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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회]허술한 며느리 할래요
    조윤주, 김우 / 2014-02-04 02:43:06
  • 남편 본가인 강화 가서 구정을 지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두 해 전부터 시아버지가 두부 가게를 하셔서 명절을 앞둔 시기가 바쁘다. 해서 남편이 구정 전전날 가서 가게 일을 돕고 저녁에 집으로 왔다. 구정 전날 아침 역시 남편이 두부 가게 일손을 도와야 해서 나랑 애들도 같이 좀 서둘러 갔다. 남편이 일손을 보태는 사이 나는 목욕탕에 다녀왔다.

     

    점심 먹고 시작은어머니와 몇 가지 음식을 만들었다. 삶은 고사리 다듬어 볶기, 숙주 데쳐 무치기, 시금치 다듬어 데쳐 무치기로 나물 3종을 완성했다. 시작은어머니가 무얼 얼마나 넣으면 되는지 알려주셔서 별 어려움이 없었다. 시작은어머니가 산적을 양념장에 재워두는 사이 나는 다시마를 튀겼다. 불이 너무 셌는지 다시마가 많이 탔다. 절반을 버렸지만 차례에 올릴 한 접시의 다시마는 건졌다. 내가 산적을 굽는 사이 시작은어머니는 갈비찜을 하셨고 그걸로 명절 준비는 끝났다.

    시어머니가 전과 부침개, 조기구이 따위를 미리 준비해 놓으셔서 한결 수월했다.

     

    첫 명절에 나는 울었어. 외로워서 한참을 울었어

     

    신혼 때 명절이 떠오른다. 첫 명절을 치르고 밤에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난 앉을 사이도 없이 일하는데 남편은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시어머니가 그런 남편을 보더니 옷장 문을 열고 베개를 꺼내 주셨다.

     

    결혼 전부터 나를 따르던, 나이 차가 19년이 나는, 남편의 사촌 여동생이 주위에 물었다. 설거지하는 내 옆에 서서 진짜 궁금해 하며 물었다.

    “왜 우언니만 일해요?” “왜 우언니만 계속 일해요?”

    어리고 철없는 사촌 동생에게도 궁금한 일이었지만 사실 나도 궁금했다. 왜 남의 집 딸 데려다가 자기 조상 제사상 차리는 건지, 자기 친지들 술상 차리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치에 맞아서가 아니라, 한 집만 그러는 게 아니라서, 전국 모든 집이 그러는 거라서 나도 받아들여야 하는, 며느리의 현실이었다. 명절 밝은 달을 보며 옥상에서 고추를 씹어 먹으며 울었다는 친구의 얘기를 들어봐도 별다르지 않았다.

    내가 힘든 건 시어른들이 혹독해서거나 남편이 형편없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해서… 다른 집과 똑같아서 그런 거였다.

     

    왼 종일 일을 하고 밤에 밖에서 남편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서울로 가려는데 막차가 끊겼다고 했다. 남편이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데 정말 다시 가기 싫었고 화가 났고 슬펐다. ‘남의 집’이 아닌 내 집으로 가고 싶었다.

    난 술을 마시면 웃는다. 말도 많아지고 소리 내어 웃는 웃음도 많아진다. 그게 내 술버릇이다. 그런데 힘들 때 어려울 때 술을 마시면 울기도 한다. 그래서 힘겨울 땐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날 밤은 그렇게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에서 울다가 잠이 들었다. 나를 아껴주는 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외로워서 울다가 잠이 들었다.

     

    나도 사위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씨암탉 잡아 대접해야 하는 백년손님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널 딸 같이 생각한다, 이제 우리 집 식구라는 말을 듣는 대신 손님 같은 며느리로 대우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적 '딴~딴~따다'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는 미스코리아처럼 빛나는 존재였다.
                                                      지금은 딸에게 이른다. 모두 다 한다고 결혼하지 마라, 신중해라.

     

    하나하나 바꾸었다

     

    남편에게 얘길 했다. 내가 읽은 몇 권의 여성주의 책 이야기도 하고, 내가 직접 느끼게 된 몇 가지 이야기도 했던 거 같다. 같이 학생운동도 했는데 이건 아니지 않으냐는 생각이 컸다. 역시 사람은 작으나 크나 여러 번 말하면 세뇌당하는 측면이 있다.

    남편이 조금씩 조금씩 달라졌다. 부침개도 부치며 같이 일하게 되었다. 가장 어렵사리 하게 된 건 부엌에 들어가 설거지하는 일이었다. 내가 남편과 시동생으로 조를 짜서 설거지조로 투입했다. 시부모님이 좋아라 하시진 않았지만 또 뭐라 하시지도 않았다. 명절 문화가 한 해 한해 나아졌다.

     

    시어머니는 ‘신아리랑’이라는 식당을 운영하신다. 명절이면 식당 손님까지 맞이해 차리고 치우고 하는 일까지 해야 해서 힘들었다. 시아버지 모임도 식당에서 잡아 일이 더 보태졌다. 아버님은 명절엔 식당 문을 닫자고 하고, 어머님은 명절 모임은 나가서 하라며 팽팽하게 겨루셨다. 결국, 어느 해부턴가 두 가지 다 접게 되어 내겐 다행스러운 결말이 되었다.

     

    시동생이 결혼하고 나보다 서너 살 젊은 동서가 생겼다. 나는 꼬박꼬박 ‘경윤 씨’라고 부르며 말을 놓지 않는다. 시어머니는 “니가 손윗사람이니 반말을 해라.”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나는 어머님 말씀처럼 내가 부려야 하는 대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형님, 동생 하는 게 나이 차이도 아니고, 내 남편이 몇 째냐에 따라서 서열 지어지는 게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남편 한 사람을 선택했을 뿐인데 우리 부모님 외에 없었던 시부모님도 생기고 여러 관계가 생겨난다. 소중한 존재들이지만 또 남편과 이혼 한 번이면 모조리 정리되는 관계들이기도 하다. 이혼한 경우 잘은 모르지만, 따로 연락해서 꾸준히 만나거나 하진 않는 듯하다. 난 언제나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그 관계들을 갈무리하고 싶다.
     

    ▲차례를 지내면 제주인 아버님이 작은아버님이 올리는 잔을 받아 상에 놓는다. 바로 다음엔 남편과 시동생, 그다음엔 시사촌 동생들과 우리 집 아이들, 시동생네 아이들. 이어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순서가 있다. 시어머니, 작은어머니, 나와 동서라는 며느리들이다. 상에 올린 제수는 모두 이들이 준비한 음식이다.(사진출처:뉴시스)

     

    내가 딸이어서 미안할 때가 있다

     

    명절에 태안에 계시는 아버지를 뵈러 간 적이 없다. 도로에 차가 줄을 지어 서 있는데 오며 가며 숨 막히는 명절 교통대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다. 명절을 피해서 뵈러 가는 것으로 갈음하는 게 현명한 처사라는 생각이다. 물론 친정이 아니라 시가가 태안이었다면 당연히, 마땅히, 응당 가야 했을 거다.

    돈 한 푼 없는 신혼에도 시집 쪽엔 선물을 생략할 수 없어 현금 서비스라도 받고 카드라도 긁어 바리바리 마련해야 했지만, 친정엔 그러지 않았다. 한번은 엄마 생신에 5,000원 하는 과도를 선물했던 기억이 난다.

    9년 연애에도 싸우는 일 거의 없었던 사이에 결혼을 앞두고 서운해 먼저 택시 타고 집으로 가고 싶었던 날이 있다. 나는 집에서 뭐라도 조금이라도 더 받아서 신혼살림에 보태고 싶어 안달인 딸이었고, 남편은 뭐라도 덜 받아 집의 부담 덜어드리고 우리가 받은 걸 자기 집에 보태고 싶어 마음 쓰는 아들이라 느낀 때였다.

     

    내가 딸이어서 미안할 때가 있다. 친정이라면 그냥 받아주고 이해해 줄 거로 생각하고 편하게 행동하며 그렇다. ‘너 잘살면 그만이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한 자도 틀림없이 받아들여 살면서 그렇다. 명절증후군이랄 게 없이 사는 요즘, 더 성실하고 더 야무지고 더 일 잘하는 며느리 되고 싶은 마음은… 애초에도 없었지만, 미련 없이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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