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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토바이를 타는 여교수] 21회, 최인호 명계남 만났던 대학 연극반
    최고관리자 / 2016-03-29 10:19:46
    • 이지훈 교수의 <오토바이타는여교수>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이프웹진에 연재되었던 글로 2015년 사이트개편 당시 분실된 데이타를 복구해 재연재하는 글입니다.

      카테고리가 아직 복구되지 않아 임시로 <문화난장북리뷰>로 업데이트되는 아래의 글은 2011년 11월에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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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찌나무 가지가 빨간 버찌를 주렁주렁 달고 지붕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봄날, 대학 연극동아리 방은 대학 신문사 2층에 있었다. 그 방은 한 면이 길게 기울어진 모양으로 생겼으며 커다란 창이 나 있었다. 창 앞에는 버찌나무 가지들이 봄바람에 선들선들 흔들거리며 우리들 눈과 마음을 유혹하고 있었다.

    참지 못하고 창을 통해 몇몇이 지붕 위로 엉금엉금 기어나갔다. ! 지붕 위에 앉았다. 아래로 나무들 사이로 윤동주 시비가 보였다. 재빨리 가지를 집어 버찌들을 따서 입에 넣었다. 달콤새콤한 버찌들이 목구멍으로 꼴딱꼴딱 넘어갔다. 우리는 가까운 가지의 버찌를 다 따 먹고는 한참을 지붕 위에서 기분 좋게 앉아 있었다.

     

    동아리 방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 삐걱거리며 소리가 났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소리였다. 그곳에서 대학 시절 처음으로 연극을 시작했다. 어른처럼 보이는 4학년 복학생 선배님들, 아니 2학년들도 내 눈에는 엄청 높은 선배들이었다.

     

    팸플릿만 읽어도 공부가 되던 시절

     

    1학년 새내기를 위한 첫 워크숍 공연이 계획되었고 난 다행히 이근삼 작 <원고지>에 교수 부인으로 캐스팅되었다. 내 첫 배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교수 역은 2학년 선배인 행정학과 공OO가 맡았고 교수 집 아들딸은 같은 1학년이 맡았다.

     

    가족을 위해 박봉의 월급을 메우기 위해 열심히 원고를 써야 하는 고단한 교수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무대는 모두 원고지의 네모 칸으로 꾸며지고 교수는 목과 가슴에 굵은 밧줄을 감았다. 교수 부인도 남편의 고뇌를 같이 나누며 아이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갈등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워크숍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연극반 동아리 회원으로 남았다. 많은 사람들이 워크숍 공연 후 동아리를 떠나기도 하는데 나는 떠나지 않았다. 공연 자체도 매력적이었지만 내 마음을 끈 건 동아리 방에서 읽었던 어마어마한 양의 공연 팸플릿들이었다.

    그 때는 대학극이 오히려 기성연극을 끌어가는 힘이 있을 정도로 공부도 많이 하고 작품 분석도 학과 공부 못지않게 열심히 했다. 그 때는 팸플릿 읽는 것만 해도 공부였고 교양이 될 정도였다.

    <우리 읍내>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고래> <천사여 고향을 보라> <작은 시바여 돌아오라> 등의 레퍼토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작품들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특히 무대에서 실연을 한다는 건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2학년 때 탤런트 이영후 씨가 와서 연출을 맡고 대작을 공연하기로 했다. 작품은 놀랍게도 T. S. 엘리엇의 <성당에서의 살인>이라는 시극(詩劇)이었다.

    여주인공 역 경쟁이 치열했던 걸로 기억이 난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난 이 공연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다른 더 중요한 일이 있었을까? 한 두 번 초기 연습에는 참가했고, 대선배님이 와서 연출을 해서인지 긴장된 분위기였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다.

     

    어두컴컴한 조명실의 매력

     

    다음 작품은 더욱 놀랍게도 이탈리아 작가인 루이지 피란델로의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탁월한 작품 선택이다. 의욕과 도전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어려운 작품들을 제대로 알고 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나도 그 때 이 작품에 매력을 느끼기는 했지만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 단지 어떤 가족이 연극배우들을 찾아와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꾸며달라는 요구를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란 정도만 알았을 뿐.

     

    그러나 이 작품은 인생과 연극, 연극 속의 연극 등의 주제를 심오하게 표현하고 포스트 모던적 요소를 가진 빼어난 희곡으로 노벨상 수상작가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에서 나는 극중 여배우 2인지 3인지를 맡았다. 그리고 조명도 함께 했다. 내가 욕심을 내어 두 가지를 했는지, 아니면 손이 모자라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공연 장소는 경영과가 있는 상대 소강당이었다. 내가 잠깐 나오는 첫 몇 장면만 끝나면 나는 의상을 벗어던지고 2층 조명실로 뛰어 놀라갔다. 내 대사는 오직 한 마디였다. 그런데 지금 이 대사가 생각나지 않는 걸 보니 역시(!) 난 배우로서는 아니었다고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나 난 지금도 기억한다. 그 어두컴컴한 조명실의 흥분을! 거기서 내려다 보는 무대는 객석에 편히 앉아 즐기는 무대보다 훨씬 더 생동감 있고 비밀스럽고 더 친근했다. 그건 내 것이었다!

    이렇게 쓰다 보니 훨씬 먼 훗날,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초분> 공연을 지켜보던 그 조명실이 떠오른다. <초분>(오태석 작)2차 공연이었다. 나는 우리나라 연극계에 한 획을 확실히 그은 공연이었던 그 작품의 연출부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 때 조명실에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연출인 유덕형 선생님이었다. 늘 그랬던 건 아니지만 그 분도 가끔 조명실에서 공연을 지켜보았다.

     

    소금물을 디머로 사용

    어쨌든 그 상대 소강당의 좁은 조명실. 전선줄이 어지럽게 바닥에 널려 있고 조명을 맡은 친구 하나는 창가에 바싹 붙어 앉아 무대를 내려다 보며 조명 큐를 맞추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그 조명실에 커다란 물 항아리, 독이 있었던 거다. 독을 뭐에 쓰느냐고? 그 독은 조명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도구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독엔 물이 반 너머 차 있었다. 그리고 소금이 알맞게 들어 있었다.

    소금은 아주 중요했다! 농도를 맞춘 소금물이야 말로 빛을 Fade in하고 Fade out시켜 주었다. 전선을 소금물에 넣어 통과시켜서 무대에 빛이 천천히 들어오고 천천히 나가게 조절을 했다는 뜻이다. 디머Dimmer기능을 그 소금물이 했던 것이다. 학생들이 돈이 없어 디머를 구비할 형편이 못되었기에 그렇게 멋진 소금물 디머를 만들어 썼던 것이다.

     

    연극반 최인호 선배

     

    그런데 난 그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조명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연극에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할 것이 없지만 조명이라는 분야는 신비의 세계이고 연극의 70~8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물독을 언제까지 썼는지 모르겠다.

    상대 소강당은 연극 연습하느라고 자주 드나들었다. 밤샘을 몇 번 하기도 했다. 바닥에 얇은 담요를 깔고 잠깐씩 눈을 붙이곤 했는데 어떤 때는 선배가 와서 외투 같은 걸로 덮어주는 손길을 느끼며 선잠에 빠져들기도 했다.

     

    밤샘을 할 때는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4학년 선배 중에 천문학과 선배가 있었다. 이 선배는 별 좀 보고 들어갑니다라거나 오늘 밤 별 좀 보고 갈게라고 전화를 잘 걸었다. 별은 밤에만 뜨지 않는가, 그러니 밤샘하면서 공부하고 간다는 뜻이었다.

     

    소설가 최인호 씨는 내가 1학년 들어갔을 때 4학년이었다. 우리들에게 학교를 10년 동안 다니고 있다고 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그랬다. 그 선배님이 연극반이었다. 내가 출연했던 <원고지>의 이은성 형과 아주 가까운 친구였다. 그 때 두 분은 완전 어른이었다. 내 눈에는 교수들보다 더 어른으로 느껴졌다.

    나는 영문과 후배이기도 하고 해서 연극반에서 귀여움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 멀리서 애독자로 존경하고 있을 뿐이다.

    연극 연습한다고 밤샘하고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에게 무섭게 야단을 맞았다. 연극하는 걸 제일 반대한 분이 어머니셨다.

    남자들과 어울려 밤을 새고 들어오니 연극이 좋아 보이겠는가? 또 그런 연극이 좋다고 밤 늦게 들어오는 딸이, 어떤 때는 밤샘하고 들어오는 딸이, 예뻐 보이겠는가?

    어머니와 갈등을 많이 빚었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좋아했지만 피란델로의 작품 이후 아마 난 연극반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나 보다. 이후의 기억은 문학 동아리로 넘어가고 또 영문과에서 하던 영어연극으로 옮아갔으니 말이다.

     

    교내 스타 명계남

     

    그러던 중 학생회관의 작은 소극장(혹은 카페)에서 멋진 연극을 한 편 보게 되었다. 2학년 때였을까? 두 남자가 나오는 단막극인데 한 남자는 책을 손에 들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남자는 끝없이 그 남자에게 말을 해대는 연극.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동물원이야기Zoo Story였다. 난 스토리에도 매혹 당했거니와 두 남자 중 말을 계속해 대는 역을 한 배우의 연기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피터는 일요일 날 공원에서 책을 읽고 있고, 제리는 자신이 동물원에 갔다 온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려고 애쓴다. 피터는 이런 제리를 외면하고 회피하려고 하지만 결국 제리에게 말려들어가며 나중에는 그의 죽음을 보게 된다.

    제리는 두터운 외피 속에 숨은 피터의 본 모습을 일깨워주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그와 소통해보려고 한 것이다. 인간의 소통 불가능 관계, 고독, 그리고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 작품을 두 남학생은 아주 멋있게 연극으로 창조해내고 있었다. 무서운 집중력과 에너지가 작은 공간에서 관객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제리 역을 했던 그 배우가 바로 명계남이었다. 피터 역을 했던 학생은 의대생이었는데 연기에서 명계남에게 절대 밀리지 않는 팽팽한 실력이었다.

    말이 없는 인물이라고 해서 쉬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사가 없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언어로 동원하여야 한다. 그 때 그 의대생은 만만치 않은 연기력으로 피터를 소화해 내고 있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교내에서 스타가 되었다.

     

    신문사 건물 2층으로 올라가는 삐걱거리는 소리. 연극 동아리 방에 쩌렁쩌렁 울리던 남자 선배 연출들의 목소리, 지붕 위에 앉아 따 먹던 버찌. 그리고 소금물 독. 내 어깨를 덮어주던 묵직한 외투.

     

    구경꾼, 작가, 배우

     

    10년 후. 푸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마산대학의 한 건물 옥상 위. 나는 내 나이와 거의 비슷한 한 무리의 학생들과 연극 연습을 하고 있었다. 당시 막 연극반이 생겨났고 내가 마산대학(창원대학의 전신)에서 첫 교수 생활을 시작했을 때 2회째인지 3회째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봄날, 향긋한 바다 갯냄새. 하얀 건물의 옥상 위에 따스한 봄 햇살이 내려 비치고 나는 선생이랍시고 그 나이 많은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는데, 그 때 작품은 이강백의 <>이었다.

     

    그 때는 광주 항쟁 직후였고 전두환 정권의 엄혹한 시절이었다. 아주 잘 선택한 레퍼토리였다. <>은 누가 더 왕으로 적합한가, 정권교체, 쿠데타, 왕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왕에 대한 블랙 코미디다. 학교 안에서 공연을 해서 그랬지, 과연 시내에서 기성극단에 의해 공연되었으면 과연 공연이나 될 수 있었을는지

    공연은 어설픈 학생 연기였지만 재미있게 끝났고 나의 지도교수 역할은 그 뒤로도 계속되게 된다.

     

    인생은 연극과 같다. 어떤 사람은 객석에 앉아 무대를 보는 관객, 혹은 구경꾼이다. 어떤 사람은 골방에 앉아(희곡은 골방에 앉아서만은 쓸 수 없는 장르이지만) 혼자 이야기를 꾸민다. 어떤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온 몸으로 표현한다.

    구경꾼, 작가, 배우. 당신이 이 중 누구도 아니라면, 그럼 당신은 누구인가? 내게 말해다오.

     

    버찌(출처:http://cafe.naver.com/yusilsu/20255)

     


    어두컴컴한 조명실의 흥분(?)출처:http://cafe.naver.com/libe5279/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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