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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회]“한명의 남성 독립운동가 곁에는 적어도 2명 이상의 여성이 존재했다”
    최선경 / 2014-04-14 07:58:12
  •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지난 2월 14일. 여느 때 같으면 초콜릿을 주고받았을 발렌타인데이 인대, 올해는 갑자기 인터넷과 SNS상에 그날이 바로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날임이 알려지면서 숙연한 분위기였다. 일본에서는 연일 과거사 왜곡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는 일본 관방장관이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때마침 중국에서는 안중근 의사를 기념하며 하얼빈에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동아시아 3국 한․중․일의 팽팽한 긴장관계는 끝이 없는 듯하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놓고 테러리스트 논쟁의 중심에 선 안중근 의사가 주목받으면서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가 화제가 되었다. 뤼순 감옥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 의사에게 보낸 어머니의 편지다.

     

     
                                                                ▲안중근 의사(우)와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장한 아들 보아라.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편지는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일반 어머니들이 자식의 죽음을 대하면서 애태우는 구구절절한 내용과는 차원이 다른 의연함과 단호함이 묻어나는 내용이다. 실제로는 편지로 전한 것이 아니라 안중근 의사를 면회 간 두 아우를 통해 항소하지 말 것을 권하며 전한 말이라 한다. 조마리아 여사는 만주와 연해주 등을 전전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적 지주가 될 만큼 대범하고 강인한 성품을 지닌 어머니였다. 그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mbc 무한도전 (2013.5)
                                        출처: http://www.imbc.com/broad/tv/ent/challenge/clip/index.html?list_id=5582460

     

    우리가 본받아야 할 어머니상

     

    조마리아의 편지는 2013년 5월 무한도전에 방영되면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21세기 개인주의 시대에 어느새 내 가족, 내 몸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소시민으로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반성하게 했던 것이다. 자신의 목숨보다 나라와 민족의 해방을 위해 투신했던 독립운동가의 어머니는 뭔가 달랐던 것이다. 이는 조마리아에 국한된 모습이 아니다.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 이회영의 부인 이은숙, 김의한의 부인 정정화 등 독립운동가의 어머니와 부인의 공통된 모습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우리는 줄곧 현모양처의 어머니상과 아내상이 강조되었고 그 대표적인 인물로 신사임당이 등장하곤 하였는데, 왜 진작 이런 여성들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우리가 정말 롤모델로 삼아야 할 어머니 상은 바로 이런 인물이 아니었을까? 5만원권 지폐에는 신사임당이 아니라 조마리아와 같이 대의를 위해 헌신한 굳건한 어머니가 들어가야 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가족의 절반이 독립운동가

     

    안중근과 같은 ‘한’명의 독립투사가 나오기까지는 여러명의 지원자가 필요하다. 만주로 이주해서 독립운동을 했던 경우는 특히 그 가족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서중석의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이라는 연구 자료에 의하면 서간도로 망명을 떠났던 가족들 ‘절반이 독립운동가’라고 하였다. 독립운동을 위해 온 가족이 함께 이주하여 낯선 곳에 정착하였고 생계활동이 곧 독립자금을 지원하는 후방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여성들은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남편과 아들들을 뒷바라지할 뿐 아니라 생계와 육아, 독립자금 모금까지 도맡아야 했다. 그녀들을 과연 독립운동가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그냥 가족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넘어가야 할까?

     

    현재 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유공자는 남성이 13,000여명인데 비해 여성은 고작 234명 뿐 이다. 남성의 2%도 안되는 숫자이다. 한명의 남성 독립운동가 뒤에는 어머니, 부인, 며느리, 딸 등 협력했던 여성들이 적어도 두 명 이상은 존재했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우리 역사의 이면에서 드러나지 않았고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여전히 여성의 위상이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임시정부 자녀들을 위해 중국 중경에 만들어진 유아원(1941)
     

    이에 지난 3월 1일 ‘가족사 속에서 여성의 역할을 재평가하고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하겠다는 취지로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발족하였다. 여권신장을 외치며 여성 대통령까지 탄생한 대한민국에서 여성독립운동가가 겨우 234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우리는 지금까지 몰랐던 것이다. 역사에 대한 몰이해와 무관심의 결과이다.

     

    너무 늦었다. 여성독립운동에 관해 증언해줄 당사자는 물론 그 후손들도 거의 다 사망했고 기억도, 자료도 거의 사라졌다. 드러나지 않은 여성들의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기란 너무나 요원한 길인 듯하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인 것은 분명하다. 여성계의 관심과 협조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창립기념 다례 모습(2014.3.1. 서대문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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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덧글(7)

  • hjh1984 [2015-11-04]
  • 독립투사들이 조국독립을 위해 최전방에서 싸울 때, 후방에서 그들을 도운 이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옳은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주장에는 몇 가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 hjh1984 [2015-11-04]
  • 우선 독립투사들의 가족에 주목할 경우, 윗글의 제목에서처럼 어머니와 아내에게만 초점을 맞출 수는 없다는 것은 선생님께서도 모르지 않으실 것입니다. 독립투사들의 공로를 그들의 가족에게 돌린다면,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도 공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부모에게 공로를 돌린다면, 자녀는 물론이고 형제자매와 그 가족에게도 공로를 돌려야 마땅하겠지요. 연좌제가 일반적이었던 당시로서는 독립투사들의 직계존비속뿐만 아니라 형제자매와 그 가족도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 hjh1984 [2015-11-04]
  • 즉 독립투사들의 가족에게도 독립유공자라는 법적(法的) 지위를 부여한다면, 혈족(血族) 중 그런 권리를 누려야 할 사람은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이 경우 혈족의 기준을 정하기도 쉽지 않겠지요. 물론 역사가의 입장에서는 독립투사들의 가족이 흘린 피와 땀을 언급해야 마땅하지만, 그들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이를 통해 독립유공자의 성비(性比)를 조절하겠다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사고(思考)입니다. 독립투사들의 가족에게 일정한 공로를 돌린다면, 그것이 여성에게만 주어질 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 hjh1984 [2015-11-04]
  • 또 한 가지 우려되는 부분은, 독립투사들의 가족에게도 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주장이 자칫 최전방에서 싸운 독립투사들과 후방에 남은 그들의 가족에게 대등한 명예가 주어져야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독립투사들의 가족도 일정한 명예를 부여받을 자격이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과연 조마리아 여사에게 안중근 의사와 대등한 명예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물론 조마리아 여사가 안중근 의사를 훌륭히 도운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조국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것은 조마리아 여사가 아닌 안중근 의사였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처형될 때에도 조마리아 여사는 목숨을 내놓지 않았지요. 그런 두 사람이 조국독립에 대등하게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hjh1984 [2015-11-04]
  • 선생님께서는 설마 만주와 연해주에 거주하며 독립군을 도운 한인(韓人) 이주민들과 실제 무기를 들고 일본제국주의에 맞선 독립군들이 조국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똑같은 책임을 부담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조마리아 여사나 한인 이주민들에게 안중근 의사나 독립군들과 대등한 명예가 주어진다면, 훗날 다시 그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에는 아무도 안중근 의사나 독립군들처럼 최전방으로 나가 싸우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조국독립에 기여하든 관계없이 전부 똑같은 책임을 부담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면, 최전방으로 나가 더 큰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후방에 남아 타인을 돕는 위치에 머물고 싶은 유혹을 억누르기 힘들 테니까요. 즉 오늘날 독립유공자를 선정하는 중요한 목적 중 하나를 잃게 된다는 것이지요.
  • hjh1984 [2015-11-04]
  • 윗글의 주장은 전통적인 남녀관계를 바라보시는 선생님의 시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가부장제라는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 아래서 남녀가 상호적이고 쌍무적인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은 그동안 여러 차례 지적해드린 줄로 압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동안 남성에게 여성보다 우월한 명예와 위상이 주어진 것은 그들이 국가와 사회에 대해 더 큰 책임을 부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독립유공자 중 여성의 비율이 훨씬 낮다는 사실과 관련해 여성 억압만 문제 삼으셨지만, 이는 남성이 개개인의 능력과 성향에 관계없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더 큰 위험을 감수할 것을 요구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간과한 주장입니다. 즉 국가와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남성은 목숨 걸고 그 위기를 타개해야 했던 반면, 여성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 hjh1984 [2015-11-04]
  • 물론 앞으로는 국가와 사회에 대해 남녀가 동등한 책임을 부담하고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또한 조마리아 여사에게 애족장(愛族章)이 수여됐듯이, 여성의 전통적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함으로써 남성을 도운 여성에게 일정한 명예와 위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독립유공자의 성비와 관련해 여성 억압만 문제 삼으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오늘날 소모적인 남녀갈등을 조장하는 ‘절름발이 페미니즘’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즉 현재 독립유공자 중 여성의 비율이 낮은 것은 여성이 일방적인 희생을 감수했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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