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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3회]당신들의 천국
    마태운 / 2014-11-26 11:34:05
  •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여섯 살 무렵, 우리 집은 그 동네 부잣집의 방 한 칸짜리 별채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주인 집 아들은 나와 동갑이었고 그 아이의 아버지는 큰 기업의 간부였다. 한 번은 일요일 아침밥을 먹고 주인 집 아들에게 놀러갔다. 마침 주인집 가족은 안방에 밥상을 차려놓고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중이었고 나보고 안방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나는 처음으로 주인집 가족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세상이 바로 옆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밥상 위에는 조그만 풍로 위에 노란 불고기 판이 얹어져 있었고 고기가 지글지글 타면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불고기였다. 그 당시 불고기는 조금 산다는 집이 큰 맘 먹고 외식할 때나 먹는 거였고 가난뱅이들은 먹어볼 꿈도 못 꾸던 것이었다. 그런데 집 안에서 그걸 먹고 있다니. 또 주인 집 아들과 남매들은 모두 병 우유를 하나 씩 들고 있었고 병 우유 역시 나는 단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그 때까지 먹은 거라곤 김치와 콩나물 무침, 꽁치구이, 숭늉 정도였다.

     

    ‘아침 먹었냐’는 주인집 아들이자 친구 어머니의 물음에 ‘먹었다’는 기죽은 말 한 마디만 하고 그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안방구석에 앉아 있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부러움도, 부끄러움도 초라함도 아니었다. 막연하게나마 그것은 이질감, 어울리지 않게 내가 속할 수 없는 어떤 다른 세계에 와 있다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주인집 아들은 초등학교도 병아리같이 노란 색 교복에 앙증맞은 교모를 쓰고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립학교에 들어갔다. 동갑이기는 했어도 노는 물이 완전히 달랐으므로 친해지기도 어려웠다.

     

    몇 해가 지나 초등학교 고학년 때 짝이었고 중학교도 같은 학교에 진학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집에 처음 놀러 갔을 때 나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 친구의 집에는 말로만 듣던 거실, 푹신한 소파가 있었고 거실 벽을 따라 책들이 가득한 책장이 있었다. 고급 전축이 있었고 친구가 틀어준 베토벤과 모차르트, 차이콥스키 등의 음반을 들으며 나는 이런 좋은 음악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우리 집 라디오에선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 같은 노래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때 그 친구의 집에서 빌려와 읽은 책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는데 그 책에서 내가 깊은 인상을 받은 부분은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부처 선문답 같은 그 유명한 구절보다 가정의 모습으로 세상의 밝음과 어두움을 묘사한 대목이었다. 지금은 명확히 기억나지 않고 현재 그 책을 갖고 있지도 않아 다시 정확히 확인할 수도 없지만 그 대목에 인상을 받은 것은 그 친구의 집과 우리 집의 대비가 책의 묘사와 흡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밝음과 어두움의 세계

     

    정갈하고 깨끗한 거실, 장서로 가득하고 악기 연주가 흘러나오는 상류층 집안 부모의 교양과 품격 있는 대화 그리고 인생과 세상을 이해하는 여유 있는 태도가 세상의 밝음이라면, 가난한 집의 좁고 누추하고 지저분한 방, 배움이 적어 저속한 언어들과 남 흉보는 귓속말들, 값싼 술의 취기에 빠진 아버지의 주정, 어머니의 먹고 살기 위한 악다구니 같은 것이 세상의 어두움인데 꼭 이 묘사와 부합하지는 않아도 나는 그 친구 집의 밝음과 우리 집의 어두움을 책을 읽으며 얼핏 느꼈었다.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대학은 가긴 가야 할 것 같은 데 성적이 문제였다. 그 때는 지금의 수능과 같은 예비고사와 함께 대학마다 국어, 영어, 수학을 치르는 본고사가 있었고 본고사에서 주로 당락이 결정됐다. 그래서 지금처럼 심하지는 않았지만 국,영,수를 가르치는 학원과 과외가 많았고 내 앞자리 아이를 비롯해 집이 부자인 아이들은 방과 후 학교 문 앞에 대기 중인 고급 세단을 타고 과외를 받으러 갔다.

     

    고3 가을, 수학 성적이 좋지 않았던 나는 어머니에게 딱 두 달만 수학 학원을 다닐 수 있게 돈을 달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그만한 돈도 집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반드시 이 때문만은 아니었고 내 방이 없다는 이유로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 놀면서 공부를 게을리 한 탓이었지만 나는 결국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했고 어머니는 그 뒤 몇 년 동안 ‘부모가 돼서 자식에게 두 달 치 학원 비용도 대주지 못했다’는 말을 되 뇌이곤 했다.

     

    대학 다닐 때 가장 친했던 친구 집에는 무엇보다도 책이 많았다. 등록금 낼 돈도 없어 대학 첫 학기 빼고 전 학년 동안 융자를 받았던 내게 책 살 돈은 없었다. 나는 그 친구 집에 자주 가서 책을 빌리기도 했지만 가끔 훔쳐서도 읽었다. 그래서 그 친구는 내가 놀러갔다가 그 집을 나설 때 내 가방을 뒤지기도 했다. 대학 등록금 융자도 쿼터가 있기 때문에 한 학생이 매번 융자를 받을 수 없다는 학과 사무실 조교에게 비굴할 정도로 사정을 해서 간신히 융자를 받아 졸업했지만 그 친구는 부모가 준 돈으로 미국 유학을 갔고 귀국한 뒤 교수가 되었다.

     

    나와 다른 세계에 속했던 이들이 나중에 가정을 갖고 터를 잡아 산 곳은 강남이었다. 7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강남 개발 붐은 그 때까지 서민들이 알지 못했고, 알지 못하므로 꿈꾸지 못했던 돈과 욕망의 새로운 지대를 만들었고 압구정동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그 자체로 부를 상징하는 고급브랜드가 되었다. 찌질한 연립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강북 동네에 살던 나는 압구정동에 딱 한 번 친구 따라 구경삼아 갔었다.

     

                                                           ▲서울 타워팰리스와 구룡마을 판자촌.(출처:연합뉴스) 

    그들만의 세상

     

    거기서 본 것은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어렸을 때 주인집 밥상을 보고 느꼈던 이질감이 다시 살아났고 그 곳은 강북에서 포장마차나 들락날락거리는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낡은 청바지에 구겨진 티셔츠만 매일 입고 다니는 보통 대학생들과 달리 그 곳의 젊은이들은 입는 옷부터 뭔가 스타일이 있는 것 같았고 얼굴에는 어려서부터 병 우유와 불고기를 먹고 자란 것처럼 영양기가 넘쳐났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태도에는 가진 자들이 갖는 삶의 여유가 배어 있었다.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라는 시집까지 등장해서 유행처럼 팔려나갔지만 그 바람은 돈과 욕망의 바람이었고 돈 냄새는 내게 익숙한 것이 아니어서 그 후 다시는 압구정동에 가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 그리고 젊었을 때보다 지금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빈부의 불화는 인간 세상에서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경향이지만 신자유주의는 다시 한 번, 더욱 확실한 방법으로 이를 입증해줬다. 한국의 국민전체 총소득은 비약적으로 늘어났지만 빈부 차도 그만큼 더 커졌다. 소득이 상위 층에 몰린다는 의미이고 한국의 빈부격차는 OECD 국가 중 최악 수준이다.

     

    삼성 SDS 주식 상장으로 삼성가 3남매가 단번에 4조원 넘게 벌어들일 때 다른 한 쪽에서 세 모녀, 독거노인, 압구정동 아파트 경비원 등 아이, 여자, 노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가난과 멸시 때문에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 들여 빈자를 구제해야 하는 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사회 약자들이 희생당하는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잘 사는 사람이 더 잘 살고 권력이 이를 보장해주는 나라는 못 사는 사람에게는 갈 수 없는 나라다. 최근 한중FTA의 체결로 국민총소득이 늘어날 거라고 말하지만 국가 간 자유무역을 늘리는 이 협정에서 어느 한 쪽이 일방적 이득을 볼 수는 없다. 모든 협상이 그렇듯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한국에서 얻는 쪽은 자동차 같은 대기업 수출 품목이고 잃는 쪽은 농산 품목이다. 총소득이 늘어나도 이미 배부른 대기업의 배는 더 불러지지만 힘들게 농사짓는 사람들의 배는 더 홀쭉해진다. 성경 말씀에도 있듯이 많이 거둔 자는 많이 내놓아야 한다. 내놓게 만드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지만 한국 정부는 법인세를 오히려 깎아준다. 자유시장주의에 맡겨 기업 소득이 커지면 서민에게도 떡고물이 떨어진다는 낙수효과가 생기지 않는 것은 정부와 기업이 서로 봐주는 한 통속이기 때문이다.

     

    같은 세상을 살아도 분명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한 쪽 세계에 속한 사람들은 다른 쪽 세계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을 이해하지 못한다. 경험이야말로 세계와 사람을 이해하는 기본이다. 부자들에게 세계는 권태로운 천국이 될 수 있지만 빈자들에게 세상은 위태로운 지옥이 된다.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세상은 황홀한 낙원이 될 수 있지만 권력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에겐 세상은 연옥의 어디쯤일 뿐이다. 그리고 이 천국과 지옥, 낙원과 연옥은 소통 불가능하기 하기 때문에 서로를 알지 못한다.

     

    당신들의 천국과 우리들의 지옥

     

    무능과 부패와 탐욕의 결정판인 세월호 참사에서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수습과 대책도 나오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세월호 유가족과 청와대 경내 사람들이 서로 사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3백여 명이 바다 속에서 죽거나 죽어가고 있는 7시간 동안 대통령은 구중궁궐 청와대에서 뭘 했는지 알려지지도, 밝혀지지도 않고 대통령이 국회 연설하러 가면서 그 옆의 진상규명을 하소연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은 것도 그들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 때만 되면 서민 경제와 복지를 외치고 재래시장 찾아가 손잡고 사진 찍지만 그것은 목사가 세속의 고된 짐을 지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사람들에게 천국이 멀지 않았다고 말로만 설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청준은 지옥 같은 세상을 사는 사람들과 그들 위에 군림하면서 천국을 얘기하는 사람들을 다룬 그의 소설에서 ‘운명을 같이 하지 않는 한 그것은 당신들의 천국일 뿐이다’라고 썼다. 한국은 당신들의 천국과 우리들의 지옥이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압구정동 십 몇 억 원 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백 몇 십 만원 월급 받는 나이 든 경비원을 모욕해서 그가 분신사망하자 아파트의 이미지가 떨어졌다며 나머지 경비원들에게 모조리 해고통지서를 보낸 것은 당신들의 천국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곳인가를 보여준다. 안산 사는 단원고 학생들이 제주도 수학여행 가는 배를 타고 가다 수장되어 죽었을 때 어느 잘 나가는 목사가 ‘돈 없으면 경주 같은 데나 갈 일이지’라고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은 당신들의 천국행 티켓을 감히 사려고 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린다.

     

    목수의 아들이었던 예수는 원래 프롤레타리아의 예수였다. 가난한 자들의 고통을 이해하던 그는 지금은 한국의 부자 동네 대형 교회 높은 십자가에 매달려 저들끼리 천국행 티켓을 팔고 사는 사람들을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울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예수가 낚시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 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정호승 ‘서울의 예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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