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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회] 시집, 나 갈라요
    정박미경 / 2014-08-22 03:47:33
  • 애접꿍은 시집을 가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나이 열여섯, 1962년의 일이다.

     

    열여섯, 시집을 가다

     

    애접꿍의 결혼은 전격적으로 결정되었다. 청혼이 들어온 건 그해 가을, 이웃 마을에서 방앗간을 하던 집 안주인이었다. 그 분은 시집의 고모가 되는 분으로, 자기 친정에 들일 조카며느리로 애접꿍을 점찍었던 것이다.

     

    애접꿍이 시집갈 그 집의 상황은 이랬다. 여든을 바라보는 할머니 한분이 계셨다. 그 할머니의 장남 내외가 연이어 급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열여섯 된 장손 손주를 장가보내 집안의 명맥을 잇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 되었다. 만약 장손을 장가보내지 않으면, 할머니의 막내아들이 어머니를 모신다는 명분으로 집안에 들어와 앉을 기세였던 것이다.

     

    할머니(애접꿍의 시할머니가 된 분)로서는 막내아들의 부양을 받으며 그 자식들과 사시는 것이 오히려 더 편안하지 않을까 짐작하지만, 할머니 본인은 그건 법도가 아니라 여겼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에도 여전히 장자승계의 원칙은 중요했기에 아직 덜 큰 장손이 집안을 꾸리는 것이 ‘순리’였던 것이다.

     

    장자승계라는 원칙과 법도는, 뭐라도 상속할 ‘꺼리’가 있는 집에나 해당되는 일일 터였다. 그 집은 물려주어야 할 것이 아주 많은, 장자승계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으면 한바탕 분란이 일어날 그런 부잣집이었다. 할머니는 일가를 이룬 세 아들이 있었고, 장남이 죽고 그 장손이 미성년인 상황은 나머지 두 아들로 하여금 어머니가 이룬 부를 흠모하도록 자극하기에 충분했었으리라.

     

    동갑내기 장손이 남편

     

    애접꿍의 시할머니가 된 그 분이 말하자면 끼니 걱정해야 할 이 집안을 그 지역 안통에서 가장 떵떵거리는 대가로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녀는 이 집안에 들어오자마자 시집올 때 옷가지 밑에 챙겨온 쌀 서말 값으로 돼지를 사서 정성스레 키워 새끼를 쳤다. 새끼들이 토실토실 자라 튼실해지면 장에 내다 팔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는 집을 사고 집 뒤 대밭을 샀다. 당신은 하루 스무 시간이 넘게 베틀에 앉아 모시를 짰고, 솜씨 좋은 덕에 그 모시들은 좋은 값으로 팔려나갔다. 그렇게 번 돈으로 시할머니는 방앗간을 사고 논을 사고 인근 땅을 샀다.

     

    하루 한끼, 그것도 보리와 풀이 섞인 풀죽을 끓여먹으며 베틀을 짜고 돼지를 키워내던 그 여인은 효성스러운 장남 내외와 들떡같은 장손 손주를 품에 안으며 “이제 다 되었다.” 흐뭇했을 것이다. “방앗간 집 호랑이 할매 땅을 안밟고 ○○ 마을을 못댕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집안을 일으켰고, 자손 걱정 없이 대를 이어가고 있으니 죽어서 조상님 뵐 낯은 차린 것이다.

     

    그러나 늘 불행은 안도의 순간에 찾아오는 법, 면장 선거에 출마한 장남이 선거 하루 전날 교통사고를 당한다. 큰일을 위해 머리손질을 하러 양재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신작로에 서너살 아이 하나가 놀다가 급히 달려드는 트럭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몸을 던져 아이를 구하고 자신은 트럭에 깔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큰 아들을 보내고 큰 며느리조차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다. 이것이 불과 삼사년 동안의 일이다.

     

    할머니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딸을 불러 후일을 의논한다. 아들들은 믿지 못하는 것이다. 할머니에게 아들들 보다 중요한 것은 장자승계의 원칙이 지켜지는 것, 그래서 이 가문의 영예가 영원히 드높여지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누가 뭐래도 가부장제의 며느리였다. 그 딸이 바로 애접꿍의 이웃마을로 시집간 시고모이다. 그 분은 방앗간을 하는 친정이 부를 쌓아가는 것을 보고 배워, 시집간 그 동네에 방앗간을 차렸다. 부자되는 방법은 학습되는 문화자원임을 보여주는 사례랄까. 하여튼 그분은 조용히 친정의 큰 살림살이를 이끌 조카며느리를 물색하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의 귀에 애접꿍의 소식이 들린 것이다.

     

    시고모가 중매를 서다

     

    애접꿍은 당시 소학교를 졸업하고 와룡이의 야학에 다니며 공부하는 즐거움에 빠져있을 때다. 천자문도 뗐고, 지역 주산대회에 나가 똑똑함을 뽐냈다. 게다가 어른을 존경하고 모실 줄 알았다. 그런 애접꿍의 됨됨이에 더해 애접꿍의 부모에 대한 동네사람들의 호의와 애정은 ‘가난하지만 양심적인 양반집 규수’라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시고모님이 애접꿍을 점찍은 결정적인 계기는 ‘담벼락 미용사건’이다. 양지바른 동네 담벼락에 줄줄이 앉아 일광욕을 하시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장발을 보다 못해, 애접꿍이 집에 있는 녹슨 가위로 손수 그분들의 머리를 정리해드린 사건이다. 대여섯 어르신들의 머리카락을 단정히 깎아드리고 미역까지 감겨드린 일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미담이었다. 이 미담 또한 고모님의 귀를 피해가지 않았으리라.

     

    나이가 조카와 같은 열여섯이라 멋모르는 남편을 휘두르지도 않을 것이고, 어른 공경할 줄 아니 한 성질 하시는 여든 넘으신 어머니를 잘 부양할 것이고, 양심적인 부모처럼 욕심 부리지 않고 순리대로 살아가니 큰 일 저지르지 않을 것이고, 주판까지 잘 둘 정도로 똑똑하다니 큰 집안을 잘 이끌 것 같았다. 시고모님은 애접꿍이 딱이라 여기고 점찍었던 것이다.

     

                                                     ▲가난한 집 딸 애접꿍이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잘 살 수 있을까.
     애접꿍이 딱 며느리이다

     

    그렇게 청혼이 들어왔다. 애접꿍의 부모는 단칼에 거부했다. “우리 큰아가는 여적 안컸단 말이요. 더 키워서 보낼라믄 몰라도...” 애접꿍을 땅에 놓을 새 없이 안고 키웠다는 애접꿍의 아버지는 특히 단호했다. 어마어마한 부잣집이고 딸랑 아들 하나인 집이라는 호조건도 아버지를 설득할 수 없었다. 마음이 급한 시고모는 애접꿍을 따로 만났다.

     

    “애기씨가 마음 묵기 달렸는기라.”

    “지는 시집은 꿈도 안꿔봤어라. 지가 가서 잘할랑가 몰것어유.”

    “여든이 넘은 울 엄니가 사시믄 을매나 사시것소. 아들이라곤 울 조카 하나 있는디 울 엄니만 돌아가시믄 그 재산 다 애기씨꺼가 된당께라.”

    “재산이 거시기한 것이 아니구만요...”

     

    애접꿍은 열흘을 고민했다. 얼마나 부잣집인지 가늠할 수도 없었고 부잣집에서 살면 얼마나 좋은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시골 고향에서 마냥 부모님과 함께 살 수는 없고 언젠가는 가야 하는 시집이었다. 밑으로는 줄줄이 동생 여섯이 있었고 남자동생들을 공부시키느라 부모님은 허리가 휘었다. 나 하나라도 부잣집으로 시집 가믄 우리 부모님 고생 조금 덜어드릴는지. 어쨌거나 가야하는 시집이라면 지금 이 집에 가는 것도 좋겠다......

     

                                                      ▲어차피 가야 되는 시집이면 이 집으로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애접꿍은 시집가기로 결심한다. 가을에 청혼을 받고 그해 겨울에 시집살이를 시작한 것이다. 시고모님에게 청혼을 승낙한다는 전갈을 보내고 부모님을 설득한다.

     

    “시집, 나 갈라요.”

    애접꿍의 어머니는 눈물부터 흘리신다.

    “애기야, 니 나이가 인자 열여섯인디 어디 시집을 갈라고야.”

    “부잣집이다 안허요.”

    “부잣집이믄 다 좋은 종 아냐. 그 집은 금밥을 묵는다냐.”

    아버지는 버럭 성을 내신다. 애접꿍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버지 손을 꼭 잡는다.

    “아부지, 언젠가는 가야헐거 아니요. 언젠가는 이 딸이 아부지를 떠나야할 거 아니요. 근다믄그 집이 안 좋것소. 가난뱅이한테 시집가는 것보다야 백배 천배 안낫것소. 할매 한분뿐이랑께 시집살이 허벌나게 시키지는 않것구마요. 걱정마시랑께요. 나 잘할랑께요.”

    아부지는 끝내 눈물을 보이신다. 이 애비가 형편이 좀만 나았어도 덜 큰 너를 이리 허망하게 시집보내지는 않을 것을, 하시면서.

     

    시집, 열여섯 애접꿍은 그렇게 시집을 갔다. 앞으로 시작하게 될 새로운 생활에 대한 설레임과, 십육년 동안 살았던 집을 떠나는 두려움을 안고서. ‘호랑이 할매’라고 소문난 시할머니가 무서우면 얼마나 무섭겠어, 사람이 무서워도 호랑이보단 못하지, 슬쩍 입가에 미소까지 떠올랐다. 웬걸, 호랑이 할매는 정말 호랑이였다. 인간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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