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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9회]페미니스트 아빠 : 더 좋은 남자가 되어가는 전업주부 아빠
    유숙렬 / 2014-12-16 10:32:06
  • -Feminist Dad : Building Better Men

     

    허핑턴포스트에 전업주부 아빠의 고백 글이 실렸다. 마크 브라이스(Mark Bryce)라는 이름을 가진 전업주부 아빠의 고백 글 “페미니스트아빠(Feminist Dad)"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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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처음 전업 아빠가 되어 집에 머물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내가 ‘소수자 아빠’로서 전통적인 엄마의 영역 속에 들어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블로그에 쓰리라 결심했었다. 내 머리 속에는 이미 그런 생각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시설들은 아빠들에게 얼마나 안 맞을지 아빠들은 또 얼마나 의심을 받을지 우리의 남성성은 또 얼마나 조롱을 받을지 등 부정적인 것들에 대하여.

     

    그런 이유들 때문에 처음 몇 주간을 나는 외출하지 않고 집안에서만 지냈다. 우리는 가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고 오는 길에 걸음마하는 아기들 그룹을 만나긴 했지만 비겁하게도 “다음 기회”로 미루며 그냥 지나쳤다.

     

    그러나 어느 전업부모라도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진정한 적은 고립이며 성인간의 상호교류의 결핍이라고. 그래서 동네 놀이 그룹에 갈 때 우리는 엄청난 두려움을 안고 갔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놀아야 하는 놀이 그룹에 당도했을 때 우리는 우리 전업주부 아빠들이 옛날처럼 그렇게 신기한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그 길을 앞서서 간 전업주부 아빠들이 있었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차와 비스킷까지 함께 나눈 아빠들도 있었다.

     

    아마 내가 행운이었을 수도 있다. 도심 한복판에 살고 있는 것이 일을 더 수월하게 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나의 자기비하적인 유머감각이 나를 도왔거나 내가 눈치 채기에 너무 피곤했거나 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환영받는다는 느낌 외에 다른 것은 못 느꼈고 차별 같은 것은 더더욱 못 느꼈다. 아기 기저귀 가는 곳을 찾기 위해 허둥대지도 않았고 내 남성성도 거의 위기에 부딪치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래 나는 오히려 나의 남성 친구들로 부터 조롱받았고 그들에게 더 이상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그들도 내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부러워하고 우리가 함께 박물관에 가고 미술관에 가는 시간을 질투한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녀들의 어린 시절의 상당 부분을 놓치는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내가 엄마들의 세계에서 아빠가 된다는 것에 대해 미리 갖고 있던 두려움에 대해 눈치 챘을 것이다. 전업부모가 된다는 것이 페미니즘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글쎄 중년의 나이에 이른 남성으로서 나는 페미니즘이 나와 상관이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건 여성의 평등에 관한 싸움이지 나와 상관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목표에 동조 할 수는 있지만 언제나 그것은 그들의 싸움이었다.

     

                                                                             ▲필자 마크 브라이스
     

    그러나 나는 엠마 왓슨의 UN연설을 들을 때 내가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불평등은 내 문제였고 모두 내 책임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두 아들의 아버지로서 그것은 더욱 그랬다. 전업주부 아빠가 됨으로써 나는 의도하지 않게 이미 페미니스트가 되어있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환경 탓이었다. 그전의 나는 그것을 결코 옵션으로 생각지 않았다.

     

    나는 가장이었고 내 역할은 제공자였으며 내 아내는 돌보는 이였다. 깨달음은 내가 직장에서 실직하고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은 다음에야 왔다. 신경쇠약은 남자로서 내가 해결해야할 단단하게 자리 잡은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그것은 남자는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내 나이의 많은 남자들처럼 그것이 나에게 기대된 행동이었고 나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결국 젠더 평등은 속속들이 내 문제였다.

    그리고 내 아들들은 너무도 어린데 이미 성 편향적 스테레오 타이프들이 주입되어 있었다. 무슨 장난감을 갖고 노느냐 어떤 커리어를 갖도록 격려되느냐, 어떤 활동이 그들에게 적합하느냐 등등. 최근 학교 놀이터에서 두 부모가 그들의 아들들의 파티초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아들들은 한 반에 있는 소녀에게 파티 초대를 받았다. 그들의 대화는 다음과 같았다.

     

    “왜 그 애는 남자애들을 초대했지요? 파티 테마가 공주라면서요? 나는 주말에 어디 가서 집에 없는 것처럼 해야겠어요?”

    “초대 못할 건 뭐예요? 걔들은 4살인데. 그냥 파티일 뿐 이예요.”

     

    젠더 평등은 모든 사람들의 문제다.

    나는 전업주부 아빠가 된 것을 사랑한다. 그것은 내 생애 가장 행복하고 그리고 가장 뜻 깊은 보상이 주어진 시기였다. 그들이 자라고 발전하는 것을 지켜본 것은 돈으로는 살수 없는 무엇이었다.

     

    그러나 나는 또한 내가 얼마나 행운인지도 깨달았다. 얼마나 많은 아빠들이 나와 똑같이 하고 싶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는 내 아들들에게 젠더평등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준데 대해서 감사하게 여긴다. 그들은 부모가 되었을 때 우리 세대처럼 스테레오타입 화 된 행동패턴으로 뒤처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여성을 그들의 동등한 파트너로 존경하고 기회를 동등하게 나눌 것이기 때문이다.

     

    전업아빠로 지낸 것은 나를 의도치 않게 페미니스트로 만들었지만 그것만으로 불충분하다. 나는 더 필요하다. 남성들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더 많이 책임을 나눠져야 할 의무가 있다. 여성을 위한 평등은 남성을 위한 평등 또한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자랑스럽게 부르는 이유다. 그것이 내가 내 두 아들을 자랑스럽게 페미니스트로 양육한 이유다. 그것이 내가 UN캠페인 <그녀를 위한 그(HeforShe)>를 열렬하게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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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덧글(8)

  • hjh1984 [2015-09-22]
  • 물론 과거에 비해 전업주부 남편이 어느 정도 늘었고, 앞으로 이들의 숫자가 더욱 늘어나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글쓴이의 주장처럼, 이런 변화가 과연 기성의 페미니즘에 의해 이뤄질 수 있을까요? 바꾸어 말하면, 글쓴이를 비롯한 대다수 페미니스트들이 그랬듯이 남성들의 변화와 자성(自省)만 줄기차게 주장한다고 해서 상황이 개선될 수 있을까요?
  • hjh1984 [2015-09-22]
  • 여느 젠더(gender) 연구자들처럼 글쓴이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런데 거대한 사회문화 구조 아래서 남성성과 여성성은 긴밀한 상호지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우테 프레베르트(Ute Frevert), 카스파 마제(Kaspar Maase) 등 수많은 젠더 연구자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다시 말해, 글쓴이가 깨뜨리려는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은 남성에게 투영되는 여성의 시선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소수의 동성애자를 제외한 절대다수의 남성은 여성의 눈에 보다 매력적으로 비춰지기를 원하며, 자연히 여성이 매긴 우선순위는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의 눈에 매력적으로 비춰지지 못한 남성은 성욕과 애욕이라는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기회를 박탈당한 채, 결혼 및 연애시장에서 소위 ‘루저’로 낙인찍힐 뿐이기 때문입니다.
  • hjh1984 [2015-09-22]
  • 따라서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을 깨뜨리려면 먼저 오늘날 여성들이 어떤 남성을 매력적으로 여기는지, 나아가 이를 통해 남성에게 어떤 압력을 가하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글쓴이는 ‘가장(家長)’이라는 남성의 전통적인 성역할에 따른 부담감과 중압감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렸다는 사실을 고백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늘날 대다수 여성들은 이런 성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남성을 매력적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2013년 10월호 『월간조선』에 실린 「‘남성해방’을 위한 제언」에서 구체적인 근거자료를 인용해가며 설명했듯이, 대다수 여성들은 자신의 경제적 기반 및 능력 유무(有無)와 무관하게 남고여저(男高女低)의 결혼을 고집합니다. 즉 1차적 가족부양 책임은 물론, 가족부양 책임의 균분조차 거부한 채 배우자가 ‘가장’으로서 역할을 만족스럽게 수행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오늘날 적지 않은 여성들이 가사노동에 적극적인 남성에게 호감을 보이는 것 같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장’으로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면서 가사노동에 손을 댄 남성들에 대해서만 보이는 반응입니다. 즉 남성의 전통적인 성역할을 전혀 수행할 수 없는 전업주부 남편은 오늘날 결혼 및 연애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 hjh1984 [2015-09-22]
  • 이런 현실 속에서, 남성들이 ‘가장’으로서 역할을 거부한 채 전업주부 남편으로 나서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여성이 전업주부 남편이 되려는 유약한 남성을 경멸하거나 외면하는 현 시점에서, 남성들에게 전업주부 남편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은 그들에게 인생을 스스로 망가뜨리라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요컨대 남성을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남성들에게 자발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것은 그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폭거라는 것이지요. 여성에 대한 외모지상주의가 뿌리 깊게 남아있는 현 시점에서, 여성들에게 미용과 성형, 다이어트(diet)를 거부할 것을 촉구하며 이에 따르지 않는 여성들을 비난하기는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hjh1984 [2015-09-22]
  • 결국 여성들의 변화와 자성이 없는 한, 남성들이 전업주부 남편이 되도록 독려할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기성의 페미니즘을 가지고 여성들의 변화와 자성을 어떻게 촉구할 수 있을까요?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를 지탱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스테레오타입이 상호지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곧 전통적인 남녀관계가 상호적이고 쌍무적(雙務的)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남성 또는 여성이 다른 성(性)의 삶을 추구하는 것은 새로운 권리를 획득함과 동시에, 그동안 누렸던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 hjh1984 [2015-09-22]
  • 과연 기성의 페미니즘이 여성들이 지금껏 누렸던 권리, 즉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하는 배우자의 힘을 빌려 1차적 가족부양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는 권리를 여성들로 하여금 포기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기성의 페미니즘은 역사적으로 분명히 드러나는 전통적인 남녀관계의 상호적이고 쌍무적인 성격을 한사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성의 페미니즘은 절대 여성들에게 압력을 넣을 수 없으며, 자연히 그들의 변화와 자성을 이끌어내어 지금껏 누렸던 권리를 포기하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결국 기성의 페미니즘을 가지고 전업주부 남편의 숫자를 늘리겠다는 것은 ‘절름발이 페미니즘’의 도그마에 찌든 이들의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몽상’이거나, 남성에게 1차적 가족부양 책임과 1차적 가사노동 책임을 동시에 지우며 그들을 희생시키려는 ‘음모’라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 hjh1984 [2015-09-22]
  • 물론 성해방을 지향하는 젠더 연구자의 입장에서 볼 때, 글쓴이의 태도는 나름 고무적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대다수 남녀가 그렇듯이 글쓴이는 한때 성적(性的) 스테레오타입에 스스로 얽매인 인물이었다가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글쓴이의 아내는 전업주부 남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의식 깨인 여성 중 한 명이고 말입니다.
  • hjh1984 [2015-09-22]
  • 하지만 글쓴이의 아내처럼 전업주부 남편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여성이 소수에 불과한 현실 속에서, 글쓴이와 같은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 앞에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가장’으로서 책임에 시달리느라 신경쇠약에 걸린 채 남녀 누구도 부담한 적 없는 이중 부담에 짓눌리거나, 자신의 노력이 자신을 포함한 남성들을 전통적인 성역할로부터 해방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통적인 남성의 삶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합리한 도그마에 사로잡힌 기성의 페미니즘은 이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意志)도 없고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쓴이처럼 장가를 잘 갔다고 할 수 있는 소수의 남성을 제외한 대다수 남성들은 ‘절름발이 페미니즘’에 대해 호된 비판을 가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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