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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토바이타는여교수] 운전 배우기
    최고관리자 / 2015-12-03 12: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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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훈 교수의 <오토바이타는여교수>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이프웹진에 연재되었던 글로 2015년 사이트개편 당시 분실된 데이타를 복구해 재연재하는 글입니다.

    카테고리가 아직 복구되지 않아 임시로 <문화난장북리뷰>로 업데이트되는 아래의 글은 2011년 12월에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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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운전배우기- 그 은밀한 기억>

     

    내가 운전을 처음 배울 때, 그 때 그 쪽 세상은 온통 남자들의 세상이었다. 내가 운전을 배운 사람도 남자였다. 당시는 운전 학원도 변변치 않던 터라 여동생과 둘이서 여동생 남편에게 기초를 배웠다. 그 때는 공터가 좀 남아 있어서 공터를 찾아 다니며 운전 연습을 했다. 주행 시험의 제일 어려운 코스가 S라인 후진이었는데 이 코스 때문에 몇 번이나 떨어졌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운전면허증을 손에 넣었을 때, 당시 표현으로 사법고시 합격보다 더 기쁘다는 환희를 체험했다.

     

    운전하며 느낀 해방과 자유

     

    차를 운전하며 내가 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해방과 자유다. 가고 싶은 곳 어디로든지 갈 수 있고 그걸 순전히 내 자유의지로 결정할 수 있었으니 날개가 달린 것처럼 가뿐했다. 달리면서 느끼는 속도감도 얼마나 짜릿하던지. 더구나! 길 위에서는 남녀 차별이 없었다.

    내가 여자라고 뒤로 물러서거나 천천히 달려야 한다는 법칙은 없었다. 운전자는 안전운행을 하며 교통법규만 준수하면 되었지, 여자라고 이래야 되고 남자라고 기득권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런 느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실 길 위에도 남녀차별은 보이지 않게 존재한다. 남자는 공격적으로 운전하고 또 접촉 사고가 났을 때도 목소리 큰 사람은 대개 남자이기 십상이어서 여자들을 윽박지른다. 러시 아워일 때는 여자들이 집에서 애나 보고 있지 왜 차는 끌고 나왔냐고 남자들이 빈정거리기 일쑤이다.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적 운전 문화가 아직도 버젓이 있다.

     

    미국 유학 길에 오른 게 1977년이니 그 때 운전면허증은 생각지도 못했다. 미국 생활에서 제일 불편했던 게 차가 없는 것과 운전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사를 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옮겨야 할 때, 또 먼 곳을 가야할 때 차가 없어서 늘 힘들고 불편했다. 그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유학생 중 결혼 생활을 하는 아저씨들이었다. 하지만 남의 남편을 빌려 써야 하는 불편함은 여전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운전을 배우게 된 건 생각과 달리 한참 지나서였다.

    결혼하고 운전을 배운다고 했을 때 주변은 모두 뜨악한 표정들이었다. 그래도 꿋꿋이 운전을 배웠다. 창원에서 처음 자동차를 타고 거리에 나섰을 때 그 때 여자운전자는 아주 희소했다. 지나가는 차들이 모두 구경을 했다. 80년대 초였다. 한번은 봉암 다리를 지나는데 뒤에서 차가 다가와 내 차를 추돌한 적도 있었다. 여자운전자를 구경하려다가 그렇게 된 것이었고 억울하게 며칠 목 치료를 받아야 했다.

     

    2001년 두 딸을 데리고 미국에 갔을 때다. 큰 딸은 대학 1학년, 작은 딸은 9학년이었다. 작은 딸은 학교에서 운전 교육을 다 받고 운전연습 면허증이 나왔다. 그 때 두 딸의 주행연습을 내가 가르쳤다. 불안해서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었던 것도 있고 교습료도 비쌌으니 내가 가르치는 게 제일 저렴하고 안전하다고 판단해서다. 딸들은 쉽게 면허증을 땄다. 미국에서는 곧잘 운전도 하고 다녔으나 역시 엄마인 내가 제일 운전을 잘 했기에 운전은 늘 내가 했다. 아이들의 면허증은 지금 서울에서는 장롱 면허증이 되어 잠자고 있다.

    운전배우기 - 그 은밀한 기억

     

    미국에서 운전은 누구에게나 필수이고 열 여섯이 되면 면허증을 딸 수 있다. 면허증은 곧 성인이 됐음을 의미한다. 차를 운전한다는 건 자유를 의미한다. 인생길은 이제 걷는다는 비유보다도 운전에 가깝다. 운전은 처음엔 어렵고 무섭고 마음대로 안된다. 기계인 자동차를 잘 알아야 하고, 길을 잘 알아야 하고, 또 운전법을 익혀야 한다.

    하지만 점점 익숙해지면 재미있고 쉽고 편하다. 그러나 운전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내가 방어 운전을 해도 다른 차들이 내 차를 받아서 사고가 날 수 있고, 또 도로 상의 문제로 인해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사고는 늘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우리 인생길이 그렇지 않은가? 운전을 배운다는 건 인생을 배운다는 것과도 통한다. 자동차, 도로, 나의 상태를 잘 알고 운전을 할 때 최상의 안전 운행을 할 수 있고 예기치 않은 사고로부터도 나를 보호할 수 있다. 그럴 때는 목적지까지 즐겁게 도착할 수 있다. 이 드라이브 길에 누구와 같이 가는가는 무척 중요하다. 혼자 갈 수도 있고 또 여럿이 동승할 수도 있다. 어떤 길을 택하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한적한 길을 택해,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느긋이 가는 방법도 있고 고속도로를 택해 빨리 가는 방법도 있다.

     

    어떤 운전자들은 자동차를 자기의 분신으로 여겨, 몸처럼 아끼고 가꾼다. 또 운전석에 앉았을 때, 그 공간을 가장 편한 공간으로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자동차 안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폐쇄적이고 사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여자이고 어떤 남자와 단 둘이 차 속에 있다면 어떨까? 특히 운전을 배운다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 남자는 당신의 손을 잡을 수도 있고, 또 살짝 한 손을 당신 어깨 위에 두르고 이것 저것 가르쳐 줄 수도 있다.

    이 때 신체 접촉은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고 또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연인이거나 부부이거나 오누이이거나 하면 더 자연스럽게 신체 접촉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연극 <운전배우기 - 그 은밀한 기억>에서 운전을 가르치고 배우는 두 사람은 아주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남자는 30대 후반이고 여자는 10대 초반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아주 가까운 사이이다. 여자는 남자를 아버지나 보호자처럼 따르고 의지하며 또 남자 역시 여자를 가장 잘 이해하며 지원해주고 끌어준다. 두 사람이 운전을 배우고 가르치는 건 그래서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만 어떤 일이 일어나고 만다.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다. 그리고 이들은 어떤 관계일까?

     

    연극이 시작되면 여주인공 릴빗(Lil'bit)은 자기 나이가 35세라고 말하면서 과거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17세 때, 15세 때, 그리고 11세 때에로 데리고 간다. 그런데 시간을 순차적으로 데리고 가지는 않는다. 마치 운전을 할 때처럼 기어를 직진으로 1단에서 2단으로 바꾸어 전진 방향으로 가기도 하고 어느 때는 기어 변속을 뒤로 해 역방향으로 놓고 과거로 데리고 가기도 한다. 어떤 때는 중립에 멈춰 놓고 한참 다른 얘기를 하기도 하고 쉰다. 그리고 어떤 때는 자동차 고장으로 차를 곁길에 세운다.

    릴빗이 들려주는 얘기는 이렇게 운전의 방향과 자동차의 상태와 병행해서 진행된다. 그 속에 가족얘기도 나오고 고등학교 때 이야기도 나오고, 또 술 얘기도 나온다.

     

    제일 중요한 얘기는 운전렛슨이다. 두 손은 언제나 3, 9시 방향에 놓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안전벨트를 하고 운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나 사고시에 반드시 그 사고를 뚫고 나와야한다는 것을 배운다. 이렇게 릴빗이 운전을 배운다는 것은 곧 인생에 대한 지침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운전을 배우며 성에 눈뜨고, 사랑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 사랑의 대상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이며, 두 사람은 가족관계가 된다. 릴빗은 이 사랑을 계속 이어갈 수 없고 고민하고 방황한다. 과연 릴빗은 누구에게 운전을 배운 것일까?

     

    비슷한 경험들, 어린 시절의 성추행

     

    내가 이 작품을 대학원 학생들과 읽을 때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기들의 경험을 자연스레 나누었다. 모두 젊은 중고교 여교사들이었던 이들은 어렸을 때 가볍게 겪었던 성추행을 고백했다. 꼭 운전과는 관련이 없더라도 그 경험담들은 어린 시절 겪었고, 당시는 몰랐지만 커서는 알게 되었고,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었음을 말했다. 하지만 거의 모두 비슷한 경험들을 했기에 사실 이런 것은 우리 생활 속에 너무나 만연되어 있고 사소하게 간과되어 지나간다. 이 때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아무런 지침이나 방법이 없다.

    엄마에게 말하는 정도랄까? 그런데 엄마가 억압적이어서 말하지 못하는 경우는 어떡하나? 그리고 엄마가 또 너무 부적절하게 대처하면?

     

    이런 위험은 늘 있다. 아이들은 요즘 너무나 일찍 성에 노출된다. 인터넷에서 신문 뉴스 기사 검색을 하면 옆의 광고는 심하게 선정적이다. 가령 이런 것 - “여자가 만족하는 남성 사이즈” “꽉 조이는 아내의 질등등. . . 십대들도 이런 거 다 볼텐데. . .이런 문구에 걱정도 되고 짜증도 난다. 이제 아이들은 너무나 쉽게 성적(性的)이 된다. 정말 불편한 진실이다.

     

    아날로그 시절엔 등하교 길에 늘 마주치는, 가까운 데 있는 성인 남자들이 좀 위험할 수도 있는 남자들이었다. 예컨대 만화방, 문방구, 분식집, 책방 등 어린이들이 드나드는 곳에서 이런 성추행은 일어날 수 있다. 우리 학생들이 얘기했던 남자들도 대부분 이런 가까운 곳에서 늘 접할 수 있는 아저씨들이었다. 더 가까이 있는 남자로는 운전기사, 학습지 교사, 과외교사, 사촌 오빠, 이모부, 고모부, 오빠,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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