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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회]반야와 아빠의 마음 나누기
    정상오 / 2014-07-22 03:46:13
  • 반야가 부쩍 자랐다. 쓰는 표현도 많이 달라지고 표정도 달라졌다.

    “아빠 내 마음이잖아 아빠는 왜 늘 아빠 마음만 있어, 나도 내 마음이 있어”

    “아빠 말하지 마랬지. 아빠는 왜 늘 아빠만 이야기 해, 나도 내 마음이 있어 내가 이야기 할 거야”

    요즘 아이는 자기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밑도 끝도 없이 마음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내 입장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텐데 사실 납득이 안갈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반야야 아빠도 마음이 있어. 아빠 마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빠 마음이잖아” 아이에게 도대체 몇 번이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까? 그래도 내가 확신하는 것은 있다. 아이와 말장난으로 내가 편하기 위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정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담아 듣는 다는 것이다. 반야아빠는 훈련이 많이 되었다.

     

    “아빠는 힘들겠다. 아빠는 회사도 다니고, 집에서 청소도 하고, 아빠는 힘들겠다.”, “반야야 아빠는 일 하는 게 재미있어. 그래서 힘들지 않아.”

    반야는 아빠가 주말에도 일하러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 아빠가 힘들겠다고 하면서 어깨를 주물러 줄 때가 많다. 사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 때문에 몸은 조금 피곤해도 마음은 힘들지 않고 재미있다. 그런데 아이는 이런 아빠가 힘들어 보이는 것 같다. 일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고, 즐거운 일이고, 당연한 일인 것으로 반야가 받아들이면 좋겠다. 이 바람이 욕심이 아니기를 기원하면서 내가 먼저 늘 싱글 벙글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엄마 유치원에서 공부 안하면 좋겠다. 글쎄 내가 파란 선으로 그렸는데 선생님은 그게 아니라고 자꾸 하늘색으로 선을 그리라는 거야.”, “그랬구나. 아직도 선생님이 재미없게 공부를 가르치는구나, “원래 공부는 재미있는 거야 반야야 조금 기다리자”

    아이의 표현 하나에도 많은 이야기들과 의미가 담겨있다. 가끔은 아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반야에게 아빠가 이해를 잘 못했으니 다시 한 번 말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아이는 순순히 이야기 해줄 때도 있지만, 잘 못 알아듣는 엄마, 아빠를 원망할 때도 있다. 아이에게 원망을 들을 때는 억울할 때도 있다.

     

    “아빠 자전거 뒷바퀴 빼줘, 그냥 탈래.”

    반야의 무릎은 멍이 들어있다. 상처도 많다. 오른쪽, 왼쪽 모두 상처가 많다. 긴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라고 해도 반야는 반바지만 입고 탄다. 벌써 몇 번을 넘어졌을까? 아내도 나도 아이가 자전거를 타자고 하면 군소리 없이, 마을길에서 아이의 자전거 뒤를 잡아준다. 혹시라도 넘어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먼저 앞선다.

    “아빠 내가 두 손으로 잡으라고 했지, 왜 또 한손이야! 두 손으로 하라고, 나 안 탈래, 나 화났거든”

    “반야야 아빠가 한 손으로 잡아도 괜찮아. 두 손으로 하니까 아빠도 힘들다.”

    “나 안탈래. 아빠는 왜 맨날 아빠 마음이야, 내 마음도 있잖아”

    8살 동네 언니가 4발 자전거의 보조 바퀴를 빼는 것을 보고는 반야도 뒷바퀴를 빼겠다고 한다. 6살 아이가 무게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뒷바퀴를 빼주었다.

    자전거는 넘어지면서 배우는 게 당연하다. 아이는 몇 번을 넘어지고 일어났다. 그런데 드디어 자전거 뒷바퀴를 뺀 지 나흘 만에 아이가 중심을 잡고 타기 시작한다.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 “아빠 나 잘 타지”, “응 반야야 잘 탄다. 하이화이브” 아이는 자신감 충만한 눈빛으로 “아빠 어때”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 눈빛과 표정이 아이의 삶을 이끌어 갈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반야가 두 바퀴로만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묘한 감정이 앞섰다. “아이가 벌써 저렇게 자라다니 기쁘고 감사하다.” 혼자 독백으로 한 이야기다. 내 입가엔 미소가 가득하다. 동네 언니들에게 자극을 받아 이제 혼자서도 자전거를 탈 줄 알게 되니, 아이가 대견하다. 오늘 밤도 반야는 자전거를 연습중이다. 땀을 흘리면서 점점 속도를 더 내고 있다. 아내와 마을 앞 도로근처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아직은 손이 작아서 자전거의 브레이크를 잡는 게 익숙하지 않다. 대신 다리로 자전거를 멈춘다.

     

    동네 언니오빠들도 반야를 데리고 자전거를 탄다. 요즘 마을길은 아이들 자전거로 가득하다. 학교에 갈 때 자전거를 타고 마을 주차장까지 간다. 자전거는 마을길 여기저기 누워있다. 그 풍경이 보기 좋다.

    아이들이 모여서 자전거를 탈 때면 마치 잠자리가 유영을 하는 것 같다. 자전거 유영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아이들의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행복하기만 하다. 마을아이들에게, 사람들에게 참 고맙다. 아이에게도 아내에게도 고맙다.

    옆집 형님이 이야기 한다. “반야 아빠 참 고생이다. 누구는 그 나이에 아들이 군대에 간다는데, 자전거 잡아 주고 있으니 참 고생이다.”, “그러게 형님. 그래도 좋잖아요. 반야가 벌써 혼자 탈 줄 아는 것 같아요” 형님도 나도,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웃기만 한다.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에 간 이후 마을에 남은 자전거와 씽씽이
     

    지난 열흘 간 오후 5시부터 6시 30분까지 거의 매일, 우리가족은 ‘세월호 특별법제정’을 위한 천만인 서명에 동참했다.

    “반야야 오늘 오후에 반야 유치원 다녀오면, 아빠랑 서명캠페인 하러 가자”

    “아싸 아빠” 아이는 눈웃음을 지으며 흔쾌히 좋다고 한다.

    “그래 그럼 아빠랑 오후에 가자. 거기 가 있으면 엄마도 그쪽으로 오실거야”

    “알았어. 아빠”

    아이는 세월호가 어떤 배 인지 알고 있다. 나는 4월부터 지난 6월까지 세월호 참사로 한숨만 나오고 답답했다. 막막하던 나에게 서명캠페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안성의 자원 활동가 분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었다.

    내가 서명용지를 들고 사람들에게 “세월호 진상규명 해주세요. 특별법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동안 반야는 커다란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여름 오후의 뜨거운 볕이 부담스럽고 날씨도 더웠다. 하지만 반야는 씩씩하고, 밝은 표정으로 함께 했다. 그런 반야를 보고 있으면 대견하고 고마웠다.

     

    서명에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어른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렇다 저렇다 토로도 하고 답답함을 표현도 했다. 행동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또래의 아이들은 자기들의 의견을 이야기 하고,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서명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들이 어른다운 책임 있는 행동을 하지 못했음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내와 아이와 함께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반야야 서명하는 거 재미있니?”

    “응 아빠”

    “뭐가 재미있어?”

    “응 서명할 때 요구르트 이모가 맛있는 요구르트 주잖아. 그리고 조금 있으면 엄마가 오잖아”

     

                                                 ▲“천만인 서명에 함께 참여해 주세요.” 반야도 세월호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다.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행동하고 잊지 않을 것이다.
     

    함께 서명봉사를 하시던 분 중에 요구르트 아줌마가 계셨는데, 늘 반야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아이는 환하게 맞이해 주는 아줌마의 미소와 요구르트가 좋았던 것 같다. 서명을 하는 기간 동안 우리 가족은 외식을 몇 번 했다. 자장면도 먹고, 메밀 냉면도 먹고, 칼국수도 먹을 수 있었다. 이모들이 만들어 온 노란 리본을 가슴을 달고 2주간 함께한 사회참여의 기억은 나에게 감사의 기도를 하게 만들었다. 더운 여름에 우리가족은 소중한 추억을 함께 만들고 그 과정을 공유했다. 세상에 더 잘 쓰이는 우리 가족의 삶을 기원한다. 아이도 나도 아내도 잘 쓰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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