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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회]내 엄마, 애접꿍
    정박미경 / 2014-06-24 06:18:25
  • 애접꿍이라, 이게 뭔 소리인고 하면, 사랑 애자, 맞을 접자를 써서 ‘사랑으로 맞는 귀염둥이’ 정도 되겠다. 내 엄마의 어릴적 아명이라고 한다. 결혼하고 오래 기다려온 자식이라 외할아버지께서 이런 아명을 붙여주셨다 한다. 애접꿍이라는 말은 이렇게 쓰였다. ‘애접꿍, 애접꿍, 오매 이쁜생이 애접꿍’ 혹은 ‘애접꿍 내사랑, 앞으로 보고 뒤로 봐도 어여쁜 내사랑 애접꿍’ 등. 손발이 오그라드는 부정의 노래로 아이를 얼리던 외할아버지는 물론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서너 살까지 외할아버지 품에 안겨있느라 땅에 내려놓여질 새가 없었다는 그 애접꿍은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애접꿍은 자식 다섯을 낳아 모두 결혼을 시키고, 14년 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후 지금은 혼자 산다. 말하자면 ‘독거노인’인 셈인데, 독거노인이라는 단어가 불러들이는 어쩔 수 없는 우울함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애접꿍에게 나이 들어 혼자 산다는 것은, 먹고 자고 싸고 노는 일상을 혼자서 해낼 수 있다는, 아직은 완전체로서의 독립성을 영위하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물론,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밤중에 깨어 어둠 속에서 정신을 차릴 즈음, 아, 내가 혼자였지 라는 자각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를 때도 있다. 그러다가 잠을 깬 이유가 오줌을 누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 불도 켜지 않은 채 화장실 변기 위에서 눈물과 오줌을 모두 흘려보내고는 다시 침대에 돌아와 열심히 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렇게 문득 느껴지는 외로움 또한 스스로가 견디어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애접꿍이기에, 독거노인으로서 그는 언제든 당당하다.

     

    “늙으면 양기가 입으로 온당께.

     

    그 애접꿍과 나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만난다. 다섯 자식 중 셋은 타지에 있고 두 딸은 같은 도시에 산다. 막내딸인 나를 만나는 날이면 애접꿍은 산으로, 강으로, 들로, 유적지로 소풍을 다닌다. 그리고 오리 로스구이나 양념게장, 메기매운탕, 떡갈비 등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다. 반나절, 혹은 하루종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애접꿍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한다. 꽤 먼 거리를 차로 움직이는 경우, 왔다갔다 왕복 서너시간 동안 운전하는 내 뒤에서 혼자 말할 수도 있다. 본인도 인정했다. “늙으면 양기가 입으로 온당께. 몸은 늘어지는디 입만 살아서 워쩐다냐.”

     

    그렇다. 입이 엄청 살아있다. 애접꿍의 입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딸인 내가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다. 백번은 더 듣고도 새로 들은 이야기처럼 집중해야 하는 것이 지겨워질 즈음 내가 화제를 돌리면(나는 많이 참은 것이다), 그 새로운 화제를 전유하여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흡수한 후 다시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놀라운 능력이다. 이야기의 주도권은 늘 애접꿍에게 있으니, 나는 자연스레 추임새 넣는 능력이 타의 추종이 되어간다. 오매, 그랬어요? 그래갖꼬요? 흐미, 죽었어요? 등등.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발견했다. 백번을 더 들었던 이야기를 내가 외면하지 못하는 이유를. 애접꿍의 이야기는 변주가 있었다. 애접꿍의 어린시절 친구인, 의붓어머니에게 구박받는 끝순이가 시집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치자. 그러면 그 다음번에는 의붓어머니에게 구받받는 끝순이가 시집가서 남편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 다음번에는 의붓어머니에게 구받받는 끝순이가 시집가서 남편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는데 치매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 다음번에는 끝순이가 어떻게 심하게 구박받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한 묘사로 등장한다.

     

                                                           ▲엄마의 이야기 흥미진진^^;;;(사진:영화<마마>포스터)
     

    나는 백번도 더 듣는 그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백번도 더 듣는 그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그 이야기들은 70년의 세월을 종횡무진한다. 하루 한끼 밥 먹기도 힘들어 풀죽을 쑤어먹어 배가 올챙이가 된 꼬맹이, 학교를 가지 못해 야학으로 한글을 깨쳤다는 동네 처녀들, 서너살 적 다리를 다쳤지만 병원에 데려갈 생각을 못한 가난하고 무지한 부모 때문에 평생 한쪽 다리를 절어야 했던 친구... 애접꿍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불과 몇 십년전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이고 여전히 어느 곳에선가 살아있는 이들이다. 주로 인내와 희생, 질곡, 고생이라는 단어를 동반하는 그들이 삶은 다른 어떤 것보다 드라마틱하다. 이 모든 것을 끊임없이 기억해내고 재구성하고 맥락을 만들어내는 나의 엄마 애접꿍에게 나는 늘 놀랍다. 그러나 애접꿍은 이 시대의 슬픔과 질곡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여느 평범한 할머니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를 외면하고 무시하고 잊어버리려 애쓰다보니, 평범한 그 이야기가 놀라운 것인지도.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애접꿍과 함께 삶을 만들어온 사람들, 그 사람들을 기억하는 애접꿍의 세월을 말이다. 애접꿍과 함께 자란 동네 아이들, 애접꿍이 시집온 후 만난 ‘나름’ 도시 사람들, 시댁식구들, 동네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 중 내가 직접 본 사람들도 있고, 한집에서 같이 산 사람들도 있지만, 모든 이야기는 애접꿍이 나에게 들려준 것들이 중심이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이야기들은 내 엄마 애접꿍이 구술하는 자서전이자,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가진 것은 몸밖에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왔는가에 대한 포괄적인 인물 스케치가 될 것 같다. 제목은 수필인데 장르는 소설인 이문구의 <관촌수필> 이나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쯤 될래나? 사실 나도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런 저런 글쓰기를 해온 나로서도 새로운 시도인데, 이프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어준다면 더 가열차게 글을 써볼 용기가 날 것 같다.

     

    첫 이야기는 애접꿍의 첫사랑으로 시작해보련다. 애접꿍이 열 일곱 나이에 시집오기 전, 저녁마다 우물가에 물을 긷도록 만든 그, 과연 애접꿍은 그를 잊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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