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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7회]우리 동네도 봄을 맞이하고 내 마음도 봄이다.
    정상오 / 2014-03-31 04:57:28
  • 겨우내 묵었던 때를 털듯이 단비가 내리고 있다. 지난겨울은 눈이 많이 오지 않았다. 봄이 오면서 비라도 내려야 하는데, 비가 안 와서 산도, 들도, 반야네 마당도 퍽퍽했다. 다행히 오늘은 시원한 봄비가 내렸다.

     

    산수유, 매실, 산딸기, 보리수나무에 봉우리가 맺혀있다. 새싹을 낼 준비도 하고 꽃을 피울 준비도 하고 있다. 우리 마을 식구들도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부지런히 마당을 정리하고 텃밭을 일구고 있다. 어제는 겨울 동안 나무들을 감싸 주었던 지푸라기를 반야 엄마가 떼어냈다. 텃밭 한 가운데 쌓아 두고는 불을 붙여 태웠다. 농부님들만 하는 일이라고 여기던 짚 태우는 일을 우리가족이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내는 “불장난 하는 것 같아, 밤에 오줌 싸는 거 아냐” 하면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반야는 언니들하고 부지런히 뛰어 다닌다.

    옆집 형님은 나무를 자르고, 앞집 형님은 정원을 손질한다. 나무들이 봄을 맞이하듯 우리 동네도 봄을 맞이하고 있다. 내 마음도 봄이다.

     

    우리 집 수탉 외출 금지

     

    겨울 동안 궁리하던 일들도 시작했다. 닭장을 옮기기로 한 것이다. 지금 있는 자리는 동쪽 마당인데 뒷마당에 새로 마련하기로 했다. 며칠 동안 하루에 한 두 시간씩 틈틈이 닭장을 만들었다. 지난해 만든 닭장도 아직 쓸 만하다. 하지만 봄을 맞아 닭들이 알을 품기 시작하면서 이제 곧 병아리들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병아리까지 생활 할 새집을 만드는 중이다. 조금 더 넓고 높게 만들고 있다. 닭들이 살기에 괜찮은 집이 지어지고 있다. 작년에는 닭의 습성에 대해서 잘 모르고 지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지켜본 닭들의 생활을 보고 나니 녀석들의 집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조금 알겠다. 닭장을 만드는 동안 우리 집 수탉이 외박을 하는 일이 생겼다. 마을에서 닭을 기르는 집은 하린이네, 반야네, 성실누나네 이렇게 3집이다. 이중에 반야네 와 성실누나네 집만 수탉을 기르고 하린이네는 암탉만 기르고 있다. 반야네 수탉은 틈만 나면 하린이네 암탉들에게 가서 놀았는데, 그제는 아예 들어오지를 않았다. 우리 집 암탉들의 망연자실한 그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잠도 안자고 닭장 문 옆에 시무룩하게 있는 모습에 마음이 짠하다.

     

    다음날 아침 “반야야 수탉 데리러 가자”

    “응 아빠 하린이 언니네 있지?”

    “응 거기에 있어” 나랑 반야는 씩씩하게 하린이네 닭장에 갔다. 반야랑 내가 막대기를 하나씩 집어 들고 수탉 몰기를 시작했다. 어찌나 녀석이 빠르게 뛰어가는지 반야가 아니었으면 몰지 못했을 것이다.

    반야도 “수탉 이놈 집에 가야지”하면서 아빠와 뛰어 다녔다. 수탉이 도망갈 곳을 찾다가 전 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한 곳이 바로 반야네 닭장이었다. 나도 반야도 열심히 뛰었다.

    “반야야 집으로 간다.”

    “아빠 저기 닭장 옆에 있어”

    수탉은 반야네 닭장에 들어가기 위해 꼬꼬꼬꼬 하면서 안절부절못했다. 난 문을 열어 주고 닭이 들어가게 했다. 기뻤다. 수탉이 다시 돌아와서 기뻤다. 당분간 우리 집 수탉은 외출 금지다. 미안하지만 그리 할 수밖에 없다. 우리 집 수탉이 두 집 살림을 하는 것은 괜찮지만, 외박을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었다. 아내도 수탉이 괘씸했는지 외출금지령을 내렸다. 아직까지 외출 금지중이다.

     

    아이들은 놀이기구가 있는 곳이 놀이터라고 생각한다.

     

    하린이네 아빠를 중심으로 마을 남자들이 모여 그네를 만들었다. 남자들은 통나무를 자르고 구멍을 내어 그럴싸한 그네를 완성시켰다. 다 만들고 나니 제법 근사하다. 아이들은 이제야 그네를 만들었냐고 한다. 고맙습니다. 라고 할만도 한데 아이들은 되레 이런 주문을 한다. “아빠 이제 시소 만들어주세요”  

                            ▲아이들의 놀이터, 아직 마무리가 다 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놀이터라고 부를 만한 정도는 되었다.

     

    아이들 놀이터는 진작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이사 온 지 2년이 되어서야 아이들 놀이터를 만들어 주다니 어른들도 참 무심하다. 아이들이 그동안 아파트가 더 좋다고 한 이유는 단 한가지다. 우리 동네엔 놀이기구가 없기 때문이다. 반야가 이야기 한다. “아빠 이제는 우리 마을이 더 좋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가장 쉬운 일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마음씀씀이라는 것을 살펴보게 된다. 진작 만들었어야 하는데, 이제야 만들었다.

     

    반야가 그네를 타고 놀다가 “으앙” 하면서 들어왔다. “엄마, 언니가 갑자기 멈춰서 내가 떨어졌어” 반야가 얼굴에 상처를 여기 저기 입고 들어왔다. 다행히도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다. “그래 어떻게 하다 넘어졌는데?” 엄마가 물었다.

    “응 언니랑 같이 타는데 언니가 갑자가 멈추어서 내가 앞으로 이렇게 넘어졌어” 아이는 다치게 된 이유를 알려주었다. 아내는 아이의 얼굴을 씻어 주고 다독여 주었다. 처음에는 멍이든 줄로만 알았다. 반야의 눈물과 흙이 범벅이 되어 마치 멍 같아 보였던 것이다. 나도 아내도 다행이라며, 괜찮다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아이도 우는 것을 금방 멈추었다. 3살 때는 아파트에서 아빠와 그네를 타다가 그대로 뒤로 날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내가 보는 눈앞에서 그랬으니 나도 아이도 많이 놀랐었다. 갑자기 그 때 생각이 났다. 이번에는 아이가 앞으로 넘어졌다. 반야는 그네에서 앞뒤로 한 번씩은 넘어졌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면 넘어지고 다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은 놀이터에 가서 반야랑 같이 그네를 탔다. 그네를 타면서 보니 그네 아래에 잔돌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그네를 타다 말고

    “반야야 아빠가 여기 돌들을 좀 치울게”

    “응 아빠”

    쇠스랑으로 잔돌을 긁다 보니 손수레로 한가득 나왔다. 하린 이네 아빠와 함께 부지런히 돌을 치웠다. 돌을 치우면서

    “아이들이 앞으로도 자주 넘어질 텐데 잘 치워야겠어요.”

    “맞아요. 형님 돌이 좀 많네요” 하린이 아빠와 내가 부지런히 돌을 치우는 동안 아이는 그네도 타고, 모래터에서 모래떡도 만들었다. 이곳 마을에 살다보면 놀이터 아닌 곳이 없다. 마을 전체가 다 놀이터다. 그래도 아이들은 놀이기구가 있는 곳이 놀이터라고 생각한다. 그네가 제법 운치가 있다. 아마도 어른들이 손수 제작한 수제품이라서 그럴 것이다.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하면서 서로 협동하면서 만들었다. 그래서 더욱 보기 좋다. 아이들이 탈 그네를 손수 만들어준 우리 어른들이 자랑스럽다. 요즘 세상에 놀이터랑 그네를 만들어 주는 엄마 아빠가 얼마나 있을까? 아마 손가락으로 셀 정도일 것 같다. 그래서 이곳 마을 살이가 더 정겹다.

     

                                                    ▲우린 돌로 집을 만들어요. 아이들이 문도 만들고 방도 만들고
                                                  주차장과 화장실도 만들고 있다. 돌이 제법 무거운데 잘 만들었다.

       

    일의 절반이 수다이니 일과 놀이가 따로 없다.

     

    그네도 만들었으니 이제는 아이들 원두막을 만들 차례다. 뭘 또 만드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어른들도 있다. 푸념을 할만도 하다. 휴일이면 울력이라는 이름으로 호출을 하니 매주 바쁘다. 올해 봄도 마을 사람들 모두 마음이 급하다. 울력에 자기 집 마당정리, 텃밭을 일구느라 놀 틈이 없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놀이터 만드는 울력, 마당정리, 텃밭을 일구는 동안 신경질 내는 사람이 없다. 모두 생글 생글 웃으며 일을 한다. 일을 좀 하다보면 간식이 나온다. 간식을 다 먹고 나면 다른 집에서 간식을 또 가져온다. 아침에 모여 하는 울력의 절반은 간식시간이다. 우리 동네는 유쾌한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사람들 같다. 일의 절반이 수다이니 일과 놀이가 따로 없어 보인다.

     

    반야네도 봄을 맞아 텃밭을 일구고 있다. 올해는 너무나 감사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글쎄 반야 엄마가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쇠스랑과 삽을 들고 텃밭을 일구러 나왔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슬리퍼를 신고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마운 일이다. 사실 텃밭을 일구고 마당을 정리하는 몫은 내 담당이었다. 나만 반가운 것이 아니다. 우리 동네 남정네들이 한마디씩 거두었다.

    “오오 반야엄마가 나왔네, 봄은 봄이다.” “형수님 무슨 일 있어요? 일을 다 하시다니!” 봄이 온 것은 사실이지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추측하건데 아내의 마음이 바뀐 것 같다. 나는 아내에게 웬일로 텃밭에 나왔냐고 묻지는 않았다. 다만 사람들에게 “아내가 같이 나와서 밭을 정리하니 참 좋다.”라고만 이야기 했다. 사실 좋다. 10번 잘하다 한 번 못하면 욕을 먹는 세상이다. 하지만 10번 안하다 한 번 하면 고마워하는 것도 세상의 인심이다. 이번 봄은 아내가 인심을 얻고 있는 계절이다.

     

    올해는 텃밭도 조금 더 넓혔다. 지난 해 까지만 해도 동쪽에는 텃밭이 없었는데 올해는 동쪽에 텃밭을 하나 만들었다. 길쭉하니 보기 좋다. 동서남북 4방위마다 마당의 쓰임이 다 다르다. 계절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다르고, 해가 드는 시간이 다르다. 아파트에 살 때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살았다면, 이곳에서는 풍경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땅을 밟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아내가 이야기 한다. “난 이 봄 햇살이 너무 좋아서 봄을 느끼러 나온 것뿐이야. 텃밭을 일구기에 아주 좋더라고” 반야는 오늘도 그네를 타고 들어온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줄지어 따라 들어온다. 깍쟁이 반야아빠는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아이들이 금방 줄지어 나간다. 이 동네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없다면 적막했을 것 같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어른들도 수다를 즐길 시간도 얼마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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