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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회]살아도 그 집 사람, 죽어도 그 집 귀신
    정박미경 / 2014-09-04 01:29:55
  • 1962년 겨울, 열여섯의 애접꿍은 시집을 갔다. 사주단자와 택일단자가 오고 가면서 이제 애접꿍의 혼인은 거스를 수 없는 대사가 되었다. 애접꿍의 어머니가 동네 점집에 물어본 두 사람의 궁합은 ‘아주 좋음’이었다. 궁합이 좋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정확히는 몰랐던 애접꿍이지만, 뭐가 됐든 좋다니 기분 좋은 일이라 여겼다. 애접꿍의 부모는 없는 형편에도 무리를 해가며 정성스럽게 혼수를 준비하며 부잣집으로 시집가는 딸의 뒤를 봐주려 애썼다.

     

    저 어린 것이 어찌 살꼬

     

    목수인 애접꿍의 아버지는 손수 오동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장롱을 짰고, 어머니는 금실로 원앙을 수놓은 이불을 마련했다. 수저와 젓가락, 놋그릇 등의 식기류, 애접꿍의 사철 옷가지도 차근차근 준비되었다. 애접꿍의 어머니는 간간히 눈물을 흘렸다. “저 어린 것이 어찌 살꼬.” 어머니의 걱정과는 달리 애접꿍은 설레는 마음으로 혼례 날짜를 기다렸다.

     

    혼례 며칠 전, 동네 중매쟁이인 명순에미가 찾아왔다. 혼례를 치르는 과정을 신부에게 설명하고 연습시키기 위함이다. 말하자면 리허설인 셈인데 단발머리 애접꿍은 마치 남의 일인 양 재미있게 신부놀이를 했다. 신랑과 같은 술잔으로 술먹기, 신랑에게 절하기, 첫날밤 치르기, 시부모(애접꿍은 시부모가 없으니 시할머니)에게 큰절하기 등을 차례로 연습했다. 물론 첫날밤을 어떻게 ‘잘’ 치르는지는 당최 모를 일이다. 그건 막상 당해봐야 알 것 같다.

     

    드디어 의식 당일, 간밤에 언제 그리 눈이 퍼부었는지 온 세상에 흰 눈이 소복이 쌓였다. 신랑이 애접꿍의 집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신랑이 신부집으로 장가를 들기 위해 치르는 의례를 마친 후 신부를 데려가는 것이다. 예전에는 신랑이 말을 타고 신부집으로 갔다고 하나, 애접꿍의 남편은 버스가 다니지 않는 이십리 길을 걸어 애접꿍의 집에 도착했다. 눈길을 걸어 들어오는 한 무리은 꽁꽁 얼어 있었다.

     

    혼례 리허설도 끝내고...

     

    그 무리 속에 키가 껑충한 한 사람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신성일이 왔다는 것이다. 당시 신성일은 <특등신부와 심등신랑>으로 큰 인기를 누기는 최고의 배우였다. 방에서 단장을 하고 있던 애접꿍에게 동네 친구들이 뛰어왔다. “니 신랑 나 주라. 잘생긴 것이 신성일이당께.” “요 기집이 미쳐브렀다냐, 신랑을 어찌 준다냐.” “애접꿍아, 니 대신 내가 신부 한당께.” 친구들과 동네 언니들은 얌전한 척 하고 있는 애접꿍을 희롱하며 웃고 떠들고 난리가 났다. 애접꿍은 도대체 얼마나 잘 생겼으면 저리들 난리인고, 볼에 연지를 찍으며 생각했다. 못난 인물보다야 낫것지.

     

    드디어 애접꿍이 곱게 단장하고 교배상 앞에 선다. 신랑과 처음 마주 대하는 순간이다. 고개를 쳐들고 신랑 얼굴을 보고 싶지만 명순에미의 가르침이 있어 감히 눈을 바로보지는 못한다. 신랑과 신부가 술을 나눠먹는 절차가 진행된다. 신랑이 먼저 술잔에 입을 대고 한모금 술을 마신 후, 같은 잔이 신부에게 전해지고 신부는 술잔을 입에 댄다. 술을 함께 마심으로써 부부가 일심동체가 된다는 의미란다. 양손을 눈썹 높이에 들고 있던 애접꿍은 살짝 손을 낮추어 술을 마시고 있는 신랑을 바라본다. 짧은 순간이지만 애접꿍의 눈에도 신랑의 훤칠한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가 들어온다. 잘난 사람이구나.

     

      ▲이런 모습이었으리라!(출처:http://blog.naver.com/hiantk/90189778414)
     

    예식이 끝나고 신방이 차려진다. 추운 겨울날 하루종일 어색한 혼례복을 입고 양손을 눈썹까지 들고 있느라 몹시 고단했던 애접꿍은 포근한 신방에 들어서자 피곤함이 몰려온다. 애접꿍을 방에 들이고 얌전하게 앉힌 후에 어머니가 손을 잡으신다. “정서방 하라는 대로 하믄 되는겨. 절대 먼저 무엇을 하자고 하믄 안되는겨. 니는 그냥 가만히만 있으면 끝난다.” 내가 뭐 허수아비인가, 가만히만 있으라 하시게. 애접꿍은 어머니의 말씀에 토를 달려다가 너무 피곤해 앉은 채로 졸기 시작한다.

     

    애접꿍의 신랑은 친척 오빠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먹고 신방으로 들어왔다. 당시 신랑은 도심에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어리고 잘생긴 신랑이 처음 먹어보는 술에 취해 허둥거리는 것을 지켜보는 게 무척 재미있었나보다. 그 재미를 끝내고 싶지 않은 동네사람들이 밤새 내내 창호지에 구멍을 뚫어 애접꿍과 신랑을 엿보고 키득거리고 있었다. 애접꿍의 아버지가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후 비로소 애접꿍은 신랑과 단둘이 있게 되었다. 호롱불 아래서 남편과 처음으로 대면한 애접꿍은 비로소 자신에게 짝이 생겼다는 사실을 느낀다. 이제 나는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구나, 이 사람을 지아비로 섬기고 잘 살아야 되는구나. 그렇게 첫날밤은 지나갔다. 


    도둑놈 혼내 주러 왔다

     

    다음날 날이 새고 애접꿍의 결혼 첫날이 시작되었다. 혼례잔치는 그 다음날에도 계속되었다. 애접꿍의 남편은 이제 ‘정서방’이 되어 가족의 일원이 되었음을 알리는 인사를 드리러 다녔다. 점심 무렵부터 친척 오빠들을 위시한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우리 아가 훔쳐가는 도둑놈 혼내주러 왔다.”며 신랑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방망이로 발바닥을 때리기 시작한다. “아이고 나 죽네.” 부엌에서 식사준비를 돕던 애접꿍은 남편의 큰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그런 애접꿍을 보고 어머니가 웃으며 달래신다. “니 서방이라고 걱정되냐? 살살 때리는 시늉만 하는 것잉께 니는 모른 척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이어 남편의 죽는 소리가 들린다.

     

    애접꿍은 방으로 달려나가 “오빠들 정말로 때리요? 죽일 작정이요?” 소리를 지른다. 애접꿍이 역성드는 것에 힘이 났는지 애접꿍의 남편은 다리를 묶은 헝겊을 풀고 일어나 도망치기 시작한다. “나 장가 안갈라요.” 소리를 지르며, 장가 들러 걸어왔던 눈길을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도망가는 것이다. 어린 신랑을 너무 혹독하게 다룬다고 애접꿍의 아버지에게 혼이 난 친척 오빠들은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신랑을 쫓아간다. ‘안 때리겠다’는 다짐을 거듭 받은 후에 신랑은 다시 처가에 돌아왔으니, ‘걸음아 나 살려라’ 사건은 두고두고 회자될 만했다.

     

    이틀이 훌쩍 지나고 이제 애접꿍이 시집으로 떠날 시간이 되었다. 흥청거리던 혼례잔치의 분위기도 잦아들고 주섬주섬 짐을 살피는 아버지의 손에 미련이 가득하다. 마지막 절을 올리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연신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낸다. 신랑에게 먼저 밖에 나가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는 아버지는 등을 곧추 세우고 애접꿍의 눈을 바라보며 말씀하신다. 눈에는 곧 안쓰러움의 눈물 한방울이 흘러내릴 것 같지만 말씀은 단호하시다.

     

    서릿발 같은 한 말씀

     

    “이제 너는 출가외인이다. 너는 정씨 사람이다. 살아서도 그 집 사람, 죽어서도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절대 친정으로 내빼 올 생각은 말아라. 내빼 와도 아비가 너를 못 받아준다. 당분간 친정은 잊고 지내그라. 정서방 뜻 잘 받들고 시할머니 잘 모시고 사는 것이 니 할 일이다. 명심하거라. 너는 정씨 사람이다.”

     

    나이가 덜 찬 딸이 행여나 시집살이를 이기지 못할까봐 하시는 말씀인 줄 이해는 하지만, 애접꿍은 그렇게까지 엄하게 말씀하시는 아버지가 못내 서운했다. 친정을 잊고 지내라니,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니, 왜 꼭 그래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그렇게 칼날처럼 서늘하게 말씀하시지 않았다면, 자신이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모든 결혼생활이 그렇듯, 애접꿍의 삶도 아슬아슬한 적이 많았던 것이다. 더구나 어린 신랑의 뜻을 맞추고 호랑이 시할머니를 모셔야 하는 며느리의 입장에서 더더욱 그랬다. 그럴 때마다 친정을 의지하고 부모 슬하로 되돌아갔다면, 애접꿍은 아주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 다른 삶이 어떤 모습이든 자식들 키워내고 짝 맞춰주는 일보다 더 보람된 것일까, 애접꿍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집가는 날의, 서릿발 같이 단호한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은, 애접꿍이 결혼생활을 지키도록 하는 파수꾼 같은 역할을 했다. 여자에게 주어진 그 길, 며느리로서 걸어가야 할 그 길, 그 길을 벗어나는 것은 곧 딸의 죽음이자 가문의 치욕이라 생각한 애접꿍의 아버지는 그렇게 딸을 떠나보냈다. 애접꿍은 그렇게 시집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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