성을 ‘가부장적 사회’의 일방적인 희생자로만 간주해온 ‘절름발이 페미니즘’에 일침을 놓은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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