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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1회]“반야가 쑥 자랐어요”
    정상오 / 2014-08-12 01:00:00
  • 반야의 여섯 번째 여름이다. 여름에는 덥고 습하다. 어른들은 그늘을 찾아 시원하게 지내고 움직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날씨에도 아이들은 재잘 거리며 즐겁게 뛰어다닌다. 마을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마을회관에 설치한 지름 3m의 수영장이 모두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놀러온 고등학생 언니들이 들어가서 놀 정도로 이 계절에 수영장은 인기가 좋다. 여름방학을 맞은 반야도 자주 이용하고 있다. 입이 파랗게 될 때까지 놀다 온다. 덕분에 물놀이 가자는 시달림을 받지는 않는다.  

     

                                      ▲지하철에서 그림 그리기. 반야는 아빠의 노트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자를 쓴다.
                              모두가 스마트폰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보는 동안 아이는 노트에 그림을 그린다. 제법 그림을 그린다.

    들꽃마을에 이사 온 후로는 여름철 휴가를 다른 곳으로 갈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디를 가도 우리 마을처럼 편하고, 여유로운 곳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옆집 쌍둥이네와 앞집 형님네가 여행을 간지 하루 만에 되돌아왔다. 2박3일을 예정으로 점봉산과 제천으로 각각 떠난 앞집과 옆집은 여행일자를 다 채우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다.

     

    쌍둥이 엄마는 “갔는데 글쎄 아이들이 집에 가자고 난리야. 우리 동네도 시골인데 왜 더 시골로 왔냐고 아이들이 집에 가자고 해서 돌아왔어”

    앞집 형님도 “제천 의림지에 다녀왔는데 우리 동네가 제일 좋다. 이렇게 앉아 시원한 수박 먹는게 제일이다. 괜히 숙박비만 버렸어”

    동네 사람들 모두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소리로 화답했다. 모두가 평상에 앉아 밤늦게까지 수박과 맥주를 마시며 밤하늘을 노래했다. 행복한 마을이다.

     

                                           ▲반야의 오징어 프로젝트. 오징어 글자를 몸으로 표현하는 반야와 쌍둥이네 언니.
                                                    오징어 글자 ‘징’자를 표현한 아이들의 재치에 웃음이 저절로 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마을에서 살면 좋을 텐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 인구의 50%가 도시에 살고 있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아파트 회사에서 분양한 ㅇㅇ단지에 살고 있다. 그들에게 마을은 휴가지에서나 볼 수 있는 관광거리와 풍경이 되어버렸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소문을 듣고, 또는 지나가는 길에 우리 동네를 구경하러 오는 분들이 계시다. 말 그대로 구경을 하러 온다. 그럴 때는 어색하다. 눈을 마주치면 더 어색하다. 이유는 한 가지다. 인사가 없다. 왜 인사가 없는 것일까? 보통은 우리 동네 사람들이 먼저 눈인사를 한다. 

     

    마을에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이웃과의 관계도 멀어지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쏙 들어가는 몇 동 몇 호 입주자는 그 곳에서 몇 사람과 인사를 주고받을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혼자서도 해결이 가능한 아파트라는 주거문화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이웃덕분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이웃 덕분에 수다를 떨고, 이웃덕분에 집을 비워도 걱정이 없고, 아이를 잠시 맡겨두어도 염려가 되지 않는 곳이다. 마을은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곳이다. 사람을 담고 정을 담고 나무와 풀, 길을 담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 아이들은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수영을 하고 뛰어다닌다. 소박한 이곳이 참 좋다. 사는 형편이 다르고, 부족한 것도 많지만, 우리 마을은 몸도 마음도 따뜻하고 풍성한 부자다. 부자스럽게 살고 있다.

     

    우리 가족도 따로 휴가를 다녀오지는 않았다. 대신 도심여행을 하루 하고, 또 한 번은 내가 일하는 거창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따로 휴가 일정을 잡지는 않았다. 대신 더운 여름에 아빠의 일터로 아이와 아내도 함께 다녀왔다.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 도심 여행은 특별하다.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탈 수 있다. 평소 먹어보지 못하는 음식도 먹을 수 있다. 반야도 서울 여행을 좋아한다. 올해는 ‘어린이 난타’를 보러 서울에 다녀왔다. 반야는 1시간 내내 박수치고 소리 지르며 뮤지컬을 즐겼다.

    “반야야 재미있다. 다음에 또 보러오자”,

    “응 아빠 재미있어”

     

                            ▲어린이 난타. 난타를 보고 사진을 찍고 있는 반야는 V자를 그린다. 반야는 아빠에게 자주 오자고 한다.

     

    뮤지컬을 보고 난 후 여동생들을 만나 저녁을 먹었다. 동생이 근무하는 회사 근처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한여름 밤을 즐길 수 있었다. 아내와 나도 수다를 실컷 떨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고추장과 된장 대신에 피자와 스테이크, 스파게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맛있었다. 서울에서 먹는 음식은 맛있다.

     

    반야는 많이 먹는다. 밥 먹고 한 시간 지나면 “엄마 나 배고파”라고 한다. 똥도 많이 싼다. 먹고 싸고 자란다. 마치 여름날, 비 오고 나면 마당에 자라는 풀처럼 쑥쑥 자라고 있다. 2~3개월 만에 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반야가 쑥 자랐어요” 이런 소리를 들으면 반야도 즐거워한다.

    시골에 사는 우리가족에게 더운 여름 피서는 역시 서울 나들이다. 도심체험이라고 할까? 오랜만에 아내와 나도 서울여행을 여유 있게 할 수 있었다.

     

    거창 여행은 내가 일하는 일터에 함께 가는 일이었다. 여름이 오기 전에도 가족들을 데리고 다녀온 거창은 우리가족에게는 익숙한 곳이 되고 있다. 아빠가 일터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무엇을 하는지 구경도 하고 여행도 하는 일석이조다.

    ‘가조’라는 지역에 가서 온천을 하고, 절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아빠가 일하는 절에 가서 하루를 숙박 하는 일정이다. 거창은 5년 정도 공사가 예정된 곳이어서 앞으로도 자주 가족들과 함께 갈 예정이다.

    거창에서 유명한 수승대라는 계곡에 다녀왔다. 여름 내내 동네 수영장에서 놀던 반야를 위한 선택이다.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오락가락 한 덕분에 뙤약볕을 피할 수 있었다. 물이 너무 차가 워서 오래 놀지는 못했다. 찬물 덕에 아이가 감기에 걸릴 것 같아, 가조온천에 일찍 도착했다.


    아내는 사정이 생겨서 온천에 들어가지 못하고, 나보고 반야와 온천에 들어가라고 한다.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하고 벌써 6살이 되어 키도 크고 해서 조금 망설여졌다.

    그래도 별 수가 없었다. 결국은 내가 데리고 들어갔다.

     

    “반야 잠깐 동안만 5살 하는 거야, 남탕에는 6살이 넘으면 들어갈 수가 없으니까 들어갈 때는 5살이다.”

    계산대 앞에 서서 계산을 하는데 아줌마가 묻는다.

    “아이가 몇 살이죠?

    “5살이요”

    “아빠 이 빵구, 똥구 아가씨야, 6살이잖아”

    “반야야 5살이잖아 너”

    “야 이 아가씨야 6살이지, 왜 5살이냐”

    온천장 카운터 아줌마는 내 얼굴을 보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 표도 두 장 내밀었다.

     

    아빠는 거짓말을 했어도 아이는 진실했다. 고맙다. 반야

    나는 여자 아이를 데리고 대중탕에 들어가는 일이 왠지 마음에 걸리고 흔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아랑곳 하지 않았고, 아내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나만 망설임이 있었다.

    온천장에는 스님들도 열 명 넘게 들어오고 계셨다.

     

    “반야야 여기서 아저씨들 고추만 바라보면 실례야”

    “실례? 그게 무슨 뜻이야?”

    “응 예의 바르지 않다는 뜻이야”

    “아빠 그럼 등은 봐도 돼?”

    “응 그럼 봐도 되지”

    “아빠 그럼 스님들 허리랑 콧구멍도 괜찮아?”

    “그럼 괜찮지”

    “대신 가까이 가서 손으로 만져보는 건 하지마”

    “알았어 아빠”

     

    아이는 쉬지 않고 탕에서 재잘 거렸다.

    그러고 보니 여자아이를 데리고 남탕에 들어오는 일을 나 혼자 어색해 했었다. 생각으로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된다고, 울타리를 치고 살아가는 나를 보았다.

    아이의 해맑음을 보면서 살고 있다. 아이 덕분에 나도 해맑아 진다. 회사 일 때문에 고민할 때도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다시 맑아진다.

    생각 이전에 마음으로 세상이 움직이는 것인데 자꾸 나의 작은 견해로 상대를 바꾸려한다. 아내가 운전하는 동안 자고 있는 반야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와 똑같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장을 갈 때면 나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책을 보고나, 음악을 듣거나 잠을 청한다. 반야도 카시트에 앉아 양반다리를 하고 잔다. 아이의 얼굴과 몸짓에 나의 어릴 적 모습이 들어있다. 내 어린 시절 웃음을 아이를 통해서 보게 된다.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말을 세월이 흐를수록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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